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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에 해당되는 글 142건

  1. 2017.03.16 [뜬금없지만 정보성] 봄철 자동차 관리
  2. 2017.03.14 '사저' 정치 유감
  3. 2017.03.12 파면 당한 전직 대통령 박근혜의 불복 및 투쟁 선언
  4. 2017.03.10 한바탕 연극이 끝나고 난 뒤
  5. 2017.02.28 [경향의 눈]나비 효과 +α
  6. 2017.02.27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심판 선고 직전 전격 사퇴하면 어떤 일이.
  7. 2017.02.10 [경향의 눈] 대통령 면전에 서는 방법
  8. 2017.02.06 슈퍼 그룹 '제네레이션 엑스' 내한 공연 소식
  9. 2017.01.19 "나쁜 놈들" 발언과 DJ, 그 간극
  10. 2017.01.17 진짜 '나쁜 남자' 마일즈 데이비스와 <E.S.P.>
  11. 2016.12.15 [경향의 눈]사적인, 지극히 사적인
  12. 2016.12.01 [사설]친박마저 퇴진 건의, 대통령의 조건 없는 사임만 남았다
  13. 2016.11.23 [여적]YS와 박정희 대통령 부녀
  14. 2016.11.21 [여적]가짜 뉴스, 진짜 뉴스
  15. 2016.11.21 [경향의 눈]시간은 누구의 편인가
  16. 2016.11.11 [여적] 미 대선 최대 패자는 여론조사
  17. 2016.11.11 [사설]세계를 뒤흔든 트럼프의 미 대선 승리와 불확실성
  18. 2016.11.07 [여적]대통령의 글쓰기
  19. 2016.11.07 [사설]연이틀 깜짝 인사, 분노한 민심에 기름을 붓는 자해행위다
  20. 2016.10.20 마일스 데이비스 음반 2장
  21. 2016.10.19 [정동에서] 뻔뻔함에 대하여
  22. 2016.08.31 [정동에서] 어떤 절벽들
  23. 2016.08.25 대박 음반 <Wes Montgomery 5 Original Albums>
  24. 2016.07.31 박범신 <소금> 무대 충남 강경과 논산
  25. 2016.07.20 [정동에서] 대통령의 탈당 시계
  26. 2016.07.15 "개, 돼지" 발언에 물타기하려는 이들.
  27. 2016.07.13 미국 유일의 미해결 항공 납치 사건 '댄 쿠퍼 사건'
  28. 2016.06.08 [정동에서]간신 곽개 뎐(傳)
  29. 2016.04.01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2) 마일즈와 여왕
  30. 2016.02.29 [정동에서] 진박의 진실한 공약들

하도 다닌 부서가 많다보니 보도자료도 참 다양하게 온다. 직전에 정치부 쪽에 있어서 정치 관련된 내용이 제일 많기는 하지만. 특정인이나 세력의 주의·주장, 상품·서비스 홍보 같은 게 제일 많다. 개중에는 그냥 버리기 아까운 것들도 있다. 과거 애경에서 보내줬던 고어텍스 등 기능성 제품 관리 방안이 그렇다. 오늘 이메일 뒤적이다 본 이 보도자료에도 나름 괜찮은 정보가 쏠쏠하게 들어 있다.

겨우내 탔던 자동차의 봄철 관리 방법이다. 뭐, ‘결론은 해당업체(보쉬) 제품 사서 달면 좋아요’이긴 하나, 타이어 공기압 처럼 살펴볼만한 점을 잡 짚어놨다.


①윈드 쉴드에 얼룩이 남거나 ‘드르륵’ 소리가 나면 와이퍼 교체하기

와이퍼는 미세 먼지와 황사, 비로부터 깨끗한 시야를 확보하는 중요한 부품이다. 와이퍼 블레이드가 지나간 자리에 얼룩이 남고 ‘드르륵’하는 소리가 난다면 빠른 시일 내에 교체하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는 6개월 혹은 평균 연 1~2회마다 점검하는 것을 권장한다.


②앞 유리 흠집과 와이퍼 블레이드 마모 예방을 위해 워셔액 보충하기

워셔액은 와이퍼와 함께 사용하는 유리 세정액이다. 워셔액이 부족한 상태로 와이퍼를 작동하면 앞 유리에 흠집이 나거나 와이퍼 블레이드 고무가 손상될 수 있다. 워셔액이 부족할 때는 엔진룸(보닛)을 열고 파란색 뚜껑을 열어 보충해주면 된다. 최근 이 워셔액에 발암물질이 들어 있다는 뉴스를 보고 놀랐다. 직접 만들어쓰면 좋기는 한데, 불편하기도 하고. 그럴 땐 워셔액을 뿌려 닦은 뒤 차 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주면 좋다고 한다. 문을 열고 워셔액을 뿌리면 차 문 안쪽에 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보쉬 와이퍼 블레이드-자료 제공해줬으니 이 정도는 써주는 게 상도의(ㅎㅎ).보쉬 와이퍼 블레이드-자료 제공해줬으니 이 정도는 써주는 게 상도의(ㅎㅎ).


③각종 미세먼지 여과하는 에어컨·히터 필터 주기적으로 교체하기

에어컨·히터 필터는 각종 미세먼지로부터 운전자와 동승자의 호흡기를 보호하는 부품이다. 에어컨·히터 필터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여과지의 정전력이 약해져 여과 성능이 떨어지고 곰팡이로 인해 오염이 될 수 있다. 평균 1만5000㎦ 운행 시, 혹은 6개월마다 주기적으로 교환하는 것을 권장한다. 퀴퀴한 냄새가 난다면 반드시 교체해야.


④타이어 마모 여부, 공기압 확인하기

타이어는 육안으로 수시 점검하고, 3개월에 한 번 정비소에서 점검을 받는다. 마모된 타이어는 제동력이 떨어져 사고의 위험이 커지므로, 마모되거나 경화된 타이어는 즉시 교체한다. 타이어는 공기를 너무 많게 혹은 적게 주입하면 손상되거나 펑크가 날 확률이 높아지므로 타이어 제조사에서 권장하는 기준에 맞춰준다.

빨간 페라리. 자동차 운전면허 자격증 소지자의 로망 아닐까.빨간 페라리. 자동차 운전면허 자격증 소지자의 로망 아닐까.


⑤배터리는 인디케이터의 색상으로 확인하기

배터리는 소모품이기 때문에 용량이 서서히 감소한다. 배터리 상태는 배터리 상단에 있는 인디케이터의 색(초록 정상, 검정 충전 필요, 투명 점검 필요)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배터리 단자 연결부가 견고하게 연결됐는지 확인해야 하며, 단자의 백화현상 여부나 연결선의 피복 상태 확인도 중요하다.


⑥엔진의 열을 식히는 냉각수 오염 확인하기

냉각수는 실린더 주변을 돌며 엔진의 열을 식히는 부품이다. 육안으로 확인했을 때 탁하거나 어둡게 변했다면 교체가 필요하다. 냉각수는 평균 4만㎞ 운행 시, 2년마다 교체해준다.

쉐보레 태호. 문이 열리면 CIA들이 쏟아져 나올 것 같은 위용.쉐보레 태호. 문이 열리면 CIA 요원들이 쏟아져 나올 것 같은 위용.


⑦갑자기 자동차 빛이 어두워지면 전조등 확인하기

전조등은 단순히 전방의 도로를 밝혀주는 기능 이외에도, 다른 자동차에 위치를 알려주는 부품이다. 운전을 하다 보면 갑자기 전조등이 어둡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이는 전구 수명이 오래되었거나 배터리 고장이 있다는 징후다. 교체 시에는 커넥터의 규격은 물론, 자동차에 맞는 사용 전력(와트)을 가진 제품을 구매한다.

롤스로이스의 멋진 헤드라이트와 엠블렘롤스로이스의 멋진 헤드라이트와 엠블렘


⑧마찰음이 지속해서 발생한다면 브레이크 패드 확인하기

브레이크의 소모품인 브레이크 패드는 수명이 다하면 제동력이 떨어지고, 제동 시간이 지체되어 위험할 수 있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 마찰음이 지속해서 발생할 경우 브레이크 패드가 마모됐을 확률이 높다. 3만~4만㎞마다 교체하는 것을 권장한다. 다만 운전자 주행 습관에 따라 차이가 나기 때문에 1만㎞마다 정기점검 혹은 상태에 따라 수시로 점검한다.


⑨엔진오일은 차종이나 계절, 주행 환경 등에 맞춰 교체하기

엔진오일은 엔진 내부 부품들이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돕는 윤활유다. 일반적으로 1년 혹은 8000~1만5000㎞ 주행 거리마다 교체한다. 엔진 오일은 차종이나 계절, 주행 환경 등에 맞춰 사용한다.

1969년 머스탱. 클래식의 클래식이다.1969년 머스탱. 클래식의 클래식이다.


⑩자동차 세차는 고압으로 물을 분사하면서 이물질 닦아내기

자동차 표면에는 각종 이물질이 붙어있기 때문에 걸레로 닦아내면 흠집이 생길 수 있다. 세차 시에는 고압으로 물을 분사하면서 부드러운 융으로 이물질을 닦아낸다. 유리, 와이퍼, 사이드 미러 등 시야 확보와 관련된 부분의 물기를 가장 먼저 말려주는 것이 좋다. 겨울에는 눈을 녹이느라 도로에 염화칼슘을 뿌린다. 이게 차 바닥 등에 붙어있다가 녹으면 강판 녹 부식을 가속화한다. 따라서 봄에는 위에만 말고, 바닥 부분도 물로 씻어내는 게 좋다.

람보르기니를 볼 때마다 '저거 세차하려면 땀 꽤나 빼겠군'하고 공상을 해본다.람보르기니를 볼 때마다 '저거 세차하려면 땀 꽤나 빼겠군'하고 공상을 해본다.


Posted by 최우규




<발로 쓴(이런 figurative language도 이해 해주지 않고 '진짜로 발로 썼느냐'거나 '구족 화가나 구족 서예가 폄훼'라고 질타하실 정색남녀들은 이 글을 읽지 마시길) 칼럼>(부제 : 의식의 흐름대로, 즉 멋대로 쓴)


‘사저(私邸)정치’란 말이 나오고 있다. 파면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간 뒤 다시 정치를 시작하는 양상이어서 나오는 말이다. 박 전 대통령은 통상 퇴임한 다른 대통령처럼 청와대에서 자신을 보좌하던 비서진 몇명을 데리고 가서 비서(더불어민주당 김한정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김경수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퇴임 후 비서들이었다. 국민의당 최경환 의원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 비서였다)로 삼기보다는 현직 국회의원들로 비서진을 꾸린 모양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일 서울 삼성동 집으로 돌아오면서 친박 의원들,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 사진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일 서울 삼성동 집으로 돌아오면서 친박 의원들,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 사진

소위 친박 좌장 서청원 의원과 맏형 격인 최경환 의원이 총괄을 한단다. 여기에 박 전 대통령을 사석에서 누님이라고 불렀다고 자랑해온 윤상현 의원을 포함해 조원진·이우현 의원이 정무를, '반탄 집회'에서 태극기 망또를 두르고 사자후를 토해 ‘친박 영웅’으로 등극한 김진태 의원(내친 김에 오늘 대선 출마까지 선언했다. 꼭 결승까지 완주하길 바란다. 그러려면 먼저 의원직을 사퇴해야 하는데, 그럴 지는 의문)이 법률 담당이란다.

 보도자료를 낼 때마다 이메일 설정 때문에 금융 관련 스팸으로 자동 분류되는 바람에 항상 이름을 ‘박!대!출!의원’이라고 써서 보내야 했던 아픔을 가진 박대출 의원이 수행 업무를 맡았다고 한다. KBS 기자 시절 희한한 마술 쇼(개인적으로 방 천장에 휴지 던져 붙이기 등 세가지를 봤다)로 기자들과 의원들로부터 감탄어린 시선을 받더니 어느날 오전 문화부장으로서 부장단회의에 참석하고 오후에는 청와대 대변인으로 변신하는 매직을 선보인 민경욱 의원이 대변인 역할을 한다고 전해졌다.

 자신들은 이게 공식 모임이 아니라지만, 그 속내는 자신들만 알 터이고 남들은 그렇게 본다는 게 중요하다. 정치인으로 마땅히 감내해야 할 게 이거다. 스스로 아무리 안그렇다고 해도 수많은 유권자가 그렇게 보면 그런 거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배겨내지 못하구 불과 몇주만에 정치판에서 발을 뗀 것도 이런 걸 못 견뎌해서다.

 암튼 삼성동 인물들은 스스로는 쫓겨난 Fairy Queen을 용과 마녀, 악마로부터 지키려고 자원 등판한 기사들이라고 여기며 ‘정신승리’하고 싶겠지만, 남들은 '삼성동 공주와 여덟 난쟁이'라거나 '십상시'라거나, 뭐 그런 말로 부르는 모양이다.

서두가 길었지만, 사저라는 용어를 맞닥드리면서 목구멍에 뭔가 걸리는 듯했다. 사저는 국어사전에 ‘개인의 저택. 또는 고관(高官)이 사사로이 거주하는 주택을 관저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돼 있다. 보통의 뜻으로는 개인 주택이지만, 대부분 이는 관저(官邸)의 반대말처럼 쓴다. 관저는 ‘정부에서 장관급 이상의 고관들이 살도록 마련한 집’을 뜻한다. 따라서 사저는 현직 장관급 이상 고관이 관저 말고 따로 개인적으로 마련해 두고 거주하는 곳을 뜻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서울 삼성동 자택으로 가스통이 배달돼 들어가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박근혜 전 대통령의 서울 삼성동 자택으로 가스통이 배달돼 들어가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사저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2가지 측면에서 잘못됐다. 우선 박근혜 전 대통령은 현직 고관이 아니다. 얼마 전까지 최고위직 고관이었지만, 파면되면서 기존에 갖고 있던 직위는 물론 퇴임 이후 보장됐던 여러 특권들도 몽땅 날린 사람이다. 혹시 많은 국가기밀과 정보(약간 의심은 되지만, 그래도 줄곧 서면 보고를 받아봤다니 장삼이사보다야 많을 것이다)를 알고 있어, 또 워낙 미워하는 사람들이 많아 위해를 당할까 봐 경호와 경비만 해준다. 따라서 박 전 대통령이 머무는 곳은 관저의 반대말인 사저를 써서는 안된다. 그냥 박 전 대통령의 자택 혹은 집이 맞다.

두번째로, ‘사저’라는 말은 왕조시대에 만들어져 권위주의 시대 주로 통용되던 말이다. 사저의 ‘저(邸)’자는 집, 주막이라는 뜻을 갖고 있지만, ‘종친(宗親·임금의 친족), 왕후(王侯·제왕과 제후)의 사제(私第·개인 소유의 집)’라는 뜻이 있다. 그곳에 사는 사람은 임금의 친족, 왕후와 그의 가족이라는 말이다. 조선 시대에, 왕세자를 높여 이르거나 부르던 말인 ‘저하(邸下)’가 바로 ‘저(邸) 밑에 사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황제를 부를 때 ‘폐하(陛下)’라고 부르는 식이다. 여기서 폐((陛)는 ‘대궐의 섬돌(집채의 앞뒤에 오르내릴 수 있게 놓은 돌층계)’을 뜻한다. 하지만 다들 알듯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저하도 아니고, 종친이나 왕후 혹은 그 가족도 아니지 않은가. 아, 물론 그 자신과 그의 추종자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고, 그렇다고 비난할 생각은 없다.

박 전 대통령의 서울 삼성동 자택을 경찰들이 둘러싸고 경비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박 전 대통령의 서울 삼성동 자택을 경찰들이 둘러싸고 경비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아마 박 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각각 서울 상도동과 서울 동교동 자택을 중심으로 정치를 하며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를 구성했듯, ‘삼성동계’를 꾸리는 큰 그림을 그리는 듯하다. 그리고 비슷한 지경에 이르렀다가 부활한 친노계처럼 다시 화려한 꽃을 피우고 싶어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될까.

우선 명분과 세력에서 삼성동에 모인 인물들은 상도동, 동교동계에 미치지 못한다. 군부독재에 항거해 민주주의를 꿈꾸고 종국에 집권을 위해 뛰었던 이들과, 국정 농단과 선거 참패로 쭉정이 신세가 된 이들이 같을 수 있겠나. 또 친노는 한 때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칭하고 용서를 구하면서 ‘폐족’을 자처했다. 그러다 10여년의 시간 뒤 그 지지자들과 세력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다. 전제 조건과 시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예인들 잘못하고 난 뒤 걸핏하면 입에 올리는 ‘자숙’ 말이다. 지금 소위 '사저 정치'를 하려는 이들은 그게 없다.

Posted by 최우규



 파면당하고 사흘간 청와대에 머물러 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12일 밤 청와대에서 퇴거하면서 육성은 아니지만, 확실한 입장 표명을 했다. 우선 청와대를 떠나기 앞서 직원들과 작별 인사를 하며 외부에는 헌법재판소의 탄핵과 관련해서는 단 한마디도 유감이라거나 받아들인다고 밝히지 않았다. 낮은 단계의 불복 선언이다.

 두번째 서울 삼성동 집 골목에 들어서는 그는 차 안에서 만면에 웃음을 띄고 손을 유리창에 붙이고 지지자들 환호에 응했다. 그리고 바로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담장 바깥에 내려서 자유한국당의 강성 친박 의원 등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 마찬가지로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태극기를 든 지지자들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나눴고 아이인지 장애인인지 구분은 가지 않지만 누군가에 몸을 굽혀 이야기를 하는 모습도 연출했다. 선거 운동 때 모습을 재연한 것으로, 외양상으로는 대통령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금의환향하는 듯했다. ‘난 변하지 않았다’는 무언의 선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일 서울 삼성동 집에 도착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측근, 지지자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김기남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일 서울 삼성동 집에 도착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측근, 지지자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김기남 기자

 세번째, 자유한국당 민경욱 의원을 집으로 불러 들여 메시지를 불러 줬다. 민 의원인 다음과 같이 박 전 대통령 발언을 전했다. 이런 걸 어려운 말로 대독(代讀)이라고 한다.

 “제게 주어졌던 대통령으로서의 소명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저를 믿고 성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

 뜯어보면 앞부분이야 정치인들이 늘 하는 '입에 발린' 말이다. 뒷부분에 주장의 고갱이가 들어 있다. 헌재의 파면은 ‘진실이 아닌 거짓’으로 규정했다. 또 “시간이 걸리겠지만”은 '장기전으로 가겠다'는 뜻과 같다. “진실이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는다”고 남의 일 말하듯 한 것은, ‘나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 하겠지만 너희들도 달려들어 반드시 뒤집으라’고 지시를 내린 것이다. 왕위를 찬탈당한 전직 여왕이 신료들과 일부 백성들에게 지시를 내리듯.

 좋다. 박 전 대통령은 앞으로 형사사건 피의자로 서울중앙지검 포토라인 앞에 설 사람이다. 모든 피의자는 자신을 방어할 권리를 갖는다는 게 이 나라 헌법 규정이다. 하지만 정치인, 그리고 전직 대통령이라는 측면을 조망해 볼 때, 그는 지극히 속이 좁거나, 좀더 극적으로 말하면 ‘정상이 아닌’ 인식 체계를 가진 것 같다. 특히 이로써 헌법재판소가 탄핵 결정에서 “대통령의 일련의 언행을 보면, 법 위배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할 헌법수호의지가 드러나지 않다”고 한 분석과 언명은 너무나 적확한 것이라고 다시 확인됐다. 박 전 대통령의 사촌 형부인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박 대통령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나쁜 점만 물려 받아, 5000만 명이 물러나라 해도 절대 안 물러날 것"이라고 한바 있다. 그것도 들어 맞은 셈이다.(탄핵 민심이 80%이니, 4000만명만 물러나라고 해서 그런 것인가?)

