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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48건

  1. 2017.02.06 슈퍼 그룹 '제네레이션 엑스' 내한 공연 소식
  2. 2017.01.17 진짜 '나쁜 남자' 마일즈 데이비스와 <E.S.P.>
  3. 2016.10.20 마일스 데이비스 음반 2장
  4. 2016.08.25 대박 음반 <Wes Montgomery 5 Original Albums>
  5. 2016.04.01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2) 마일즈와 여왕
  6. 2016.02.23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 마일즈 데이비스 LP 중량반
  7. 2013.10.29 가을에 쏟아진 음반들(제목은 심심하죠?)
  8. 2013.10.22 폴 매카트니 새 음반 <뉴> 이야기
  9. 2013.09.06 (내 멋대로 정한)올상반기 최고 음반 '팻 매스니/탭'
  10. 2013.08.30 허비 행콕 : 갈짓자 행보(긍정적 의미!)의 거장 재즈 피아니스트
  11. 2013.08.19 귀에 쏙 들어오는 일렉트로닉 팝 밴드'W&JAS' 신보 <뉴 키드 인 타운> (1)
  12. 2013.07.23 리듬의 향연 : 로빈 시크, 제이지, 쿼드론 음반들
  13. 2013.07.18 브릿팝 밴드 '플라시보' e메일 인터뷰
  14. 2013.07.17 '메이지 스타'와 '툴', 오랜 공백 깨고 낼 음반 기대도 만땅
  15. 2013.07.11 중저음의 매력, 재즈 뮤지션 르네 가르시아-퐁스 그리고 울리히 드렉슐러
  16. 2013.06.27 평론가는 0점, 정작 음반은 차트 1위에 (2)
  17. 2013.06.20 핑크 플로이드 어떤 노래 좋아하시나요? (5)
  18. 2013.06.18 '블랙 사바스' 43년만의 1위
  19. 2013.06.13 오아시스 - 노엘 갤러거 = 비디 아이, 그 두번째 음반 <Be> (2)
  20. 2013.06.12 미국에도 다시 부는 LP바람
  21. 2013.06.10 사악한 헤비메탈 음악의 효시 '블랙 사바스' 새 음반 <13>
  22. 2013.06.03 재즈 입문자, 마니아 모두 반할 조지 벤슨의 <인스피레이션 : 어 트리뷰트 투 냇 킹 콜>
  23. 2013.05.27 귀에 착 감기는 하이브리드 뮤직 '솔튼 페이퍼'
  24. 2013.05.21 전설의 밴드 '도어스' 건반 주자 레이 만자렉 별세
  25. 2013.05.14 미국 사람들이 싫어하는, 좋아하는 가수는?
  26. 2013.05.12 진정한 슈퍼 밴드, 이들은 어떻습니까?
  27. 2013.05.07 빌 클린턴도 이끌어내지 못한 교섭 상대는?
  28. 2013.05.03 슬레이어 기타리스트 제프 한네만 사망
  29. 2013.04.30 1960년대 감성의 한국형 21세기 블루스 록 밴드 '로다운 30'
  30. 2013.04.24 Quinn Sullivan, 블루스 기타 천재의 출현인가. (2)


메탈 키드(이젠 나이가 나이여서 ‘키드’라는 말은 민망하지만)들이라면 눈이 번쩍 띄일 공연이 열립니다.

기타리스트 슈퍼그룹 ‘제너레이션 액스(Generation Axe)’  내한 공연이 4월9일 일요일 오후 6시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에서 펼쳐진답니다. 멤버 하나 하나가 화려한 경력을 자랑합니다.

이 그룹은 아이바네즈를 무기로 놀라운 테크닉을 선 보여온 스티브 바이(Steve Vai)가 결성했다고 합니다. 잘 나가는 아티스트가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면 대체로 자기보다 처지는 선수를 영입해야 하거늘, 이 그룹은 진용을 보시면 놀랄만합니다. 


1980년대 메탈 키드와 기타 키드의 심금을 뒤흔든 바로크 메탈 선구자이자 속주 기타리스트 잉베이 맘스틴(Yngwie Malmsteen)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 오지 오스본 밴드 출신으로 덩치 못지 않게 마초적 연주 스타일을 자랑하는 잭 와일드(Zakk Wylde), 밴드 익스트림에서 펑키함과 강렬한 드라이브감을 선보인 누노 베텐코트(Nuno Bettencourt)가 포함돼 있습니다. 나이지리아 출신으로 8현 기타를 갖고 퓨전, 데스메탈, 네오 프로그레시브 록 등 다양한 요소를 합친 속주를 선보이는 기타리스트 토신 아바시(Tosin Abasi)도 함께 한답니다.

베이스는 프랭크 자파 밴드 출신 피트 그리핀(Pete Griffin), 키보드는 잉베이 맘스틴 밴드 출신 닉 마리노비치(Nick Marinovich), 드럼에는 보벳(JP Bouvet)이 맡습니다. 

보도자료는 이렇게 돼 있습니다.

“이들은 지난해 4월 결성 이후 한 달여 만에 총 26회의 미국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색적이고 독특한 공연 구성에 찬사가 이어졌으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주와 잼(Jam)을 두 눈으로 감상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록 공연이었다.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사운드에 관객의 에너지가 더해졌고 전설적인 다섯 기타리스트가 나란히 서서 연주하는 진풍경은 덤이었다. 


이번 공연을 기획한 에이아이엠은 '기타리스트 개개인의 스케줄을 맞추기 어려워 제너레이션 액스는 오랜 시간 투어를 지속하지 않는다'며 '이번 투어가 드물게 진행하는 것이라고 멤버들이 언급한 만큼 록 마니아라면 놓칠 수 없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제너레이션 액스 공연예매는 2월 14일(화) 낮 12시부터 인터파크에서 가능하다. 문의 02)3141-9226”


이전 공연 세트 리스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꽤 흥미있는 곡들이 많습니다. 리틀윙, 프랑켄슈타인, 하이웨이 스타는 딱 '70, 80' 록 키드를 위한 곡들이죠. ㅎㅎ

Performer(s)

Song

Abasi, Bettencourt, Malmsteen, Vai, Wylde

Foreplay (Boston)[1]

Abasi

Tempting Time
Air Chrysalis

The Woven Web

Abasi, Bettencourt

Physical Education

Bettencourt

Get the Funk Out
Midnight Express

Extreme
 solos medley

Bettencourt, Wylde

Sideways (Citizen Cope)

Wylde

N.I.B. (Black Sabbath)
Whipping Post
 (The Allman Brothers Band)
Little Wing
 (Jimi Hendrix)

Malmsteen

Spellbound
Into Valhalla

Overture
Far Beyond the Sun

Trilogy

Echo Etude
Acoustic

Malmsteen, Vai

Black Star

Vai

Now We Run
Tender Surrender

Gravity Storm

Building the Church

Vai, Abasi, Bettencourt, Wylde

Frankenstein (Edgar Winter)

Abasi, Bettencourt, Malmsteen, Vai, Wylde

Highway Star (Deep Purple)


p.s. 근데 맘스틴이 저렇게 살을 뺐나요?


Posted by 최우규


밥, 쿨, 퓨전, 모달, 팝…. 마일즈 데이비스만큼 다양한 재즈 장르를 섭렵한 뮤지션도 드물다. 마일즈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본인이 해당 분야를 창시하거나 선도했다. 괴물 같은 아티스트였다.

한데, 천재는 모두 괴팍한 것일까. 마일즈는 괴팍했다. 여리고 섬세하면서도 극도의 집중력과 광기를 보이기도 했다. 부끄러움을 잘 타면서 그를 숨기기 위해 오만하게 위악을 떨었다. 특히 여성 편력이 심했고, 제 성에 못이겨 여성에게도 폭력을 휘둘렀다. ‘나쁜 남자’라는 말이 유행이지만, 마일즈는 말 그대로 나쁜 남자였다.

마일스의 부인 ‘격’인 여자는 다섯 명이었다. 사실혼 관계로 아들까지 낳은 아이린 커손, 첫 번째 부인 발레리나 프랜시스 테일러, 두 번째 부인인 가수 베티 마브리, 세 번째 부인 배우 시슬리 타이슨, 말년 동거녀였던 화가 조 겔바드 등이다. 하지만 정식 부인이 있을 때에도 그에 집에는 여러 여자가 들락거렸다.

그는 부인 사진을 음반 커버로 썼다. 이 음반 <E.S.P>도 마찬가지다. 이 음반에서 마일스는 첫번째 부인 프랜시스 테일러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다. 그는 프랜시스가 춤 추는 모습에 반해 청혼해 결혼했다. 그녀를 무척 사랑했지만 질투도 심하게 했다. 한 파티에서 프랜시스가 다른 남자가 잘생겼다고 칭찬하자 불쾌해진 마일즈는 호텔로 돌아왔다. 그리고 프랜시스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속옷만 입은 그녀를 방 밖으로 쫓아냈다고 한다.

마일즈는 그녀가 무용하는 것을 막았고 의처증은 심해졌다. 약에 취했을 때 불륜남을 찾는다고 집 안을 뒤지기도 했다. 주먹다짐도 부지기수였고. 이 사진을 찍은 뒤 불과 일주일 뒤 프랜시스는 “살아남기 위해" 마일즈로부터 도망쳤다.

개인적으로 극히 불행했지만, 마일즈의 음악적 재능은 1970년대 중반까지 거의 모든 음반에서 반짝거렸다. 음반 제목 <E.S.P>은 ‘Extrasensory Perception’의 약자로 초감각적 지각, 즉 초능력을 뜻한다.

마일즈는 론 카터(베이스), 허비 행콕(피아노), 토니 윌리엄스(드럼), 웨인 쇼터(색소폰)를 영입해 새로운 퀸텟을 만들었다. 이들은 한 명 한 명이 프런트 맨으로 아쉬울 것 없을 정도로 재즈계에 획을 그었다. 

이들은 1965년 1월 <E.S.P.>를 녹음했고, 이후 4년간 5장을 더 냈다. 기존 쿨에서 방향을 바꿔 모달 재즈로 향하는 마일즈는 음을 해체하고 박자를 중시하는 등 기존 관행을 깨나갔다. 마일즈의 트럼펫도 특유의 애절한 톤을 유지하지만 꼭 타악 연주하듯 ‘툿, 툿’하고 뱉는 부분을 많이 쓰고 있다. 이 음반에서는 쿨 보다는 밥의 영향이 더 남아 있고, 프리 재즈까지는 넘어가지는 않지만 즉흥적 요소가 강해져 있다.


<E.S.P.>

"수록곡"(작곡) 러닝타임

“E.S.P.” (Wayne Shorter) 5:27

“Eighty-One” (Ron Carter, Miles Davis) 6:11

“Little One” (Herbie Hancock) 7:21

“R.J.” (Ron Carter) 3:56

“Agitation” (Miles Davis) 7:46

“Iris” (Wayne Shorter) 8:29

“Mood” (Ron Carter, Miles Davis) 8:50


Posted by 최우규




생일 선물로 LP를 받았다. 지난해에도 그랬고, 올해에도. 이젠 옷이나 먹는 걸 받는 것도 우습고, 책은 마누라가 충분히 구입(ㅠ.ㅠ)하고 있다.


LP를 사려면 회현동 지하상가에 가야 하나 선뜻 발걸음이 나서지 않는다. 게으름이 그 이유의 절반이고, 욕심이 나서 '사재기 바람'이 불까 걱정스러워서다. 총각 시절 몇달간 매달 70만~80만원 어치 CD와 LP를 산 적이 있다. 지금이야 못참을 리야 없지만, 물욕에 흔들리는 스스로를 보고 싶지 않다.


이번에 선물로 받은 LP는 2장이다. 마일스 데이비스 것들이다.


하드밥과 쿨을 넘나들던 마일스 데이비스는 1955년 소위 황금 5인조를 구성하게 된다. 자신이 트럼펫을, John Coltrane이 테너 색소폰(섹소폰 혹은 섹스폰이라는 오타를 내지 않으려고 늘 신경쓰게 된다. ㅠ.ㅠ)을, Red Garland가 피아노, Paul Chambers는 베이스 기타, Phily Joe Jones가 드럼을 맡았다. 멤버 모두 재즈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이다.


마일스는 당시 소속 레이블을 Prestige에서 Columbia로 바꾸려고 한다. 이전에 남아 있는 계약을 털기 위해 이틀에 걸쳐 연주를 녹음했다. 당시에는 대체로 한 스튜디오에서 합주하고 믹싱하는 식으로 녹음을 했다. 이 때 완성된 것을 나눠 실은 게 ‘~in’ 시리즈다. <Cookin’>, <Relaxin’>, <Steamin’>, <Workin’>이다. 이들 4음반은 그저 사서 즐기면 된다. 






<Workin With The Miles Davis Quintet>은 두 엄지손가락 모두를 치켜들어도 될만한 음반이다.


