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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1.22 20:39:59

22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김영삼(YS) 전 대통령 1주기 추모식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추진파’ 회동을 방불케 했다. 정세균 국회의장과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심상정 정의당 대표, 노회찬 원내대표가 참석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문재인·손학규 민주당,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등 대선주자도 함께했다.

22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김영삼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모식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왼쪽)이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운데)를 사이에 두고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강윤중 기자22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김영삼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모식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왼쪽)이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운데)를 사이에 두고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강윤중 기자

추모위원장인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위기를 맞을 때마다 대통령님을 떠올린다”며 “근자에 국민은 실체를 드러낸 권력층의 무능과 부도덕에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작 이 고언을 들어야 할 ‘친박(근혜)계’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친박 맏형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은 불참했다. YS와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함께 만든 ‘민주화추진협의회’ 대변인 출신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 YS와 동향인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빠졌다. 

YS는 정치 인생에서 박정희·박근혜 전·현 대통령 부녀와 악연을 이어왔다. 1979년 ‘YH사건’이 터지자 박정희 정권은 그해 10월4일 국회에서 YS 제명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가택연금된 YS는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말했다. 시민 분노는 거세지고 10월16일 부산·마산 학생들이 ‘부마항쟁’을 일으켰다. 열흘 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총에 맞아 숨졌다.

1979년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시내에서 경찰 기동대원들이 시민들과 뒤엉켜 걷고 있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제공1979년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시내에서 경찰 기동대원들이 시민들과 뒤엉켜 걷고 있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제공

 박근혜 대통령은 YS 퇴임 후인 1998년 의원 배지를 처음 달았다. YS는 사석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독재자의 딸”이라고 부르며 백안시했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YS는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 2012년 7월 대선 경선 중이던 김문수 경기지사가 서울 상도동을 찾아와 “이번에는 토끼(김 지사 자신)가 사자(박근혜 후보)를 잡는 격”이라고 하자, YS는 “사자가 아니다. 그건 아주 칠푼이”라고 혹평했다.

지난해 YS 서거 때 차남 김현철씨는 “민주화가 다시 불타는 조짐을 보이는 이 시점에서 아버지는 ‘진정한 통합과 화합’이라는 유지를 남겨주셨다”고 말했다. 그 1년 뒤 통합과 화합 대신 국정농단 때문에 온 나라가 혼돈에 빠져 있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이 안 올까’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Posted by 최우규



가짜 뉴스 제작자인 폴 호너는 17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내 덕분에 백악관에 있게 됐다”고 말했다. 호너가 유명 언론을 흉내 낸 사이트에 글을 게재하면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져나갔다. 호너는 반(反)트럼프 시위가 돈을 받고 하는 것이라는 가짜 뉴스를 만들었다. 트럼프 지지자들을 조롱하기 위한 것인데, 이를 진짜로 믿었다. 호너는 “트럼프 캠프 선대본부장도 한 시위자가 3500달러를 받았다는 뉴스를 사실로 여겨 게시했다”고 밝혔다.

호너는 “트럼프가 하고 싶은 아무 말이나 했고, 사람들은 그걸 믿었다”며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도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 “사람들이 더욱 멍청해졌다”며 “계속 뭔가를 여러 사람이 보도록 돌리는데, 누구도 사실 확인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가짜 뉴스는 미 대선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영향을 끼쳤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대변인은 어린 소녀 시신 사진을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마약상에게 성폭행당한 뒤 살해됐다는 것이다. 사진 출처가 필리핀이 아닌 브라질로 밝혀졌으나, 두테르테 지지자들은 계속 사진을 마약과의 전쟁을 옹호하는 데 활용했다.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2014년 대선 당시 중국계 기독교도, 공산주의자라는 의혹이 커지자 증명 서류를 공개하고 메카 순례를 다녀왔다. 2014년 에볼라 사태 때 시에라리온에서는 ‘뜨거운 소금물 목욕이 예방·치료법’이라는 잘못된 정보가 확산됐다. 

국내에서도 가짜 뉴스가 시민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한 목사가 “촛불집회 참석자들이 5만원, 10만원 돈을 받았다”고 설교했고, 목사라는 권위에 힘입어 설득력 있는 소식으로 유통됐다. 부산 해운대 엘시티 사건에 유력 정치인들이 연루됐다는 소식도 지라시(사설 정보지)로 나돌다가 뉴스로 보도됐다. 