 박 전 대통령은 이날 '거짓에 의해 쫓겨난 군주' 코스프레를 했으나, 그렇게 해서 일을 잘 풀어갈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1995년 12월2일 쿠데타와 학살로 대통령이 됐던 전두환씨는 구속될 판이었다. 이날 검찰은 12·12쿠데타와 5·18광주민주화 항쟁과 관련해 전두환씨를 소환 조사할 계획이었다. 그러자 전씨는 서울 연희동 집 앞에서 측근,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설명을 발표했다. 그는 “종결된 사안의 수사는 진상 규명을 위한 게 아니라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으로, 어떠한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가 버렸다.

검찰의 12.12, 5.18사건 조사에 반발해 골목 성명을 발표중인 전두환 전 대통령. 경향신문 자료사진검찰의 12.12, 5.18사건 조사에 반발해 골목 성명을 발표중인 전두환 전 대통령.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러자 검찰은 법원에서 사전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군 형법상 반란수괴, 불법 진퇴, 지휘관 계엄수소 이탈, 상관살해와 미수, 초병 살해 등 6가지 사유가 들어 있었다. 검찰은 합천까지 가서 전씨를 구속한 뒤 안양교도소에 구금했다. 그리고 전씨는 재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고, 나중에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바 있다. 나중에 사면되기는 했지만.

Posted by 최우규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권한을 행사하여야 함은 물론, 공무 수행은 투명하게 공개하여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피청구인은 최서원의 국정개입사실을 철저히 숨겼고, 그에 관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이를 부인하며 오히려 의혹 제기를 비난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국회 등 헌법기관에 의한 견제나 언론에 의한 감시 장치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었습니다.

 또한 피청구인은 미르와 K스포츠 설립, 플레이그라운드와 더블루K 및 KD코퍼레이션 지원 등과 같은 최서원의 사익 추구에 관여하고 지원하였습니다. 피청구인의 헌법과 법률 위배 행위는 재임기간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고, 국회와 언론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실을 은폐하고 관련자를 단속해 왔습니다. 그 결과 피청구인의 지시에 따른 안종범, 김종, 정호성 등이 부패범죄 혐의로 구속 기소되는 중대한 사태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대의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한 것입니다.

 한편 피청구인은 대국민 담화에서 진상 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하였으나 정작 검찰과 특별검사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도 거부하였습니다. 이 사건 소추사유와 관련한 피청구인의 일련의 언행을 보면 법 위배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할 헌법수호의지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결국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고 보아야 합니다. 피청구인의 법 위배 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헌법재판소/경향신문 자료 사진헌법재판소/경향신문 자료 사진

오늘 헌법재판소 결정문 뒷부분에 배치된 문구다. 이번 결정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재판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위가 위법 위헌 여부를 살펴보면서 다른 죄보다 미르와 K스포츠 재단 부문에 집중했다. 재단을 만들고 돈을 모으는 과정이 잘못됐다고 봤다. 특히 국정을 빙자한 최순실의 개입,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지원 부문은 대통령으로서 해서 안되는 위법·위헌적 행위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피청구인의 헌법과 법률 위배 행위는 재임기간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고, 국회와 언론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실을 은폐하고 관련자를 단속해 왔습니다. 그 결과 피청구인의 지시에 따른 안종범, 김종, 정호성 등이 부패범죄 혐의로 구속 기소되는 중대한 사태에 이르렀습니다’고 적시했다. 여기에 스스로 진상규명에 협조하겠다면서 조사 불응하고 압수수색도 거부한 점을 딱 집어 써놓았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의 하나의 행위나 특정 시점에서 행위가 아니라 ‘일련의 언행’을 보면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대통령 파면으로 헌법 수호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이 부분을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읽을 때 소름이 죽 돋았다.

이정민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경향신문 자료사진이정민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경향신문 자료사진


박 전 대통령 참모나 부하들이 뜻밖의 무능함을 보여줄 때 “왜 저러나” 싶었다. 검찰 수사와 특검 수사를 받으면서, 또 헌법재판소 재판을 받으면서 “정말 무능하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웬만한 상식이 있으면 저렇게는 안할텐데’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아무 대응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막무가내로 수사를 거부하고, 의견도 제대로 표명하지 않았다. 그냥 재판부에게 알아서 기라는 건가. 법적 공방보다는 밖으로 여론전만 펴는데, 그것도 계속 역작용할 것처럼 지지리도 못하는 거다. 아마 이건 PR이나 공보 담당 분야의 중요한 사례로 남을 거 같다. '이렇게 하면 꼭 망한다'는 쪽으로.

무엇보다 변호인단은 “저 사람들 X맨(같은 편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적) 아니야”라는 의구심이 절로 들 정도. 서모 변호사와, 나중에 합류한 김모 변호사는 법정을 모독하고 재판관들을 약을 올렸다. 정교한 논리보다는 '그냥 말이 안된다'고 우기기만 하는 것이다. 몇명은 허명만 있지만, 기중 몇몇은 나름 명성을 가진 이들 아닌가.

만일 재판관들 가운데 ‘여러 판단이 있지만 종국에는 기각’이라고 생각할 재판관이 있더라도, 이들 때문에 인용 쪽에 서야 할 판이었다. 안그러면 박 전 대통령 변호인들 주장을 받아들이는 꼴이 되니까. 결국 이들이 탄핵 반대파 재판관들의 입지마저 좁혀 버린 결과가 됐다(물론, 이는 재판관들 입장에 터잡은 법률적 판단이 아니라 순수하게 정무적으로 생각해본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경향신문 자료사진박근혜 전 대통령/경향신문 자료사진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사악했지만, 끝까지 무능했다는 평가로 남을 것 같다.

Posted by 최우규

2017.01.11 21:02:01 수정 : 2017.01.12 09:34:11 달포 전 쓴 칼럼


[경향의 눈]나비 효과 +α

영국 식민지 시절 미국에서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들은 브랜디나 와인보다는 값싼 럼을 즐겨 마셨다. 미국 정착민들은 구하기 쉽고 싼 카리브해 당밀을 수입해 럼을 만들었다. 그러자 영국은 1733년 프랑스령 카리브산 당밀에 높은 수입관세를 매기는 ‘당밀 조례’를 발표했다. 식민지 사람들에게 영국산 당밀을 사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조례는 미국 하층 노동자들까지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원하게 하는 도화선 역할을 했다. 미국 2대 대통령이던 존 애덤스는 1818년 8월11일 친구 윌리엄 튜더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난 당밀이 미국 독립의 중요한 요소였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왜 얼굴을 붉혀야 하는지 모르겠어. 수많은 위대한 사건들이 그보다 훨씬 사소한 이유에서 기인했지 않았나.”(에이미 스튜어트 <술 취한 식물학자> 발췌)

어마어마한 사건이 사소한 일에서 비롯된 경우는 부지기수다. 돌이켜보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도 마찬가지다. 경향신문 등 언론의 끈질긴 취재와 보도 노력을 폄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어찌보면 사소한 두 사건이 엮이면서 초대형 게이트로 비화한 것은 공교롭다.

2015년 7월 검찰은 해외 원정 도박장을 운영한 혐의로 범서방파 행동대장 이모씨를 체포했다. 조사과정에서 네이처리퍼블릭 정운호 대표가 100억원대의 도박을 한 게 드러났다. 정 대표가 선임한 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는 부당 수임료를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 정 대표가 앞서 다른 도박사건에서 전관인 홍만표 변호사를 선임한 게 드러났고, 홍만표 변호사-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진경준 전 검사장 연줄이 나왔다. 진 전 검사장은 게임회사 넥슨으로부터 주식을 받았고 우 전 수석 처가는 넥슨과 부동산 거래를 한, 그들만의 내밀한 속사정도 드러났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경향신문 자료사진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경향신문 자료사진


이때만 해도 사건은 법조 비리에 머물렀다. 한데 청와대가 끼어들어 우 전 수석을 비호하면서 문제가 커졌다. 그 뒤 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 설립, 삼성 등 재벌 민원 청탁, 최순실씨의 국정 개입, 박 대통령 세월호 7시간 행적, 최씨 딸 정유라씨 이화여대 부정입학,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 일파만파(一波萬波)로 번졌다. 한국에서 손꼽히는 ‘법꾸라지(법률 미꾸라지)’들과 정치꾼들, 정권의 부역자들이 청와대에서 농성을 하며 빠져나갈 길을 찾았지만, 하늘이 내려다보고 땅이 올려다보는 천라지망(天羅地網)을 벗어나지 못했다. 

최순실씨/경향신문 자료 사진최순실씨/경향신문 자료 사진


정유라씨 개도 뜻밖의 역할을 했다. 최순실씨는 3년 전 정씨 개를 최측근인 고영태씨에게 맡겼다. 고씨는 최씨가 설립한 ‘더블루K’ 이사다. 고씨는 운동을 하느라 개를 혼자 두고 나갔고, 그 때문에 최씨와 고씨 사이가 틀어졌다. 고씨는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개 문제로) 최씨가 모욕적인 말로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씨는 최씨가 박 대통령 옷을 맞추는 곳에 카메라를 설치해 녹화한 뒤 언론에 제보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나비 효과’의 실증(實證)이다. 이는 중국 베이징에 있는 나비 날갯짓이 미국 뉴욕을 강타하는 허리케인이 된다는, 작은 사건이 엄청난 결과를 낳는다는 과학 이론이다. 다만 박·최 게이트는 우연에 우연이 겹쳐서, 그것도 한 방향으로 비가역적으로 진행되는 나비 효과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 바로 시민들의 개인적, 집단적 의지가 개입된 점이다. 사감이 있었지만 고영태씨는 언론 제보를 하고, 검찰 수사에 응하는 내부 고발자 역할을 했다.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은 신변에 위협을 느낀다면서도 국회에서 증언을 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 TV조선, JTBC에는 시민 제보가 줄을 이었다. 의혹 내용을 직간접으로 확인해주거나, “답변할 수 없다”면서 적어도 거짓말을 하지 않은 정부와 업계 관계자들도 있었다. 


“최순실 이름도 못 들어봤다”던 대표 법꾸라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꼬리를 밟은 이는 평범한 누리꾼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주식갤러리(주갤러)’ 이용자가 제보한 동영상에는 2007년 최태민, 최순실 관련 의혹을 해명하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선 후보와 박 후보 법률지원단장이던 김기춘 전 실장 모습이 생생하게 잡혀 있다. 

촛불시위/경향신문 자료 사진촛불시위/경향신문 자료 사진


무엇보다 노동에 지친 피곤한 몸을 쉴 금쪽같은 토요일, 볼이 빨갛게 언 아이들과 촛불을 들고 나온 1000만 시민이 있었다. 이들은 검질기게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대통령 하야와 탄핵을 부르짖었다. 전체주의와 사상 통제를 통렬하게 비꼰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은 “기만의 시대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은 혁명적 행동”이라고 말했다. 신실하고 선량한 절대군주인 양 치장한 대통령에게 진실을 요구하는 것, 거짓의 둥지로 전락한 청와대 앞에서 촛불을 드는 행위 자체가 혁명적 행동이다. 촛불의 미약한 일렁임이 일으킨 파동은 혁명의 열풍으로 완성돼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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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글은 정밀한 관찰과 사색, 논증과 반박 및 재검토를 통해 작성된 게 아니라 백일몽처럼 지어졌다. 따라서 이 글대로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도, 될 가능성도 모두 있다. 어느 쪽에 무게가 더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걸 알면 돗자리 깔겠다"고 하겠다. 대신 최근 박근혜 대통령과 탄핵심판 대리인들의 언행을 보면 이런 일이 절대로 없겠다고 확신은 못하겠다. 뭘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줘 왔기에.


#아들은 이따금 “아빠는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세요”라며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낸다. “아빠가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시각이 요구되는 직업을 가진 지가 20년이 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가족에게는 안 그러려고 하는데 자꾸 그러네”라고 해명 아닌 해명을 내놓았다. 이것도 일종의 직업병이다. 기자들 가운데 늘 즐거운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간혹 있는 그런 종류의 이들은 대체로 기자 생활을 오래하지 않고, 하더라도 마지막 직업을 기자로 마치지 않는 것 같다.


#과거 정치부에 온 지 얼마 안됐을 때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고문을 담당하는 마크맨이 됐다. ‘좌희정 우광재’는 나 같은 막내 기자를 붙들고도 “우리 노짱이 꼭 대통령 된다”고 자신만만해 했다. 그럴 때마다 “웃기고 있네. 허구헌날 어음 발행하지 말고 현찰을 좀 내놓아봐”라고 대꾸했다. 시비걸듯이 그랬다는 것은 아니고, 정치부 정당팀 막내와 당시 지지율 꼴지 그룹에 속한 주자의 스태프가 갖게 되는 일종의 공감 비슷한 것이 있어서, 좀 편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돈을 내놓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음은 ‘잘 될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 현찰은 지지율을 뜻하는 우리들만의 일종의 암호였다. 하지만 이런 대화가 오가고 1년 정도 뒤 노무현 후보는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써놓고 보니, 내가 비관론자이자 회의론자라는 점을 다시 강조하면서도 안희정 현 지사, 이광재 전 지사와 남 못지 않게 친하다는 것을 은연중에 자랑하고 있다. 비관·회의론 못지 않게 기자들에게 따라붙는 특질중 하나는 잘난 체인 것 같다. 이것도 직업병인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 선고일이 다가오고 있다. 이런 저런 분위기를 보면 ‘탄핵신청 인용’ 쪽에 무게가 더 실린 것 같다. 하지만 말 그대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다른 부서보다 정치부에 좀더 오래 몸담고 있었다는 이유로 주위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 같아”라는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난 여전히 회의론자이며 비관론자에 머문다. “글쎄 6대 4 정도(도대체 이 숫자를 내가 왜 생각해냈는지 과학적으로 설명 못하겠다. 다만 최근까지 여러 여론조사 상 수치를 뇌가 어렴풋하게 기억 밑바닥이 저장해놓았다가 이따금 꺼내는 것 같다)로 인용 쪽인 것 같지만, 어떻게 알겠어?” 그러다 오늘 서울대 조국 교수가 소셜 미디어 페이스북에 올린 글(https://www.facebook.com/kukcho?fref=nf&pnref=story)을 보고 비관론에 왕창 기름이 부어지는 듯해 소름이 돋았다.


경향신문 장도리 화백 그림경향신문 장도리 화백 그림


#조국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심판 선고일 직전(뭐 극적 효과를 노린다면 선고 전날이나 당일 오전 일찍이 될 수도) 전격 사퇴를 선언하고 청와대에서 짐을 싸서 서울 삼성동으로 가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그렇게 되면 ‘헌법재판관들의 의견은 (i) 탄핵 인용, (ii) 탄핵 기각, (iii) 사퇴했으므로 각하 등 세 가지 의견으로 갈릴 것이다. 그러면 탄핵 인용으로 결론나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헌법재판소/경향신문 자료사진헌법재판소/경향신문 자료사진


좀더 비관적으로 보자면 박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사퇴 선언을 하고, 탄핵심판 선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재판관들에게 대통령 사퇴서 정·부본이 전달돼 사퇴한 상황을 인지하게 된다면 탄핵 인용은 물건너 가게 될 것에 500원을 걸 수 있다. 헌재 재판관 8인 중 대체로 2명은 기각에 가깝다는 게 현재까지 추정이다. 그럼 그 2명은 계속 기각 입장을 취하거나, '사퇴했으므로 각하' 쪽에 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탄핵을 받아들이는게 옳다고 봤던 심판관중에서도 ‘이미 물러났으므로 인용해봐야 실익은 없고 혼란을 부추길 뿐’이라면서, 혹은 그것보다 더 이해가 가는 이유를 내세워 각하 쪽 손을 드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단 1명만 각하 쪽에 손을 들어 인용하자는 재판관 수가 5명 이하로 내려가면 탄핵은 인용되지 않는다.


#여기까지 법과 정치의 단계라면 그 다음은 정치의 광풍이 몰아치게 될 것이다. 조국 교수 말대로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이 진행되는 두 달동안 자신의 삼성동 자택에서 농성 정치를 시작할 것이다. 억울함을 호소하며 검찰 수사는 거부하며 버틸 것이다. 2000년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에 대해 언론대책 문건 등을 놓고 검찰이 체포하려고 했을 때에도 집에서 농성해 끝내 체포하지 못했다. 하물며 일국의 대통령을 지냈던 자가 집에서 농성을 하면 어떻게 될까. 봄은 봄이되, 봄이 아닌 1980년 봄이 37년만에 재연될 것이다. 더 혹독하고 심하게.


#자, 이제 박근혜 ‘전직’ 대통령은 “잡아갈테면 잡아가라. (소위)태극기 시민이 촛불시민보다 많다. 이게 민주검찰이냐”고 외칠 것이다. 이에 감읍한 어떤 당의 당원과 국회의원은 물론 친박 단체, 어버이연합, 일베 같은 극우단체, 시청광장을 메운 반탄핵 시위단체들이 모여들어 말 그대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에서 농성 국면에 들어갈 것이다. 이들은 지금처럼 태극기와 성조기를 앞세우고 총궐기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황교안 대통령 권한 대행 겸 총리나 유승민·남경필·홍준표 같은 여권 주자가 대통령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은, 글쎄 이 점에서도 극히 비관적이다. 대선은 야권 주자 누군가가 이길 것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경향신문 자료사진


다만 선거 과정에서 보수(이런 이들을 보수라고 하기도 뭐하다. 그냥 '친박'이라고 하는게 맞겠다) 층은 ‘대통령 불구속기소와 궐석재판, 초스피드 진행에 따른 확정판결 뒤 차기 대통령의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면 야권 내에서 이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을 할 것이고 대선 최대 쟁점으로 떠올라, 정의나 개혁 등 의제를 모조리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누군가 대통령에 선출돼 바로 취임하더라도 박근혜 세력은 여전히 농성을 벌이면서 국정을 발목잡을 것이고, 그 누가 대권을 쥐어도 국회 재적 3분의 1에 불과한 여당은 야당들 눈치보느라 개혁 조치들은 뒤로 줄줄이 밀리고. 


#여기까지가 조국 교수 글에 의해 촉발된 내 비관론과 상상력이 다하는 지점이다. 웹툰 작가 이말년식이라면 ‘그렇게 해서 갈등이 고조되고 지각이 변동하다 우주인 침공을 맞아 지구는 멸망한다’는 식으로 끝나겠지만.


웹툰작가 이말년 작품웹툰작가 이말년 작품


 이런 식으로라도 비관론과 회의론을 털어놓았으니, 오늘 오후부터는 조금 더 낙관적이고 즐거운 상상을 해야겠다. 써놓고 보니 이건 ‘의식의 흐름’도 아니고, ‘무의식과 개꿈의 합주’쯤 되는 듯하다.


Posted by 최우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문장과 개념을 비비 꼬아놓은 역사·정치 서적보다 훨씬 나은 교보재다. 외부인들에게 미국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했다. 미국민은 독립 이래로 약자를 보호하고 자유를 숭앙하는 청교도적 면모를 자랑스러워했다. 이번 미 대선 기간에 유권자들, 특히 백인 저소득 노동자들은 이를 벗어버린 것 같았다. 한풀이와 이익 극대화를 위해 트럼프에게 손을 뻗었다. 트럼프는 골프장에 난입한 격투기 선수 같았다. 자기만의 규칙을 들이대며 난동을 피우다시피 했다. 그의 당선 이후 ‘이게 미국의 본심이었다’라는 분석이 대세였다.


