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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억울하기는 억울했나 봅니다. 기자들에게 “나쁜 놈들”이라고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입국하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경향신문 자료사진입국하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경향신문 자료사진

 반 전 총장이 미국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때만해도 ‘귀국한 뒤 지지율은 치솟고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을 제외한 다른 정당들이 모시지 못해 안달일 것’으로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런데 웬걸요. 공항에서 전철 표 끊는데 2만원 지폐를 한번에 넣는 사진이 나오면서 삐그덕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한 건씩 해댑니다. 1일 1논란. 턱받이, AI방역, (그리고 악마의 편집으로 진짜 억울하게 된)퇴줏잔 논란, 환영받지 못한 세월호 팽목항 방문 등….


 광주 조선대학교 강연에서 대학생들에게 “여러분이 젊을 때 세계를 좀 알고 세계인류와 고통을 나누는 게 필요하다. 여러분이 해외로 진출해서, 정 다른 일이 없으면 진짜 ‘볼런티어’(volunteer·자원봉사)라도 세계 어려운데 다녀보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놓고 ‘열정페이와 노~오력’을 강요하는, 옛날식 발언이라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조선대를 방문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경향신문 자료사진조선대를 방문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경향신문 자료사진

 유엔 사무총장 시절 행동보다는 ‘우려(am concerned)’만 표명했다고 해서 ‘우려왕’이라는 별명이 붙어었는데, 귀국한 뒤에는 ‘논란왕’이 됐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지지율도 정체하거나 떨어지는 등 ‘컨벤션 효과’를 누리지도 못했습니다. 취임 초, 데뷔 초에 즐기는 언론과의 밀월도 없이 바로 검증 분위기가 조성되니 씁쓸하기도 했을 겁니다.


 어제 반 전 총장은 언론에 대한 불만을 격정적으로 토로했습니다. 그는 대구 한국청년회의소 임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위안부에 관해 제가 역사적 과오를 저지른 것처럼 말하는데 절대 아니다”며 “제가 누구냐. 대한민국 국민이고 유엔 사무총장을 했다. 인권에 관한 한 대한민국 어떤 분이라도 나와서 저와 얘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공항철도 발권기 2만원 투입’ 논란에 대해선 “여러분 파리에 가서 전철표 끊을 때 금방 할 수 있느냐”며 “왜 그걸 못하냐고 비난하면 그게 공정하냐. 약간의 애교로 봐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서운해했습니다.


 특히 언론에는 “여러분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피해당하고, 국민들이 피해당하고 있다. 좀 공정하게 하자”고 말했습니다. 그리곤 “말할 때 약간의 실수를 가지고 대단한 논란이 되는 것처럼 한다. 제가 신도 아니고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며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 뒤 “저를 계속 따라다니면서 위안부 문제 묻지마세요. 그건 페어(공정한) 싸움이 아니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그는 분이 안풀린 듯 저녁식사 뒤 자리를 뜨면서 한 참모에게 “이 사람들이 와서 그것(위안부 합의)만 물어보니까. 내가 마치 역사에 무슨 잘못을 한 것처럼. 나쁜 놈들이에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목격됐습니다. 그게 오늘 오전 조간에 많이 나왔죠.


경향신문 김용민 만평경향신문 김용민 만평

   반 전 총장의 “나쁜 놈” 발언을 들으니, 16년 전 일이 떠올랐습니다. 김대중 정부 때였습니다. 당시 여당은 새천년민주당이었고, 그 때 저는 그곳 말진(한 언론사에서 기자 여러 명을 보내는 출입처의 막내기자)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정당, 특히 여당 말진은 심신이 피곤합니다. 오전 7시30분 당정회의를 챙기려면 7시까지는 나와야하고 점심에 중진급 의원들이 비밀회동한다는 소문이 돌면 수십통의 전화를 걸어서라도 식당을 알아내고 쫓아가서 한마디 들어야 합니다. 밤에는 취재원들과 식사를 하며 '밀당'을 하거나 주요 계파 보스들의 행적을 쫓아야 합니다. 그러다 집에 가면 밤 12시이기 일쑤고, 술 자리가 있어서 그게 길어지면 새벽 2, 3시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3~4시간 자고 나와서 또 다람쥐 쳇바퀴 돌듯. 1주일에 4, 5일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 말진 생활을 3년 넘게 했습니다.