첫 곡 ‘It Never Entered My Mind’부터 세련되고 극적인 연주로 귀를 사로잡는다. 아름다운 피아노로 시작하는 이 발라드 곡에서 마일스는 울음을 참는듯한 뮤트 트럼펫을 들려준다. 재즈는 시끄럽고 부산스럽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면 이 곡을 꼭 들어보시길.

두번째 곡 ‘Four’는 스윙감이 가득한 밥이다. 춤추기에도 꼭 좋다. ‘Trane’S Blues’는 존 콜트레인 곡이다. ‘Ahmad’S Blues’에선 갈란드의 피아노 연주가 주도한다.


수록곡은

 01. It Never Entered My Mind

 02. Four

 03. In Your Own Sweet Way

 04. The Theme

 05. Trane’S Blues

 06. Ahmad’S Blues

 07. Half Nelson

 08. The Theme(Take 2)


<Steamin With The Miles Davis Quintet>은 하드 밥 성격이 좀더 짙다. 5인조로 뽑을 수 있는 최대한도의 소리에다, 모범적 리듬 섹션을 제시한다.


첫곡 ‘Surrey With The Fringe On Top’부터 미디엄 템포에 뮤트한 마일스 트럼펫 소리가 귀를 확 끈다. ‘Salt Peanuts’에선 존과 마일스가 익살맞은 블로윙을, 레드 갈란드는 스트라이드 피아노의 전형을 들려준다.

내게 최고의 곡은 ‘When I Fall in Love’. 늦은 밤 지친 몸으로 (지금은 끊었지만)담배 한 개비와 위스키(소주여도 좋고) 한 잔에, “칙칙”거리는 LP로 이 곡을 들어야 한다.


수록곡은

01. Surrey With The Fringe On Top

02. Salt Peanuts

03. Something I Dreamed Last Night

04. Diane

05. Well, You Needn‘t

06. When I Fall In Love


Posted by 최우규




여름 휴가를 다녀온 뒤 집에서 빈둥거리다 가족이 광화문 교보문고를 찾았다. 각자 흩어져 이곳저곳을 다니다 대박 앨범을 발견했다. 바로 하드 밥 기타리스트 웨스 몽고메리의 5장 짜리 박스 세트 <Wes Montgomery 5 Original Albums>.




몽고메리가 ‘리버사이드’와 '프레스티지' 레이블을 통해 낸 명반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기타-드럼-오르간의 트리오나, 기타-드럼-베이스-피아노와 브라스가 혼합된 콤보 형태다. 한마디로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었다.


염가반으로 내놓아 5장에 2만3500원. 한장에 5000원도 안되는 가격이지만, 소장보다는 감상을 위해서라면 무조건 사야 한다.


특히 ‘웨스 몽고메리 트리오’의 합주는 최고다. 평론가들은 “이 음반의 최대 결함은 웨스 몽고메리의 위대함을 다른 두 연주자가 잘 받쳐주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 둘의 연주도 몽고메리에 비해 평범하다는 것이지,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미사일 블루스’는 듣자마자 “훅 간” 곡이다.


한장 한장 음반 커버는 종이고, 5장을 얇은 박스에 넣었다. 볼품은 그닥 없지만 내용만 생각한다면 가성비 최고다.



<Boss Guitar>

“Besame Mucho”

“Dearly Beloved”

“Days of Wine and Roses”

“The Trick Bag”

“Canadian Sunset”

“Fried Pies”

“The Breeze and I”

“For Heaven’s Sake”


<So Much Guitar>

“Twisted Blues”

“Cotton Tail”

“I Wish I Knew”

“I’m Just a Lucky So-and-So”

“Repetition”

“Somethin’ Like Bags”

“While We’re Young”

“One for My Baby (and One More for the Road)”


<Movin’ Along>

“Movin’ Along”

“Tune-Up”

“I Don’t Stand a Ghost of a Chance with You”

“Sandu”

“Body and Soul”

“So Do It!”

“Says You”


<The Incredible Jazz Guitar of Wes Montgomery>

“Airegin”

“D-Natural Blues”

“Polka Dots and Moonbeams”

“Four on Six”

“West Coast Blues”

“In Your Own Sweet Way”

“Mr. Walker”

“Gone With the Wind”


<The Wes Montgomery Trio>

“‘Round Midnight”

“Yesterdays”

“The End of a Love Affair”

“Whisper Not”

“Ecaroh”

“Satin Doll” [Alternate take]

“Satin Doll”

“Missile Blues” [Alternate take]

“Missile Blues”


 <트리오> 음반에서 원래 수록곡인 “Too Late Now”와 “Jingles”가 빠진 점은 아쉽다.



Posted by 최우규




"정치, 국제부 심부름하느라 지난 석달간 고생했으. 그래서 선물로 주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받아주길 바래."


마일즈가 데이비스 프레스티지 음반사에서 낸 <Diggin’ With The Miles Davis Sextet >. 당초에는 그의 4연작인 Cookin‘, Relaxin’, Workin‘, Steamin’ 중 하나를 사려고 했으나 없어서 골라 잡았음. Cookin'은 한달 전 사서 가능한 워킨 사려고 했지만 ㅠ.ㅠ.


 디긴은 1951년 녹음한 곡들을 1956년에 음반으로 발매한 것이다. 당초 10인치 LP 2장에 모두 5곡이 실렸으나 훗날 CD로 나올 때에는 2곡이 더해져 총 7곡이 들어갔다. 이 중량반 리이슈 LP는 CD버전으로 나왔다.


1949년과 1950년 <쿨의 탄생> 이후 녹음된 곡이다. 재키 매클린의 데뷔 음반이기도 하다. 알토 색소폰을 그가 불었다.


마일즈가 헤로인 중독으로 헤맬 때 만들어졌지만, 안 그러던 때도 있던가. 테너 색소폰에 소니 롤린스가 참여했고 피아노는 월터 비숍, 베이스는 토미 포터, 드러머는 아트 블래키가 맡았다. 마일즈야 워낙 명반이 많이 이 음반은 유명세는 떨어지지만, 그래도 마일즈 아니던가.




https://youtu.be/bOTERnuJdjI


 두번째 <Queen A Night at the Odeon-Hammersmith 1975>는 퀸의 라이브 음반이다. <A Night at the Opera> 음반을 내고 하던 순회 공연의 마지막 날 연주를 담고 있다. 크리스마스 때 해머스미스 오데온에서 행한 것을 BBC 라디오가 중계했다.


이 음반은 이 밴드의 가장 유명한 부트렉으로 여겨졌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첫 라이브 연주가 이 음반에 녹음돼 있다.


이 음반은 DVD, 블루레이로도 나와 있다. 내가 산 것은 CD만. 헌데 저 앨범 커버는 내가 가진 것 중 최악으로 꼽힐만하다. 하지만 프레드 머큐리 목소리 컨디션은 최고다. Live Killers보다 낫다.



https://youtu.be/Zwog591_shI


 이번 주말에는 음악이 흥할 듯. ㅎㅎㅎ



Posted by 최우규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


요즘 읽고 있는 마일즈 데이비스 평전 덕분에 in' 시리즈에 꽂혔다. workin' steamin' cookin' 등.


전날 과음을 달래려고 생태탕을 먹은 뒤 교보문고에 들렀다. 눈 앞에 Cookin', Workin'이 '뙇' 있는 것이다. 둘다 사려니 자금이 압박이. 그래서 Cookin'만 살 수 밖에.




진용이 화려하다, 마일즈 데이비스(트럼펫), 존 콜트레인(테너 색소폰), 레드 갈란드(피아노), 폴 챔버스(베이스), 필리 조 존스(드럼). 뭐 이름만으로도 믿음이 가는 음반이다.


마일즈 데이비스가 하드 밥의 총아로 떠올라, 재즈 계에서는 이미 거장(젊은 나이에) 소리를 들은 뒤 모달 재즈에 심취했을 때다. 1956년 녹음됐다.


최근 외국 학교에서 재즈 배웠다면서 똑 같은, 비슷비슷한 곡을 쓰고 음반을 내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물론 다들 들어봤겠지만). 재즈가 블루노트가 포함된 음 몇개와 싱코페이션만으로 엮으면 다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이 음반은 똑같은 음과 침묵을 갖고도 이렇게 명확한 멜로디와 특유의 리듬 라인을 창조해낼 수 있다는 걸 웅변한다. 솔직히 국내 재즈 뮤지션들 낸 음반 들으면 그게 그거 같아서 분간이 안된다. 특히 자작곡들. 온통 인트로스펙션 재즈만 내놓는 식이다. 내 밑천이 작아서인지 몰라도.  


이름을 Cookin'으로 지은 이유가 있다. 마일즈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결국, 우리가 하는 게 그런 거지 뭐, 와서는 요리하는 거."


https://youtu.be/ZCmUzIKfcGM

Posted by 최우규

 신문기자를 하다보면 아침에 주요한 일과중 하나가 신문을 읽는 것입니다. 어제 벌어진 상황을 남들은 어떻게 썼나, 혹시 우리 신문이 놓친 주요 뉴스는 없나, 다른 신문은 어떤 뉴스를 중요하게 다뤘나 등등을 살펴보기 위해서입니다.


 헌데 요즘 신문을 뒤적이다 부쩍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아웃도어 의류 광고입니다. 독자가 많다고 알려진 신문들의 중간쯤을 펼쳐보면 거의 4~6개 페이지에 걸쳐 유명 상표 의류 제품들이 줄을 잇습니다. 처음에는 그려려니 했는데, 그 가격을 보니 입이 딱 벌어질 지경입니다. 20만원대 옷은 싼 편이고, 피톤치드를 낸다는 옷은 100만원이 넘습니다.


TV 뉴스에서도 등산객이나 캠핑객을 비추는데 어찌 그리 멋지게 입는지 눈이 어지러울 지경입니다.


 이들 광고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가을이 왔으니 등산, 캠핑, 트레킹을 가라. 이왕 가려면 멋지게 차려입고 가라. 폼나게!”


 좋습니다. 요산요수(樂山樂水) 즐거움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하지만 가을은 책 읽기에 좋은 계절이라고도 하죠. 봄처럼 싱숭생숭하지도 않고, 여름처럼 뜨겁지도 않고, 겨울처럼 춥지 않으니 말입니다.


  저는 하나 더 추가해보겠습니다. 가을은 음악 듣기 좋은 계절입니다. 결실의 계절이니 마음도 푸근하고, 날씨도 좋으니 1, 2시간 음반 듣기도 어렵지 않습니다. 오디오 좋아하시는 분들은 가을이 오면 여름에는 더워서 전원을 빼놔야 했던 진공관 앰프에 불을 지필 수 있다고 좋아들 합니다.


 폭염이 지나면서 해외 아티스트 음반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주요 음반 발매는 대체로 가을에 집중됩니다. 음악을 즐기기에 가을만큼 좋은 때가 없어서죠. 올해에도 노장의 ‘명반급’부터 중진들의 노련한 연주들, 신예들의 패기를 담은 음반들이 9, 10월달에 나왔습니다. 그중 제 멋대로 선정한 괜찮은 음반들을 소개해봅니다.


  71세 폴 매카트니, 66세 엘튼 존, 62세 스팅이 새 음반을 냈습니다. 음악 생활 40, 50년 되신 분들이지만 사골 우려먹듯 옛곡을 재녹음한 게 아니라 새 노래로 꽉꽉 채웠습니다.


  우리라면 KBS <가요무대>에 출연하실 분들이 이렇게 현역으로 나서주니 감사할 뿐입니다.


 위대한 밴드 ‘비틀스’의 보컬이자 베이스 연주자 출신이라고 소개한다면 매우 섭섭해할, 위대한 싱어송라이터 폴 매카트니가 6년 만에 새 음반 <뉴(New)>를 냈습니다.


  과거와 미래가 혼재하고 있습니다. 비틀스 초기의 앳된 스쿨 하우스 록부터 중·후반기 콘셉트 음반을 지향했던 소리까지 포진돼 있습니다.


 가장 비틀스다운 노래 ‘온 마이 웨이 투 워크’와 음반 동명 타이틀 ‘뉴’부터 글램 록 스타일 ‘퀴니 아이’, 테이프를 거꾸로 돌려 특수효과를 내 들려주는 ‘호사나’ 등이 담겨 있습니다. 전형적인 브리티시 록 ‘아이 캔 벳’, 피아노 반주가 주도하는 ‘로드’ 등 모두 14곡이 담겨 있죠.


 아름답고 힘차던 폴 매카트니의 테너 음성은 굳어 이따금 가성을 써야 합니다. 바이브레이션도 좀 둔해졌습니다.

 생물학적 연한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낸 멜로디는 매력적이고, 노래는 심장을 직격합니다. 비틀스 팬은 물론 팝과 록 팬들이라면 “역시”

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을 듯합니다.


 

 스팅의 <더 라스트 쉽>은 10년만의 음반입니다. 음반 표지 사진을 보시면, “도대체 나이를 먹는 건가”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이런 맵시, 어디서 볼 수 있을까요.