도널드 트럼프도널드 트럼프

 트럼프는 당선된 당일만 점잖게 굴었다. 취임 직후 “설마 지킬까”라는 의구심이 들 만큼 논란 딱지가 덕지덕지 붙은 공약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파장이 가장 컸던 게 반(反)이민 행정명령이다. 이슬람 7개 국적자 입국·비자발급과 난민 입국을 90~120일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테러를 할 나쁜 놈들”이 들어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시민들은 주먹을 쥐고 시위를 시작했다. 트럼프는 콧방귀로 답했다. 균열은 진영 내부에서 시작됐다. 국무부 관리들은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메모에 서명을 했다. 샐리 예이츠 법무장관 대행도 트럼프에 맞서다 시쳇말로 잘렸다. 주 법무장관들은 행정명령 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판사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600곳 가까운 대학 총장들, 가수 마돈나, 레이디 가가, 배우 메릴 스트립, 나탈리 포트만 같은 스타들도 가세했다. 애플, 페이스북, 트위터 등 정보기술 기업 130여 곳도 의견서를 법원에 냈다. 저항에 고위관료, 판사, 거대기업, 스타 등 기득권층이 앞장섰다. 트럼프 취임 이후 2주 동안 벌어진 일이다. 이런 변증법적 전개가 실제 일어나다니, ‘이게 미국의 진심인가’ 싶기도 하다.


도널드 트럼프로 분장해 비꼬는 배우 메릴 스트립도널드 트럼프로 분장해 비꼬는 배우 메릴 스트립

 그래서 아쉽고 아프다. 한국 박근혜 정권의 반헌법적 조처는 임기 초반부터 시작됐다. 많은 징후와 경종, 사고에도 불구하고 저항은 3년 반 뒤에나 본격화됐다. 미국서는 줄탁( 啄)이 함께했지만, 한국서는 안에서 알을 깨려는 ‘줄’은 부족했고 밖에서 쪼아대는 미미한 ‘탁’에 의존했다. 보름과 3년 반이라는 저항의 속도 차이는 이렇게 갈렸다.


 프로이센 재상 비스마르크는 공직자를 “펜을 가진 동물”이라고 했다. 생각은 없고 반민주적인 엘리트들이 일을 지체시키고, 끊임없이 서류를 만들어낸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에선 의미 있는 숫자의 공무원들이 그런 동물이기를 거부했다. 한국에선 소수를 제외하고 짐승의 룰을 따랐다. 대통령과 실세의 말을 메모하느라 받아쓰기 실력만 늘었다.


 한국 일부 대학 총장들은 분에 넘치게 자리를 탐하려고 아등바등했다. 선거에서 2등 한 이가 1위를 누르고 선임되거나, 비선 실세 요구를 몰래 들어주다 들통나 망신을 당했다. 기업들은 불법적 요구에 저항보다는 거래로 대처했다. 돈을 갖다 바치며 민원을 해결했다. 일부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동료, 선후배를 ‘나쁜 사람’이라고 낙인찍어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대가로 정부와 관련 단체의 높은 직책을 챙겼다.


경향신문 김용민 화백 작품경향신문 김용민 화백 작품

 한국민이 유독 못났거나 비겁해서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보복 수단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그렇지 못하도록 견제되는 대통령제 차이인가. 그럴 수도 있다. 전란과 분단, 독재를 겪으면서 돋아난 아비투스(habitus)인가. 태극기와,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되지만 성조기를 함께 흔들며 눈물로 “우리 대통령을 살리자”고 호소하는 이들을 보면 그런가 싶다.


 그토록 강력하되 무책임했던 대통령이 시민들 요구로 물러나기 직전이다. 다음 대통령은 현 사태를 딛고 됐으니 농단과 작란이 재연되기는 어렵지 않을까. 미국 소설가 스티븐 킹은 말했다. “순진한 사람의 신뢰는 거짓말쟁이의 가장 유용한 도구다.” 현실에서 남의 선의에만 기대는 순진함은 어리석음과 동의어다. 의심하고 회의해야 한다. 누구든 주위에 실세와 비선이 있다. 대통령이 되면 응당 스스로 경계해야 하나 쉽지 않다. 전·현직 대통령은 물론, 현재 대통령을 꿈꾸는 후보들이 몸소 보여주고 있다.


촛불집회 - 경향신문 자료 사진촛불집회 - 경향신문 자료 사진

 공직자, 학자, 예술가, 시민은 대통령, 또 힘있는 사람 앞에서 선택해야 한다. 손을 내밀지, 주먹을 쥘지. 그 기준점, 잡기 어렵지 않다. 내 언행은 검사와 판사 앞에서 떳떳할 수 있나. 기자 회견장에서, 동료 앞에서, 가족에게 떳떳할까. 무엇보다 나 스스로에게 떳떳한가. 스스로 떳떳하다면, 역순으로 따져봐야 한다. 가족과 동료 앞, 기자 회견장, 재판정에서도 거리낌이 없나. 모두 ‘그렇다’면 그 언행은 해도 되는 권리일 뿐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이다. 그렇게 쥔 주먹의 힘은 술잔에 넘칠 만한 물 정도겠지만, 더해지고 보태져 대륙을 도저하게 흐르는 강이 된다.

Posted by 최우규


메탈 키드(이젠 나이가 나이여서 ‘키드’라는 말은 민망하지만)들이라면 눈이 번쩍 띄일 공연이 열립니다.

기타리스트 슈퍼그룹 ‘제너레이션 액스(Generation Axe)’  내한 공연이 4월9일 일요일 오후 6시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에서 펼쳐진답니다. 멤버 하나 하나가 화려한 경력을 자랑합니다.

이 그룹은 아이바네즈를 무기로 놀라운 테크닉을 선 보여온 스티브 바이(Steve Vai)가 결성했다고 합니다. 잘 나가는 아티스트가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면 대체로 자기보다 처지는 선수를 영입해야 하거늘, 이 그룹은 진용을 보시면 놀랄만합니다. 


1980년대 메탈 키드와 기타 키드의 심금을 뒤흔든 바로크 메탈 선구자이자 속주 기타리스트 잉베이 맘스틴(Yngwie Malmsteen)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 오지 오스본 밴드 출신으로 덩치 못지 않게 마초적 연주 스타일을 자랑하는 잭 와일드(Zakk Wylde), 밴드 익스트림에서 펑키함과 강렬한 드라이브감을 선보인 누노 베텐코트(Nuno Bettencourt)가 포함돼 있습니다. 나이지리아 출신으로 8현 기타를 갖고 퓨전, 데스메탈, 네오 프로그레시브 록 등 다양한 요소를 합친 속주를 선보이는 기타리스트 토신 아바시(Tosin Abasi)도 함께 한답니다.

베이스는 프랭크 자파 밴드 출신 피트 그리핀(Pete Griffin), 키보드는 잉베이 맘스틴 밴드 출신 닉 마리노비치(Nick Marinovich), 드럼에는 보벳(JP Bouvet)이 맡습니다. 

보도자료는 이렇게 돼 있습니다.

“이들은 지난해 4월 결성 이후 한 달여 만에 총 26회의 미국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색적이고 독특한 공연 구성에 찬사가 이어졌으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주와 잼(Jam)을 두 눈으로 감상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록 공연이었다.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사운드에 관객의 에너지가 더해졌고 전설적인 다섯 기타리스트가 나란히 서서 연주하는 진풍경은 덤이었다. 


이번 공연을 기획한 에이아이엠은 '기타리스트 개개인의 스케줄을 맞추기 어려워 제너레이션 액스는 오랜 시간 투어를 지속하지 않는다'며 '이번 투어가 드물게 진행하는 것이라고 멤버들이 언급한 만큼 록 마니아라면 놓칠 수 없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제너레이션 액스 공연예매는 2월 14일(화) 낮 12시부터 인터파크에서 가능하다. 문의 02)3141-9226”


이전 공연 세트 리스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꽤 흥미있는 곡들이 많습니다. 리틀윙, 프랑켄슈타인, 하이웨이 스타는 딱 '70, 80' 록 키드를 위한 곡들이죠. ㅎㅎ

Performer(s)

Song

Abasi, Bettencourt, Malmsteen, Vai, Wylde

Foreplay (Boston)[1]

Abasi

Tempting Time
Air Chrysalis

The Woven Web

Abasi, Bettencourt

Physical Education

Bettencourt

Get the Funk Out
Midnight Express

Extreme
 solos medley

Bettencourt, Wylde

Sideways (Citizen Cope)

Wylde

N.I.B. (Black Sabbath)
Whipping Post
 (The Allman Brothers Band)
Little Wing
 (Jimi Hendrix)

Malmsteen

Spellbound
Into Valhalla

Overture
Far Beyond the Sun

Trilogy

Echo Etude
Acoustic

Malmsteen, Vai

Black Star

Vai

Now We Run
Tender Surrender

Gravity Storm

Building the Church

Vai, Abasi, Bettencourt, Wylde

Frankenstein (Edgar Winter)

Abasi, Bettencourt, Malmsteen, Vai, Wylde

Highway Star (Deep Purple)


p.s. 근데 맘스틴이 저렇게 살을 뺐나요?


Posted by 최우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억울하기는 억울했나 봅니다. 기자들에게 “나쁜 놈들”이라고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입국하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경향신문 자료사진입국하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경향신문 자료사진

 반 전 총장이 미국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때만해도 ‘귀국한 뒤 지지율은 치솟고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을 제외한 다른 정당들이 모시지 못해 안달일 것’으로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런데 웬걸요. 공항에서 전철 표 끊는데 2만원 지폐를 한번에 넣는 사진이 나오면서 삐그덕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한 건씩 해댑니다. 1일 1논란. 턱받이, AI방역, (그리고 악마의 편집으로 진짜 억울하게 된)퇴줏잔 논란, 환영받지 못한 세월호 팽목항 방문 등….


 광주 조선대학교 강연에서 대학생들에게 “여러분이 젊을 때 세계를 좀 알고 세계인류와 고통을 나누는 게 필요하다. 여러분이 해외로 진출해서, 정 다른 일이 없으면 진짜 ‘볼런티어’(volunteer·자원봉사)라도 세계 어려운데 다녀보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놓고 ‘열정페이와 노~오력’을 강요하는, 옛날식 발언이라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조선대를 방문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경향신문 자료사진조선대를 방문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경향신문 자료사진

 유엔 사무총장 시절 행동보다는 ‘우려(am concerned)’만 표명했다고 해서 ‘우려왕’이라는 별명이 붙어었는데, 귀국한 뒤에는 ‘논란왕’이 됐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지지율도 정체하거나 떨어지는 등 ‘컨벤션 효과’를 누리지도 못했습니다. 취임 초, 데뷔 초에 즐기는 언론과의 밀월도 없이 바로 검증 분위기가 조성되니 씁쓸하기도 했을 겁니다.


 어제 반 전 총장은 언론에 대한 불만을 격정적으로 토로했습니다. 그는 대구 한국청년회의소 임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위안부에 관해 제가 역사적 과오를 저지른 것처럼 말하는데 절대 아니다”며 “제가 누구냐. 대한민국 국민이고 유엔 사무총장을 했다. 인권에 관한 한 대한민국 어떤 분이라도 나와서 저와 얘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공항철도 발권기 2만원 투입’ 논란에 대해선 “여러분 파리에 가서 전철표 끊을 때 금방 할 수 있느냐”며 “왜 그걸 못하냐고 비난하면 그게 공정하냐. 약간의 애교로 봐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서운해했습니다.


 특히 언론에는 “여러분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피해당하고, 국민들이 피해당하고 있다. 좀 공정하게 하자”고 말했습니다. 그리곤 “말할 때 약간의 실수를 가지고 대단한 논란이 되는 것처럼 한다. 제가 신도 아니고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며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 뒤 “저를 계속 따라다니면서 위안부 문제 묻지마세요. 그건 페어(공정한) 싸움이 아니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그는 분이 안풀린 듯 저녁식사 뒤 자리를 뜨면서 한 참모에게 “이 사람들이 와서 그것(위안부 합의)만 물어보니까. 내가 마치 역사에 무슨 잘못을 한 것처럼. 나쁜 놈들이에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목격됐습니다. 그게 오늘 오전 조간에 많이 나왔죠.


경향신문 김용민 만평경향신문 김용민 만평

   반 전 총장의 “나쁜 놈” 발언을 들으니, 16년 전 일이 떠올랐습니다. 김대중 정부 때였습니다. 당시 여당은 새천년민주당이었고, 그 때 저는 그곳 말진(한 언론사에서 기자 여러 명을 보내는 출입처의 막내기자)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정당, 특히 여당 말진은 심신이 피곤합니다. 오전 7시30분 당정회의를 챙기려면 7시까지는 나와야하고 점심에 중진급 의원들이 비밀회동한다는 소문이 돌면 수십통의 전화를 걸어서라도 식당을 알아내고 쫓아가서 한마디 들어야 합니다. 밤에는 취재원들과 식사를 하며 '밀당'을 하거나 주요 계파 보스들의 행적을 쫓아야 합니다. 그러다 집에 가면 밤 12시이기 일쑤고, 술 자리가 있어서 그게 길어지면 새벽 2, 3시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3~4시간 자고 나와서 또 다람쥐 쳇바퀴 돌듯. 1주일에 4, 5일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 말진 생활을 3년 넘게 했습니다.


 옆길로 샜지만, 암튼 그럴 때였습니다. 말진의 중요한 업무중 하나가 ‘귀대기, 벽치기’라는 겁니다. 어감은 좀 흉악하지만, 실은 중요한 회의가 열릴 때 당직자들 눈을 피해 문 틈의 벽에 귀를 대고 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듣는 거죠. 대변인 발표로는 당시 정황이나 발언자, 발언 내용을 그대로 파악하기 힘들어서입니다. 공식 브리핑은 아무래도 거친 표현이나 확정되지 않은 내용, 논쟁이 붙은 부분 등은 빼기 마련입니다. 이 귀대기에서 중요한 단어나 문장 하나만 제대로 들으면 다음날 1면 톱 기사를 발굴해낼 수도 있습니다. 극히 드문 경우지만요.


 그 때도 다른 기자들과 함께 당사 회의실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중간 당직자들에 의해 쫓겨났습니다. 기자실로 돌아가 신문을 뒤적거리다 화장실을 들렀습니다. 그러다 ‘한번 올라가볼까’ 하고 회의실 앞에 갔더니 지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겁니다. ‘이게 웬 떡’. 회의실 옆 작은 탕비실로 들어가 1시간 동안 귀대기를 했습니다. 합판으로 벽을 임시로 만들어 놨기에 시시콜콜 내용이 다 들리더군요. 나중에 보니 귀와 볼에 줄이 가 있더군요. 생생하게 잘 들었지만, 그날 그다지 중요한 내용을 건지지는 못했습니다.


1992년 12월 김대중 후보가 충주 지역 유세 활동을 앞두고 버스에서 전략회의를 하고 있다-경향신문 자료사진1992년 12월 김대중 후보가 충주 지역 유세 활동을 앞두고 버스에서 전략회의를 하고 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다만 한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습니다. 당의 주요한 직책을 맡은, 이를테면 사무총장과 원내총무(지금은 원내대표로 불리지만), 정책위의장, 대변인, 국회의 주요 상위원장과 상임위 소속 의원 등 수십명이 논의를 하는데, 기자들을 모두 “언론인”으로 불렀습니다. 당시 보수신문들은 DJ정책 공격에 불만을 가졌고, 비판적 내용을 많이 썼습니다. 좀 '악의적이다' 싶은 것도 꽤 있었구요. 그런데도 그날 회의에서 “언론인들 설득을 잘하자”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됐습니다. 수십명중 “기자놈들”이라는 발언을 한 명쯤은 할 법도 했지만(회의 참석자 가운데 성격이 괄괄해 평소에도 거리낌없이 발언하는 인사들이 대여섯명은 있었지요), 1시간 넘은 회의 동안 단 한명도 예외없이 ‘언론인’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기레기(기자 + 쓰레기)’라는 말이 나돌지만, 당시에도 기자들은 꺼려지고, 여당 인사 입장에서 봤을 때 미운 이들이 많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토록 ‘절제(?)’하는 게 좀 신기하게 비쳤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렇게 고매한 인격을 갖고 있나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들이 왜 그랬는지 궁금증은 며칠 있다가 풀렸습니다. 당의 주요 인사 방에 들러 차 한잔 하다가 “XXX(대화 당사자)도 그렇고, 다른 사람도 그렇고, 기자들 욕을 않더라. 자기들끼리만 이야기하면서도 기자놈이라고도 않고 꼭 ‘언론인’이라고 하더라. 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다 총재님 가르침 덕”이라고 말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 총재 시절이었죠.


  이야기인즉은 이렇습니다. DJ는 군사정부와 갈등 상태였고, 늘 감시를 받았습니다. 측근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디서 누구와 밥을 먹고 무슨 말을 했는지 모두 정보당국이 들여다본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구요. DJ는 측근들을 모아놓고 이런 저런 주의사항을 강조했습니다. 언론과 관련해서는 이렇게 주의를 줬답니다.


 ‘늘 언론을 존중하라. 우리가 기댈 곳은 민심이고, 그건 언론을 통해서 가능하다. 불리하게 써도 늘 설득하고 또 설득하라. 사석에서라도 욕하지 말아라. 어느 순간 (욕이)툭 튀어나온다. 그러면 주워 담지 못한다. 우리처럼 늘 불리한 상황에서 언론, 특히 언론인까지 적으로 돌리면 안된다’라고 했답니다. 정확한 워딩이 기억이 나지 않아 겹따옴표가 아니라 홑따옴표로 썼습니다. 아무튼 그제야 귀대기 한시간 뒤 품었던 궁금증이 풀리더군요.


 10년 넘은 시간이 흘러 상황도 달라졌고 사람도 다릅니다. 하지만 언론이 누군가를 귀찮게 구는 일은 그 때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언론이 못되먹어서가 아니라, 그게 언론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Watch Dog여야지, pet이어서는 안되는 거죠. 검증하고 파헤치고 드러내는 게 언론의 존재 이유이고, 독자나 시청자들이 신문이나 방송 뉴스를 보는 이유입니다. 그걸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언론에 존재하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특정세력에게 악의적인 보도를 일관하고, 딜(deal)을 하고, 관찰자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플레이어가 돼 판을 바꿔 보고 싶어하는 경우도 없다고 주장하지는 않겠습니다(영화 <내부자>에 나오는 조국일보 이강희 주필 같은). 그건 제대로 된 언론은 아닐 겁니다. 아마 반 전 총장은 자신에게 위안부 문제 등을 계속 질문하는 기자들을 ‘제대로 된 언론이 아닌 곳’에서 나온 나쁜 놈들로 본 것 같습니다. 과연 누가 맞을까요. 제 생각은 있습니다만, 강요는 않겠습니다.

Posted by 최우규


밥, 쿨, 퓨전, 모달, 팝…. 마일즈 데이비스만큼 다양한 재즈 장르를 섭렵한 뮤지션도 드물다. 마일즈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본인이 해당 분야를 창시하거나 선도했다. 괴물 같은 아티스트였다.

한데, 천재는 모두 괴팍한 것일까. 마일즈는 괴팍했다. 여리고 섬세하면서도 극도의 집중력과 광기를 보이기도 했다. 부끄러움을 잘 타면서 그를 숨기기 위해 오만하게 위악을 떨었다. 특히 여성 편력이 심했고, 제 성에 못이겨 여성에게도 폭력을 휘둘렀다. ‘나쁜 남자’라는 말이 유행이지만, 마일즈는 말 그대로 나쁜 남자였다.