 옆길로 샜지만, 암튼 그럴 때였습니다. 말진의 중요한 업무중 하나가 ‘귀대기, 벽치기’라는 겁니다. 어감은 좀 흉악하지만, 실은 중요한 회의가 열릴 때 당직자들 눈을 피해 문 틈의 벽에 귀를 대고 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듣는 거죠. 대변인 발표로는 당시 정황이나 발언자, 발언 내용을 그대로 파악하기 힘들어서입니다. 공식 브리핑은 아무래도 거친 표현이나 확정되지 않은 내용, 논쟁이 붙은 부분 등은 빼기 마련입니다. 이 귀대기에서 중요한 단어나 문장 하나만 제대로 들으면 다음날 1면 톱 기사를 발굴해낼 수도 있습니다. 극히 드문 경우지만요.


 그 때도 다른 기자들과 함께 당사 회의실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중간 당직자들에 의해 쫓겨났습니다. 기자실로 돌아가 신문을 뒤적거리다 화장실을 들렀습니다. 그러다 ‘한번 올라가볼까’ 하고 회의실 앞에 갔더니 지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겁니다. ‘이게 웬 떡’. 회의실 옆 작은 탕비실로 들어가 1시간 동안 귀대기를 했습니다. 합판으로 벽을 임시로 만들어 놨기에 시시콜콜 내용이 다 들리더군요. 나중에 보니 귀와 볼에 줄이 가 있더군요. 생생하게 잘 들었지만, 그날 그다지 중요한 내용을 건지지는 못했습니다.


1992년 12월 김대중 후보가 충주 지역 유세 활동을 앞두고 버스에서 전략회의를 하고 있다-경향신문 자료사진1992년 12월 김대중 후보가 충주 지역 유세 활동을 앞두고 버스에서 전략회의를 하고 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다만 한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습니다. 당의 주요한 직책을 맡은, 이를테면 사무총장과 원내총무(지금은 원내대표로 불리지만), 정책위의장, 대변인, 국회의 주요 상위원장과 상임위 소속 의원 등 수십명이 논의를 하는데, 기자들을 모두 “언론인”으로 불렀습니다. 당시 보수신문들은 DJ정책 공격에 불만을 가졌고, 비판적 내용을 많이 썼습니다. 좀 '악의적이다' 싶은 것도 꽤 있었구요. 그런데도 그날 회의에서 “언론인들 설득을 잘하자”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됐습니다. 수십명중 “기자놈들”이라는 발언을 한 명쯤은 할 법도 했지만(회의 참석자 가운데 성격이 괄괄해 평소에도 거리낌없이 발언하는 인사들이 대여섯명은 있었지요), 1시간 넘은 회의 동안 단 한명도 예외없이 ‘언론인’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기레기(기자 + 쓰레기)’라는 말이 나돌지만, 당시에도 기자들은 꺼려지고, 여당 인사 입장에서 봤을 때 미운 이들이 많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토록 ‘절제(?)’하는 게 좀 신기하게 비쳤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렇게 고매한 인격을 갖고 있나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들이 왜 그랬는지 궁금증은 며칠 있다가 풀렸습니다. 당의 주요 인사 방에 들러 차 한잔 하다가 “XXX(대화 당사자)도 그렇고, 다른 사람도 그렇고, 기자들 욕을 않더라. 자기들끼리만 이야기하면서도 기자놈이라고도 않고 꼭 ‘언론인’이라고 하더라. 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다 총재님 가르침 덕”이라고 말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 총재 시절이었죠.


  이야기인즉은 이렇습니다. DJ는 군사정부와 갈등 상태였고, 늘 감시를 받았습니다. 측근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디서 누구와 밥을 먹고 무슨 말을 했는지 모두 정보당국이 들여다본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구요. DJ는 측근들을 모아놓고 이런 저런 주의사항을 강조했습니다. 언론과 관련해서는 이렇게 주의를 줬답니다.


 ‘늘 언론을 존중하라. 우리가 기댈 곳은 민심이고, 그건 언론을 통해서 가능하다. 불리하게 써도 늘 설득하고 또 설득하라. 사석에서라도 욕하지 말아라. 어느 순간 (욕이)툭 튀어나온다. 그러면 주워 담지 못한다. 우리처럼 늘 불리한 상황에서 언론, 특히 언론인까지 적으로 돌리면 안된다’라고 했답니다. 정확한 워딩이 기억이 나지 않아 겹따옴표가 아니라 홑따옴표로 썼습니다. 아무튼 그제야 귀대기 한시간 뒤 품었던 궁금증이 풀리더군요.