 첫곡 ‘더 라스트 쉽’부터 들어보면 그의 옛 노래와 판이하게 다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발성은 성악하듯 과장돼 있고, 영국식 발음을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발라드 오브 더 그레이트 이스턴’에서는 영국 전통민요 특유 바이올린 연주와 백 파이프, ‘왓 해브 위 갓’는 아이리시 댄스 음악에 뮤지컬 발성을 담았습니다. 국내에서도 인기를 모았던 아일랜드 댄스팀 '리버 댄스'의 춤곡 같습니다. 


 아니나 다를까요. 자신의 고향인 영국 북동부 조선소를 배경을 한 뮤지컬 <더 라스트 쉽>을 제작하던 중에 받은 영감을 담은 것입니다.


 물론 ‘앤드 옛’에는 보사노바 스타일로 스팅 특유의 음색을 담았고, ‘프랙티컬 어레인지먼트’는 그가 1980년대 시도했던 재즈 넘버입니다.(이 음반에서  전 이 노래가 가장 좋더군요.)


  짝사랑의 슬픔을 담은 ‘아이 러브 허 밧 쉬 러브스 섬원 엘스’는 가장 ‘가을다운’ 노래입니다. 여성 포크 보컬리스트인 베키 언생크와 듀엣으로 노래한 ‘소 투 스픽’에서 조선소의 몰락과 몰락하는 인생의 슬픔을 노래했습니다.


 엘튼 존 경은 30번째 스튜디오 음반 <더 다이빙 보드>를 들고 나왔습니다. 스스로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인 그는 이번 음반에서 어쿠스틱 위주로 소박하게 악기를 편성했습니다.


 첫 싱글로 소개된 ‘홈 어게인’에서는 그의 유려한 피아노 연주와 대중적 멜로디가 귀에 꽂힙니다. 


 ‘더 발라드 오브 블라인드 톰’, ‘캔트 스태이 얼론 투나이트’ 등 블루그래스, 가스펠 요소가 담긴 팝들이 담겨 있습니다.


  연주도 관현악의 화려함보다는 그의 피아노를 중심으로 하는 소규모 캄보 밴드로, 그의 노래에 집중케 합니다.

  이제 두 아이 아버지인 그의 삶에 대한 관조가 잘 그려져 있습니다. 


 해외 평단은 폴 매카트나 스팅보다 이 엘튼 존 음반에 더 점수를 줬습니다. 별로 치면 ‘반’ 정도 더 높은 정도입니다.



 좀더 강렬함을 원하는 팬들도 반길 음반이 있습니다. 스래쉬 메탈밴드 메탈리카는 11월 아이맥스 3D 라이브 영화 <스루 더 네버> 개봉을 앞두고 사운드 트랙을 먼저 선보였습니다. 30주년을 맞아 멕시코 시티에서 개최한 콘서트 실황입니다.



 2장짜리 CD에 ‘크리핑 데스’, ‘원’, 마스터 오브 퍼펫츠’ 등 인기곡 16곡을 채워놓았습니다. 일반적 라이브 음반보다는 4명의 연주를 좀더 크게, 잔향음이나 관객들 함성은 좀 작게 녹음해놓았습니다. 콘서트 실황으로서 분위기는 그만큼 줄지만 멤버들 연주는 더 생생합니다.


  저의 한 친구는 “메탈리카 실황은 좀 별루이지 않느냐”고 합니다. 맞습니다. 워낙 스튜디오 음반이 좋아서 그런 것이지만, 그래도 ‘메탈리카’ 아닙니까.


 얼터너티브 록 밴드 ‘너바나’의 마지막 정규 음반 <인 유테로> 20주년 기념 음반이 새로 나왔습니다. 음반은 2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3040이 1993년 들었던 ‘하트-쉐입트 박스’  ‘레이프 미’ 등 오리지널 버전 12곡이 이 디지털로 새로 마스터링돼 수록됐습니다. 보너스 트랙도 8곡 들어 있습니다.


 두번째 CD에는 올해 새롭게 믹스한 12곡과 연주곡 ‘베리 에이프’, ‘잼’ 등이 들어 있고요.


  데모 버전과 B사이드 등 이번에 새로 공개되는 트랙들도 있어, 너바나 팬은 물론 강렬함을 즐기는 록 마니아들을 꾑니다.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 ‘드림 시어터’도 2년만에 정규 12집 <드림 시어터>를 발표했습니다. 음반 이름이 밴드 이름과 같습니다. 드러머 마이크 포트노이가 탈퇴한 뒤 후임으로 들어온 마이크 맨지니와 함께 녹음한 첫 음반입니다.


  포트노이 탈퇴 이후 리듬 파트가 약해지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나왔지만, 이번 음반을 통해 싹 씻어낸 것 같습니다. 전작들을 뛰어 넘는 엄청난 음반이라는 평가는 아니지만, 적어도 평작 이상은 된다는 게 귀가 까다로운 팬들의 평가입니다.


 조던 루데스의 키보드 연주로 시작하는 심포닉 록 성향의 ‘폴스 어웨이크닝 스위트’를 필두로 복잡한 변박과 극적 가락 변화 등 칼날 같은 연주력을 선보입니다.


 특히 마지막 곡 ‘일루미네이션 시어리’는 5부작으로, 연주 시간만 19분입니다. 영국 밴드 ‘예스’가 1972년 명반 <클로스 투 디 에지>에서 들려준 구성과 연주를 연상케 합니다.(제겐 그렇다는 겁니다.) 연주가 끝난 뒤 45초 뒤에 피아노 연주로 시작하는 히든 트랙도 있다.


 이들 말고 ‘MGMT’ ‘킹스 오브 리언’ ‘트래비스’ ‘버디’ 등 음반은 다음에 또 소개하겠습니다.

Posted by 최우규

 “The long and winding road 

that leads to your door 

will never disappear 

I've seen that road before 

It always leads me here 

Leads me to your door

…”


 비틀스 노래 ‘더 롱 앤드 와인딩 로드’ 가사입니다. 도입부에서 폴 매카트니가 무반주로 따스하고 감미로운 테너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하면, 정말 뭉클합니다. 


 라디오로 팝송을 듣던 시절 황인용, 김기덕, 김광한 등 당대 DJ들은 연말에 꼭 시청자가 뽑은 100곡이나, 50곡 등을 했습니다. 그러면 1, 2, 3위는 비틀스 ‘예스터데이’, 레드 제플린 ‘스테어 웨이 투 헤븐’, 사이먼 앤드 가펑클(한 DJ는 이를 시몬 앤 가풍켈이라고 읽었다고 비웃음을 사기도 했죠)의 ‘브리지 오버 트라블드 워터’ 등이 각축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까까머리 고등학생이었던 제게 비틀스 음악은 밍밍한 믹스 커피에 불과했습니다. ‘도대체 이 늙다리(죄송ㅠ.ㅠ)들 음악이 왜 좋다는 거지’라는 의구심. 공연히 DJ이들이 저보다 20여년 오래 사신 점을 들어서 ‘낡은 감각 때문’이라고 치부했었습니다.

 

렛 잇 비

  시간은 흘렀고 이런 저런 음악 맛을 보다가, ‘왜 여전히 비틀스가 인기일까’라고 궁금해졌습니다. 그게 1989년 아니면 1990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구입한 판이 1970년 나온 <렛 잇 비>입니다.

 

 ‘투 오브 어스’ ,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아이 미 마인’, ‘렛 잇 비’, ‘더 롱 앤드 와인딩 로드’, ‘겟 백’ 등이 들어 있습니다. 오우! 이런 충격이…. 


 전 결국 황인용, 김기덕, 김광한 등 DJ들에게 속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허구 헌날 틀어준 ‘예스터데이’ 때문에 말랑말랑한 그렇고 그런 노래만 하던 밴드라는 인식은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삽입해놓은 구체 음악, ‘더 롱 앤드 와인딩 로드’의 빼어난 오케스트레이션과 합창 등을 들으며 몽땅 깨져 버렸습니다.


 뭐, 그 뒷 상황은 늘 비슷한 패턴입니다. <옐로 서브마린> <서전 페퍼스 론리 하트 클럽 밴드> <리볼버> <(화이트 음반)> <러버 소울> <플리스 플리스 미> 등 음반 구매로 이어집니다. 1960년대 초반의 비트 제너레이션 시절 음악도 좋고, 후반대 사이키델릭은 더 좋아집니다.

애비 로드


  네명의 멤버가 길을 건너는 모습을 커버로 쓰는 

<애비 로드> 수록곡 ‘아 원트 유(쉬즈 소 헤비)’를 들어보면 그 어떤 밴드보다 강한 약기운이 느껴집니다(ㅎㅎ).



 폴 매카트니의 아름다운 목소리도 좋고, 존 레넌의 코맹맹이 소리도 좋았습니다. 노래는 폴 매카트니, 곡은 존 레넌 것을 약간 더 선호했던 것 같습니다.


 




   그 폴 매카트니가 올해 또 음반을 냈습니다. 그는 71세입니다.

 2007년 <메모리 올모스트 풀> 이후 6년 만인데, 14곡이 꼭 꼭 채워져 있습니다.



 이번 음반에서 프로듀서들도 많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요절한 여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와 작업으로 알려진 마크 론슨, 아델, 존 레전드, 브루노 마스 등과 작업한 폴 앱워스가 음반을 손보았습니다. 비틀스의 프로듀서였던 조지 마틴 아들 자일스 마틴도 프로듀서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킹스 오브 리온, 루퍼스 웨인라이트, 카이저 칩스 등의 프로듀서였던 에단 존스까지 모두 4명의 프로듀서와 함께 했답니다.


  매우 비틀스스러운 노래(‘온 마이 웨이 투 워크’, ‘뉴’)부터 일렉트로 비트 감을 준 ‘오프리시에이트’ 등을 담았습니다.



 폴 매카트니는 이 음반 발매를 계기로 최근 영국 런던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습니다. 비틀스 활동 이후 늘 또다른 멤버인 고 존 레넌과 갈등설에 시달려 왔죠. 그는 이번 간담회에서 “저와 존 사이 오해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부인했습니다.


 간담회 일문일답을 올려봅니다.


 -새 노래 ‘뉴’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 우리가 선택한 것을 할 수 있다’고 노래하는데요, 실제 지금의 폴 매카트니는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인가요.

 “네, 아마 놀라실지도 모르는데요, 보통 제가 그렇게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시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들처럼 새 영화를 보러 극장에도 갑니다. 유명한 사람들 중 집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을 알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전 극장 다니는 것을 좋아해요. 쇼핑도 가고 헬스장에 운동하러도 갑니다. 사람들이 절 배려해 줘요. 마찬가지로 음악적으로도 많은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운이 좋은 편이죠.”


 -이번 음반에서는 여러 프로듀서들과 작업했는데요, 단순히 프로듀서와 작업이라기 보다는 콜라보레이션 개념으로 생각한 것인가요.

 “네, 맞습니다. 각각의 프로듀서들이 어떻게 다른지 보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각각의 작업을 보고 각각의 이유로 놀랐었습니다. 가장 먼저 함께 작업했던 폴 엡워쓰는 여러 시도를 해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항상 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스튜디오에 들어와서는 ‘오, 이런 비트를 시도해보자’며 쿵쿵딱딱 하곤 했죠. 그리고 전 그것에 맞춰 피아노를 쳤어요. 그게 바로 이번 음반의 오프닝 트랙 ‘세이브 어스’입니다. 이게 폴의 방식이었어요. 마크 론슨은 다르죠. 그는 제 노래를 그대로 받아들인 상태에서 더 좋은 사운드와 연주를 잡아내려고 노력하죠. 즉흥적인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이단 존스는 굉장히 자연스럽게 작업합니다. ‘호산나’ 작업의 경우, 제가 그 앞에서 그냥 편하게 노래를 한번 불렀는데, 그가 좋다며 그대로 녹음하자고 해서 바로 녹음했어요. 도리어 제가 ‘정말 그냥 이렇게 그냥 녹음하는거냐’라고 물어봤었죠. 녹음이 끝난 후에 제가 ‘보컬, 연주가 괜찮았는지 모르겠다’고 물어보자 완벽했다며 녹음을 마쳤습니다. 거의 라이브 녹음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이런 면이 이단의 흥미로운 점이었습니다. 자일스 마틴은 굉장히 음악적이죠. 그의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뉴 조지 마틴’이죠. 이렇게 제 각각 개성이 강하고, 저는 이들과 일하는 것이 정말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다들 잘생겼죠(웃음).”



 - 작은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이 음반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처음에 작업한 폴 엡워쓰가 당시 작은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어서 우연치 않게 작은 곳에서 녹음하게 되었어요. 전 스튜디오 크기에 전혀 연연하지 않습니다. 사이즈는 전혀 상관이 없어요. 음악은 어디서든지 만들 수 있어요. 그저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아이디어를 나누고 바로 녹음을 했습니다. 가장 크고 비싼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닙니다. 때때로는 작은 방에서 녹음하는 것이 음악적으로 더 좋은 경우도 있지요.”


 -신곡 ‘얼리 데이즈’에 비틀스에 대한 오해를 언급하는데, 어떤 오해인가.