마일스의 부인 ‘격’인 여자는 다섯 명이었다. 사실혼 관계로 아들까지 낳은 아이린 커손, 첫 번째 부인 발레리나 프랜시스 테일러, 두 번째 부인인 가수 베티 마브리, 세 번째 부인 배우 시슬리 타이슨, 말년 동거녀였던 화가 조 겔바드 등이다. 하지만 정식 부인이 있을 때에도 그에 집에는 여러 여자가 들락거렸다.

그는 부인 사진을 음반 커버로 썼다. 이 음반 <E.S.P>도 마찬가지다. 이 음반에서 마일스는 첫번째 부인 프랜시스 테일러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다. 그는 프랜시스가 춤 추는 모습에 반해 청혼해 결혼했다. 그녀를 무척 사랑했지만 질투도 심하게 했다. 한 파티에서 프랜시스가 다른 남자가 잘생겼다고 칭찬하자 불쾌해진 마일즈는 호텔로 돌아왔다. 그리고 프랜시스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속옷만 입은 그녀를 방 밖으로 쫓아냈다고 한다.

마일즈는 그녀가 무용하는 것을 막았고 의처증은 심해졌다. 약에 취했을 때 불륜남을 찾는다고 집 안을 뒤지기도 했다. 주먹다짐도 부지기수였고. 이 사진을 찍은 뒤 불과 일주일 뒤 프랜시스는 “살아남기 위해" 마일즈로부터 도망쳤다.

개인적으로 극히 불행했지만, 마일즈의 음악적 재능은 1970년대 중반까지 거의 모든 음반에서 반짝거렸다. 음반 제목 <E.S.P>은 ‘Extrasensory Perception’의 약자로 초감각적 지각, 즉 초능력을 뜻한다.

마일즈는 론 카터(베이스), 허비 행콕(피아노), 토니 윌리엄스(드럼), 웨인 쇼터(색소폰)를 영입해 새로운 퀸텟을 만들었다. 이들은 한 명 한 명이 프런트 맨으로 아쉬울 것 없을 정도로 재즈계에 획을 그었다. 

이들은 1965년 1월 <E.S.P.>를 녹음했고, 이후 4년간 5장을 더 냈다. 기존 쿨에서 방향을 바꿔 모달 재즈로 향하는 마일즈는 음을 해체하고 박자를 중시하는 등 기존 관행을 깨나갔다. 마일즈의 트럼펫도 특유의 애절한 톤을 유지하지만 꼭 타악 연주하듯 ‘툿, 툿’하고 뱉는 부분을 많이 쓰고 있다. 이 음반에서는 쿨 보다는 밥의 영향이 더 남아 있고, 프리 재즈까지는 넘어가지는 않지만 즉흥적 요소가 강해져 있다.


<E.S.P.>

"수록곡"(작곡) 러닝타임

“E.S.P.” (Wayne Shorter) 5:27

“Eighty-One” (Ron Carter, Miles Davis) 6:11

“Little One” (Herbie Hancock) 7:21

“R.J.” (Ron Carter) 3:56

“Agitation” (Miles Davis) 7:46

“Iris” (Wayne Shorter) 8:29

“Mood” (Ron Carter, Miles Davis) 8:50


Posted by 최우규

[경향의 눈]사적인, 지극히 사적인

최우규 논설위원


11월29일 박근혜 대통령은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단 한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지금 벌어진 여러 문제들 역시 저로서는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들이었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개인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은 결국 저의 큰 잘못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박근혜 대통령이 11월29일 청와대에서 3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머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어디서 많이 듣던 변명이다. 1972년 영화 <대부>에 그 원형(原型)이 나온다. 알 파치노가 열연한 마이클 콜레오네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총을 쏜 솔로조와, 그에게 매수된 경관 매클로스키 처단 계획을 세우면서 이렇게 말한다. “It’s not personal, Sonny. It’s strictly business(이건 사적인 게 아니야, 소니. 순전히 사업이야).”

영화 <대부>에서 주인공 마이클 콜레오네로 열연한 알 파치노.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3차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영화 <대부>에서 주인공 마이클 콜레오네로 열연한 알 파치노.

이 대사는 후대에 두고두고 변주된다. 2008년 영화 <테이큰>에서 국제 인신매매 브로커 파트리스 상 클레어는 주인공 브라이언 밀스에게 딸 납치가 “사적인 것은 아니다”라면서 목숨을 구걸한다. 브라이언은 “It’s all personal to me(나는 지극히 사적이야)”라며 총을 쏜다. 2015년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에서 아내와 딸을 살해당한 검사 출신 알레한드로는 멕시코 범죄조직 두목 파우스토 알라르콘의 집을 급습한다. 파우스토도 살인을 지시한 게 “사적인 건 아니었다”고 하지만, 알레한드로는 “나에게는 사적이야”라면서 복수한다.

영화 <시카리오>에서 알레한드로(왼쪽)가 자신 부인과 딸 살해를 지시한 멕시코 범죄조직 두목 파우스토와 이야기하고 있다.영화 <시카리오>에서 알레한드로(왼쪽)가 자신 부인과 딸 살해를 지시한 멕시코 범죄조직 두목 파우스토와 이야기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잘못된 내면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범죄집단 안에서 자라면서 받아들인 태도, 감정, 가치관 등이 그릇된 사고체계를 만들었다. 늘 죄를 짓고 있다고 느껴서야 버틸 수가 없다. 사적 감정에 따른 게 아니라 ‘일’이라고 세탁해야 한다. 박 대통령의 발언도 그런 내면화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친박들도 “대통령이 단돈 1원이라도 받았느냐”고 옹호한다.

그럼 공적 사업이라는 것인데, 그가 한 일의 결과는 공공의 이득으로 나타났어야 한다. 실제 이득은 누가 가져갔나. ‘비선 실세’ 최순실씨다. 그는 남의 돈으로 회사들을 운영하고 돈을 벌었다. 대기업에서 뜯어낸 말을 딸에게 주고, 조카에게도 사업을 챙겨줬다. 문화계 황태자라고 불리던 차은택씨도 돈푼깨나 챙겼다. 그래서 박 대통령에게는 제3자 뇌물죄 적용이 검토되고 있다.

비서실세 최순실씨박근혜 대통령 '비선실세' 최순실 씨가 11월9일 새벽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마친 뒤 구치소로 돌아가기 위해 호송버스로 향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사익 추구 안 했다” 발언보다 듣는 이를 분노케 한 발언은 “주변 관리”다. 현재 국정농단 사태가 그저 주변 관리를 못했기 때문이라는 발뺌이다. 이전 대통령들도 주변 관리를 못해 사달이 났지만, 대부분 돈을 챙긴 정도였다. 박 대통령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유권자들이 잠시 위임한 통치권을 ‘주변’에게 나눠줬다. 지난 4년간 권력 1위는 박 대통령이 아니라 최순실씨였다. 박 대통령은 집무실보다 관저에 머물면서 ‘혼밥’하고 TV드라마를 보며 지냈다. 연봉을 2억원 넘게 받는 공직자가 기실 히키코모리(引き籠もり·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 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병적인 사람) 생활을 한 것이다.

그 사이 최순실씨는 대통령 연설문 수정, 장차관 간택도 했고, 국무회의·수석비서관회의 개최 지시까지 했단다. 최씨는 2013년 10월 말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국무회의를 열든지 정 안되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열 것’을 주문했다. 정 전 비서관이 어려움을 호소하자 최씨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준비하라”고 다그쳤다. 10월31일 오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가 열렸다.


무려 157년 전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 이렇게 썼다.

“지배자 이익이 국민의 이익이 되고, 지배자 의지가 곧 국민 전체의 의지가 돼야 하는 시대다. 따라서 국민이 자신의 의지를 견제할 필요가 없어졌다. 국민이 스스로에게 횡포를 부릴지 모른다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지배자는 국민에 대해 철저하게 책임을 져야 하고, 그렇지 못할 때에는 국민에 의해 즉시 권좌에서 쫓겨나게 된다. 따라서 국민이 권력의 사용처와 사용 방법을 엄격히 규정한다면, 그 권력을 지배자에게 안심하고 맡길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을 대신해 행사하기 편리하도록 지배자 손에 집중돼 있을 뿐, 그것은 사실상 국민의 권력인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를 딱 거꾸로 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자식들이 수학여행가다 물에 빠져도 손쓸 수 없고, 시위에 나섰다가 물대포에 맞아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가 낸 세금을 엉뚱한 데 쓰고, 내가 산 물건의 이문으로 엉뚱한 사람이 배불린 게 보였다. 촛불집회에 나간 이유다. 혹시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촛불을 들었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나는 지극히 사적이었다.”


Posted by 최우규



2016.11.28 23:32:02

새누리당 친박근혜계 중진 의원들이 어제 모임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명예 퇴진’을 직접 제안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에 주목한다. 전날 전직 국회의장 등 원로들의 퇴진 제안에 이어, 여당 주류까지 퇴진 요청에 동참한 것이다. 늦었지만 전국에서 190만 촛불이 켜지는 현 상황의 심각성을 친박 핵심들도 인식하게 됐다는 증좌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이들 제안을 스스로 누차 밝힌 대로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주류 중진들은 어제 시내 모처에서 비공개 오찬 회동을 하고 박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는 것을 고집하기보다는 국가와 본인을 위해 명예로운 퇴진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건의를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이들은 4~5% 지지율에 머무는 박 대통령을 지탱해주던 마지막 보루였다.

서청원 의원은 회동 후 “국가와 대통령을 위해 탄핵보다는 ‘질서있는 퇴진’이 맞다는 데 공감했다”고 말했다. 또 “최종 결정은 대통령이 하는 것이지만, (야당의 본회의 표결 추진 전에) 선언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이들은 허원제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이 같은 내용을 전했다. 서 의원도 박 대통령에게 이 같은 의견을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오른쪽)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진석 원내대표에게 대화를 요청하며 손짓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오른쪽)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진석 원내대표에게 대화를 요청하며 손짓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당내 분위기도 급속히 퇴진 쪽으로 기울고 있다. 대통령 탄핵 추진 요구에 펄쩍 뛰던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친박 중진들의 건의에 대해 “박 대통령이 여러 의견을 듣고 있으니 참고하시지 않겠느냐”며 “고명하신 국가 원로들 고견을 바탕으로 당 어른들도 시국수습 의견을 낸 것 같아 보인다”고 평가하며 변화된 태도를 보였다. 

마지막까지 민심에 맞서던 친박 주류도 대통령 임기 축소에 동의하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촛불민심은 5주째 계속되면서 바람에 꺼지기는커녕 늘어가고 있다. 검찰 수사에서는 박 대통령이 연루된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에 퇴진 요구를 넘어 “체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조만간 국회에서는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발의되고, 현재 흐름이라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 지지도는 한국 역사상 최저인 4%(한국갤럽)까지 떨어졌고, 국회 제1당이자 여당인 새누리당은 정당 지지도에서 3위로 전락했다. 

유권자와 부대껴야 하는 지역구 의원들은 민심 흐름을 절감하고 있다. 오죽하면 한 친박 의원이 “맞아 죽을까봐 무서워 지역구에도 못 내려가고 있다”고 하소연할 정도이겠는가.

정권도 내부에서 붕괴하고 있다. 사의를 표한 뒤 박 대통령의 집요한 만류를 뿌리쳐온 김현웅 법무부 장관 사표가 결국 수리됐다. 교육부마저 박근혜 정권이 추진해온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철회안을 내놓는 등 원심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 

친박 주류 핵심의 태도 변화로 ‘청와대에서 장기 농성’이라는 박 대통령의 기존 전략은 폐기될 수밖에 없다. 이제 선택지는 둘로 줄었다. 퇴임 시한을 못박고 국회와 정부에 질서있게 권력을 인계하는 방안과, 끝내 버티다가 친박까지 가세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된 뒤 청와대에서 유폐돼 헌법재판소 결정을 기다리는 것이다. 특히 탄핵이 추진되면 헌법재판소에서 소추안이 인용되든 안되든 나라 꼴이 엉망이 된다는 점은 박 대통령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 비정상인 한국 국정을 정상화하는 방안인지 두 번 다시 물을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퇴진 선언에 개헌이나 면책 등 이런저런 조건을 달거나 퇴임 시점을 명확하게 못박지 않으면 탄핵 회피용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퇴진 선언을 계기로 국회 내 탄핵 절차 진행을 훼방한 뒤 다시 지지부진하게 끌려고 한다면 더욱 거센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190만명의 촛불시민이라면 그 정도 꼼수는 능히 들여다보고 남을 것이다.

이제 박 대통령은 국정 최고지도자로서 결단을 내릴 시점이다. 조건 없이, 가급적 이른 시점의 날짜를 분명히 택해 사임한다고 약속해야 한다. 또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스스로가 초래한 국정 난맥상에 깨끗하게 사과를 하고, 이론의 여지가 없는 ‘퇴진 로드맵’을 밝혀야 한다.

또 변호인 뒤에 숨어 검찰 수사를 방해할 것이 아니라, 숱하게 제기된 모든 의혹과 관련해 성실하게 조사를 받아야 함은 물론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때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선서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제11조가 살아 있음을 몸소 보여주는 것도 시민에 대한 마지막 도리다.

Posted by 최우규



 2016.11.22 20:39:59

22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김영삼(YS) 전 대통령 1주기 추모식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추진파’ 회동을 방불케 했다. 정세균 국회의장과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심상정 정의당 대표, 노회찬 원내대표가 참석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문재인·손학규 민주당,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등 대선주자도 함께했다.

22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김영삼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모식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왼쪽)이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운데)를 사이에 두고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강윤중 기자22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김영삼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모식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왼쪽)이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운데)를 사이에 두고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강윤중 기자

추모위원장인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위기를 맞을 때마다 대통령님을 떠올린다”며 “근자에 국민은 실체를 드러낸 권력층의 무능과 부도덕에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작 이 고언을 들어야 할 ‘친박(근혜)계’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친박 맏형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은 불참했다. YS와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함께 만든 ‘민주화추진협의회’ 대변인 출신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 YS와 동향인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빠졌다. 

YS는 정치 인생에서 박정희·박근혜 전·현 대통령 부녀와 악연을 이어왔다. 1979년 ‘YH사건’이 터지자 박정희 정권은 그해 10월4일 국회에서 YS 제명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가택연금된 YS는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말했다. 시민 분노는 거세지고 10월16일 부산·마산 학생들이 ‘부마항쟁’을 일으켰다. 열흘 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총에 맞아 숨졌다.

1979년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시내에서 경찰 기동대원들이 시민들과 뒤엉켜 걷고 있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제공1979년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시내에서 경찰 기동대원들이 시민들과 뒤엉켜 걷고 있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제공

 박근혜 대통령은 YS 퇴임 후인 1998년 의원 배지를 처음 달았다. YS는 사석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독재자의 딸”이라고 부르며 백안시했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YS는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 2012년 7월 대선 경선 중이던 김문수 경기지사가 서울 상도동을 찾아와 “이번에는 토끼(김 지사 자신)가 사자(박근혜 후보)를 잡는 격”이라고 하자, YS는 “사자가 아니다. 그건 아주 칠푼이”라고 혹평했다.

지난해 YS 서거 때 차남 김현철씨는 “민주화가 다시 불타는 조짐을 보이는 이 시점에서 아버지는 ‘진정한 통합과 화합’이라는 유지를 남겨주셨다”고 말했다. 그 1년 뒤 통합과 화합 대신 국정농단 때문에 온 나라가 혼돈에 빠져 있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이 안 올까’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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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뉴스 제작자인 폴 호너는 17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내 덕분에 백악관에 있게 됐다”고 말했다. 호너가 유명 언론을 흉내 낸 사이트에 글을 게재하면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져나갔다. 호너는 반(反)트럼프 시위가 돈을 받고 하는 것이라는 가짜 뉴스를 만들었다. 트럼프 지지자들을 조롱하기 위한 것인데, 이를 진짜로 믿었다. 호너는 “트럼프 캠프 선대본부장도 한 시위자가 3500달러를 받았다는 뉴스를 사실로 여겨 게시했다”고 밝혔다.

호너는 “트럼프가 하고 싶은 아무 말이나 했고, 사람들은 그걸 믿었다”며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도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 “사람들이 더욱 멍청해졌다”며 “계속 뭔가를 여러 사람이 보도록 돌리는데, 누구도 사실 확인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가짜 뉴스는 미 대선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영향을 끼쳤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대변인은 어린 소녀 시신 사진을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마약상에게 성폭행당한 뒤 살해됐다는 것이다. 사진 출처가 필리핀이 아닌 브라질로 밝혀졌으나, 두테르테 지지자들은 계속 사진을 마약과의 전쟁을 옹호하는 데 활용했다.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2014년 대선 당시 중국계 기독교도, 공산주의자라는 의혹이 커지자 증명 서류를 공개하고 메카 순례를 다녀왔다. 2014년 에볼라 사태 때 시에라리온에서는 ‘뜨거운 소금물 목욕이 예방·치료법’이라는 잘못된 정보가 확산됐다. 

국내에서도 가짜 뉴스가 시민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한 목사가 “촛불집회 참석자들이 5만원, 10만원 돈을 받았다”고 설교했고, 목사라는 권위에 힘입어 설득력 있는 소식으로 유통됐다. 부산 해운대 엘시티 사건에 유력 정치인들이 연루됐다는 소식도 지라시(사설 정보지)로 나돌다가 뉴스로 보도됐다. 

한데, ‘청와대 1인자는 최모씨’ ‘호스트바 출신 측근’ ‘청와대 수석이 재벌 돈 뜯어 재단 설립’ ‘말 타고 명문대 입학’ 등 막장 드라마 소재 같은 일들은 실제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소셜미디어를 달구는 뉴스 중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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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6 21:13:41

집권 후 모든 분야를 망가뜨린, 심지어 ‘보수가 경제는 잘한다’는 잘못된 신화마저 깬 이 정권이 잘하는 게 하나 있다. 시간 벌기다. 박근혜(일명 ‘길라임’) 정권을 지탱해온 기제(機制)는 딱 이거 하나다. 불리한 상황이 되면 침잠해 버텼다. ‘개·돼지 같은’ 민중이 뭐라고 하든, 시간을 보내면 됐다. 배곯고 고달픈 시민은 지레 지치기 마련. 그래서 ‘흐지부지’는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부사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한 손이 잘린 뒤 수감된 이강희 논설주간은 이런 통화를 한다.

“우린 끝까지 질기게 버티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나라 민족성이 원래 금방 끓고 금방 식지 않습니까. 적당한 시점에서 다른 안줏거리를 던져주면 그뿐입니다. 어차피 그들이 원하는 건 진실이 아닙니다. 고민하고 싶은 얘기는 고민거리를, 울고 싶은 얘기는 울 거리를, 욕하고 싶어 하는 얘기는 욕할 거리를 주는 거죠. 열심히 고민하고 울고 욕하면서 스트레스를 좀 풀다 보면은 제 풀에 지쳐 버리지 않겠습니까. 예? 오른손이오? 까짓 거 왼손으로 쓰면 되죠.”

과연, 얼마 전까진 그랬다. 세월호 참사가 터진 게 947일 전인 2014년 4월16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뺨에 흐르는 눈물을 훔치지 않는, 본능마저 거스르는 놀라운 모습을 연출한 사과 이외에 한 것이 없다. 진상규명에 부정적 입장을 가진 이들을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 보내 훼방 놓았다.

