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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사적인, 지극히 사적인

최우규 논설위원


11월29일 박근혜 대통령은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단 한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지금 벌어진 여러 문제들 역시 저로서는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들이었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개인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은 결국 저의 큰 잘못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박근혜 대통령이 11월29일 청와대에서 3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머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어디서 많이 듣던 변명이다. 1972년 영화 <대부>에 그 원형(原型)이 나온다. 알 파치노가 열연한 마이클 콜레오네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총을 쏜 솔로조와, 그에게 매수된 경관 매클로스키 처단 계획을 세우면서 이렇게 말한다. “It’s not personal, Sonny. It’s strictly business(이건 사적인 게 아니야, 소니. 순전히 사업이야).”

영화 <대부>에서 주인공 마이클 콜레오네로 열연한 알 파치노.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3차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영화 <대부>에서 주인공 마이클 콜레오네로 열연한 알 파치노.

이 대사는 후대에 두고두고 변주된다. 2008년 영화 <테이큰>에서 국제 인신매매 브로커 파트리스 상 클레어는 주인공 브라이언 밀스에게 딸 납치가 “사적인 것은 아니다”라면서 목숨을 구걸한다. 브라이언은 “It’s all personal to me(나는 지극히 사적이야)”라며 총을 쏜다. 2015년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에서 아내와 딸을 살해당한 검사 출신 알레한드로는 멕시코 범죄조직 두목 파우스토 알라르콘의 집을 급습한다. 파우스토도 살인을 지시한 게 “사적인 건 아니었다”고 하지만, 알레한드로는 “나에게는 사적이야”라면서 복수한다.

영화 <시카리오>에서 알레한드로(왼쪽)가 자신 부인과 딸 살해를 지시한 멕시코 범죄조직 두목 파우스토와 이야기하고 있다.영화 <시카리오>에서 알레한드로(왼쪽)가 자신 부인과 딸 살해를 지시한 멕시코 범죄조직 두목 파우스토와 이야기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잘못된 내면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범죄집단 안에서 자라면서 받아들인 태도, 감정, 가치관 등이 그릇된 사고체계를 만들었다. 늘 죄를 짓고 있다고 느껴서야 버틸 수가 없다. 사적 감정에 따른 게 아니라 ‘일’이라고 세탁해야 한다. 박 대통령의 발언도 그런 내면화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친박들도 “대통령이 단돈 1원이라도 받았느냐”고 옹호한다.

그럼 공적 사업이라는 것인데, 그가 한 일의 결과는 공공의 이득으로 나타났어야 한다. 실제 이득은 누가 가져갔나. ‘비선 실세’ 최순실씨다. 그는 남의 돈으로 회사들을 운영하고 돈을 벌었다. 대기업에서 뜯어낸 말을 딸에게 주고, 조카에게도 사업을 챙겨줬다. 문화계 황태자라고 불리던 차은택씨도 돈푼깨나 챙겼다. 그래서 박 대통령에게는 제3자 뇌물죄 적용이 검토되고 있다.

비서실세 최순실씨박근혜 대통령 '비선실세' 최순실 씨가 11월9일 새벽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마친 뒤 구치소로 돌아가기 위해 호송버스로 향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사익 추구 안 했다” 발언보다 듣는 이를 분노케 한 발언은 “주변 관리”다. 현재 국정농단 사태가 그저 주변 관리를 못했기 때문이라는 발뺌이다. 이전 대통령들도 주변 관리를 못해 사달이 났지만, 대부분 돈을 챙긴 정도였다. 박 대통령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유권자들이 잠시 위임한 통치권을 ‘주변’에게 나눠줬다. 지난 4년간 권력 1위는 박 대통령이 아니라 최순실씨였다. 박 대통령은 집무실보다 관저에 머물면서 ‘혼밥’하고 TV드라마를 보며 지냈다. 연봉을 2억원 넘게 받는 공직자가 기실 히키코모리(引き籠もり·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 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병적인 사람) 생활을 한 것이다.

그 사이 최순실씨는 대통령 연설문 수정, 장차관 간택도 했고, 국무회의·수석비서관회의 개최 지시까지 했단다. 최씨는 2013년 10월 말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국무회의를 열든지 정 안되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열 것’을 주문했다. 정 전 비서관이 어려움을 호소하자 최씨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준비하라”고 다그쳤다. 10월31일 오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가 열렸다.


무려 157년 전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 이렇게 썼다.

“지배자 이익이 국민의 이익이 되고, 지배자 의지가 곧 국민 전체의 의지가 돼야 하는 시대다. 따라서 국민이 자신의 의지를 견제할 필요가 없어졌다. 국민이 스스로에게 횡포를 부릴지 모른다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지배자는 국민에 대해 철저하게 책임을 져야 하고, 그렇지 못할 때에는 국민에 의해 즉시 권좌에서 쫓겨나게 된다. 따라서 국민이 권력의 사용처와 사용 방법을 엄격히 규정한다면, 그 권력을 지배자에게 안심하고 맡길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을 대신해 행사하기 편리하도록 지배자 손에 집중돼 있을 뿐, 그것은 사실상 국민의 권력인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를 딱 거꾸로 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자식들이 수학여행가다 물에 빠져도 손쓸 수 없고, 시위에 나섰다가 물대포에 맞아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가 낸 세금을 엉뚱한 데 쓰고, 내가 산 물건의 이문으로 엉뚱한 사람이 배불린 게 보였다. 촛불집회에 나간 이유다. 혹시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촛불을 들었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나는 지극히 사적이었다.”