 “우선 이 곡은 저와 존(존 레논), 둘 사이에 대한 노래입니다. 초기 시절을 추억하는 노래이죠. 여기서 말하는 오해는 저와 존이 있던 곳에 없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오해입니다. 전혀 심각한 문제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진실을 왜곡하는 경우는 문제가 됩니다. 예를 들어 초기 비틀스 당시 우리들 사이에서는 누가 곡의 어떤 부분을 만들었는지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어요. 모두가 공평했고 그룹의 일부였기 때문에 그런 것은 기억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평론가들에게는 그것이 중요한 문제였지요. 그것이 그들의 직업이기에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번은 어떤 책에서 이런 문구를 봤는데요. ‘폴의 이 노래는 존의 어떤 어떤 곡에 대한 대답으로 쓴 곡이다’라고. 전 전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냥 썼던 곡이었어요. 이런 것들이 제가 말하는 오해입니다. 때때로 진실은 왜곡되고 그런 오해가 그대로 역사가 되어버립니다.”


 - ‘얼리 데이즈’ 가사 중에 ‘성장하기 위해 슬픔을 웃음으로 바꿔야 했어야 했었지’라는 구절은 굉장히 슬프게 들리는데.

 네, 슬픔은 좋은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는 항상 슬픔이 있지요. 항상 웃기만 하는 것은 바보같은 짓입니다. 슬픔은 곡을 쓰는데 좋은 재료이기도 합니다. 이 곡은 저와 존이 어떤 거리를 걷던 것을 기억하며 쓴 곡입니다. 그 이미지가 남아있어요. 그땐 모든게 쉽지 않았죠. 잠도 못잘 정도로 일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비틀스 첫 콘서트가 기억나는데요, 사람들은 비틀스가 항상 성공만 했을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첫 콘서트는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좋아하게 만들었어야 했고, 발전했어야 했죠. 당시 우리는 매우 슬프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곤 하는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농담을 하고 웃어 넘기고는 했습니다. 네, 우리는 고통을 줄이기 위해 웃어 넘길 줄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 밴드는 항상 웃음이 넘칩니다만, 모두가 행복하기만 한 것은 당연히 아니죠. 다들 노력해야하는 것이지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곡을 전부 기억하지는 못한다고 했었는데요, 새로 곡을 만들 때 어떻게 반복을 피하는지요.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노래를 만드는 중간에도 이 멜로디가 어디서 떠올랐는지 항상 확인해야해요. 저는 처음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항상 이렇게 해왔습니다. 항상 스스로 체크해야 합니다. 링고(드러머 링고 스타)가 처음으로 곡을 써서 저희에게 들려줬을 떄의 일이 기억나네요. 당시 링고는 상당히 들떠서 저희에게 곡을 들려줬고, 저희는 ‘링고, 그거 밥 딜런 노래야’라고 말했습니다(웃음). 항상 조심해야되고, 친구들에게 확인하세요. 친구들은 ‘멋지지만 어디서 들어본거야’라고 말해줄 수 있지요.”


 -곡의 소재는 어디서 오는지.

 “곡을 쓸 때 소재의 제한이란 없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저를 포함해 곡을 쓰는 모든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과거’에 대해 쓰는 것입니다. 설사 미래, 혹은 현재에 대한 곡을 쓴다고 해도 거기에는 항상 과거의 큰 크림자가 드리워져 있지요. 이건 저에게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과거를 회상하고 과거를 여행하는 사치를 즐기기 때문이지요. 네, 저는 굉장히 향수에 잘 젖는 사람입니다. 다시 얼리 데이즈‘ 이야기를 하자면, 그 때를 회상하면 전 그때로 돌아갈 수 있고, 다시 존과 길을 걸을 수 있어요. 제가 곡을 쓸 때, 과거를, 그리고 과거에 대한 감정을 많이 사용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마찬가지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미완성곡, 미발표곡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많은 곡들 중 녹음할 곡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단순하게는 가지고 있는 곡 중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곡을 고릅니다. 아니면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 곡을 고쳐서 녹음합니다. 녹음하지 않은 곡이 꽤 많이 있습니다. 이 음반을 위해 필요한 곡보다 훨씬 많은 곡을 가지고 있었죠. 왜 내가 어떤 곡들을 좋아하지 않는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봅니다. 가사가 충분히 안좋은지, 멜로디가 안좋은지, 혹은 코러스가 별로던지 등 항상 어떤 이유가 있죠. 재미있어요. 그러다 시간이 생기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고쳐보고 합니다.”


 -곡은 매일 씁니까. 마지막으로 곡을 쓴 게 언제입니까.

 “아니요. 작곡은 일정하지 않습니다. 기분이 내킬 때 씁니다. 마지막으로 곡을 쓴게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네요.”


 -새 음반 발매에 왜 6년이나 걸렸나요. 이번 음반 제작에 특별히 영감을 준 것이 있다면.

 “다른 할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저에게 어떤 일을 하자는 제안들이 많았습니다. 누군가 재미있는 제안을 하면 금방 수락하는 편입니다. 어떤 사람이 ‘뉴욕에서 공연되는 발레를 위한 곡을 써달라’고 제안하면 ‘오, 그거 좋지’하며 수락하고, 그 작업에 시간이 걸리게 되는 것이지요. 하루 아침에 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우리 아버지 세대를 위한 스탠다드 송들을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들었던 노래들이죠. 또 과거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이런 노래들은 제가 굉장히 특별합니다. 역시 저를 그 때로 돌려보내주죠. (여성 재즈 가수)다이애나 크롤 등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하고 있습니다. 투어도 돌고 하면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다 언제 갑자기 휴식의 시간이 오면 ‘아 이제 음반을 만들 때’라고 깨닫게 되지요. 이번 음반에 영감을 준 것은 낸시(낸시 쉬벨·2011년 폴 매카트니와 결혼)입니다. 제 삶에 새로운 사랑이 생겼지요. 그녀는 항상 뉴욕에 있었어요. 아침에 일어나 우리 딸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집에 돌아와서 곡을 쓴 후, 그녀에게 전화에 ‘새 노래 들어볼래’ 하곤 말했습니다. 즐거운 동기부여이지요. 결국 모든 곡의 영감은 그녀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젊은 프로듀서들과 함께 일할 때 ‘폴 메카트니’로 대했나요, 아님 프로듀서와 아티스트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나요.

 “무슨 의미의 질문인지 압니다. 저는 스스로 유명세를 즐기거나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그런 감정을 조절해 되도록 사람들에게 평범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죠. 그게 아니라면 지금 여기서 ‘이봐, 자네들은 나와 같은 방에 있을 자격이 없어’라고 말하겠지요(웃음). 하지만 전 그러지 않아요. 그런 기분이 들지도 않습니다. 때로는 녹음을 하러 갔을 때 상대가 저를 보고 긴장하는 것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러면 이래서는 작업이 안될 것을 알기 때문에 걱정이 되서 한마디 합니다. ‘이봐 친구, 우린 모든 똑같은 사람이야. 너의 의견을 말하고,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해. 너의 아이디어가 더 좋으면 난 너의 의견을 따를거야’라고 하죠. 이번 음반의 경우 엔지니어가 제 보컬 녹음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을 하고 있었죠. 완벽하게 녹음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긴 것이죠. 전 일부러 이상한 목소리를 내면서 ‘보컬을 망치지 않을테니 걱정하지 마’하고 이야기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저를 지나치게 존경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독려합니다.”


 -‘렛 잇 비’나 ‘예스터데이’ 같은 명곡들은 당신이 힘든 시기에 탄생한 곡입니다. 이번 음반은 대체적으로 밝은 분위기인데.

 “지금은 제 인생에 행복한 시기입니다. 새로운 여자를 만나지요. 새 여자를 만나면 새로운 곡들을 쓰게 되지요. 그게 전부입니다. 사실 이번 음반에는 어두운 면 역시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얼리 데이즈’ 가사를 살펴보면 어두움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네, 대체적으로 지금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음반에서도 이런 행복이 많이 느껴지기를 바랍니다. 전 언제나 쿨하고자 노력합니다. 저는 저에요. 최근 라스베가스에 갔었는데요, 굉장히 쿨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라스베가스에는 쿨한 사람들이 많죠. 심지어 마일리 사일러스를 봐서 ‘헬로 마일리’라고 소리쳐 버렸습니다. 속으로 ‘아, 내가 마일리의 팬인 것처럼 뭐하는거지? 난 쿨해야해’라며 창피해 했고, 심지어 그녀는 절 알아보지도 못했어요. 그녀의 경호원이 저를 알아봐서 결국 인사를 나누기는 했습니다(웃음).”


 -일본에서 공연할 예정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음반에서 얼마나 많은 곡을 연주할 예정인가요.

 “3~4곡의 신곡을 연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현재의 공연 구성이 매우 좋기 때문에 새로 신곡을 추가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만, 현재 셋에서 몇 곡을 빼고 신곡을 넣을 예정입니다. 특히 오프닝 곡으로 ‘세이브 어스’는 매우 좋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에너지가 강한 곡이라 라이브에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네, 아마 3~4곡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그날 확인해 보세요.”


 -비틀스로 큰 성공을 거둔 후라, 사람들에게 신인같은 상태로 곡을 공개하기는 불가능한데, 그러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나요.

 “네, 하지만 이미 불가능한 현실이죠. 만약 사람들이 전혀 저를 모른다면 좋겠죠. 물론 저를 모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저는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제가 신경쓰는 부분은 제 스스로가 저의 지난 작업들을 답습하지 않는 것입니다. 새 곡을 쓰다보면 과거의 것과 나도 모르게 비슷하게 만들고 있는 것을 깨닫고 작업을 멈추는 경우도 있습니다. 네, 물론 사람들이 제 음악을 전혀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여줄 수 있다면 좋겠지요. 하지만 불평할 것은 아닙니다. 공연의 경우 아까 일본 공연에 대해 이야기 했던 것처럼, 신곡만으로 공연을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제게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공연에서 ‘헤이 쥬드’를 부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2010년부터 매년 남미의 국가들을 방문하고 있는데요, 이번 음반 발매 투어에도 남미 방문 계획이 있는지요.

 “다시 방문하고 싶지만 현재로써는 남미 공연 계획이 없습니다. 브루스 스프링턴이 아직 남미 지역에서 공연을 안해봤다고 해서 꼭 가보라고 추천하기도 했습니다. 매년 가는 이유는 남미 분들은 음악을 정말 사랑합니다. 어디에 가나 파타와 음악이 넘쳐나지요. 내년에는 방문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브라질 월드컵의 오프닝을 맡는다는 발표가 근래 있었는데 사실인가요.

 “그런 발표가 있었나요? (질문자 당황)소문입니다. (모두 웃음). 전 월드컵에 대해 아무 것도 들은 것이 없어요. 물론 멋진 일이고 저도 하고 싶습니다만, 항상 제가 할 수만은 없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지겨워하겠나요? ‘자 여기 또~’(‘헤이 쥬드’ 후렴부를 장난스럽게 부름). 전 지겨운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난 번에 브라질을 방문했을 때 메뚜기 떼의 공격을 받았는데요.

 “네,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매우 더운 날이었고, 전 아무 것도 모른채 노래 부르고 있었는데, 어느새 메뚜기들이 제 어깨와 피아노에 앉기 시작했었죠. 다행이 전 곤충을 싫어하지 않아요. 거미나 이런 것들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죠. 재미있었습니다.”


 -‘얼리 데이즈’를 듣다 보면, 지난 날에 대한 향수가 느껴지는데, 어떤 특별한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것인가요.

 “어떤 곡을 쓸 때, 항상 특정한 메시지를 염두해두고 쓰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그 곡을 쓰던 날, 하필이면 예전 일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특히 어릴 적 리버풀에서 존(레논)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추억하고 있었습니다. 레코드숍에서 함께 예전 록큰롤 음악들을 들으며 벽에 걸린 포스터를 보던 장면들을 떠올렸습니다. 이런 회상은 저에게 큰 기쁨입니다. 세상은 변하고 추억은 좋은 것이죠. 사람들은 더 이상 레코드숍에 가지 않습니다. 네, 그 노래는 이런 것들과 관련된 곡입니다. 그리고 누가 뭐라 해도 이런 추억은 저에게서 뺏어갈 수 없습니다. 누가 그 당시의 리버풀에 대해 뭐라고 하면 전 ‘그래서 너가 그 때 거기 있었느냐’고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냥 어디서 읽은 것이겠지요. 전 당시 그 곳 그 거리에 있었습니다. 이 곡은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제 즐거운 추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한다’는 가사가 있는데, 실제 제 삶에서 자주 일어났던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두 각자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합니다.”


 -프로듀서들과 작업할 때 어떤 방식으로 합니까. 어떻게 당신을 설득하게 만들 수 있나요.