한데, ‘청와대 1인자는 최모씨’ ‘호스트바 출신 측근’ ‘청와대 수석이 재벌 돈 뜯어 재단 설립’ ‘말 타고 명문대 입학’ 등 막장 드라마 소재 같은 일들은 실제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소셜미디어를 달구는 뉴스 중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Posted by 최우규



2016.11.16 21:13:41

집권 후 모든 분야를 망가뜨린, 심지어 ‘보수가 경제는 잘한다’는 잘못된 신화마저 깬 이 정권이 잘하는 게 하나 있다. 시간 벌기다. 박근혜(일명 ‘길라임’) 정권을 지탱해온 기제(機制)는 딱 이거 하나다. 불리한 상황이 되면 침잠해 버텼다. ‘개·돼지 같은’ 민중이 뭐라고 하든, 시간을 보내면 됐다. 배곯고 고달픈 시민은 지레 지치기 마련. 그래서 ‘흐지부지’는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부사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한 손이 잘린 뒤 수감된 이강희 논설주간은 이런 통화를 한다.

“우린 끝까지 질기게 버티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나라 민족성이 원래 금방 끓고 금방 식지 않습니까. 적당한 시점에서 다른 안줏거리를 던져주면 그뿐입니다. 어차피 그들이 원하는 건 진실이 아닙니다. 고민하고 싶은 얘기는 고민거리를, 울고 싶은 얘기는 울 거리를, 욕하고 싶어 하는 얘기는 욕할 거리를 주는 거죠. 열심히 고민하고 울고 욕하면서 스트레스를 좀 풀다 보면은 제 풀에 지쳐 버리지 않겠습니까. 예? 오른손이오? 까짓 거 왼손으로 쓰면 되죠.”

과연, 얼마 전까진 그랬다. 세월호 참사가 터진 게 947일 전인 2014년 4월16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뺨에 흐르는 눈물을 훔치지 않는, 본능마저 거스르는 놀라운 모습을 연출한 사과 이외에 한 것이 없다. 진상규명에 부정적 입장을 가진 이들을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 보내 훼방 놓았다.

특조위 활동 연장 문제를 놓고 박 대통령은 “국민 세금이 많이 들어가는 문제”라고 했다. 시민 300여명이 생짜로 숨진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 세금을 더 쓰면 안된다는 것이다. 참사가 난 지 2년이 넘어 시민들의 피로도가 올라갈 즈음이었다. 서울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천막 농성장을 향해 “이제 그만하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던 차다. 9월30일 정부 방침에 따라 특조위 활동은 종료됐다. 시간은 세월호 유가족들 편이 아닌 듯했다.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도 마찬가지다.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서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다. 투병 317일 만에 숨졌지만, 정부와 보수 측에선 진상규명보다는 ‘부검 논란’을 부채질했다. 371일째인 현재까지 그 누구도 책임을 졌다거나 처벌됐다는 소식은 안 들렸고,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지던 차다. 

국가가 책임지겠다던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 미배정, 굴욕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 군사정권 때나 있던 역사교과서 국정화, 지역주민뿐 아니라 주변국과도 마찰을 빚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등에서도 박근혜 정권은 시간을 무기로 내세웠다. 한때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다가 곧 당사자들만의 문제로 축소되고, 더 시간이 흐르면 “반대를 위한 반대” 혹은 “종북주의자들의 악머구리” 프레임에 갇혔다. 

정권의 내부자와 공모자들은 대중들이 떠들다 입을 닫을 때까지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송로버섯 요리를 먹고, 명품 구두를 신었다. 빌딩을 사고, 고급 외제 승용차, 승마, 해외여행을 즐겼다.

그러다 파탄(破綻)이 났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얼마나 가겠나” 했겠지만, 두 달째다. 박 대통령은 으레 시간 벌기로 일관했다. 첫 보도가 나고 35일 만에 90초짜리 녹화 사과를 했다. 간을 보다가 지지율이 5%까지 폭락하자 열흘 뒤 재차 사과를 했다. 박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고 했다. 하나, 그를 대리하는 유영하 변호사는 “사실관계를 대부분 확정한 뒤 대통령을 조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했다. 관계자들 수사가 끝나려면 수개월이 걸릴 것이다. 

흥분하면 속을 고스란히 드러내 어찌보면 순진한 것 같기도 한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15일 이런 말을 했다. “대통령은 지금 어떤 사안이 터진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 노력에 따라 회복될 수 있는 지지율이라고 본다.” 이번에도 시간은 박근혜 정권 편일까.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최근 미국 덴버대학교 정치학과 에리카 체노웨스 교수의 3.5% 법칙이 부각되고 있다. 1900년에서 2006년까지 발생한 시민 저항 운동을 분석해봤더니 한 국가 인구의 3.5%가 집회 및 시위를 지속할 경우 정권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다만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시위, 비폭력 시위’라는 두 가지 전제가 있다. 한국 인구 3.5%이면 180만명 정도다. 이들이 시간의 무게를 버티면, 정권은 버티기 어렵다는 것이다. 