특조위 활동 연장 문제를 놓고 박 대통령은 “국민 세금이 많이 들어가는 문제”라고 했다. 시민 300여명이 생짜로 숨진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 세금을 더 쓰면 안된다는 것이다. 참사가 난 지 2년이 넘어 시민들의 피로도가 올라갈 즈음이었다. 서울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천막 농성장을 향해 “이제 그만하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던 차다. 9월30일 정부 방침에 따라 특조위 활동은 종료됐다. 시간은 세월호 유가족들 편이 아닌 듯했다.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도 마찬가지다.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서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다. 투병 317일 만에 숨졌지만, 정부와 보수 측에선 진상규명보다는 ‘부검 논란’을 부채질했다. 371일째인 현재까지 그 누구도 책임을 졌다거나 처벌됐다는 소식은 안 들렸고,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지던 차다. 

국가가 책임지겠다던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 미배정, 굴욕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 군사정권 때나 있던 역사교과서 국정화, 지역주민뿐 아니라 주변국과도 마찰을 빚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등에서도 박근혜 정권은 시간을 무기로 내세웠다. 한때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다가 곧 당사자들만의 문제로 축소되고, 더 시간이 흐르면 “반대를 위한 반대” 혹은 “종북주의자들의 악머구리” 프레임에 갇혔다. 

정권의 내부자와 공모자들은 대중들이 떠들다 입을 닫을 때까지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송로버섯 요리를 먹고, 명품 구두를 신었다. 빌딩을 사고, 고급 외제 승용차, 승마, 해외여행을 즐겼다.

그러다 파탄(破綻)이 났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얼마나 가겠나” 했겠지만, 두 달째다. 박 대통령은 으레 시간 벌기로 일관했다. 첫 보도가 나고 35일 만에 90초짜리 녹화 사과를 했다. 간을 보다가 지지율이 5%까지 폭락하자 열흘 뒤 재차 사과를 했다. 박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고 했다. 하나, 그를 대리하는 유영하 변호사는 “사실관계를 대부분 확정한 뒤 대통령을 조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했다. 관계자들 수사가 끝나려면 수개월이 걸릴 것이다. 

흥분하면 속을 고스란히 드러내 어찌보면 순진한 것 같기도 한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15일 이런 말을 했다. “대통령은 지금 어떤 사안이 터진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 노력에 따라 회복될 수 있는 지지율이라고 본다.” 이번에도 시간은 박근혜 정권 편일까.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최근 미국 덴버대학교 정치학과 에리카 체노웨스 교수의 3.5% 법칙이 부각되고 있다. 1900년에서 2006년까지 발생한 시민 저항 운동을 분석해봤더니 한 국가 인구의 3.5%가 집회 및 시위를 지속할 경우 정권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다만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시위, 비폭력 시위’라는 두 가지 전제가 있다. 한국 인구 3.5%이면 180만명 정도다. 이들이 시간의 무게를 버티면, 정권은 버티기 어렵다는 것이다. 

외국 교수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시민들은 이미 알고 있다. 시간은 힘센 이의 편이 아니다. ‘흐지부지’를 거부하는, 끈질긴 이의 편이다. 영화 속 이강희 주간과 달리 박근혜 정권은 이미 오른손을 잃었고, 이제 왼손도 잃고 있다.

Posted by 최우규

 45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최악의 패자는 여론조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주요 언론사와 여론조사기관 대부분이 ‘이단아’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보다는 ‘모범생’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 승리를 예상했다. 뉴욕타임스는 클린턴 후보 당선 가능성을 84%로, 프린스턴 선거 컨소시엄과 허핑턴포스트 등은 99%로 봤다. 워싱턴포스트와 ABC방송은 47% 대 43%로 클린턴 우위를 점치는 등 주요 기관 11곳 중 9곳이 틀렸다. 망신을 당한 기관들은 반성문을 냈다. 9일(현지시간) 미국 여론조사 연합회는 “이번에는 완전히 틀렸다”면서 “여론조사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말했다.


 반면 대선 직전 트럼프 후보 우위를 점친 유력 기관은 2곳에 불과했다. LA타임스와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은 공동조사에서 48%인 트럼프가 43%의 클린턴을 앞섰다고 7일 밝혔다. 이어 경제전문매체 인베스터즈 비즈니스 데일리(IBD)와 여론조사기관 테크노메트리카 마켓 인텔리전스(TIPP)는 8일 45% 대 43%로 트럼프 우위를 예상했다.

 이 두 곳의 여론조사 기법은 좀 달랐다. LA타임스는 투표 의향에 중점을 뒀다. 조사 때마다 응답자를 무작위 추출하는 대신 3000여명을 골라 추적 조사했다. 그러면서 2012년 대선 때 누구를 찍었는지를 기반으로 가중치를 주고, 실제 투표할지도 거듭 물었다. 인터넷을 통한 조사도 병행했다. 그 이유에 대해 USC 경제·사회조사 사이프센터 아리 캡테인 책임자는 “일부 유권자들은 조사원과의 직접 면담에서 트럼프 지지 사실을 인정하길 부끄러워했다”고 말했다.

 IBD·TIPP도 자신들만의 방식을 썼다. 보통 여론조사기관은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인구통계학적으로 응답자를 고르지만 이곳은 연령, 성별, 인종, 지역 등 인구총조사 결과에 맞춰 응답자를 골랐다. 또 응답자들의 ‘정당 지지’(지지 정당이 있으면 일시적으로 다른 정당에 투표했다가도 특별한 사정이 없어지면 다음 선거에서는 원래 정당을 지지함) 여부에도 가중치를 줬다. 투표 의향에 무게를 둔 두 곳의 기법은 ‘비정통적, 실험적’이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이들 예상이 맞았다. 이번에는 여론조사기관도 ‘이단아’들이 이긴 것이다.     최우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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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예상을 깨고 승리했다. 미국민은 물론 전 세계는 지난 6월 영국의 예상치 못했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 때를 넘어서는 충격을 받고 있다. 미 CNN 방송은 투표 전날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 당선 확률이 91%로 높아졌다고 보도하는 등 대부분 언론은 트럼프의 패배를 점쳤다. 주가의 흐름도 같은 방향이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트럼프는 손쉽게 승리했다. 미 정가 경력이 전혀 없는 ‘아웃사이더’가 미 대통령이 되는, 240년 미국사 최초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트럼프 승리에는 기존 지지층인 쇠락한 중서부 제조업 지대(러스트 벨트) 백인 노동자들이 결집한 데다 샤이 트럼프(숨어있던 트럼프 지지자들)가 대거 투표장으로 나갔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정치 공학적 분석만으로 트럼프 승리를 분석하기는 부족하다. 오히려 미 워싱턴 정가와 주류 언론, 월가 등으로 표징되는 기존 질서를 유권자들이 거부했다고 보는 게 마땅하다. 기득권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들이 패배한 것이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 경찰을 자처하며 개입주의 노선을 유지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개방주의라는 세계 질서를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부는 소수에 집중됐고, 불평등은 심화했다. 노동자들은 오르지 않는 임금 통장을 쥐고, 월가와 워싱턴 정가 요인들의 번쩍이는 삶을 질시해야 했다. 8년 전 버락 오바마 미 민주당 후보가 외쳤던 ‘변화’의 바람도 기득권을 흔들지 못했다.

 그 불만을 어느 정치인보다 날것으로 이야기한 게 트럼프 후보다. 억만장자, 부동산 재벌인 트럼프 후보는 TV 연예 프로그램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며 오직 미국만을 위한 미국을 내세웠다. 일자리 보호를 명분으로 멕시코 불법 이민자를 막을 장벽을 설치하겠다면서 멕시코 이민자를 강간범이라 불렀다. 여성을 ‘미스 돼지’ ‘미스 가정부’ ‘빔보(골빈 미녀)’라고, 무슬림은 ‘테러범’으로 비하했다. 소수자 옹호, 이민자 수용 등 관용과 정치적 올바름보다는 ‘내 일자리와 내 재산’ 보호 같은 욕망의 정치를 대리했다. 백인 저소득층, 보수층을 중심으로 열광적 지지를 받는 ‘트럼피즘’이 뒤를 따랐다.

 트럼프 후보는 미 정당·정치 제도의 틀도 깼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만든 미 공화당에 혈혈단신 들어가 강자 16명을 패퇴시키더니, 결국 민주당 클린턴 후보까지 무릎 꿇렸다. 미 대선 과정을 정책과 공약의 경쟁이 아니라 추문 폭로와 이전투구로 얼룩지게 만들었다. 대선판은 쇼 비즈니스에 다름 아니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추악한 선거운동은 모두 그가 기획해낸 것이다. 그에 맞선 클린턴 후보는 기성정치의 대표자로 각인됨으로써 유권자의 염증을 풀어주지 못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대표해온 진보와 변화를 자신의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였다. 지지율 50%가 넘는 현역 대통령 오바마의 지원도 기득권의 성에 갇힌 클린턴을 구출하지 못했다.

 트럼프 후보는 미국 사회에 분열과 갈등의 씨앗을 뿌림으로써 미국 민주주의 모델을 위기로 몰았다. 그러나 변화에 대한 열망이 있을 때에는 그 변화를 반영하는 정치적 결과를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가 살아 있다는 점도 보여줬다. 결국 트럼프 후보는 유권자들의 기성 체제에 대한 미국 보통 시민들의 뿌리 깊은 혐오와 새로운 체제를 위한 변화 열망에 기대 고 전복과 부인, 부정을 무기로 미국 대권을 거머쥔 것이다. 지금까지 정치학 교과서는 상당 부분 새로 써야 할 판이다.

 45대 미국 대통령 트럼프 앞에는 난제가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최악의 선거라는 혹평을 받은 이번 대선 기간 갈가리 찢긴 미국의 상처를 치유하고 통합을 이뤄내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미 공화당이 상·하원에서 모두 다수당이 됐다. 하지만 트럼프 후보가 지금까지 보여준 독불장군식의 태도라면 여야 모두와 갈등할 때 국정을 원만하게 이끌기는 어렵다. 또 기존에 내놓은 공약들을 구체화하고, 합리적 의견을 도출해 실행가능한 대안이 되도록 다듬는 것도 무거운 숙제다. 특히 자신의 당선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브렉시트보다 몇 배는 강력할 것이라는 우려를 잠재워야 하는 과제도 있다.

 트럼프 후보는 오바마 대통령의 불법 이민자 추방을 유예하는 이민개혁 행정명령 폐지, ‘오바마케어’(국민건강보험 가입 의무화) 백지화, 소득세와 법인세 등 감세, 각종 자유무역협정 폐기나 재협상, 환경규제를 천명한 파리협정 탈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기여도 축소 등을 천명해왔다. 미국제일주의, 반세계화, 신고립주의, 보호무역 기조다. 트럼프는 기존 우방보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의 관계 진전 등 국제 정치에서의 격변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구체적 대안을 내놓지는 않았다. 기성 질서 거부라는 그의 분명한 입장과는 달리 그가 생각하는 다른 질서가 무엇인지, 그의 비전이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트럼프 시대의 미국, 나아가 트럼프 시대의 세계는 불확실성에 휩싸여 있다. 미국인은 물론 세계인은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

Posted by 최우규

서점가에 조용한 돌풍이 일고 있다. 나온 지 29개월 된 책이 최근 베스트셀러로 부상했다.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의 <대통령의 글쓰기>. 교보문고는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2일까지 이 책 판매량이 직전 열흘보다 76.6배 늘었다고 4일 밝혔다. 11월 첫째주 온라인 종합 판매량도 지난주보다 30계단 오른 5위다. 온라인서점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에서도 모두 종합 5위를 차지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청와대에서 8년 근무한 강 전 비서관은 이 책에서 기조를 잡아라, 제목을 붙여라, 타이밍을 잡아라40가지 소주제로 대통령들의 글쓰기 방식을 소개했다. 또 두 대통령의 글쓰기가 얼마나 엄밀했고, 소통이 활발했는지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연설문) 단어 몇 자 고쳐 내려오면 만점 수준. 한 단락을 긋고 좌우 여백에 다시 쓰면 매우 양호. 한쪽 전체에 가위표를 치고 뒷장에 다시 쓰면 좀 심각하다. 더 큰 문제는 녹음테이프가 내려오는 경우다. 대통령이 고쳐보려 했지만 손을 댈 수가 없을 때 직접 녹음을 해서 보낸다. 이것을 우리는 폭탄이라고 불렀다.”(14)

“2006년 신년사 준비. (무현) 대통령이 연설비서실에서 보고한 초안을 수정해 내려보냈다. ‘국민 여러분, 개해가 밝았습니다로 시작했다. 초안은 국민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였다. 아무리 개띠 해지만 설마 대통령이 개해라고 하셨을까. 대통령에게 여쭤봤다. 대통령은 당연하다는 듯이 “(‘새해개해로 친) 오타네하는 거였다. 확인과 퇴고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는 기회였다.”(142)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 연설문을 사전에 받아 빨간펜으로 첨삭했다는 의혹이 보도된 뒤 책 판매량이 늘었다. 비선 실세가 대국민 메시지까지 멋대로 주물렀을 가능성에 분노한 독자들이 두 대통령의 글쓰기를 돌아보게 됐다는 설명이다.

강 전 비서관은 지난해까지는 두 대통령에 대한 향수 덕에 이 책이 팔렸는데, 최근에는 자신의 생각을 갖고 글을 쓸 수 있는 대통령이 두 분밖에 없었다고 독자들이 느낀 것 같다좀 씁쓸하다고 말했다. 왜 안 그렇겠나.

Posted by 최우규

박근혜 대통령이 이틀 연속 ‘깜짝 인사’를 단행했다. 그제는 노무현 대통령의 청와대 정책실장이던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국무총리로 지명하더니, 어제는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이던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을 자신의 비서실장에 앉히겠다고 발표했다. 인사권을 휘둘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덮고 분노한 민심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번 인사는 절차와 과정도 문제지만, 예상외 카드로 자신이 처한 위기를 모면해보려는 그 저의가 노골적이다. 박 대통령의 독단과 독선은 이제 섬뜩하기까지 하다. 

퇴장하는 박근혜 대통령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청와대 춘추관 기자회견장에서 비선 실세 최순실씨 국정농단과 관련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퇴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제 김병준 교수 지명을 놓고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에서도 분노가 거세졌다. 시민들로부터 퇴진 압박을 받으면서도 여야, 국회와의 협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인사권을 휘두르는, 여전한 오기와 독선 때문이다. 야당과 인연을 가진 인물을 내세워 야권 분란은 물론 김 교수가 주장해온 이원집정부제 등 개헌으로 시선 전환을 꾀하려 했음이 명백하다. 그래 놓고 여야에 인선안을 받으라고 요구했으니 대통령 퇴진 목소리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또 깜짝 인사를 단행했다.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화해와 포용의 가치를 바탕으로 어려운 시기에 대통령을 국민적 시각에서 보좌하며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데 적임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한데 한 위원장이 국민 대통합을 이뤘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바도 없다. 이제 와서 그가 박 대통령과 마주 앉아 시민의 의견을 제대로 전달해줄지도 의문이다.

박 대통령은 이 같은 오불관언 인사로 여야 할 것 없는 비판에 직면했다. 새누리당에서도 “국회와의 협의 없이 총리를 지명하여 갈등이 고조된 그 다음날 비서실 인선을 강행했다. 비서실 인선 시기를 이렇게 잡은 것은 대통령의 일방 독주 선언”(하태경 의원)이라는 비난이 나왔다. 결국 청와대와 새누리당 내 일부 친박계만 환영하는 인사가 돼버렸다. 

박 대통령은 ‘통합과 화합’ 명찰을 단 인물을 내세워 현 국면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눈 밝은 시민이 그런 잔수를 못 알아볼 리가 없다. 

최근 주말 날씨를 알아보는 시민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5일 열리는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범국민행동’ 문화제에 참석하기 위해서란다. 그만큼 시민의 분노가 턱밑까지 찼다는 사실을 박 대통령은 뼈아프게 자성해야 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방탄용’ 인사권을 거두고, 국정 방향과 자신에 대한 조사 방법을 국회와 논의하는 게 그나마 정도일 것이다.   2016.11.03

Posted by 최우규




생일 선물로 LP를 받았다. 지난해에도 그랬고, 올해에도. 이젠 옷이나 먹는 걸 받는 것도 우습고, 책은 마누라가 충분히 구입(ㅠ.ㅠ)하고 있다.


LP를 사려면 회현동 지하상가에 가야 하나 선뜻 발걸음이 나서지 않는다. 게으름이 그 이유의 절반이고, 욕심이 나서 '사재기 바람'이 불까 걱정스러워서다. 총각 시절 몇달간 매달 70만~80만원 어치 CD와 LP를 산 적이 있다. 지금이야 못참을 리야 없지만, 물욕에 흔들리는 스스로를 보고 싶지 않다.


이번에 선물로 받은 LP는 2장이다. 마일스 데이비스 것들이다.


하드밥과 쿨을 넘나들던 마일스 데이비스는 1955년 소위 황금 5인조를 구성하게 된다. 자신이 트럼펫을, John Coltrane이 테너 색소폰(섹소폰 혹은 섹스폰이라는 오타를 내지 않으려고 늘 신경쓰게 된다. ㅠ.ㅠ)을, Red Garland가 피아노, Paul Chambers는 베이스 기타, Phily Joe Jones가 드럼을 맡았다. 멤버 모두 재즈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이다.


마일스는 당시 소속 레이블을 Prestige에서 Columbia로 바꾸려고 한다. 이전에 남아 있는 계약을 털기 위해 이틀에 걸쳐 연주를 녹음했다. 당시에는 대체로 한 스튜디오에서 합주하고 믹싱하는 식으로 녹음을 했다. 이 때 완성된 것을 나눠 실은 게 ‘~in’ 시리즈다. <Cookin’>, <Relaxin’>, <Steamin’>, <Workin’>이다. 이들 4음반은 그저 사서 즐기면 된다. 






<Workin With The Miles Davis Quintet>은 두 엄지손가락 모두를 치켜들어도 될만한 음반이다.


첫 곡 ‘It Never Entered My Mind’부터 세련되고 극적인 연주로 귀를 사로잡는다. 아름다운 피아노로 시작하는 이 발라드 곡에서 마일스는 울음을 참는듯한 뮤트 트럼펫을 들려준다. 재즈는 시끄럽고 부산스럽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면 이 곡을 꼭 들어보시길.

두번째 곡 ‘Four’는 스윙감이 가득한 밥이다. 춤추기에도 꼭 좋다. ‘Trane’S Blues’는 존 콜트레인 곡이다. ‘Ahmad’S Blues’에선 갈란드의 피아노 연주가 주도한다.


수록곡은

 01. It Never Entered My Mind

 02. Four

 03. In Your Own Sweet Way

 04. The Theme

 05. Trane’S Blues

 06. Ahmad’S Blues

 07. Half Nelson

 08. The Theme(Take 2)


<Steamin With The Miles Davis Quintet>은 하드 밥 성격이 좀더 짙다. 5인조로 뽑을 수 있는 최대한도의 소리에다, 모범적 리듬 섹션을 제시한다.


첫곡 ‘Surrey With The Fringe On Top’부터 미디엄 템포에 뮤트한 마일스 트럼펫 소리가 귀를 확 끈다. ‘Salt Peanuts’에선 존과 마일스가 익살맞은 블로윙을, 레드 갈란드는 스트라이드 피아노의 전형을 들려준다.