 “네, 질문이 무슨 뜻인지 압니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 항상 모두 함께 앉아서 ‘여기 모두가 각자의 의견이 있다. 여기 있는 사람 모두가 똑같다. 나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마라’고 이야기 합니다. 특히 프로듀서들에게는 더 강조합니다. 그것이 그들의 해야할 일이니까요. 내가 하는 어떤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야기 해달라고 합니다. 절대 망설이지 말라고 하죠. 만약 제 보컬에 문제가 있다면 얘기해줘야 합니다. 훌륭한 프로듀서는 제 보컬이 안좋다고 이야기 하죠.”


 -존 레논이 했던 것만큼 힘들게 했나요.

 “아니오(웃음). 존과 저는 함께 자라는 아이였을 뿐이에요. 서로 아무 서슴없이 의견을 주고 받았어요.”



 -4명의 젊은 프로듀서들과 작업을 했는데,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마크 론슨은 제 결혼식에 DJ를 했었어요. 굉장히 훌륭한 DJ죠. 당시 결혼식 장에 일종의 디스코 스테이지가 있었는데, 마크 론슨이 DJ를 정말 잘 해 주었어요. 그리고 그는 션 레논(존 레논 아들) 친구이기도 해서 알고 있었어요. 자일스 마틴는 어렸을 때부터 그의 어머니를 알고 있었어요. 자일스가 자라는걸 지켜봐왔죠. 이단 존스는 비틀스 때 함께 작업했던 글린 존스 아들이죠. 폴 엡워스는 개인적으론 전혀 모르는 사이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잘 알고 있었죠. 저는 프로듀서를 찾을 때 최근 작업에 주목합니다. 과거에 어땠는지는 중요하지 않죠. 스타일이 다른 4명의 프로듀서와 작업하는 것은 굉장히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폴 매카트니는 이 인터뷰에서 자신의 보컬에 대한 언급을 했습니다. 실제 이번 음반 들어보면 거의 맑고 아름답던 목소리는 조금 둔해지고, 바이브레이션도 느려졌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낡아짐’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은 그의 멋진 곡을 깎아먹을 정도는 아니지만요.


 참, 아까 ‘더 롱 앤드 와인딩 로드’ 가사 뒷부분도 붙여봅니다.

“…

The wild and windy night 

that the rain washed away 

has left a pool of tears 

crying for the day 

Why leave me standing here 

Let me know the way 


Many times I‘ve been alone 

And many times I’ve cried 

Anyway you‘ll never know 

the many ways I’ve tried 


But still they lead me back 

to the long and winding road 

You left me standing here 

a long, long time ago 

Don‘t leave me waiting here 

Lead me to you door 


But still they lead me back 

to the long and winding road 

You left me standing here 

a long, long time ago 

Don’t keep me waiting here 

Lead me to you door” 

Posted by 최우규

  우선, 고백컨데 팻 매스니의 팬입니다. 술 한잔 걸치고 음악이 나오는 곳에 가거나, 집에 가면 듣는 곡 5개를 꼽으라면 팻 매스니의 'Are You Going With Me'가 들어갑니다. 모든 음반을 다 좋아하지는 않지만, <Off Ramp> <Beyond The Missouri Sky>는 매우 좋아합니다.

 

     그의 음반은 애정을 곁들여 듣습니다. 그렇게 좀 핸디를 준다고 해도, 이 음반 <팻 매스니/탭-존 존스 북 오브 엔젤스 볼륨 20(Pat Matheny/Tap-John Zorn’s Book of Angels, Vol. 20>은 올 상반기 들어본 ‘비 클래시컬 뮤직’ 음반 중 감히 최고라고 꼽겠습니다. 클래시컬 음반은 몇 장 못들어봤고, 들어봤다고 해봐야 잘 알지도 못하니 논할 계제가 안됩니다.

 

 

 

 

 이 음반은 소속사가 겁을 먹어서인지 거의 프로모션 없이 지나간 것 같습니다. 안타깝지만 그게 요즘 음반계 현실입니다. 그럴 만도 한게, 팻 매스니는 한국서 공연은 잘 되지만 음반은 잘 안나가는, 재즈계 숙명 안에 들어 있어서입니다. 아마 이 음반도 국내에서 몇천장, 아님 몇백장 나간 것으로 끝났을 것 같습니다.


 나온 지 3개월 지나갔는데도 음반 글을 쓰지 않는 것에는 계속 부채감을 느껴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털겠습니다.

 

 이 음반은 팻 매스니가 다른 사람 음악으로 만든 첫 음반입니다. 그만큼 ‘뭔가’ 있겠죠. 존 존이라는 유태계 음악가는 전위 음악 쪽에서 시쳇말로 좀 '먹어주는' 사람입니다. 아방가르드, 퓨리 재즈, 퓨리 뮤직, 어느 이름으로든 그는 자신만의 영역을 쌓아 놓았습니다. 유대인이라는 뿌리에 기반하고 있으며 엄청난 생산량을 보입니다.


 미국 출신 색소폰 주자인 그는 어찌 들으면 중동 전통 음악을 어쿠스틱, 혹은 일렉트릭 악기로 연주한다는 느낌도 들고요. 존 콜트레인이나 텔로니어스 몽크 후기의 전위적이면서도 관조적인 연주와 달리 그는 좀더 생동감이 있습니다. 물론 동양에서는 한국의 강태환이 있었고, 일본에 야마시타 요스케가 있습니다. 그도 그처럼 힘있는 대로 블로윙합니다.

 

팻 매스니(왼쪽)와 존 존

 그는 1994년부터 구전으로 전해지는 민속 음악들을 정리했습니다. 그래서 500여곡 정도 작곡했다고 합니다. 그중 200여곡은 자신을 포함해 자신의 레이블인 ‘자딕’ 소속 아티스트들이 여러 형태로 재연했습니다. 팻 매스니가 연주한 곡들은 나머지 300여곡 가운데 선택한 것입니다. 존 존은 그 300여곡을 불과 3개월만에 모두 만들어 냈다고 합니다.

 

 그 이전에도 대면하지 않았던 매스니와 존은 이 음반을 만들면서도 대체로 e메일로 의견을 주고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 음반의 아이디어는 고스란히 팻 매스니의 것이라고 봐야겠지요.

 

 팻 매스니야 학구적이면서도 좀 도회적 인상을 갖고 있지만, 이번 음반에서 그야말로 탈 장르적인 지점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는 오넷 콜맨과 함께 1985년 음반 <송X:20주년(Song X : Twentieth Anniversary)에서 프리 재즈 음악을 들려준 바 있습니다. 당시에도 그는 오넷 콜맨의 색소폰과 자신의 기타를 버무린 곡들을 선보였습니다. 프리 재즈와 고운 발라드를 ‘반반씩’ 섞어 기존 팬들에게 소구한 측면이 있습니다.

 

 요번 음반 보면 순수 연주 시간만 50분 40초입니다. 길지도 짧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수록곡은 6곡입니다. 짧은 곡은 6분, 긴 곡은 11분이 넘습니다. 호흡이 좀 길죠.

 

 이런 음반 구성은 2005년 <더 웨이 업(The Way Up)>에서도 선보였습니다. <더 웨이 업> 음반은 별 다른 제목도 없이 ‘오프닝’, ‘파트1’, ‘파트2’, ‘파트3’로 돼 있습니다. 오프닝만 5분 짜리이고, 나머지는 15분부터 26분입니다. 그럼에도 이 음반이 지겹지 않은 것은 (팬심이 크게 작용했겠지만) 극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곡의 구조와, 팻 매스니 그룹의 빼어난 연주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팻 매스니/탭-존존스 븍 오브 엔젤스 볼륨 20> 수록곡들 모두 쉼 쉴틈 없이 청자를 밀어붙입니다. 연주의 '합'도 놀랍습니다. 그럴만한 게 드럼을 제외한 모든 연주를 팻 매스니가 합니다. 그는 기타, 베이스, 시타, 건반, 오케스티리온에서 쓰여진 반도네온 등 악기들을 자신이 직접 연주하고, 사운드를 만들어냅니다. 드럼은 오랜 동료 안토니오 산체스에게 맡겼습니다.

 

 수록곡 이름이 뜻하는 바가 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음반 제목에 ‘천사의 책’인 것으로 봐, 천사들 이름이 아닐까 하는 추측은 가능합니다. 실제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마스테마(Mastema)’는 수많은 악마들을 조종하여 인간을 유혹하고 타락시키는 일을 하는 천사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사리엘(Sariel)’은 대천사의 하나로, 죄의 길로 유혹당하는 인간들의 영혼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고 돼 있습니다. 파누엘도 신의 사자라고 합니다.

 

 음반을 들어봤습니다. 1번 트랙은 ‘Mastema(마스테마)’입니다. 뒷 배경으로 이스라엘 전통 민요를 깔고 전면에는 디스토션을 잔뜩 건 기타 솔로가 이어집니다. 특히 도드라지는 것은 드럼입니다. 7분20초짜리 중간 길이 곡입니다.


  숨이 좀 가빠질 때 쯤인 4분 어간에서 소리도 줄이고 리듬도 줄인 뒤 다시 주제부가 재연됩니다. 이번엔 헤비메탈 기타 같기도 합니다. 팻 매스니 기존 팬, 오레건, 마하비쉬누 오케스트라, 바이탈 인포메이션 같은 퓨전 밴드, 앨런 홀스워드는 물론 영국 록 밴드 젠틀 자이언트 면모도 보여줍니다. 끝부분에는 과거 핑크 플로이드의 ‘에코’나 킹 크림슨의 찌그러든 전자 음도 나옵니다.

 

 2번 트랙은 분위기 바꿔 조용한, 어쿠스틱 소리가 나오는 ‘알빔(Albim)’입니다. 지중해 느낌의 음악은 재즈 기타리스트 빌 프리셀의 도회적 느낌이 나면서도, 정겹습니다. 드럼 하이햇 소리도 시종 귀 위쪽에서 찰랑거립니다. 이 때문에 곡 자체는 '단조(마이너)'이지만, 리듬은 흥겨운 묘한 이질감을 전달해줍니다. 중반부터 들어오는 반도네온 소리가 보강됐습니다. 이 곡은 9분 7초짜리입니다. 후반부로 치달을 때 나오는 음울하다못해 불온하기까지 한 소리는 긴장감을 더합니다.

 

 세번째 곡 ‘타르시스(Tharsis)’는 일렉트릭 기타와 탬버린으로 시작합니다. 반복적 프레이즈의 도입부가 끝나고 나오는 팻 매스니 특유의 기타 신디사이저가 나옵니다. 이 곡에 들어서야 왠지 안심이 됩니다. “그래, 이 음반은 바로 팻 매스니 음반이구나”라고 선언하는 곡인 것 같습니다. 꼭 그의 인기 음반 <오프램프>에서 가져온 듯한 곡입니다. 그만큼 익숙한 소리와 곡 전개입니다.

 

 네번째 곡 ‘사리엘(Sariel)’은 다시 2번 곡처럼 조용한 어쿠스틱 소리로 시작됩니다. 소박한 스트로크와 아르페지오, 꼭 흑백 중동 영화의 OST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도입부는 세번째 곡인 ‘Tharsis’를 좀더 천천히 연주한 듯합니다. 이 곡 역시 중반 이후 기타 신디사이저가 중첩돼 나옵니다. 막판에 나오는 제멋대로 연주는 전형적 프리 재즈, 혹은 아방가르드 뮤직입니다.

 

 다섯번째 곡 ‘파뉴엘(Phanuel)’도 어쿠스틱 기타로 시작해 신디사이저 배경을 버무립니다. 영국 밴드 ‘킹 크림슨’ 팬이라면 몹시 반가워할 만한 곡입니다. 로버트 프립이 각종 음반에서 시도했던 즉흥연주가 실려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나 명상하려는 이들에게는 권할만한 곡은 아닙니다. 1980년대 유럽 프로그레시브 록에서 시도됐던, 포플부나 고블린이 내놓은 ‘으스스한’ 곡입니다. 중반부 이후에는 잠깐 낭만적이면서 아름다운 멜로디가 흘러, 뜻밖입니다.

 

 여섯번째 곡은 ‘허미즈(Hermiz)’로, 대놓고 퓨리 재즈입니다. 오넷 콜맨과 협연해 <송 X> 음반을 냈던 그이지만, 30년만의 이 음반 마지막 곡을 퓨리 재즈로 마무리한다는 것은 청자의 허를 찌르는 것입니다.


 더욱이 팻 매스니는 여기서 기타가 아니라 피아노를 칩니디. 그것도 존 케이지처럼 몇분간 아무 것도 안치는 것도 아닙니다. 피아노를 타악하듯, 그러면서도 분명하게(혹은 의외로) 코드 진행이 엿보이는 연주를 들려줍니다. 팻 매스니는 분명 피아노를 연주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끝납니다. 이걸 허탈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긴장의 급작스런 해소라고 해야 하나요.

 

 정리하겠습니다. 팻 매스니 팬이라면, ‘필청’입니다. 복잡하고, 정교한 연주를 좋아하는 퓨전재즈나 재즈록 팬이라면 더 좋아하실 겁니다. 매일 달콤한 케이크를 먹어서, 뭔가 톡 쏘는, 고추냉이 같은 게 먹고 싶다면 주저 하지 말고 집어드세요.