외국 교수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시민들은 이미 알고 있다. 시간은 힘센 이의 편이 아니다. ‘흐지부지’를 거부하는, 끈질긴 이의 편이다. 영화 속 이강희 주간과 달리 박근혜 정권은 이미 오른손을 잃었고, 이제 왼손도 잃고 있다.

Posted by 최우규

 45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최악의 패자는 여론조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주요 언론사와 여론조사기관 대부분이 ‘이단아’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보다는 ‘모범생’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 승리를 예상했다. 뉴욕타임스는 클린턴 후보 당선 가능성을 84%로, 프린스턴 선거 컨소시엄과 허핑턴포스트 등은 99%로 봤다. 워싱턴포스트와 ABC방송은 47% 대 43%로 클린턴 우위를 점치는 등 주요 기관 11곳 중 9곳이 틀렸다. 망신을 당한 기관들은 반성문을 냈다. 9일(현지시간) 미국 여론조사 연합회는 “이번에는 완전히 틀렸다”면서 “여론조사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말했다.


 반면 대선 직전 트럼프 후보 우위를 점친 유력 기관은 2곳에 불과했다. LA타임스와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은 공동조사에서 48%인 트럼프가 43%의 클린턴을 앞섰다고 7일 밝혔다. 이어 경제전문매체 인베스터즈 비즈니스 데일리(IBD)와 여론조사기관 테크노메트리카 마켓 인텔리전스(TIPP)는 8일 45% 대 43%로 트럼프 우위를 예상했다.

 이 두 곳의 여론조사 기법은 좀 달랐다. LA타임스는 투표 의향에 중점을 뒀다. 조사 때마다 응답자를 무작위 추출하는 대신 3000여명을 골라 추적 조사했다. 그러면서 2012년 대선 때 누구를 찍었는지를 기반으로 가중치를 주고, 실제 투표할지도 거듭 물었다. 인터넷을 통한 조사도 병행했다. 그 이유에 대해 USC 경제·사회조사 사이프센터 아리 캡테인 책임자는 “일부 유권자들은 조사원과의 직접 면담에서 트럼프 지지 사실을 인정하길 부끄러워했다”고 말했다.

 IBD·TIPP도 자신들만의 방식을 썼다. 보통 여론조사기관은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인구통계학적으로 응답자를 고르지만 이곳은 연령, 성별, 인종, 지역 등 인구총조사 결과에 맞춰 응답자를 골랐다. 또 응답자들의 ‘정당 지지’(지지 정당이 있으면 일시적으로 다른 정당에 투표했다가도 특별한 사정이 없어지면 다음 선거에서는 원래 정당을 지지함) 여부에도 가중치를 줬다. 투표 의향에 무게를 둔 두 곳의 기법은 ‘비정통적, 실험적’이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이들 예상이 맞았다. 이번에는 여론조사기관도 ‘이단아’들이 이긴 것이다.     최우규 논설위원  

Posted by 최우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예상을 깨고 승리했다. 미국민은 물론 전 세계는 지난 6월 영국의 예상치 못했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 때를 넘어서는 충격을 받고 있다. 미 CNN 방송은 투표 전날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 당선 확률이 91%로 높아졌다고 보도하는 등 대부분 언론은 트럼프의 패배를 점쳤다. 주가의 흐름도 같은 방향이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트럼프는 손쉽게 승리했다. 미 정가 경력이 전혀 없는 ‘아웃사이더’가 미 대통령이 되는, 240년 미국사 최초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트럼프 승리에는 기존 지지층인 쇠락한 중서부 제조업 지대(러스트 벨트) 백인 노동자들이 결집한 데다 샤이 트럼프(숨어있던 트럼프 지지자들)가 대거 투표장으로 나갔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정치 공학적 분석만으로 트럼프 승리를 분석하기는 부족하다. 오히려 미 워싱턴 정가와 주류 언론, 월가 등으로 표징되는 기존 질서를 유권자들이 거부했다고 보는 게 마땅하다. 기득권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들이 패배한 것이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 경찰을 자처하며 개입주의 노선을 유지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개방주의라는 세계 질서를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부는 소수에 집중됐고, 불평등은 심화했다. 노동자들은 오르지 않는 임금 통장을 쥐고, 월가와 워싱턴 정가 요인들의 번쩍이는 삶을 질시해야 했다. 8년 전 버락 오바마 미 민주당 후보가 외쳤던 ‘변화’의 바람도 기득권을 흔들지 못했다.