 10년 넘은 시간이 흘러 상황도 달라졌고 사람도 다릅니다. 하지만 언론이 누군가를 귀찮게 구는 일은 그 때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언론이 못되먹어서가 아니라, 그게 언론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Watch Dog여야지, pet이어서는 안되는 거죠. 검증하고 파헤치고 드러내는 게 언론의 존재 이유이고, 독자나 시청자들이 신문이나 방송 뉴스를 보는 이유입니다. 그걸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언론에 존재하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특정세력에게 악의적인 보도를 일관하고, 딜(deal)을 하고, 관찰자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플레이어가 돼 판을 바꿔 보고 싶어하는 경우도 없다고 주장하지는 않겠습니다(영화 <내부자>에 나오는 조국일보 이강희 주필 같은). 그건 제대로 된 언론은 아닐 겁니다. 아마 반 전 총장은 자신에게 위안부 문제 등을 계속 질문하는 기자들을 ‘제대로 된 언론이 아닌 곳’에서 나온 나쁜 놈들로 본 것 같습니다. 과연 누가 맞을까요. 제 생각은 있습니다만, 강요는 않겠습니다.

Posted by 최우규


밥, 쿨, 퓨전, 모달, 팝…. 마일즈 데이비스만큼 다양한 재즈 장르를 섭렵한 뮤지션도 드물다. 마일즈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본인이 해당 분야를 창시하거나 선도했다. 괴물 같은 아티스트였다.

한데, 천재는 모두 괴팍한 것일까. 마일즈는 괴팍했다. 여리고 섬세하면서도 극도의 집중력과 광기를 보이기도 했다. 부끄러움을 잘 타면서 그를 숨기기 위해 오만하게 위악을 떨었다. 특히 여성 편력이 심했고, 제 성에 못이겨 여성에게도 폭력을 휘둘렀다. ‘나쁜 남자’라는 말이 유행이지만, 마일즈는 말 그대로 나쁜 남자였다.

마일스의 부인 ‘격’인 여자는 다섯 명이었다. 사실혼 관계로 아들까지 낳은 아이린 커손, 첫 번째 부인 발레리나 프랜시스 테일러, 두 번째 부인인 가수 베티 마브리, 세 번째 부인 배우 시슬리 타이슨, 말년 동거녀였던 화가 조 겔바드 등이다. 하지만 정식 부인이 있을 때에도 그에 집에는 여러 여자가 들락거렸다.

그는 부인 사진을 음반 커버로 썼다. 이 음반 <E.S.P>도 마찬가지다. 이 음반에서 마일스는 첫번째 부인 프랜시스 테일러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다. 그는 프랜시스가 춤 추는 모습에 반해 청혼해 결혼했다. 그녀를 무척 사랑했지만 질투도 심하게 했다. 한 파티에서 프랜시스가 다른 남자가 잘생겼다고 칭찬하자 불쾌해진 마일즈는 호텔로 돌아왔다. 그리고 프랜시스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속옷만 입은 그녀를 방 밖으로 쫓아냈다고 한다.

마일즈는 그녀가 무용하는 것을 막았고 의처증은 심해졌다. 약에 취했을 때 불륜남을 찾는다고 집 안을 뒤지기도 했다. 주먹다짐도 부지기수였고. 이 사진을 찍은 뒤 불과 일주일 뒤 프랜시스는 “살아남기 위해" 마일즈로부터 도망쳤다.

개인적으로 극히 불행했지만, 마일즈의 음악적 재능은 1970년대 중반까지 거의 모든 음반에서 반짝거렸다. 음반 제목 <E.S.P>은 ‘Extrasensory Perception’의 약자로 초감각적 지각, 즉 초능력을 뜻한다.

마일즈는 론 카터(베이스), 허비 행콕(피아노), 토니 윌리엄스(드럼), 웨인 쇼터(색소폰)를 영입해 새로운 퀸텟을 만들었다. 이들은 한 명 한 명이 프런트 맨으로 아쉬울 것 없을 정도로 재즈계에 획을 그었다. 

이들은 1965년 1월 <E.S.P.>를 녹음했고, 이후 4년간 5장을 더 냈다. 기존 쿨에서 방향을 바꿔 모달 재즈로 향하는 마일즈는 음을 해체하고 박자를 중시하는 등 기존 관행을 깨나갔다. 마일즈의 트럼펫도 특유의 애절한 톤을 유지하지만 꼭 타악 연주하듯 ‘툿, 툿’하고 뱉는 부분을 많이 쓰고 있다. 이 음반에서는 쿨 보다는 밥의 영향이 더 남아 있고, 프리 재즈까지는 넘어가지는 않지만 즉흥적 요소가 강해져 있다.


<E.S.P.>

"수록곡"(작곡) 러닝타임

“E.S.P.” (Wayne Shorter) 5:27

“Eighty-One” (Ron Carter, Miles Davis) 6:11

“Little One” (Herbie Hancock) 7:21

“R.J.” (Ron Carter) 3:56

“Agitation” (Miles Davis) 7:46

“Iris” (Wayne Shorter) 8:29

“Mood” (Ron Carter, Miles Davis) 8:50


Posted by 최우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