Posted by 최우규

  1983년 그래미 어워드는 말 그대로 마이클 잭슨이 휩쓸었습니다. <스릴러> 음반과 그 수록곡으로 7개 부문을 타냈습니다. 올해의 앨범, 올해의 레코드(노래), 최고 남성 팝 보컬상, 최고 남성 록(ㅠ.ㅠ) 보컬상, 최고 남성 리듬 앤 블루스 보컬 상, 최고 리듬 앤 블루스 곡, 올해의 프로듀서 등 7개 부문입니다. 이런 저런 부가적인 상이 아니라 핵심적 상을 타낸 것입니다. 이것도 모자랐는지 영화 <E.T.>로 ‘최고 어린이 레코딩’ 상까지 탔습니다.

 

 그 때 마이클 잭슨과 함께 제 이목을 끌은 이들은 현재 스팅이 속해 있던 밴드 ‘폴리스’입니다. 당시 <싱크로노시티> 음반를 내 ‘에브리 브레스 유 테이크’로 인기 몰이를 할 때였습니다.

 

 이들 말고 눈에 띈 이가 허비 행콕이었습니다. 당시 재즈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그가 누군지도 몰랐습니다. 다만 키보드 연주를 하는데 그의 위 허공에 허리와 다리만 있는 로봇들이 매달려 그야말로 ‘로보트 춤(브레이크 댄스)’을 추었습니다. 그의 음반 <퓨쳐 쇼크> 수록곡 ‘록 잇’ 연주였습니다. 지금 들어보면 성기지만,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 음악이었죠.

 

 하지만 그는 금세 기억에서 잊혀졌었습니다. 록에 경도돼 있던 제 귀에 그는 좀 ‘특이한’ 음악을 하는 흑인 아티스트였습니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간 재즈에 맛을 들이던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전반 곳곳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허비 행콕은 1960년대 포스트 밥 이후 퓨전 재즈와 리듬 앤 블루스, 전자음악까지 넘나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거장 재즈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이 한국을 찾습니다. 올해 73세인 그는 11월8일 서울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내한공연을 합니다. 이번 공연에는 그의 음악 인생의 동반자들인 제임스 지너스(베이스), 리오넬 로에케(기타), 비니 콜라이유타(드럼)가 함께 옵니다.

 

 허비 행콕은 재즈에서 대체로 마일즈 데이비스와 함께 거론돼 왔습니다. 스스로가 뛰어난 트럼펫 주자이면서 비밥 이후 가장 실험적인 아티스트였던 마일즈 데이비스가 그를 영입했고, 함께 새로운 음악의 길을 개척했기 때문입니다.

 

 1940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허비 행콕은 7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11살 때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 신동이란 찬사를 받았습니다.


   쿨, 모달 재즈 거장 빌 에반스와 오스카 패터슨 등으로부터 주로 영향을 받아 고등학교 때부터 재즈 연주를 시작했죠. 그는 전자공학과 과학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며 그린넬 대학에서 음악과 전자공학을 같이 공부했습니다. 그가 전자 악기와 음악에 관심을 보이게 된 것도 예서 기원했을까요?

 

 그는 대학 졸업 후 고향 시카고에서 연주 활동을 하던 중 트럼페터 도날드 버드의 제의를 받고 뉴욕으로 갔습니다. 1963년 당대 가장 주목받던 재즈 아티스트 마일즈 데이비스가 그를 영입했고, <세븐 스텝스 투 헤븐> 음반이 나왔습니다. 그는 이 밴드에 5년간 머물렀습니다.

 

 그는 유명 재즈 레이블 ‘블루 노트’에서 음반을 계속 내면서 ‘메이든 보이지’, ‘캔탈로프 아일랜드’, ‘굿바이 투 차일드후드’, ‘스피크 라이크 어 차일드’ 등을 냈습니다.

 

 마일즈 데이비스는 그의 멘토이며 고용주였지만, 그를 남달리 칭찬했습니다. 자서전을 통해 “나는 아직도 허비 행콕의 뒤를 이을 아티스트를 본 적이 없다”고 극찬했습니다.

 

 하지만 둘의 궤적은 달랐습니다. 마일즈 데이비스는 혁신, 진보에 매진하는 ‘직진’ 파였습니다. 그는 포스트 밥 시대를 거쳐, 퓨전 재즈, 재즈 록 등 늘 새로운 사조를 이끌었죠.

 

 반면 허비 행콕은 전통과 혁신을 오가는 ‘횡보’ 파였던 것 같습니다. 전자와 어쿠스틱 재즈, 리듬앤드 블루스를 넘나들며 20세기에서 21세기를 거쳤습니다. 피아노는 ‘전통’ 노선을 따르지만, 블루스, 펑크, 가스펠부터 현대 클래시컬 음악에까지 손을 뻗쳤습니다. 그만큼 대중적이면서도 (골수 재즈 팬에게는)논쟁적 음악을 해왔던 것입니다.

 

 하지마 그는 스타인웨이&선스 피아노에만 매달리지 않았습니다. 일찍감치 로즈 전자 피아노, 신시사이저, 컴퓨터로 전자 음악을 섭렵했답니다. 그만큼 음악도 다양한 변종을 낳았습니다. 팝 성향의 음악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1960년대 포스트 팝 시대의 한 주자로도 자리 매김을 했습니다.

 

 그는 1968년 마일즈 데이비스 밴드를 떠나면서 펑크 음반 <팻 알버트 로턴다>를 내고 69년 6인조 재즈 록 밴드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펑크 밴드를 만들어 <헤드 헌터스>를 내면서 ‘카멜레온’이라는 곡을 히트시켰구요.

 

 1970년대 디스코 물결에서도 그는 재즈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통으로 돌아갔습니다. 1976년 미 뉴욕에서 열린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에서 마일즈 데이비스 퀸텟을 재결성했습니다. 마일즈와 핸콕, 론 카터, 토니 윌리엄스, 웨인 쇼터, 프레디 허바드 등 이름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전설들이 자리를 함께 했죠. 이 밴드로 투어를 했지만, 일과성 모임이었습니다.

 

 1980~90년대 그는 웨인 쇼터 등과 신 전통주의 복고 풍 흐름을 탔습니다. 그러면서 1980년대 그는 다시 한번 변신해 팬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1983년 음반 <퓨처 쇼크>에서는 전자 음악과 레코드 스크래치를 혼합하는 등 인더스트리얼 계열 음악의 원형을 선보였던 것입니다.

 

 그 뒤 아프리칸 리듬을 섞은 음악을 내기도 했고, 각종 페스티벌에서 브랜포드, 윈튼 마살리스 형제, 조지 벤슨, 마이클 브레커 등과 협연했습니다. 실험 정신은 계속돼 2001년 <퓨쳐 투 퓨쳐> 음반을 냈고, 그러면서도 재즈에 천착해 2005년 <파서빌리티스>도 냈죠.

 

 10년 음반 <디 이매진 프로젝트>는 7개 국가에서 녹음됐습니다. 협연자만 해도 제프 벡, 데이브 매튜스, 나오쉬카 샹카, 더 치프테인스, 실, 핑크, 데릭 트럭스, 샤카 칸, 웨인 쇼터, 제임스 모리슨, 존 레전드 등입니다. 여기도 거의 올스타 급이죠.

 

 2008년 제50회 그래미 어워드에서는 ‘올해의 음반상’, 2011년 제53회에서는 최우수 팝 보컬 콜라보레이션 부문 등 트로피를 14개나 거머 쥐었답니다.

 

 이번 한국에 오는 멤버들도 하나 같이 일류 세션맨들입니다. 베이스 주자인 제임스 지너스는 또다른 피아노 거장 칙 코리아의 세션입니다. 기타리스트 리오넬 로오케는 아프리카 베넹 출신입니다. 버클리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찰리 헤이든, 잭 드조네트, 케니 바 등 재즈 명인들과의 활동했습니다.

 

베이스 주자 제임스 지너스기타 주자 리오넬 로오케

 

 

 드럼 주자 비니 콜라이유타는 ‘프랭크 자파 밴드’ 오디션을 통해 데뷔했습니다. 칙 코리아, 퀸시 존스 등 재즈 아티스트는 물론 조니 미첼, 제프 백, 스팅, 바브라 스트라이잰드 등 뮤지션들과도 호흡을 맞췄습니다. 협연 아티스트 보면 그야말로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4월 한국 재즈 피아니스트 곽윤찬이 냈던 퓨전 재즈 <49> 음반에도 참여한 바 있죠.

 

드럼 주자 비니 콜라이유타

 허비 행콕은 2011년 5월 서울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에서 내한 공연을 열기도 했습니다. 이번 공연에는 1년에 100대 수공업으로만 제작된다는 이태리 명가 파치올리 피아노가 공수된다고 합니다.

Posted by 최우규

 최근 나온 밴드 음반중 나름 귀를 잡아 끄는 게 있었습니다. 바로 ‘W&JAS’의 새 음반 <뉴 키드 인 타운(New Kid in Town)>입니다. 미국 록 밴드 ‘이글스’ 히트곡으로도 유명한 노래를 음반 제목으로 썼습니다. ‘더블유 앤 자스’라고 불리는 이 밴드는 일렉트로닉 팝 밴드로, 이쪽 계열에서는 곡 구성이나 연주력으로 알아주는 이들입니다.

 

 소속사 설명을 옮겨보겠습니다.

 

 “W&JAS는 ‘RPG Shine’으로 대중음악계에 센세이셔널한 신선함을 선사하며 등장한 W&Whale의 W(Where the story ends) 멤버들이 보이스 코리아 출신의 새로운 보컬 장은아(JAS)와 새롭게 조우한 프로젝트 팀이다.


 1999년에 결성한 밴드 W는 “마녀, 여행을 떠나다”,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등으로 알려진 그룹 코나의 리더 배영준과 당시 서포트 뮤지션이었던 한재원, 김상훈이 의기투합하여 만든 밴드로 그 동안 두 장의 정규앨범을 발표하였고, 보컬 Whale(박은경)과 함께 W&Whale을 결성하여 일렉트로닉 팝밴드로 이름을 널리 알리기도 했다.


 새롭게 합류한 보컬 장은아(JAS)는 러브홀릭의 객원보컬로도 활동한 바 있으며, 영화 ‘국가대표’ O.S.T 등에도 참여한 실력파 뮤지션이다.

 


 지난해에는 보이스 코리아 시즌1에 출연하여 화려하고 파워풀한 가창력으로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신곡 ‘별을 쫓는 아이’는 드라마틱한 구성과 파워풀한 JAS의 가창력이 돋보이는 곡으로 유려하면서도 강렬한 음악과 ‘언어의 정원’의 아름다운 영상이 만나 환상의 콜라보레이션으로 빛날 것으로 보인다.


 20일 미니앨범 발표를 앞두고 있는 W&JAS는 방송과 공연을 통해 팬들을 만날 예정이며, 하반기에 있을 각종 음악페스티벌에 출연할 예정이다.”

 

 

 뭐, 늘 그렇듯 소속사들의 보도자료는 칭찬이 주로입니다. 그 칭찬을 곧이 들으라는 게 아니라, 기본 사항이 이렇다는 겁니다. 물론 그만큼 실력이 있는 밴드이기는 합니다. 1999년 구성, 현재 3인조에 여성 가수들 영입. 일렉트로닉 팝 계열.

 

 음반 <뉴 키드 인 타운>을 들어봤습니다. 첫곡부터 귀에 확 댕깁니다.

 곡목은 ‘가장 먼 여행’입니다. 1970, 80년대 아트록 밴드들이 시도했던, 하지만 무겁지 않은 형태의 연주입니다. 핑크 플로이드나 독일 크라우트 록 등이 했던 구체음악과 소음을 곁들인 느낌적 느낌이라고나 할까요(ㅎ). 그렇다고 옛 음반을 듣는 듯 ‘올드’하지 않고 세련됨이 돋보입니다. 식혜 먹으려고 기대했는데 확 올라오는 콜라 같은 곡입니다. ‘집중력을 돋우는 강한 애피타이저 같은 곡’ 정도일까요.

 

 두번째 곡 ‘별을 쫓는 아이’. 이 곡은 JAS(장은아) 보컬의 역량을 돋보이게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보컬의 집중력을 선보입니다. 무리하지 않고, 너무 가볍지 않은 장은아의 노래 뒤에 깔린 기타와 키보드 소리는 연주 역량으로도 평가받을만 합니다. 꿈을 찾아 우주로 떠나는 연인과 친구를 응원하는 곡입니다. 몇억 광년 떨어진 우주의 연인이 서로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별의 목소리(일본 신카이 마코토 애니메이션)>의 내용을 가사에 담았다고 합니다.

 

 세번째 곡은 ‘그린(Green)’은 전면에 키보드 연주를 배치해놓았습니다. 1990년대 뉴웨이브 풍의 곡입니다. 예전 ‘티어스 포 피어스’나 ‘카스’ 같은 밴드들 분위기를 들려준다. 기타가 주도하지 않아도 충분히 돌출되는 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음반사는 이 노래를 타이틀 곡으로 정했습니다.