내게 최고의 곡은 ‘When I Fall in Love’. 늦은 밤 지친 몸으로 (지금은 끊었지만)담배 한 개비와 위스키(소주여도 좋고) 한 잔에, “칙칙”거리는 LP로 이 곡을 들어야 한다.


수록곡은

01. Surrey With The Fringe On Top

02. Salt Peanuts

03. Something I Dreamed Last Night

04. Diane

05. Well, You Needn‘t

06. When I Fall In Love


Posted by 최우규




“유신 때나 이랬다.” “유신 때에도 이렇지는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저항하던 시민이 공권력의 개입 혹은 공격에 의해 숨진다. 1973년 최종길 교수가 숨졌고, 2016년 백남기 농민이 숨졌다. 박정희 정권은 중앙정보부를 동원해 최 교수 사인을 은폐하고, 박근혜 정권은 유감 표명은 없이 부검만 고집하고 있다.


백남기 농민 빈소시민들이 서울대학교병원의 백남기 농민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비선(秘線)은 공식 계통보다 강했다. 1975년 고 최태민씨는 대한구국선교단을 발족해, 자신은 총재에 취임하고 당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박근혜 대통령을 명예총재로 추대했다.

최씨에 대한 당시 수사자료에 “행정부, 정계, 경제계, 언론계 등 각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올해 국정조사에서는 최태민씨 딸 순실씨와 외손녀 정유라씨 이름만 도드라졌다. 재벌 팔을 비틀어 며칠 만에 수백억원을 모아 재단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최순실씨, 그와 친하다는 차은택 전 문화창조융합본부장 등의 이름이 곳곳에 등장했다.


최씨 딸 정씨는 재벌 2·3세, 공주·왕자들이 많이 한다는 마장마술을 배워 선수가 됐다. 자기 돈은 별로 들이지 않았다. ‘금수저를 넘어 국(國)수저’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경향신문 홈페이지최순실씨 딸 정유라씨 관련 기사를 게재한 경향신문 홈페이지.



예전 박 대통령은 정부와 여당을 종 부리듯 했고, 지금 박 대통령도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 사람들이 아직도 있느냐”는 지엄한 물음에 해당 공무원들이 옷을 벗을 정도니.


그때 청와대에 차지철 경호실장이 있었다면, 지금은 우병우 민정수석이 있다.


여당의 굴종은 더 노골적이다. ‘최순실 게이트’나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에 일언반구도 않고 청와대와 최순실씨 방어만 하던 여당이다. 한데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과정에서 북한 의견을 물었다는 ‘송민순 회고록’에 여당은 위원회를 꾸리고 최고위원회의, 중진 연석회의, 의원총회 등을 열어 화력을 쏟아붓고 있다. 남(야당)이 공세하는 것은 “민생 외면”이고, 자신(여당)이 하는 것은 “진상 규명”이란다.


40여년 전과 달리 이 정권은 경제에는 무능하지만, 불신과 갈등 조장에는 더 유능하다. 김제동씨 영창 발언을 놓고 ‘국방부 장관은 개그맨’과 싸우고, 백남기 농민 부검 건을 놓고 ‘프레지던트(대통령)는 레지던트(수련의)’와 싸운다고들 한다. 검찰을 시켜 자신들 핵심 인물은 쏙 빼고 야당 주요 인사들만 선거법으로 징치하려고 한다. 그 낯두꺼움은 갑남을녀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고래(古來)로 무류(無謬·infallibilitas), 무치(無恥·impudentia)는 영웅의 특질이었다. 오류로 비치는 것도, 본디 그렇게 하도록 돼 있어서다. 그러니 무얼해도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북구 신화의 주신(主神)은 오딘이다. 

오딘북구 신화의 주신 오딘

그는 강력한 힘과 지혜를 가졌지만, 공명정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기후의 신답게 변덕을 부리고, 거짓말과 배신도 밥 먹듯 했다. ‘불화를 일으키게 하는 자’라는 별칭도 있다.


지혜를 갈구하던 오딘은 거인 흘레바르드로부터 마법 지팡이 간반테인을 얻고는, 거인의 정기를 없앴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것이다. 그를 수호신으로 하는 이들은 배신에 의한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한 고조 유방(劉邦)도 오딘 못지않다. 중국 역사상 두번째로 천하를 통일한 그는 공신들을 하나씩 제거해나갔다. 유방은 일등 공신 한신을 초나라 왕으로 봉했다가 반란을 의심해 왕위를 박탈하고 회음후로 봉해 도성에 잡아두었다. 결국 한신은 모반한 진희를 도우려 했으나 들켜, 목이 달아났다.


유방은 팽월, 영포, 장도 등도 없앴다. 400년 제국 기틀에 누가 될 것 같으면 모조리 제거한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뻔뻔함은 북구 신화 ‘에다’나 사마천 ‘사기(史記)’에 나올 법하다. 스스로를 전능한 신이나 수백년 왕조의 비조(鼻祖)쯤으로 여기는 것 같아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 박근혜 정권은 교체된다는 사실이다. 주체가 여든, 야든. 대통령 선거날 2017년 12월20일까지 428일, 대통령 퇴임일 2018년 2월24일까지 494일 남았다.


그 이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검찰이 현 정권 실세와 비선을 지금처럼 보호해줄까. 천만의 말씀이다. 검찰이야말로 뻔뻔함의 대명사다.


2003년 비주류 중의 비주류여서 ‘만만한’ 노무현 대통령과 맞짱 뜨던 검사들의 기개는 이후 두 정권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 칼날의 방향이 달라졌던 게 주지의 사실이다.


현재 제기되는 의혹은 대검과 서울지검 어느 캐비닛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을 것이다. 빛을 볼 날을 기다리면서.

Posted by 최우규




여기 한 정치인이 있다. 외조부와 종조부가 총리였고, 아버지는 장관이었다. 그도 총리다. 인근 국가에서 보면 보편적 세계 질서, 평화와 안녕보다는 자국 이기주의를 내세우는 못된 정치인이다. 대놓고 그 나라 우익 이익을 대변한다. 영구 집권과 자신의 임기 연장을 꾀하는 정치꾼이다.


자신은 그런 특질을 부인하지 않는다. 은근히 부각시킨다.


한국민은 그를 싫어한다. 8월 아산정책연구원 외국 정치 지도자 호감도 조사에서 10점 만점에 1.84점으로 꼴찌에서 두번째다. 자국에서 인기는 안정적으로 높다. 그럴 수밖에. 현재 유권자는 물론 미래 표심까지 아우르는 정책에 올인해왔기 때문이다.


바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내각총리대신이다. 그는 각종 ‘절벽’(꽉 막힌 상황) 상황을 타개하는 데 진력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아베 신조 일본 총리



‘소비 절벽’을 깨는 제일 좋은 방법은 소득을 올려주는 것이다. 일본은 최저임금액을 평균 25엔(274원·이하 30일 현재) 올려 823엔(9012원)으로 정했다. 이는 지역별로 다르게 10월부터 적용된다. 물가가 제일 비싼 도쿄는 932엔(1만205원), 가장 낮은 미야자키현은 714엔(7818원)이다.


한국 정부는 내년 최저시급을 6470원으로 정했다. 올해보다 440원 올렸다. 일본이 잘사니까 최저임금이 높은 게 당연할까. 꼭 그렇지 않다. 질(質)이 문제다.


햄버거 빅맥 가격을 비교해 각국 통화 구매력 등을 평가하는 빅맥지수라는 게 있다. 7월 한국 빅맥지수는 3.86이다. 빅맥 하나를 사먹으려면 3달러86센트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3.47이다.


내년 최저시급을 달러로 환산하면 일본 도쿄는 9달러12센트, 한국은 5달러78센트다. 도쿄에서 1시간 일해 번 돈으로 빅맥 2개를 사먹고 2달러18센트가 남는다. 한국에선 빅맥 1개를 사먹으면 1달러92센트 남는다. 환율, 빅맥지수, 최저임금의 시점이 달라 오차가 있을 것이다. 다만 정변 같은 사태가 없는 한 이 추세는 유지될 것이다.


이보다 더한 차이가 있다. 아베는 정부 차원에서 “임금을 많이 주라”고 기업을 압박해왔다. 이를 통해 경기를 살리고, 월급쟁이 유권자와 그 가족 표심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행동한 것이다. 임금이 많이 올라 재계를 힘들게 할까봐 안달하는 한국 정부와는 사뭇 다르다.


아베 정부는 ‘취업·노동 절벽’ 상황을 일본판 ‘저녁이 있는 삶’으로 바꾸려고 한다. 여성 취업을 늘리기 위해 50만명의 아동 수용시설을 확보키로 했다. 베이비시터(육아도우미)를 고용하거나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기는 가구의 세금 부담도 줄일 방침이다.


노동자가 초과근무로 늦게 퇴근했을 때 출근 전에 최소한 휴식을 보장하는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인터벌 규제’ 제도를 내년 도입하기로 했다. 매월 마지막 금요일을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로 지정, 퇴근 시간을 오후 3시로 당기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일본도 ‘인구 절벽’은 심각한 문제다. 아베는 1억 인구를 지키겠다며 1억총활약 담당상(장관)을 임명했다. 저소득·비정규직 노동자가 안심하고 아이를 낳는 사회가 목표다.


써놓고 보니 이건 ‘찬안배진삼가(讚安倍晋三歌)’가 돼 버렸다. 어쩌다, 정치인이 표심을 얻으려 노력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격률(格率)이 시행되는 걸 부러워하게 됐을까.


바다 건너에 있는 또 다른 정치인 때문이다. 그도 대를 이어 대통령을 하고 있다. 그가 맞닥뜨린 상황은 일본보다 더하다. 소비, 성장, 노동, 고용, 결혼, 인구, 남북, 외교 등 모든 부문이 절벽 상태다. 한데 표심을 살피기보다는 ‘마이 웨이’만 고집하고 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다. 이원종 비서실장은 7월1일 국회에서 “대통령께서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100% 일하고 계신다”고 말했다. 대다수 유권자들은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른다. 다만 최근 박 대통령 행보 중 눈에 띄는 건 딱 2가지다. ‘비서 구하기’와 ‘기승전북(起承轉北·무슨 일이든 북한이 문제인 것으로 결론 내기)’이다.


기중 우병우 민정수석을 둘러싼 논란은 국정을 막아선 4면 절벽이 돼 버렸다. 조선시대로 치면 승정원(왕의 비서기관·청와대)의 좌승지쯤 되는 인사를 구한답시고 승정원과 의금부(검찰) 전체가 난장을 치는 형국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박근혜 대통령(오른쪽)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청와대 사진기자단



박 대통령은 우 수석 비판자를 ‘부패 기득권과 좌파 세력’이라고 규정하고, 청년들에게는 “자기비하와 비관, 불신과 증오”한다고 타박한다.


뭐, 좋다. 그게 소신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국민을 혼내기만 하지 말고 아베처럼 뭔가를 해줘야, 아니면 하는 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누구는 절벽이랑 싸우는데, 다른 누구는 스스로가 절벽이다.

Posted by 최우규




여름 휴가를 다녀온 뒤 집에서 빈둥거리다 가족이 광화문 교보문고를 찾았다. 각자 흩어져 이곳저곳을 다니다 대박 앨범을 발견했다. 바로 하드 밥 기타리스트 웨스 몽고메리의 5장 짜리 박스 세트 <Wes Montgomery 5 Original Albums>.




몽고메리가 ‘리버사이드’와 '프레스티지' 레이블을 통해 낸 명반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기타-드럼-오르간의 트리오나, 기타-드럼-베이스-피아노와 브라스가 혼합된 콤보 형태다. 한마디로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었다.


염가반으로 내놓아 5장에 2만3500원. 한장에 5000원도 안되는 가격이지만, 소장보다는 감상을 위해서라면 무조건 사야 한다.


특히 ‘웨스 몽고메리 트리오’의 합주는 최고다. 평론가들은 “이 음반의 최대 결함은 웨스 몽고메리의 위대함을 다른 두 연주자가 잘 받쳐주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 둘의 연주도 몽고메리에 비해 평범하다는 것이지,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미사일 블루스’는 듣자마자 “훅 간” 곡이다.


한장 한장 음반 커버는 종이고, 5장을 얇은 박스에 넣었다. 볼품은 그닥 없지만 내용만 생각한다면 가성비 최고다.



<Boss Guitar>

“Besame Mucho”

“Dearly Beloved”

“Days of Wine and Roses”

“The Trick Bag”

“Canadian Sunset”

“Fried Pies”

“The Breeze and I”

“For Heaven’s Sake”


<So Much Guitar>

“Twisted Blues”

“Cotton Tail”

“I Wish I Knew”

“I’m Just a Lucky So-and-So”

“Repetition”

“Somethin’ Like Bags”

“While We’re Young”

“One for My Baby (and One More for the Road)”


<Movin’ Along>

“Movin’ Along”

“Tune-Up”

“I Don’t Stand a Ghost of a Chance with You”

“Sandu”

“Body and Soul”

“So Do It!”

“Says You”


<The Incredible Jazz Guitar of Wes Montgomery>

“Airegin”

“D-Natural Blues”

“Polka Dots and Moonbeams”

“Four on Six”

“West Coast Blues”

“In Your Own Sweet Way”

“Mr. Walker”

“Gone With the Wind”


<The Wes Montgomery Trio>

“‘Round Midnight”

“Yesterdays”

“The End of a Love Affair”

“Whisper Not”

“Ecaroh”

“Satin Doll” [Alternate take]

“Satin Doll”

“Missile Blues” [Alternate take]

“Missile Blues”


 <트리오> 음반에서 원래 수록곡인 “Too Late Now”와 “Jingles”가 빠진 점은 아쉽다.



Posted by 최우규




 “옥녀봉에 있는 선명우의 소금집에서 내려다보는 금강은 정말 비단을 깔아 놓은 듯 매끄럽고 유장했다. 계룡산의 허리 짬을 파고 돌다가 공주 부여의 옛꿈을 쓰다듬고 내려오는 강물이었다. 흐르기 때문에 강인 것인지, 강이기 때문에 흐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강물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리면 멀리 계룡산의 연접한 줄기줄기도 머물지 않고 마냥 흐르고 흘렀다. 흐르고 머무는 것이 자연이려니와, 흐르고 머무는 것이 곧 사람이었다.”(박범신 소설 <소금> 357쪽)


 박 작가는 <소금>에 충남 강경의 옥녀봉과 금강을 이렇게 옮겨 적었다. <소금>은 자본주의의 소비 네트워크에 휘말려 삶을 빨대로 빨리는 아버지들을 다뤘다. 주인공 선명우도 아버지를 빨고, 그는 부인과 딸들에게 빨린다. 선명우가 천하게 번쩍이는 현실을 버리고 가난과 남루함, 웅숭깊은 자연을 찾아가 머문 곳이 옥녀봉 소금집이다.


 문학은 현실의 거울일 것이다. 모양을 비추지만 만질 수 없다. 한데 거울 속에 들어가 책 문장 사이, 단어 사이에 숨어 있는 실재들을 맛볼 수 있다면 어떨까. 소설 속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와 거울 속을 돌아다닌 것처럼 내 발로 직접 가볼 수 있다면. 


 충남 강경과 논산은 박범신 작가의 소설 <소금> 독자들에게 맞춤한 곳이다. 가시 많은 생선 살을 발라 먹듯 작가와 주인공들의 발자국을 따라 밟을 수 있는 곳이니 말이다.


 ‘경향 70년, 70인과의 동행’ 참가자 70여명이 23일 땡볕이 내리쬐는 강경 옥녀봉을 찾았다. 박 작가 안내로 옥녀봉 꼭대기에 서자 금강과 논산평야가 눈앞에 펼쳐진다. 고목들이 서늘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금강과 논산평야23일 충남 강경 옥녀봉에서 내려다본 금강이 논산평야를 끼고 휘돌고 있다. 강경 _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옥녀봉에는 보름달 뜬 날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와 경치를 즐기고 맑은 강물에 목욕하고 놀았다는 전설이 서려 있다. 박 작가는 “그건 건전 버전이고, 에로틱 버전이 있다”고 껄껄 웃었다.


 옥황상제 막내딸이 선녀들과 목욕을 하다가 너무 늦었다. 허겁지겁 날개옷을 입고 하늘로 올라갔다. 

 옥황상제가 구름 밑을 내려다보니 한 선녀의 옷매무새가 흐트러져 젖가슴이 보였다. 옥황상제는 “단정치 못한 저 아이는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알고 보니 애지중지하던 막내딸이었지만, 지시를 거두지 못했다고 한다.


박범신 작가‘경향 70년, 70인과의 동행’ 참가자들이 23일 박범신 작가 소설 <소금>의 무대인 충남 강경과 논산을 찾았다.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강경 옥녀봉 공원에서 박 작가(가장 앞)가 이곳에서 보낸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강경 _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박 작가가 탐방객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금강 포구에 과거 2~3㎞나 파시가 늘어섰다고 합니다. 제 고향은 여기서 8㎞ 떨어진 곳입니다. 중2 때 강경읍으로 이사갔죠. 저 금강 하구를 지금은 막아놨습니다. 강물은 흘러야 하는데, 농업용수로도 못 씁니다.”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박 작가는 금강변 갈대밭을 가리키며 “날 키운 자궁”이라고 했다. 

 그는 강경읍에서 익산 남성고를 기차로 통학했다. 하지만 새벽밥 먹고 나와 역으로 안 가고 갈대밭에 가서 매일 하루 책을 2권씩 읽었단다.


 옥녀봉 밑에 <소금> 주인공 선명우의 살림집이 있다. 방 2칸짜리에 시멘트벽과 바닥, 슬레이트 지붕. 초라한 곳이다. 이곳에서 주인공이 자아를 회복한다.

소금집‘경향 70년, 70인과의 동행’ 참가자들이 지난 23일 박범신 소설 <소금>의 배경이 된 주인공의 집을 둘러보고 있다. 강경 _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박 작가는 “여긴 옛집들이 많이 남아 있어 연속극을 찍으러 많이 온다”며 “개발의 광풍이 이곳을 덮쳤다면 이곳을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강경에는 옛 벽돌 건물이 많다. 벽돌도 세월이 갈아낸 듯 색은 바랬고, 닳고 닳아 옆 날과 각은 죽어 있다. 그걸 박 작가는 “옛사랑, 문학의 마음”이라고 했다. 남루하고 퇴락한 것들, 사라지는 것, 모자란 것, 눈물겨운 것들…. 선명우의 첫사랑 세희가 입었던 ‘실밥 풀린 메리야스’ 같은 심상이다.


 강경에는 기독교 관련 유적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옥녀봉 공원 안에 한국 침례회 최초 예배지가 복원돼 있다. 조선 말기 강경과 인천을 오가던 포목장수 지병석 집사의 가택이다. 1895년 폴링 선교사가 이곳에서 첫 주일 예배를 드렸다.

 옥녀봉에서 골목길을 내려오면 1924년 건립된 강경성결교회 유적이 나온다. 현존하는 유일한 개신교 한옥 교회다. 남녀가 드나드는 문이 달랐단다.


 잠깐 차를 달리니 강경근대역사관이 나왔다. 1905년 한호농공은행 강경지점으로 설립됐다가 한일은행으로 바뀐 곳이다. 근대 건물다운 외관을 가졌지만, 은행이라는 특성 때문에 입구가 작다. 옛 교과서, 저울, 손풍구, 곤로, 풍금, 재봉틀, 작두, 베틀, 기계 등 시간이 멈춘 듯한 물상들이 전시돼 있다. 송재권 해설사(60)는 “논산·강경에 등록문화재 11곳이 있는데 그중 1곳만 논산 연산역에 있고 나머지 10곳은 강경에 있다”며 “그만큼 예전에 흥했던 곳”이라고 말했다.