Posted by 최우규



2016.11.28 23:32:02

새누리당 친박근혜계 중진 의원들이 어제 모임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명예 퇴진’을 직접 제안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에 주목한다. 전날 전직 국회의장 등 원로들의 퇴진 제안에 이어, 여당 주류까지 퇴진 요청에 동참한 것이다. 늦었지만 전국에서 190만 촛불이 켜지는 현 상황의 심각성을 친박 핵심들도 인식하게 됐다는 증좌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이들 제안을 스스로 누차 밝힌 대로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주류 중진들은 어제 시내 모처에서 비공개 오찬 회동을 하고 박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는 것을 고집하기보다는 국가와 본인을 위해 명예로운 퇴진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건의를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이들은 4~5% 지지율에 머무는 박 대통령을 지탱해주던 마지막 보루였다.

서청원 의원은 회동 후 “국가와 대통령을 위해 탄핵보다는 ‘질서있는 퇴진’이 맞다는 데 공감했다”고 말했다. 또 “최종 결정은 대통령이 하는 것이지만, (야당의 본회의 표결 추진 전에) 선언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이들은 허원제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이 같은 내용을 전했다. 서 의원도 박 대통령에게 이 같은 의견을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오른쪽)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진석 원내대표에게 대화를 요청하며 손짓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오른쪽)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진석 원내대표에게 대화를 요청하며 손짓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당내 분위기도 급속히 퇴진 쪽으로 기울고 있다. 대통령 탄핵 추진 요구에 펄쩍 뛰던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친박 중진들의 건의에 대해 “박 대통령이 여러 의견을 듣고 있으니 참고하시지 않겠느냐”며 “고명하신 국가 원로들 고견을 바탕으로 당 어른들도 시국수습 의견을 낸 것 같아 보인다”고 평가하며 변화된 태도를 보였다. 

마지막까지 민심에 맞서던 친박 주류도 대통령 임기 축소에 동의하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촛불민심은 5주째 계속되면서 바람에 꺼지기는커녕 늘어가고 있다. 검찰 수사에서는 박 대통령이 연루된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에 퇴진 요구를 넘어 “체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조만간 국회에서는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발의되고, 현재 흐름이라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 지지도는 한국 역사상 최저인 4%(한국갤럽)까지 떨어졌고, 국회 제1당이자 여당인 새누리당은 정당 지지도에서 3위로 전락했다. 

유권자와 부대껴야 하는 지역구 의원들은 민심 흐름을 절감하고 있다. 오죽하면 한 친박 의원이 “맞아 죽을까봐 무서워 지역구에도 못 내려가고 있다”고 하소연할 정도이겠는가.

정권도 내부에서 붕괴하고 있다. 사의를 표한 뒤 박 대통령의 집요한 만류를 뿌리쳐온 김현웅 법무부 장관 사표가 결국 수리됐다. 교육부마저 박근혜 정권이 추진해온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철회안을 내놓는 등 원심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 

친박 주류 핵심의 태도 변화로 ‘청와대에서 장기 농성’이라는 박 대통령의 기존 전략은 폐기될 수밖에 없다. 이제 선택지는 둘로 줄었다. 퇴임 시한을 못박고 국회와 정부에 질서있게 권력을 인계하는 방안과, 끝내 버티다가 친박까지 가세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된 뒤 청와대에서 유폐돼 헌법재판소 결정을 기다리는 것이다. 특히 탄핵이 추진되면 헌법재판소에서 소추안이 인용되든 안되든 나라 꼴이 엉망이 된다는 점은 박 대통령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 비정상인 한국 국정을 정상화하는 방안인지 두 번 다시 물을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퇴진 선언에 개헌이나 면책 등 이런저런 조건을 달거나 퇴임 시점을 명확하게 못박지 않으면 탄핵 회피용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퇴진 선언을 계기로 국회 내 탄핵 절차 진행을 훼방한 뒤 다시 지지부진하게 끌려고 한다면 더욱 거센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190만명의 촛불시민이라면 그 정도 꼼수는 능히 들여다보고 남을 것이다.

이제 박 대통령은 국정 최고지도자로서 결단을 내릴 시점이다. 조건 없이, 가급적 이른 시점의 날짜를 분명히 택해 사임한다고 약속해야 한다. 또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스스로가 초래한 국정 난맥상에 깨끗하게 사과를 하고, 이론의 여지가 없는 ‘퇴진 로드맵’을 밝혀야 한다.

또 변호인 뒤에 숨어 검찰 수사를 방해할 것이 아니라, 숱하게 제기된 모든 의혹과 관련해 성실하게 조사를 받아야 함은 물론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때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선서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제11조가 살아 있음을 몸소 보여주는 것도 시민에 대한 마지막 도리다.

Posted by 최우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