 

 네번째 곡 ‘스피드 업(Speed Up)’부터는 이 밴드 고유의 일렉트로닉 팝 느낌이 강합니다. 특히 이 곡은 노래 하이라이트, 즉 고조된 부분의 멜로디가 중독성을 갖고 있습니다. 귀에 쏙쏙 들어와, 대중적 인기를 누릴 것 같습니다.

 

 다섯번째 곡 ‘나비효과 속의 한 마리 나비처럼’는 펑키한 리듬으로 시작한다. 국내 밴드 중에서는 이효리 연인 이상순이 주도했던 ‘롤러코스터’가 선보였던 음악 같습니다. 다른 곡에서보다 배영준의 기타 연주가 더욱 두드러집니다. 리듬 부분도 그렇고 중간 솔로에서도 마찬가지로 ‘돌출’합니다.

 

 여섯번째 ‘더 베스트 포 유(The Best For You)’에서는 베이스가 강조돼 있고, ‘웅장함’이 포진돼 있습니다. 신디사이저가 주도하며 다양한 음색을 들려줘 클럽에서 인기를 끌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이 음반은 프로듀서 역량에 좋은 점수를 줄 수 밖에 없습니다. 자칫 어수선한 분위기의 ‘고속도로 카세트 사운드’가 되기 십상인 전자 음악을 깔끔하게 정리했습니다. 게다가 여운까지 전달하는 것은 연주자 보다는 엔지니어와 프로듀서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Posted by 최우규

 미국 음악계에서 ‘선수들’끼리는 서로 서로 통하는 것 같습니다. 뭐 어느 나라의 어느 판이라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번에 나온 음반 석장은 서로 돌고 도는 인연들이 재미 있습니다. 물론 음반들도 자신들의 퀄리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선 미국의 유명 힙합 프로듀서 겸 래퍼인 퍼렐 윌리암스가 제작한 2장의 음반이 함께 나왔습니다. 첫번째 음반은 21세기 크루너(Crooner·프랭크 시내트라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사랑 노래를 부르는 가수) 로빈 시크(Robin Thicke)입니다.

 

 그의 신보 <블러드 라인스(Blurred Lines)>에 들은 동명 타이틀곡은 7월 27일자 기준 빌보드 싱글차트(HOT 100)에서 6주 연속 1위를 차지했습니다. 올 상반기 최장기간 싱글 차트 1위곡이랍니다. 퍼렐 윌리엄스와 남부 힙합 상징인 티 아이(T.I.)가 목소리를 보탠 곡으로, 64개국 아이튠즈에서 1위를 휩쓸었구요.

 

 2013년 MTV가 선정한 ‘올해의 래퍼’ 1위이자, 이스트 코스트 힙합의 신성 켄드릭 라마가 등장하는 ‘기브 잇 투유’는 클럽에서 춤곡으로서뿐만 아니라 음악적 쾌감으로서도 손색이 없는 곡입니다.

 

 흥겨운 디스코, 솔 곡인 ‘에인트 노 햇 포 댓’과 ‘겟 인 마이 웨이’ 등이 수록돼 있습니다. 올 초 다프트 펑크가 몰고온 ‘디스코’ 열풍이 이 음반에게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이 음반을 낸 유니버설뮤직코리아는 “디스코, 힙합, 리듬앤 블루스라는 댄스의 트로이카 곡들로 음반이 구성돼 있다”며 “로빈 시크는 이번 음반의 주된 테마로 ‘재미’를 꼽았다”고 밝혔습니다.

 

 

 다음은 ‘뉴욕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제이지의 12번째 정규 음반 <마그나 카르타…홀리 그레일(Magna Carta…Holy Grail)>입니다. 이름부터 어마어마하죠. 국민 권리를 천명한 대헌장(마그나 카르타), 예수가 흘린 피를 담았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성배(홀리 그레일)이라니.

 

 7월4일 타이틀 곡 ‘홀리 그레일’은 발표 한 시간 만에 2000만명 이상의 접속자가 몰려 서버 다운을 일으켰습니다. 발매 첫 주 음반 52만8000장이 팔려 빌보드 음반 차트 1위를 차지했구요. 이로서 제이지는 13장의 빌보드 음반 차트 1위 음반을 낸 가수가 됐습니다. 음반사는 이를 단일 가수로는 새로운 기록이라고 했는데, 확인해보지는 못했습니다.(죄송함다.)

 

 타이틀 곡 ‘홀리 그레일’에는 록 밴드 ‘너바나’의 ‘스멜스 라이이크 틴 스피릿’ 멜로디가 깜짝 등장합니다. 이런 깜짝 행사는 팬들을 즐겁게 하죠. 이 곡의 보컬 파트는 오랜만에 가수로 돌아온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맡고 있습니다. 또 ‘파트 투(온 더 런)에는 그의 부인 비욘세가, ’오션스‘에는 프랭크 오션과 릭 로스 등도 등장해 목소리를 보탰습니다. 다들 쟁쟁하죠.

 

 13번째 트랙 ‘BBC’의 말미에는 섹시한 여성이 “자기 신발 끝내주는데…,자기 스타일 끝내주는 데, 백만장자 소년들의 모임”이라고 한국말로 말합니다. 저 BBC는 영국 국영방송국이 아니라, Billionaire Boys Club(억만장자 소년 클럽)의 약자입니다. 퍼렐 윌리엄스의 패션 브랜드 이름이기도 합니다. 이 곡을 들어보니, 한국 시장도 많이 신경을 쓴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또 ‘헤븐’에는 얼터너티브 밴드 ‘R.E.M’의 ‘루징 마이 릴리전’ 가사가 삽입돼 있습니다.

 제이지의 공격적이면서 유연한 흐름과 그루브는 여전합니다. 다만 ‘F***’ 등 욕설도 ‘듬뿍’ 들어가 있어 어린이들(욕설에 거부감을 느끼는 청소년에게도요)에게 권할만한 음반은 아닌듯합니다.

 

 덴마크 출신 ‘쿼드론’은 여성 보컬 코코 오와 프로듀서 로빈 한니발이 만든 일렉트로-솔 듀오입니다. 이들이 최근 낸 정규음반 <애벌랜취(Avalanch)는 유럽 뮤지션들 특유의 깔끔한 소리가 특징입니다.

 

 이 음반은 저 정도로만 그치지는 않습니다. 1960년대 모타운 사운드(펑키 솔)과 1980년대 리듬 앤드 블루스, 1990년대 애시드 재즈, 2000년대 댄스 팝 등을 포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앞서 두 음반의 가수와 제작자들이 이들 음반 곳곳에서 출몰합니다.

 

 소니뮤직코리아는 “에이미 와인하우스와 아델 뒤를 잇는 솔·팝 디바”라며 “솔과 재즈, 현대 일렉트로니카를 융합시켜냈다”고 밝혔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코코 오는 퍼렐 윌리엄스가 스튜디오에서 함께 작업을 했고, 프린스가 집에서 연 파티에도 초대됐습니다. 특히 제이지가 제작한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음반 ‘웨어 더 윈드 블로우스’를 불렀습니다. 상당한 유망주라고 봐야겠죠.

 

 음반은 중간 빠르기에 은은한 관악기, 현악이 함께 하는 ‘LFT’로 시작합니다. 코코 오의 가녀리면서 깨끗한 목소리가 분위기를 주도합니다. 또 라틴풍 타악과 관악이 특징인 ‘페이보리트 스타’, 아프리칸 스타일의 박자에 1980년대 하우스 댄스곡 풍을 얹은 ‘헤이 러브’ 등이 들어 있습니다.

 

 ‘베터 오프’에서 앞서 로빈 시크 음반에 등장했던 켄트릭 라마가 다시 나타납니다.

 

 ‘네버랜드’에서는 마이클 잭슨의 ‘버터플라이’를 연상시키는 관악 연주와 멜로디가 나옵니다. 마이클 잭슨은 1987년 미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에 있는 대저택을 구입합니다. 당시 골프 코스였던 곳을 1700만달러에 사들인 뒤 롤러코스터 같은 놀이기구를 설치합니다. 동물도 기르고요. 그리고는 이곳을 피터팬과 요정들이 살던 ‘네버랜드’로 불렀습니다.

 

 코코 오는 이 곡에서 마이클 잭슨처럼 노래를 부릅니다. 마치 마이클 잭슨이 형제들과 만든 그룹 ‘잭슨 파이브’ 시절을 연상시키죠. 음반은 관악과 기타 등 재즈 밴드의 반주를 연상시키는 솔 ‘애벌랜취’로 끝납니다.

 

 이름 그대로 화려한 리듬의 향연입니다.

Posted by 최우규

 8월3일 지산월드 록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주요 출연자)로 방한하는 영국 브릿팝 밴드 ‘플라시보’는 “7집 녹음을 마치고 처음 공연하는 곳이 한국이어서 설렌다”고 말했다.


 플라시보 보컬이자 기타를 맡은 브라이언 몰코는 18일 경향신문에 보내온 e메일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한국에서는 늘 좋은 기억만 남았다. 한국에 가면 늘 불고기를 먹는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플라시보는 오버그라운드 활동만 20년째를 맞고 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정말 감사할 일이다. 우리가 아직도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며, 그것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며 살고 있다. 게다가 아직도 우리의 음악에 흥미를 가져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또한 20년이 넘게 음악작업을 함께 하며 친구로 살아가는 동반자가 있다는 것도 정말 감사할 일이다.”


 -영국 인구는 7000만명이 안된다. 세계 인구는 70억명이다. 100분의 1도 안되는 영국이 록 음악에서는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영국 밴드에 어떤 저력이 있어서 그렇다고 보는가.

 “흥미로운 질문이다. 나도 런던으로 이주한 개인적인 이유가 런던이 세계 음악의 중심 도시이기 때문이다. 음악적으로 역사가 풍부하다. 또 매일 다양한 국적의 밴드의 연주를 보고 들을 수 있으며, 활동적인 음악 산업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많은 음악가들이 런던으로 이주하는 결정을 내리는 게 조금은 쉽다. 아마 전통적인 음악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계속해서 새로운 음악가들이 들어오고, 또 그로 인해 새로운 역사가 이어지는 것 같다.”


 -9월에 정규 7집 <라우드 라이크 러브(Loud Like Love)>를 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음악을 담을 것이냐.

 “이번 음반은 7집이다. 모든 이야기가 한가지 테마로 연결되어 있는 10개의 짧은 이야기를 모아놓았다고 생각하고 들어줬으면 좋겠다. 한가지 주제를 놓고 여러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해부했다. 우린 이번 음반이 지난 음반의 화답이 되기를 원한다. 지난 음반에는 기타 사운드가 많이 사용되었는데, 그래서인지 약간 미국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번 음반은 빛과 그림자를 오가며 더 다양한 색깔과 촘촘한 짜임새를 갖고 있다.”


 -기술적 특징도 있을 것 같은데. 

 “작업에서 많은 부분에서 태블릿 장비를 이용했다. 정말 많은 태블렛이 사용되었는데, 기술의 발전은 대단하다. 사실 아이패드는 이제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기구가 되었다. 일렉트릭 음악 역사에 대한 세미나에 간 적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발명이 40년 전에 발명된 신디사이저였다. 지금은 녹음실에서 피아노, 기타등 전통적인 악기와 아이패드를 연결해서 음악 작업을 한다.”


 -연주에서는 어떤 변화가 들어가나.

 “해머드 덜시머(hammered dulcimer)를 연주했다. 중국 현악기 양금 비슷하다. 아시아 지역을 방문할 때 그 지역 특유의 소리에 매료되기도 한다. 새로운 소리에는 언제나 마음이 열려 있으며 새 악기를 보면 만져보고 연주해보고 싶다”.


 -한국에 와 봤으니 인상도 남다를텐데.

 “그동안 한국에서의 경험은 늘 좋은 기억으로 남았는데 이번에는 좀 긴장할 것 같다. 박찬욱 감독 영화를 좋아한다.”


 -공연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또 플라시보 공연을 제대로 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가장 멋진 공연은 관객들이 우리에게 몇 발자국 가까이 다가오고, 우리도 관객들을 향해 몇 발자국 나아가 그 중간에서 만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그 때 관객과 우리가 시너지를 일으켜 마법의 순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우리 사이에 함께 느낄 수 있는 유포리아(Euphoria·희열)가 형성된다. 밴드로서 그 순간은 가장 본능에 충실한 시간이다. 어떤 계획도 없이 그 순간에 충실하고 자유를 최대한 만끽한다. 결과적으로는 성공적인 공연을 위해 우리는 관객들의 반응에 기댈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관객과 소통해서 얻는 에너지가 순수한 감정들을 만들어내며, 그러한 순수한 감정은 머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서 오는 것이다. 우리는 무대에서 모든 것을 잊고 본능에 충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그 순간에야 말로 계속되는 투어에서 지친 마음이 모두 치유된다.”