 역사관 바로 길 건너에 젓갈 시장이 있다. 하항(河港)과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잃은 강경이 호구책으로 삼았던 젓갈이 이젠 대표 상품이 됐다.


 논산시를 가로질러 15분가량을 가면 관촉사가 나온다. 국내 최대 석불로 보물 218호인 석조미륵보살입상이 풍광을 압도한다. 968년 혜명(慧明)이 창건한 이 사찰에는 미륵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 여인이 산에서 고사리를 꺾다가 아이 우는 소리를 듣고 가보았더니 큰 바위가 땅에서 솟아나고 있었다. 소식을 전해 들은 고려 4대왕 광종은 그 바위로 불상을 조성하라고 명했다.

미륵불상충남 논산시 은진면 관촉사에 있는 보물 218호 석조미륵보살입상. 논산 _ 강윤중 기자


 혜명은 석공 100명을 데려와 37년에 걸쳐 불상을 만들지만, 너무 커서 세우지는 못하고 걱정만 했다. 이때 아이들이 삼등분된 진흙 불상을 만드는 놀이를 보게 됐다. 평평한 땅에 발톱부터 손까지 불상을 세우고, 그 옆에 흙을 비스듬히 쌓아 손부터 이마까지 부분을 위로 끌고 올라가 몸통 위에 올렸다. 그 옆에 또 흙을 쌓고 마지막 이마 위쪽 부분까지 쌓았다. 흙을 치우니 불상이 제대로 세워졌다. 혜명이 그대로 따라 해 불상을 세웠다. 아이들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었다.

 탐방객 중에는 풍진을 108배로 씻는 이도 있었고, 고즈넉한 그늘에 앉아 땀을 닦는 이도 있었다.


 논산시 가야곡면 탑정 호숫가에 있는 박범신 작가 집필실로 향했다. 박 작가 집 ‘와초재’ 마당에는 배롱나무 한 그루가 있다. 소설 <소금>에도 나오는 소재다. 박 작가는 이 나무를 폐교 운동장에서 옮겨 심었다. 깨끗한 껍질은 청결과 고요함을 상징한다. 스스로 수양하는 선비들이 사랑방 앞에 심어두고 닮으려고 했다고 한다. 

박범신 작가 집 '와초재'‘경향 70년, 70인과의 동행’ 참가자들이 지난 23일 충남 논산시 가야곡면 소재 박범신 작가의 집 '와초재'를 둘러보고 있다. 논산 _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땡볕을 걱정한 박 작가는 탐방객을 모두 집 안으로 들이곤 ‘삶과 글, 고향’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동양에서는 인체나 우주 모두 흙, 물, 불, 바람, 하늘 5가지 원소가 균형을 이뤄야 건강하다고 본다. 해방 이후 온통 불의 역사였다. 모진 담금질을 해가며 먹고사는 불의 역사로 살았다. 기득권과 지도층도 불의 역사로만 먹고사니 모두 불타 죽을 지경이다.”

 박 작가는 모성, 여성, 관용, 부드러움을 담은 ‘물의 역사’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영원히 청년 작가로 살고 싶다”고 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박범신 작가 강연‘경향 70년, 70인과의 동행’ 참가자들이 지난 23일 논산시 가야곡면 박범신 작가의 집필관에서 작가의 강연을 듣고 있다. 논산 _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30분 예정된 강연은 2시간 넘게 진행됐다. 박 작가는 1층 거실은 물론 2층 집필실, 화장실도 모두에게 공개했다. 헤밍웨이가 맨발로 일어선 상태로 글을 쓰던 쿠바 아바나의 집필실에 서보는 게 그 애독자의 꿈이 아닐까. 탐방객 70여명은 이날 호강했다.


 부산에서 부인과 함께 온 김현태씨(67)는 “박 작가가 인상은 차분하고 애잔해 보였는데 말씀하시는 게 어찌나 구수하고 진솔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탐방객들은 논산 부적면에 위치한 백제군사박물관으로 향했다. 황산벌에서 전사한 계백 장군 묘소도 이곳에 바로 붙어 있다. 박물관은 백제시대 유물과 그 시대의 갑옷, 칼, 창, 마구 등 군사적 유물들도 함께 전시해 놓았다.


 마지막 방문지는 돈암서원이다. 논산시 연산면에 있는 사적 제383호다. 1634년(인조 12) 예악의 대가인 김장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 위패를 모셨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훼철(毁撤)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다.

돈암서원'경향 70년, 70인과의 동행' 참가자들이 지난 23일 배롱나무 꽃이 활짝 핀 논산시 연산면 돈암서원을 둘러보고 있다. 논산 _ 강윤중 기자yaja@kyunghyang.com


 외삼문을 들어서면 유생들이 공부하는 강학 공간이 나온다. 왼쪽 건물 응도당은 보물 1569호다. 대들보가 웅장하다. 양성당, 좌우 동재, 서재, 장판각 등도 있다. 모두 단청을 하지 않고 흙과 나무색만 있다. 공부하는데 정신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란다.

 내삼문을 지나면 사당인 숭례사가 날렵한 자태로 앉아 있다. 이곳에도 배롱나무가 흐드러진 꽃을 안고 서 있다. 박범신 작가 집 마당에도 있던 나무다.


 연세대 국학연구원 서현경 전문연구원(47)은 “박범신 문학과 지역이 어떻게 만나는지, 한 작가가 지역사회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볼 수 있었다”며 “인생 이야기도 좋았다. 나이 많은 친구를 만나는 것은 좋은 지도를 찾은 것과 같다”고 말했다.

Posted by 최우규



대통령 가운데 “나라를 엉망으로 다스리고 반대파랑 척진 뒤 탈당해 정권을 야당에 넘겨줘야지”라고 마음먹는 이가 있을까. 그럴 리가 없다. 모두 “국리민복을 이루고 정권을 재창출한 뒤 역사의 평가를 받겠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결과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았다. 1987년 개헌으로 5년 단임제가 된 뒤 대통령들은 대부분 궁지에 몰려 탈당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1992년 9월18일 여당 민주자유당에서 전격 탈당했다. 노 대통령은 박철언 의원을 내심 후계자로 점찍고 있었다. 김영삼 대선 후보는 강력 반발했다. 노 대통령은 YS 측과 상의도 하지 않고 탈당을 발표했다. 김영삼 대통령도 이회창 대선 후보와 갈등을 겪다가 1997년 11월7일 일방적으로 신한국당에서 나왔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2년 5월6일 새천년민주당을 떠났다. ‘최규선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 등에다 세 아들 비리 의혹이 고개를 들며 당에 부담이 될 때였다. 노무현 대통령도 열린우리당 요구에 2007년 2월28일 당적을 정리했다.


이명박 대통령만이 탈당하지 않고 임기를 마쳤다. 2011년 말 한나라당 내에서 대통령 탈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졌다. 이를 거부한 이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었다. 그는 2012년 1월19일 “차별화를 위한 차별화를 할 생각은 없다”며 당 안팎의 이 대통령 탈당 요구를 일축했다. 그의 이 말 한마디로 논란이 정리됐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 차례다. 그는 새누리당을 탈당할까. 한다면, 언제 할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7월26일 한국전 정전 60주년 행사 참석 등을 위해 방한한 존 키 뉴질랜드 총리와 정상회담에 앞서 현관에서 존 키 뉴질랜드 총리를 기다리며 시계를 보고 있다. _청와대사진기자단


탈당을 향한 임계점으로 다가가고 있다. 우선 지지층이 약화하고 있다. 박 대통령을 지탱해온 주요 축은 셋이다. 영남, 보수, 중·노년층이다. 최근 셋 모두 붕괴, 적어도 균열상을 보이고 있다. 4·13 총선 결과가 그렇다.


현 상황도 좋지 않다. 영남 지역에선 신공항, 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 민심을 잃고 있다. 보수도 등을 돌리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번주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청와대 우병우 민정수석 의혹과 4·13 총선 당시 친박·청와대의 공천개입 문제를 연일 대서특필하는 언론은 보수신문과 그 계열사인 종합편성채널이다.


국정운영 전반에서도 플러스 요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경제는 쪼그라들고, 양극화는 심화하고 있다. 청년실업, 보육문제 등 공약(公約)은 모두 공약(空約)이 됐다. 이 정부의 장기라던 ‘외교’는 파탄 직전이다. “통일은 대박”이라고 했지만, 이젠 누구도 이 정부의 통일 의지를 믿지 않는 지경이다.


박 대통령의 손발이 돼준 주요 축은 여당 새누리당의 ‘친박’이다. 이들은 4·13 총선에서 실패한 세력으로 낙인찍혔다. 본인들만 이를 부정하면서 고토 회복을 위해 분투 중이다. 하지만 실기했다. 맏형인 서청원 의원의 당권 장악을 마지막 기회라고 여겼던 듯하지만, 물 건너갔다. 박 대통령과 수시로 통화한다던 최경환·윤상현 의원도 총선 공천개입 실상이 드러났다. 구심력이 약화했으니, 앞으로 원심력이 더 커질 것이다.


박 대통령이 이 대통령 탈당을 막아준 것처럼 차기 여권 후보가 박 대통령을 지켜줄까. 박 대통령은 2012년 초 가장 강력한 여권 주자였다. 그런 자신감에다 ‘배신’을 가장 무거운 죄악으로 여기는 특유의 기질이 이 대통령 탈당 반대라는 선택에 이르게 한 것이다. 하지만 비박 후보라면 그럴 일이 없을 것이다. 차별화를 위해서라도 먼저 탈당을 요구할 수 있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처럼 임기 말 인기를 누린다면 모를까, 지지율이 떨어진 대통령을 떠받들 이유가 있을까.


이를 잘 알기 때문에 친박은 자기쪽 사람을 후보로 세우려고 한다. 이를테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영입해 대선 후보로 만들고 실제 권력은 자신들이 휘두른다는 복안일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측근 세력이 ‘노골적으로’ 민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한 적은 없다. 그게 우리 정치의 생리다. 


박 대통령에게는 기회가 있다. 역대 대통령들은 대선이 치러지는 해에 탈당해야 했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에게는 반년~1년 시간이 남아 있다. 그동안 친박을 정리하고, 내각을 정비하며, 국민과 소통하면서 국정에 전념하는 것이다.


초심으로 돌아가면 된다. 자신의 대선 출마 선언문과 후보직 수락 연설문, 대통령 취임사를 곱씹어 보면 길을 찾을 수 있다. “국민 한 분 한 분의 꿈이 이루어지는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각오로 이 자리에 섰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모두가 함께 가는 국민 대통합의 길을 가겠다” “국민 뜻에 부응하여 경제부흥과 국민행복, 문화융성을 이뤄낼 것”이라던 약속을 지키면 된다. 째깍거리는 탈당 시계를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Posted by 최우규



   최근 교육부 관리 한명의 “개 돼지” 발언이 전국을 흔들었다. 잘못된 사고이고, 잘못된 발언이라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헌데 이를 둘러싸고 물타기 혹은 역공 하는 식의 반응도 나오는 듯 하다.


 우선 ‘취중 실언’이다. 그간 한국에서는 음주와 관련해서는 상당히 관대해 대해 주는 문화가 있었다. 다른 짓하다 지각하는 것과, 전날 거래처와 술 마시고 늦는 것의 질책 강도는 달랐다. 술 잘마시면 ‘호인’ 식의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술 자리에서 음주 강요나 추행 같은 헛짓도 나온 것이다.


 난 도대체 이해가 안됐던 것중 하나는 술 마시고 사고 치면 형벌을 줄여주는 것이다. 강간을 해도, 강도를 해도, 폭행을 해도 술을 마시면 ‘심신 미약’ 상태라고 형을 줄인다. 세상에. 막말로, 누군가를 패고 싶을 때 일부러 술을 마시고 일 저지르면 “술이 웬수”라고 호소해 처벌을 가볍게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법원도 음주에 따른 작량감경을 많이 안해주는 것으로 들었다.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교육부에선 당시 식사 자리를 조사해서 소주 몇잔에 폭탄주 몇잔을 마신 상태에서 한 이야기라고 보고했단다. 새누리당에서는 국회 상임위에서 이를 꽤 심각하게 질문했고. 결국 “술 마시고 한 헛소리니 봐달라”는 취지다. 그 자리에서 경향신문 기자들중 한명은 아예 한잔도 안마셨고, 다른 한명도 몇잔 안마셨다고 한다. 그리고 교육부가 주장한바 대로 그 관리가 저만한 양의 술을 미리 몽땅 마셔 취한 상태에서 이 문제를 이야기한 게 아니었다.


 기자들 말에 따르면 그 관리는 자리를 자주 비었고, 자신이 먼저 화제를 꺼냈고, 차분한 말투로 자신의 논리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기자들은 이 발언의 심각성을 감안해 여러차례 농담이냐, 진심이냐는 식으로 물었고 발언 취소(이를 테면 “농담입니다. 요즘 답답해서 해본 말이에요”라는 식의)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그는 스마트폰이 녹음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자신의 발언의 취지와 논리 전개를 취소하지 않았다. 즉, 취중에 나온 실언이 아니라 머리에 각인된 내용이 입으로 흘러나왔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그 관리는 ‘그날 폭탄주 8잔과 소주 11잔을 마셨다’고 교육부에 보고했다고 한다. 그만큼 많이 마셨다는 취지다. 헌데 취해서 헛소리를 한 사람이니, 그 만큼 마셨다는 술잔의 숫자도 헛소리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 아닌가. 스스로 순환 논리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모양새가 고깝다 못해 안타깝다.



 두번째로는 그 관리가 언쟁을 하는 과정에서 격해져 ‘다소 과격한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 자존심이 극히 강하고 스스로 말빨이 세다고 자부하는 이들인데, 논쟁하다가 잘못된 발언을 해도 끝내 우기면서 철회하지 않는 경우다. 하지만 경향신문 기자들이 말했듯 이 문제는 기자들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끄집어 낸 이야기다. 경향신문 기자들은 그와 논쟁한 게 아니라, 해야 할 질문을 했고, 거기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신의 견해를 밝힌 이는 해당 관리다.

무엇보다 언쟁이 격해졌다고 해도, 할 말 안할 말이 있다. 제 성질을 못이겨 못할 말을 했다면 의당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


 세번째로 ‘사석에서 한 이야기를 기사화하느냐’는 것이다. 교육부 주요 관리가 대변인 등과 함께 왔다. 그리고 경향신문의 특정 부서장과 출입기자가 마주 앉았다. 그들이 거기서 파티를 한 것도 아니고, 선을 본 것도 아니다. 해당 관리와는 첫 대면이라지만 그 관리는 자신이 담당하는 부처 내 문제를 이해시키고 싶었을 것이고, 경향신문 기자들은 부처의 주요한 관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듣고 싶었을 것이다. 당연히 업무의 연장 선상이었다. 그 자리의 식사 비용도 관리가 내거나 더치페이를 한 게 아니라 교육부의 업무용 카드로 처리됐다고 한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사석에서 한 이야기, 기자 윤리’ 운운하는 말이 나돈다는데, 솔직히 그런 기자들 한심해 보인다. 그렇다면 검사가 친구와 사석에서 술 마시고 돈 받았다는 내용을 알고도 "사석에서 벌어진 일인데"라고 기사를 안 쓸 건가.


기자가 기사 판단을 할 때 기사 자체만 갖고 판단해야 한다. 그게 어느 자리에서 나온 건지는 기사 자체보다는 판단할 때 더 무거운 가치가 아니다. 그 자리에서 나온 내용이 오프나 엠바고였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서석재 총무부 장관의 노태우 전 대통령 4000억원 비자금 발언, 진형구 대검 공안부장의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 등도 기자들과 술자리에서 나온 내용이다. 그게 사인의 프라이버시, 취재원 보호보다 공공의 이익이나 국민의 알권리가 더 무거우면 당연히 기사화해야 하는 것이다. 난 그렇게 배웠고, 후배들에게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관리들이나 기자들, 그런 밥, 술자리에서 사고 당하면 "업무가 아니었다"면서 산재 신청도 안하고 사적으로 알아서 고칠 거냐고.


  이 말을 들려주고 싶다.  "

누구나 어리석은 생각을 갖는 법이지만, 현자는 단지 이를 말하지 않을 따름이다." (빌헬름 부쉬, 1832~1908)



Posted by 최우규



 미국 항공 역사상 풀리지 않은 항공 납치 사건이 딱 한 건 있습니다. 바로 ‘D. B. 쿠퍼’ 사건입니다.


 ‘항공기를 납치해 거액을 받은 뒤 이를 몸에 두르고 공중에서 낙하산으로 탈출한다’. 영화 같은 이 사건은 1971년 추수감사절 하루 전날인 11월 24일 벌어졌습니다. 댄 쿠퍼라는 이름의 남성은 미 오리건 주 포틀랜드 공항에서 20달러를 주고 워싱턴 주 시애틀-터코마 공항으로 가는 노스웨스트 오리엔트 여객기 보잉 727 N467US편의 항공권을 샀습니다. 편도로 30분짜리 여행입니다.

댄 쿠퍼의 몽타주댄 쿠퍼의 몽타주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는 검은색 정장과 흰색 와이셔츠, 검정 넥타이에 끈없는 구두 로퍼 차림이었습니다. 좌석에 앉은 그는 담배를 한개비 피우며 버번과 소다를 주문했습니다. 목격자들은 그가 40대 중반으로 5피트 10인치(1m78㎝)에서 6피트(1m83㎝) 정도라고 밝혔습니다.


 좌석은 3분의 1 가량 차 있었고 비행기는 오후 2시50분 이륙했습니다. 쿠퍼는 이륙 후 자신과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 있던 여승무원 플로렌스 쇄프너에게 쪽지를 건넸습니다. 쇄프너는 외로운 사업가가 건네준 연애 편지인줄 알고 쪽지를 펴보지도 않고 자신의 지갑에 넣었습니다. 그러자 쿠퍼는 그녀쪽으로 몸을 기울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봐, 아가씨. 그 쪽지 펴보는 게 나을 거야. 난 폭탄을 갖고 있어.”

 쪽지는 모두 대문자로 깔끔하게 써져 있었습니다. 자신의 가방에 폭탄이 들어있고, 그녀에게 자신의 옆 자리에 앉으라고 돼 있었습니다. 쿠퍼는 쇄프너가 믿지 않을까 봐 가방을 열어 빨간색 원통 주변으로 여러 가닥의 전선이 감긴 폭탄을 보여줬습니다.


FBI의 댄 쿠퍼 현상 수배 전단FBI의 댄 쿠퍼 현상 수배 전단


 쿠퍼는 미국 화폐로 20만달러와 4개의 낙하산을 준비하고, 항공유 트럭을 시애틀 공항에 대기시킬 것을 요구했습니다.


 쇄프너는 이 쪽지를 조종사 윌리엄 스콧에게 보여줬습니다. 스콧은 이를 즉각 상부에 보고했고, 노스웨스트 오리엔트 항공의 도널드 나이롭 회장은 몸값을 넘겨주고 납치범에게 협조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쇄프터는 “쿠퍼가 그 지역 지형을 잘 아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쿠퍼는 한 지점에 이르렀을 때 “저 밑은 터코마 같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그는 조용했고 예의 바르고 말을 잘 했다고 쇄프너는 회고했습니다. 쿠퍼는 두번째 버번을 마셨고, 값을 치르고는 쇄프너에게 거스름돈을 팁으로 주려고 했답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시애틀 지역 은행에서 20달러짜리 1만장을 구했습니다. 요즘 가치로는 120만 달러(13억7000만원) 상당입니다. 이중 상당수는 번호가 L로 시작되는 것이었습니다. FBI는 이들 돈 사진을 찍어 마이크로 필름으로 만들었습니다.