 그 불만을 어느 정치인보다 날것으로 이야기한 게 트럼프 후보다. 억만장자, 부동산 재벌인 트럼프 후보는 TV 연예 프로그램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며 오직 미국만을 위한 미국을 내세웠다. 일자리 보호를 명분으로 멕시코 불법 이민자를 막을 장벽을 설치하겠다면서 멕시코 이민자를 강간범이라 불렀다. 여성을 ‘미스 돼지’ ‘미스 가정부’ ‘빔보(골빈 미녀)’라고, 무슬림은 ‘테러범’으로 비하했다. 소수자 옹호, 이민자 수용 등 관용과 정치적 올바름보다는 ‘내 일자리와 내 재산’ 보호 같은 욕망의 정치를 대리했다. 백인 저소득층, 보수층을 중심으로 열광적 지지를 받는 ‘트럼피즘’이 뒤를 따랐다.

 트럼프 후보는 미 정당·정치 제도의 틀도 깼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만든 미 공화당에 혈혈단신 들어가 강자 16명을 패퇴시키더니, 결국 민주당 클린턴 후보까지 무릎 꿇렸다. 미 대선 과정을 정책과 공약의 경쟁이 아니라 추문 폭로와 이전투구로 얼룩지게 만들었다. 대선판은 쇼 비즈니스에 다름 아니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추악한 선거운동은 모두 그가 기획해낸 것이다. 그에 맞선 클린턴 후보는 기성정치의 대표자로 각인됨으로써 유권자의 염증을 풀어주지 못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대표해온 진보와 변화를 자신의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였다. 지지율 50%가 넘는 현역 대통령 오바마의 지원도 기득권의 성에 갇힌 클린턴을 구출하지 못했다.

 트럼프 후보는 미국 사회에 분열과 갈등의 씨앗을 뿌림으로써 미국 민주주의 모델을 위기로 몰았다. 그러나 변화에 대한 열망이 있을 때에는 그 변화를 반영하는 정치적 결과를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가 살아 있다는 점도 보여줬다. 결국 트럼프 후보는 유권자들의 기성 체제에 대한 미국 보통 시민들의 뿌리 깊은 혐오와 새로운 체제를 위한 변화 열망에 기대 고 전복과 부인, 부정을 무기로 미국 대권을 거머쥔 것이다. 지금까지 정치학 교과서는 상당 부분 새로 써야 할 판이다.

 45대 미국 대통령 트럼프 앞에는 난제가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최악의 선거라는 혹평을 받은 이번 대선 기간 갈가리 찢긴 미국의 상처를 치유하고 통합을 이뤄내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미 공화당이 상·하원에서 모두 다수당이 됐다. 하지만 트럼프 후보가 지금까지 보여준 독불장군식의 태도라면 여야 모두와 갈등할 때 국정을 원만하게 이끌기는 어렵다. 또 기존에 내놓은 공약들을 구체화하고, 합리적 의견을 도출해 실행가능한 대안이 되도록 다듬는 것도 무거운 숙제다. 특히 자신의 당선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브렉시트보다 몇 배는 강력할 것이라는 우려를 잠재워야 하는 과제도 있다.

 트럼프 후보는 오바마 대통령의 불법 이민자 추방을 유예하는 이민개혁 행정명령 폐지, ‘오바마케어’(국민건강보험 가입 의무화) 백지화, 소득세와 법인세 등 감세, 각종 자유무역협정 폐기나 재협상, 환경규제를 천명한 파리협정 탈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기여도 축소 등을 천명해왔다. 미국제일주의, 반세계화, 신고립주의, 보호무역 기조다. 트럼프는 기존 우방보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의 관계 진전 등 국제 정치에서의 격변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구체적 대안을 내놓지는 않았다. 기성 질서 거부라는 그의 분명한 입장과는 달리 그가 생각하는 다른 질서가 무엇인지, 그의 비전이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트럼프 시대의 미국, 나아가 트럼프 시대의 세계는 불확실성에 휩싸여 있다. 미국인은 물론 세계인은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

Posted by 최우규

서점가에 조용한 돌풍이 일고 있다. 나온 지 29개월 된 책이 최근 베스트셀러로 부상했다.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의 <대통령의 글쓰기>. 교보문고는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2일까지 이 책 판매량이 직전 열흘보다 76.6배 늘었다고 4일 밝혔다. 11월 첫째주 온라인 종합 판매량도 지난주보다 30계단 오른 5위다. 온라인서점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에서도 모두 종합 5위를 차지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청와대에서 8년 근무한 강 전 비서관은 이 책에서 기조를 잡아라, 제목을 붙여라, 타이밍을 잡아라40가지 소주제로 대통령들의 글쓰기 방식을 소개했다. 또 두 대통령의 글쓰기가 얼마나 엄밀했고, 소통이 활발했는지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연설문) 단어 몇 자 고쳐 내려오면 만점 수준. 한 단락을 긋고 좌우 여백에 다시 쓰면 매우 양호. 한쪽 전체에 가위표를 치고 뒷장에 다시 쓰면 좀 심각하다. 더 큰 문제는 녹음테이프가 내려오는 경우다. 대통령이 고쳐보려 했지만 손을 댈 수가 없을 때 직접 녹음을 해서 보낸다. 이것을 우리는 폭탄이라고 불렀다.”(14)

“2006년 신년사 준비. (무현) 대통령이 연설비서실에서 보고한 초안을 수정해 내려보냈다. ‘국민 여러분, 개해가 밝았습니다로 시작했다. 초안은 국민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였다. 아무리 개띠 해지만 설마 대통령이 개해라고 하셨을까. 대통령에게 여쭤봤다. 대통령은 당연하다는 듯이 “(‘새해개해로 친) 오타네하는 거였다. 확인과 퇴고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는 기회였다.”(142)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 연설문을 사전에 받아 빨간펜으로 첨삭했다는 의혹이 보도된 뒤 책 판매량이 늘었다. 비선 실세가 대국민 메시지까지 멋대로 주물렀을 가능성에 분노한 독자들이 두 대통령의 글쓰기를 돌아보게 됐다는 설명이다.

강 전 비서관은 지난해까지는 두 대통령에 대한 향수 덕에 이 책이 팔렸는데, 최근에는 자신의 생각을 갖고 글을 쓸 수 있는 대통령이 두 분밖에 없었다고 독자들이 느낀 것 같다좀 씁쓸하다고 말했다. 왜 안 그렇겠나.

Posted by 최우규

박근혜 대통령이 이틀 연속 ‘깜짝 인사’를 단행했다. 그제는 노무현 대통령의 청와대 정책실장이던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국무총리로 지명하더니, 어제는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이던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을 자신의 비서실장에 앉히겠다고 발표했다. 인사권을 휘둘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덮고 분노한 민심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번 인사는 절차와 과정도 문제지만, 예상외 카드로 자신이 처한 위기를 모면해보려는 그 저의가 노골적이다. 박 대통령의 독단과 독선은 이제 섬뜩하기까지 하다. 

퇴장하는 박근혜 대통령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청와대 춘추관 기자회견장에서 비선 실세 최순실씨 국정농단과 관련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퇴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제 김병준 교수 지명을 놓고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에서도 분노가 거세졌다. 시민들로부터 퇴진 압박을 받으면서도 여야, 국회와의 협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인사권을 휘두르는, 여전한 오기와 독선 때문이다. 야당과 인연을 가진 인물을 내세워 야권 분란은 물론 김 교수가 주장해온 이원집정부제 등 개헌으로 시선 전환을 꾀하려 했음이 명백하다. 그래 놓고 여야에 인선안을 받으라고 요구했으니 대통령 퇴진 목소리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또 깜짝 인사를 단행했다.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화해와 포용의 가치를 바탕으로 어려운 시기에 대통령을 국민적 시각에서 보좌하며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데 적임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한데 한 위원장이 국민 대통합을 이뤘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바도 없다. 이제 와서 그가 박 대통령과 마주 앉아 시민의 의견을 제대로 전달해줄지도 의문이다.

박 대통령은 이 같은 오불관언 인사로 여야 할 것 없는 비판에 직면했다. 새누리당에서도 “국회와의 협의 없이 총리를 지명하여 갈등이 고조된 그 다음날 비서실 인선을 강행했다. 비서실 인선 시기를 이렇게 잡은 것은 대통령의 일방 독주 선언”(하태경 의원)이라는 비난이 나왔다. 결국 청와대와 새누리당 내 일부 친박계만 환영하는 인사가 돼버렸다. 

박 대통령은 ‘통합과 화합’ 명찰을 단 인물을 내세워 현 국면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눈 밝은 시민이 그런 잔수를 못 알아볼 리가 없다. 

최근 주말 날씨를 알아보는 시민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5일 열리는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범국민행동’ 문화제에 참석하기 위해서란다. 그만큼 시민의 분노가 턱밑까지 찼다는 사실을 박 대통령은 뼈아프게 자성해야 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방탄용’ 인사권을 거두고, 국정 방향과 자신에 대한 조사 방법을 국회와 논의하는 게 그나마 정도일 것이다.   2016.11.03

Posted by 최우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