 쿠퍼는 군용 낙하산을 거부하고 수동으로 줄을 펴는 민간 낙하산을 요구했습니다. 시애틀 경찰은 인근 스카이다이빙 학교에서 민간 낙하산을 구했습니다.


 오후 5시24분 “요구가 모두 관철됐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쿠퍼는 비행기를 5시39분 시애틀-터코마 공항에 착륙토록 했습니다. 쿠퍼는 조종사에게 비행기를 활주로 위에 따로 떨어져 있고 조명이 밝은 곳으로 몰도록 했습니다. 경찰 저격수를 저지하기 위해 비행기 안의 불을 모두 끄도록 했습니다. 노스웨스트 오리엔트 항공 매니저 알 리가 비행기에 평복을 입고 접근했다고 합니다. 항공사 제복을 쿠퍼가 경찰복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현금이 가득 든 배낭과 낙하산이 전달됐습니다. 쿠퍼는 승객 전원과 쇄프너 등 일부 승무원에게 비행기에서 내리도록 했습니다.


 항공기에 연료를 다시 주입하는 동안 쿠퍼는 조종사에게 가능한 속도와 고도를 낮춰 멕시코 시티로 비행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대략 100노트(시속 190킬로미터)에 1만피트(3000미터) 상공입니다. 또 비행기 바퀴를 이착륙 상태로 계속 둘 것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조종사들은 연료 때문에 1600킬로미터 정도 간 뒤 다시 연료 공급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양측은 상의 끝에 네바다주 리노에서 다시 연료를 채우기로 했습니다.


 오후 7시40분 쿠퍼와 조종사 스콧, 또다른 여승무원 티나 먹클로 등 5명만 탄 채 727 항공기는 이륙했습니다. 인근 맥코드 공군 비행장에서 발진한 F106 전투가 두대가 쿠퍼의 눈을 피해 항공기를 따랐다고 합니다.


 이륙 후 쿠퍼는 모든 이들에게 조종석에 들어가 있도록 했습니다. 이 때 승무원 먹클로우는 쿠퍼가 무엇인가를 자신의 허리에 묶는 것을 보았습니다. 밤8시쯤 됐을 때 갑자기 등이 켜졌습니다. 고물쪽 승강 계단이 작동한다는 표시였습니다. 기내 압력이 바뀌면서 고물 쪽 문이 열렸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뒷문이 열린 채 착륙한 납치 비행기뒷문이 열린 채 착륙한 납치 비행기


 밤 10시15분쯤 비행기는 레노 공항에 착륙했습니다. 무장 병력이 비행기 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쿠퍼를 찾지 못했습니다. 낙하산 하나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당시 뒤따르던 전투기 조종사들 모두 비행기로부터 이탈하는 낙하산은커녕 그 무엇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다만 한밤중에 구름이 끼어 있었고 검은 옷을 입은 이가 공중 낙하했을 때 목격될 가능성은 매우 적은 게 사실입니다.


 이후 쿠퍼를 찾는 대대적인 수색과 조사가 진행됐습니다. 용의자중 한명은 경범죄 전력이 있는 오레곤주 출신 D. B. 쿠퍼였습니다. 이 때 언론에 잘못 알려지면서 범인 이름이 D. B. 쿠퍼로 굳어져 버렸답니다.


조종사 스콧이 운전하는 비행기로 똑같은 코스로 날면서 200파운드(91㎏) 짜리 물체를 동체 바깥으로 비슷한 시간에 던지는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당시 그 시간 대에 비행기는 심한 폭풍우 속에서 워싱턴주 남서쪽 루이스 강 위를 날고 있었답니다. 강 인근을 샅샅이 뒤졌지만 흔적도 찾지 못했습니다.


 1971년 FBI는 몸값으로 지급된 지폐 일련 번호를 공개했습니다. 노스웨스트 오리엔트 항공은 수거된 돈의 15%를 사례금으로 주겠다고 밝혔습니다.


 1980년엔 한 소년이 컬럼비아 강 주변에서 20달러 현찰 뭉치 5800달러를 발견했습니다. 지폐의 일련번호는 수사 기관이 쿠퍼에게 건넨 것과 같았습니다. 또 낙하산 잔해와 쿠퍼의 넥타이 등도 발견됐지만, 그의 행방을 알려줄 만한 결정적인 증거는 되지 못했습니다.

강 주변에서 발견된 몸값 현찰중 일부강 주변에서 발견된 몸값 현찰중 일부



 수사 기관은 애초 쿠퍼가 공수부대 출신의 스카이다이버일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련한 스카이다이버도 비가 내리는 어두운 밤에 트렌치코트를 입고 시속 321㎞로 불어오는 강풍을 얼굴에 맞아가며 낙하를 시도해 성공하지는 못할 것으로 봤습니다.


 용의자가 댄 쿠퍼란 이름을 프랑스 만화 ‘댄 쿠퍼’에서 따왔다는 얘기도 나왔답니다. 이 만화는 캐나다 공군의 시험 비행 조종사를 다룬 만화입니다. 1963년 발간된 이 만화에선 검은 정장과 가면을 쓴 주인공이 낙하산을 펴고 비 오는 날 밤 낙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댄 쿠퍼의 범행 당시와 나이 들었을 때를 추정한 몽타주댄 쿠퍼의 범행 당시와 나이 들었을 때를 추정한 몽타주


 그 뒤로도 계속 수사가 진행되지만 진전은 없었습니다. 그러다 12일(현지시간) FBI 시애틀 지부는 “7월8일 자로 FBI는 보다 우선순위에 있는 사건 수사에 초점을 맞추고자 쿠퍼 사건 수사에 배속된 인력을 조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45년째 용의자의 행방과 그의 정체를 규명하지 못한 사건 수사를 중단하고 다른 사건을 해결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뜻입니다.


 댄 쿠퍼는 그날 밤 낙하하다 산화했을까요, 아니면 '제이슨 본'처럼 살아남았을까요. 그래서 영화 <쇼생크 탈출>의 앤디처럼 한적한 바닷가로 가서 삶을 즐겼을까요.

Posted by 최우규



고래부터 천하에 간신은 늘 있었다. 기중 전국시대 조(趙)나라 대부 곽개(郭開)만 한 이도 드물 것이다. 시쳇말로 ‘역대급’이다.

곽개곽개


조나라 명장 염파는 진(秦)나라 침입에 대비해 보를 쌓고 지구전을 치렀다. 진은 세작을 동원해 “염파는 늙어 겁이 많다. 진 군사가 두려워하는 것은 조괄뿐”이라는 소문을 퍼뜨렸다. 한 때 염파에게 ‘소인배’라고 모욕을 당했던 곽개도 맞장구쳤다. 조 효성왕은 지휘관을 조괄로 교체했다. 조는 진과 싸워 크게 졌고, 염파는 위나라로 망명했다.

염파염파


효성왕의 아들 도양왕은 염파에게 사자를 보냈다. 곽개는 그 사자를 금으로 매수했다. 염파는 사자 앞에서 쌀밥 한 말과 고기 열 근을 먹어 보였다. 사자는 왕에게 “염 장군은 늙었지만 식사도 잘합니다. 그러나 신과 자리를 같이하며 세 번 오줌을 지렸습니다”고 아뢨다. 왕은 염파를 부르지 않았다.


도양왕 아들 유목왕 6년 지진이 나고 가뭄이 들어 민심이 흉흉해졌다. ‘진나라 사람은 웃고/ 조나라 사람은 통곡하리라/ 이것이 믿기지 않는다면/ 맨땅에서 털이 솟아나리다’라는 민요가 나돌았다. 그 다음해 땅에서 한 자가 넘는 흰 풀이 솟아났다. 곽개는 왕에게 이 사실을 숨겼다.


유목왕 7년 진나라는 조를 칠 태세였다. 조나라는 명장 이목과 사마상을 시켜 막게 했다. 진나라는 곽개에게 많은 금을 주어 “이목과 사마상이 모반하려고 한다”고 고하게 했다. 유목왕은 이목의 목을 베고 사마상을 해임시켰다. 석 달 뒤 조나라는 멸망했다.

이목이목


곽개는 간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여론을 왜곡했고 좋은 신하를 밀어냈다. 나랏일보다 사익을 앞세웠고, 뇌물을 받아 제 배를 불렸다. 왕을 나쁜 길로 꾀었다.


이를 2200여년 전 일로 치부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다. 도처에서 발견된다. 방위산업 부문만 해도 한 달이 멀다 하고 쌀 몇백 수레, 황금 몇 관짜리 비리가 적발된다. 최근 전·현직 판관들이 짬짜미해 사법권을 주물렀고, 전관들은 시민이 상상도 못할 돈을 거둬들이고 있음이 공개됐다.


재물을 챙겨야만 간신은 아니다. 이익을 좇아 무리를 이루고, 장(長)을 임금인 양 떠받들어 오도하며, 농단하는 것도 간신 짓이다. 아무 일 않고 숨어 자리만 보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청와대라는 곳에서는 대통령과 친하다는 몇몇이 십상시(후한 말 영제 때 환관들)로 불린다. 여론을 차단하고 대통령 ‘심기 경호’만 한다는 것이다. 온갖 인사를 이들이 결정한다는 말이 나돈 지도 오래다.


소위 ‘진박’이라는 이들은 나랏일을 하다 지난 4월 총선에 나왔다. 부국강병을 다짐하기보다는 다른 세력을 몰아내겠다면서 몰려다니다 역풍을 맞아 자기 붕당을 궤멸 직전까지 몰아갔다.


최근엔 대통령 건강을 놓고 때아닌 시비가 일고 있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아프리카, 프랑스 순방 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길고 빡빡한 일정을 링거로 버티면서 고군분투했다”고 밝혔다. 한데 이번 순방은 시작 전부터 말이 많았다. 국내 사정이 그악해서다.


남북을 둘러싼 미·일·중 힘겨루기 등 동북아 정세는 자심해지고, 경제는 내년이 다가오는 게 두려울 만큼 망가지고 있다. 두 정부에 걸친 대기업 뒤 봐주기는 미세먼지, 가습기 살균제 등 환경의 역습을 불렀다. 강남역 여성 살인,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등 시민들이 어이없이 목숨을 잃고 있다. 이쯤 되면 이건 나라가 아니라, 개인 스스로 목숨을 도모해야 하는 ‘정글’에 다름아니다.


대통령은 선친과 인연이 있는 아프리카 국가를 돌아보고, 프랑스에서 42년 전 잠깐 유학한 곳을 찾았다. 추억 여행이라는 지적은 이 때문에 나왔다. 이 판에 ‘링거 고군분투’ 운운하니, “임금께서 백성을 어여삐 여겨 옥체를 돌보지 않고 집무에 임하시니 감읍하라”고 말한 것으로 들린다.


간신은 어떻게 존재하나. 군주의 어리석음이나 교활함이 토양이다. 눈이 어두워 간신임을 몰라볼 때 득세한다. 아니면 왕이 제 욕망을 채우려고 간신을 내세우기도 한다. 결국 부리는 이의 잘못이다.


간신은 야당에도, 야권 유력 주자 옆에도 있고, 기업과 단체에도 있다. 주목받지 않았을 뿐, 말 그대로 편재(遍在)한다.


조나라의 마지막 왕과 곽개는 어찌됐을까. 유목왕은 옛 초나라 땅 방릉으로 압송돼 구금됐다. 그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곽개는 진나라 왕을 따라 함양성으로 갈 때 황금이 너무 많아 가져가지 못했다. 나중에 옛집으로 돌아가서 뒤뜰에 묻어 놓은 황금을 파내 수레 여러 대에 실었다. 함양성으로 돌아가던 중 습격을 받아 목숨도, 황금 수레도 빼앗겼다. 남은 것은 ‘희대의 간신’이라는 오명뿐이다.

Posted by 최우규




"정치, 국제부 심부름하느라 지난 석달간 고생했으. 그래서 선물로 주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받아주길 바래."


마일즈가 데이비스 프레스티지 음반사에서 낸 <Diggin’ With The Miles Davis Sextet >. 당초에는 그의 4연작인 Cookin‘, Relaxin’, Workin‘, Steamin’ 중 하나를 사려고 했으나 없어서 골라 잡았음. Cookin'은 한달 전 사서 가능한 워킨 사려고 했지만 ㅠ.ㅠ.


 디긴은 1951년 녹음한 곡들을 1956년에 음반으로 발매한 것이다. 당초 10인치 LP 2장에 모두 5곡이 실렸으나 훗날 CD로 나올 때에는 2곡이 더해져 총 7곡이 들어갔다. 이 중량반 리이슈 LP는 CD버전으로 나왔다.


1949년과 1950년 <쿨의 탄생> 이후 녹음된 곡이다. 재키 매클린의 데뷔 음반이기도 하다. 알토 색소폰을 그가 불었다.


마일즈가 헤로인 중독으로 헤맬 때 만들어졌지만, 안 그러던 때도 있던가. 테너 색소폰에 소니 롤린스가 참여했고 피아노는 월터 비숍, 베이스는 토미 포터, 드러머는 아트 블래키가 맡았다. 마일즈야 워낙 명반이 많이 이 음반은 유명세는 떨어지지만, 그래도 마일즈 아니던가.




https://youtu.be/bOTERnuJdjI


 두번째 <Queen A Night at the Odeon-Hammersmith 1975>는 퀸의 라이브 음반이다. <A Night at the Opera> 음반을 내고 하던 순회 공연의 마지막 날 연주를 담고 있다. 크리스마스 때 해머스미스 오데온에서 행한 것을 BBC 라디오가 중계했다.


이 음반은 이 밴드의 가장 유명한 부트렉으로 여겨졌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첫 라이브 연주가 이 음반에 녹음돼 있다.


이 음반은 DVD, 블루레이로도 나와 있다. 내가 산 것은 CD만. 헌데 저 앨범 커버는 내가 가진 것 중 최악으로 꼽힐만하다. 하지만 프레드 머큐리 목소리 컨디션은 최고다. Live Killers보다 낫다.



https://youtu.be/Zwog591_shI


 이번 주말에는 음악이 흥할 듯. ㅎㅎㅎ



Posted by 최우규



20대 총선이 달포 앞으로 다가왔다. 야권은 쪼개져 삿대질하며 악머구리처럼 싸운다. 여당에도 난리가 났다. 먹을 것이 많아서다. 달려드는 이가 많아지니 다툼이 커지는 건 정글의 법칙일 터.


이 야단 와중에 코미디가 벌어지고 있다. 국회의원 후보자가 병아리도 아닌데 감별사가 나타났다. ‘박근혜 대통령을 위하는 진실한 사람’인 진박(眞朴)인지, 진실한 체하는 가박(假朴)인지 가려준다는 것이다.


기중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이 갑이다. 경제부총리씩이나 했던 분이 몸을 낮춰 감별사를 자처했다. 주로 강세 지역을 주유하며 진박을 낙점한다.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 _권호욱 선임기자


최 감별사가 진박 후보들을 치켜세우는 말들이 요즘 말로 아재(아저씨) 개그 뺨친다. 지난 3일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의 대구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는 “정 후보가 붓글씨에 일가견이 있다. 우리 또래 중에 붓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 없는데, 진실한 사람”이라고 감별해줬다.


2일 윤두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대구 사무소 개소식에도 거둥하듯 등장해 “윤 후보가 참 감각이 탁월하다. (개소식 날짜를)오늘 박 대통령 (64세)생신날로 뽑았죠. 그 정도는 돼야 국회의원을 한다니까”라고 말했다. 


1일 이헌승 의원의 부산 사무소에서는 “2007년 박근혜 대표 경선 때 내가 종합상황실장을 했고 이헌승 의원이 수행단 부단장을 했는데 뚝심 있는 사람이다. 진실한 사람과 함께해야 진실한 사람 아닌가”라고 했다. 자신이 진박이니, 자신과 함께했던 이 의원도 진박이라는 깔끔한 논리다.


2009년 용산참사 때 강경 진압을 지휘한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은 경주 선량이 되겠단다. 12일 최 감별사는 그를 향해 “출중한 국가관을 갖고 있고, 한국공항공사를 성공적으로 이끈 경영능력을 가진 훌륭한 후보”라고 했다. 공항공사 산하 국내 공항에서 사건, 사고가 잇달았다는 소식은 못 들은 듯하다.


그래서, 그의 감별법은 덜 진실해 보인다. 그것보다 훨씬 나은 기준이 있다. 진박 피라미드 정점에 있는 박근혜 대통령 의지를 얼마나 실현해 내는가를 보면 된다.


북한 핵실험과 로켓 발사로 한반도 긴장이 증폭되자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카드를 들고나왔다. 이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탐지해 격추하는 시스템이다. 중국은 사드가 자국을 겨냥할 것이라고 반발하고, 야권도 “동북아에 신냉전을 불러올 것”이라고 타박한다.



이럴 때 진박들이 떨쳐 일어나야 한다. 대구든, 경기 평택이든 “사드를 내 지역구에 유치하겠다”고 공약하면 된다. 아마 그분께서는 ‘국회에서 피를 토하듯 열변하는 것’보다 이를 더 좋아할 것이다.


지역구민들이 좋아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니 후보자의 ‘진박 의지’가 중요하다.

지역구 사무소나 자택에서 101m쯤 떨어진 곳에 사드 레이더를 설치하겠다는 공약까지 하면 금상첨화다. 사드 레이더 관련 보고서는 ‘100m 이내에서 심각한 화상과 내상을 입힐 수 있다’고 돼 있다. 한민구 국방장관도 “사드 레이더는 최소고각이 고도로 유지되기 때문에 100m 이내만 조심해야 할 구간”이라고 했다. 


그러니 레이더 100m 바깥에서 숙식을 하는 정도의 기개를 보여야 한 조각 붉은 마음을 떨쳐보일 수 있지 않겠는가.


핵 무장을 하자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좋다. 그게 진박으로서 진심이라면 아예 “내 지역구에 핵 재처리 시설, 핵 미사일 시설, 미국 전략핵 시설을 세우겠다”고 유권자들에게 약속하면 된다. 핵 ‘3종 세트’도 좋고, 사드와 핵의 ‘1 + 1 콤보 세트’ 공약도 믿음직할 것이다.


그것 말고도 꽤 많다. 지역구에 개성공단 대체 시설 건설 및 한달 평균 임금 18만600원의 노동력 제공, 북 최고위층 암살 특수부대 시설 건립, 복무 중인 진박 자제들의 이동형 대북 확성기 지원 근무 등도 눈길을 끌 만한 공약이다.


참, 박 대통령이 그토록 원해 마지않던 테러방지법이 국회 본회의에 직권상정됐다. 이참에 국가정보원으로 하여금 진박들의 통신 감청과 계좌 조회 허용을 공개 천명하면 어떨까. ‘몽매한’ 유권자들이 국정원의 권력 오·남용을 우려하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몸소 보이라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의원이 지난 2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 강행처리를 반대하는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하고 있다. _ 이준헌 기자


마침 국정원은 “북한이 반북 활동가, 탈북자, 정부 인사 등에게 독극물 공격을 하거나 중국 유인 후 납치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에 비판적인 정부·정치권 인사나 언론인에게 신변 위해를 가할 수 있다”고 했다. 


테러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자신의 정보쯤이야 국정원에 건네주고 감시해달라고 요청하면 일거양득 아닌가.

Posted by 최우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