 1996년 데뷔한 플라시보는 지금까지 1000만 장이 넘게 음반을 팔았다. 2006년 인천에서 열린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을 찾았고, 2009년 내한공연을 했다. 여성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보컬과 감각적 곡 진행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지산월드 록 페스티벌는 8월 2~4일 경기 이천 지산포레스트리조트에서 사흘간 열린다. 세계적인 애시드 재즈 밴드 자미로콰이, 미국 록밴드 위저 등이 출연한다.

 

Posted by 최우규

 '메이지 스타'를 처음 들은 것은 4년 전입니다. 한 중고 가게 갔더니 '떨이'식으로 파는데, 보라색의 음반커버가 눈을 잡았습니다. 음반 이름은 <소 투나이트 댓 아이 마이트 시>이었습니다. 예전 사이키델릭 분위기에 포크를 버무린듯한 노래에, 여성 보컬이 마치 잠결에서 일어나 조근조근 노래부르듯 하는 게 여간 매력적이지 않았습니다. 이 음반이 나온 게 1993년이니, 벌써 20년 전 것입니다.

 

  이 메이지 스타는 국내에서 그다지 유명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왜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남들은 잘 모르고 나 혼자 아는, 그런 데 꽤 재미나는 무엇. 그 비밀스러움이재미를 배가시켜주는 것. 메이지 스타는 제게 그런 존재였습니다.

 

 서두가 길었는데, 암튼 이 메이지 스타를 비롯해 오래 동면했던 해외 스타들이 속속 음반을 내, 팬들을 설레게 하고 있습니다.

 

사이키델릭 포크 밴드 '메이지 스타'


  메이지 스타는 17년만에 신보 <시즌스 오브 유어 데이>를 예정입니다. 꿈꾸는 듯한 목소리의 여성 보컬 호프 산도발을 내세우는 이 밴드는 17일 새로운 싱글 곡 ‘캘리포니아’를 발매한 바 있습니다. 호프 산도발은 게다가 예쁩니다. 한국 재즈 가수 나윤선도 2004년 음반에 이 메이지 스타 노래를 한 곡 커버했습니다.


 메이지 스타는 지난해 싱글곡 ‘커먼 번’, ‘레이 마이셀프 다운’을 낸 바 있습니다. 9월24일 나올 새 음반에는 이들 싱글곡을 모두 수록할 예정입니다. 메이지 스타는 1996년 <어몽 마이 스완>을 낸 뒤 활동이 뜸했습니다.


 이번 음반은 노르웨이와 미 캘리포니아에서 녹음중입니다. 곡은 보컬인 호프 산도발과 기타리스트 데이브 로백이 함께 쓰고 있습니다. 또 스코틀랜드 포크 가수 버트 잰쉬와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드러머 콜름 오 시오소익도 등장할 예정입니다.

 

 1989년 결성된 이 밴드는 당초 4인조 였습니다.  산도발과 로백말고도 수키 유어(키보드), 질 에머리(베이스)가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활동의 핵은 저 2명이 하기에 듀오처럼 돼 있습니다.

 

 미국 프로그레시브 메탈밴드 ‘툴’도 2006년 <10,000데이즈> 이후 처음으로 정규 음반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밴드 드러머 대니 캐리는 음악전문지 ‘라우드 와이어’와 인터뷰에서 “5번째 음반 작업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캐리는 “2013년 말이 발매 시기 목표인데, 늦어지면 2014년 초가 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음반 준비과정과 레코드 회사 일정 등을 감안하면 올 크리스마스 이전에 나올지는 잘 모르겠다”며 “두고봐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기타리스트 아담 존스, 베이스 저스틴 챈슬러 등이 녹음에 한창이지만 보컬인 메이너드 제임스 키넌은 아직 준비가 덜 돼 있다고 그는 전했습니다.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 '툴'


 툴의 새 음반은 음악전문지 ‘롤링 스톤’의 ‘2013년 가장 기대되는 음반 10’으로 선정됐습니다. 그만큼 기대가 크다는 것이죠.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출신인 툴은 3번의 그래미 상을 받았으며, 2006년 메탈리카의 내한 공연에 오프닝 밴드로 선 바있습니다.


 첫 음반 ‘언더토우’에서는 강렬한 헤비 메탈 사운드를 구상했던 툴은 2집 <애니마>에서는 얼터너티브 메탈 사운드를 도입했습니다. 이후 2001년 <래터랄러스>, 2006년 <10,000 데이스>에는 좀더 길고 복잡한 연주 스타일을 집약해 프로그레시브 메탈로 변모시켰습니다.


 앞서 6월 중순 영국 오피셜 음반 차트 1위에는 노장 헤비메탈 밴드 ‘블랙 사바스’의 19집 정규 음반 <13>이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정규 음반으로는 토니 마틴이 보컬을 맡았던 1995년 <포비든> 이후 18년 만입니다. 특히 오리지널 보컬인 오지 오스본이 보컬을 맡은 음반으로는 43년만구요.

 

블랙 사바스 음반 <13>


 슈게이징의 대표적 밴드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도 올해 새 음반 <mbv>를 냈습니다. 1991년 전작 <러블레스>를 낸지 21년만입니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구성된 이들은 소리를 증폭, 왜곡시키는 등 극한까지 밀여 소음을 만들어내는 듯한 음악을 구사합니다.
 이 장르를 추구하는 밴들은 연주 동안에 그저 악기나 바닥만 바라보는 것 같아 ‘신발 쳐다보기(Shoe-gazing)’이라는 별칭이 붙었다고 합니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음반

  스팅이 노래하며 베이스를 치던 밴드 '더 폴리스'의 재결합 및 음반 발매 소식도 5, 6월 잠깐 들렸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는 '뜬소문"인 것 같습니다.

 

Posted by 최우규

 흔히 밴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베이스 연주자를 아느냐, 아니냐로 나뉜다는 말이 있습니다. 대체로 어떤 밴드의 음악을 보컬이나 기타 등 주도적 음 위주로 즐기느냐, 아니면 베이스를 포함한 전체적 맥락 속에서 즐기느냐 차이입니다. 물론 재즈의 찰스 밍거스나 자코 파스토리우스, 레이 브라운, 록의 빌리 시언이나 게디 리, 그렉 레이크 같은 사실상 프론트 맨 격의 베이스 기타 연주자도 있습니다.

 

  또 그 밴드를 얼마나 아느냐는 베이스 주자의 이름이나 경력을 얼마나 파악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룹 '퀸'을 좋아해도, 딥 퍼플을 좋아해도 베이스 주자가 누군인지 물어보면 막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고로 답은 퀸의 존 디콘, 딥퍼플의 로저 글로버와 글렌 휴즈입니다.)

 

 한번 자신이 좋아하는 밴드를 떠올리고, 베이스 기타 주자를 얼마나 아는 지 셀프(요즘 인기 있는 단어죠) 점검 한번 해보세요.


 록이건, 재즈나 블루스건, 폴 모리아 같은 소위 ‘경음악단’이든 베이스 연주가 필수입니다. 특히 합주가 아니라 연주자 개인 역량에 기대는 밴드일수록 베이스 음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됩니다. 퓨전 재즈나 헤비메탈 같은 장르에서 그 특질이 더 드러납니다. 그래야 중구난방이 아니라 통일성, 적어도 흐름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굿인터내셔널이 11일 내놓은 2장의 음반은 이 중저음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바로 콘트라베이스 주자 르네 가르시아-퐁스와 베이스 클라리넷을 도입한 울리히 드렉슐러 음반입니다.


 음반 <라 리네아 델 수르(남쪽 선)>을 낸 르네 가르시아-퐁스는 흔히 콘트라베이스 계의 파가니니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박자에 맞춰 기본 음을 따라 가기도 힘든 콘트라 베이스를 갖고 어쿠스틱 기타 솔로처럼 가뿐하게 연주하기 때문입니다.

 

르네 가르시아-퐁스의 <라 리네아 델 수르> 음반 굿인터내셔널 제공

 

 월드뮤직, 유러피안 재즈 연주자 가르시아-퐁스는 스페인 북동부 카탈로니아 혈통의 프랑스 인입니다. 그래서인지, 프랑스 냄새보다는 이베리아 반도 쪽 냄새가 많이 나는 것 같습니다.

 

  그는 파리에서 태어나 5살에 음악을 시작했습니다. 베이스 주자 프랑소와 라바스에게 사사한 그는 10대 때 로저 게린 빅밴드 멤버로, 케니 클라크, 샘 우드야드 등 재즈 드러머와 협연했습니다. 1987~1993년 콘트라베이스 오케스트라, 국립 재즈 오케스트라 멤버로 활동하면서 유럽 투어를 다녔습니다. 재즈 전통적 이디엄에 머물지 않고 인도, 그리스, 아프리카, 플라멩코, 탱고, 집시 음악 등과 클래시컬을 접합했습니다. 음악이 트랙별로 정말 다양합니다.

 

르네 가르시아-퐁스 굿인터내셔널 제공


 이번 음반은 2010년 독일 음성학회가 선정하는 에코 재즈 상에서 ‘올해의 베이시스트 상’, ‘올해의 음반상’을 수상했습니다. 가르시아-퐁스는 전통적인 손가락 튀기기 주법에만 머물지 않고 피치카토, 활로 켜기, 현 두드리기 등 다양한 주법을 구사합니다. 특히 그의 콘트라베이스에는 고음역의 다섯 번째 현을 추가해 첼로, 기타, 비올라 음역까지 확장해놓았습니다.


 그는 중세 페르시아의 신비주의 시인 루미에게서 영감을 받아 곡과 가사를 썼다고 합니다. 다비드 베니투치가 아코디언, 키코 루이즈가 플라멩코 기타, 파스칼 호란두가 타악기를 연주했습니다. 구슬픈 파두와 플라멩코 풍의 노래는 여성 가수 에스페란자 페르난데즈가 불렀습니다.


 햇살 가득한 지중해 쪽 음악입니다. 가르시아-퐁스의 주법은 탁월하다. 5번 트랙 ‘카뱌에라 데 미 아모르’나 6번 ‘나다’ 등에서는 전통적 재즈 베이스 연주가 돋보입니다. 반면 4번 ‘가레 생 샤를르’나 10번 트랙 ‘베헤’에서는 플라멩코 기타와 베이스 연주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 빠른, 주도적 연주를 선보입니다.


 전문지 ‘재즈 리뷰’는 “이 베이스 주자의 유연한 즉흥 연주는 창의적이고, 입이 쩍 벌어진다. 타이틀 트랙에서 들려주고 있는 16분음의 포화는 흔히 베이스의 한계라고 여겨지는 점들을 무참히 농락한다. 최고의 기량에 닿아 있으면서, 도전적인 기백이 넘치는 음악”이라며 별 다섯개 평점을 줬습니다. 최고의 찬사입니다.


 울리히 드렉슐러가 이끄는 ‘첼로 사중주’ 밴드의 음반 <콘시터니(조화)>는 강렬한 음색의 베이스 클라리넷이 주도합니다. 스윙, 빅 밴드 재즈 시대인 1940년대 베니 굿맨 이후로도 앤소니 브랙스턴이나 돈 바이런 등 연주자들이 있었지만, 목관악기는 금관악기에 밀려 있는 양상입니다. 아무래도 금관악기가 음색이 강하고 소리가 크기 때문에 같은 연주에서도 주목받기 쉽지요.

 

울리히 드렉슐러 첼로 쿼텟의 <콘시너티> 음반 굿인터내셔널 제공

  울리히 드렉슐러는 특이하게도 보통 클라리넷이 아니고 낮은 음의 베이스 클라리넷을 연주합니다.

 밴드 구성도 평범하지 않습니다. 울리히가 베이스 클라리넷, 리나 카시나리, 크리스토프 운터베르게 등 2명이 첼로를, 호르헤 마칼루가 드럼 등 타악을 연주합니다. 곡들이 대체로 중음대에서 이 때문에 울려 퍼집니다.


 울리히는 아홉 살부터 클라리넷을 불기 시작했으며 열 여섯 살의 나이에 테너 색소폰을 독학하며 재즈에 빠졌습니다. 1998년 오스트리아 그라즈 예술대학을 나온 뒤 1999년부터 프리랜서 작곡가 겸 연주자로 활동하며 현재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두명의 첼리스트, 드러머와는 그라츠 예술대에서 만났습니다.

 
 이들은 전통 재즈 문법에 기반을 두고 스칸디나비안과 클래식 장식을 달고 있습니다. 전형적 쿨 재즈 양식을 선보이는 ‘이터널’, ‘시 유어 이어스, 히어 위드 유어 아이스’, ‘리빙 나우’, 아름다운 발라드 ‘아워 소스’, 흥겨운 스윙 ‘댄스 이프 유 라이크 투’과 ‘도운트 트라이 투 언더스탠드 에브리싱’ 등이 들어있습니다. 울리히의 클라리넷 솔로곡 ‘어 러브 어페어’으로 끝납니다.


 ‘재즈레코즈 닷 컴’은 “유럽 재즈 신에서 가장 야심 넘치고 예측이 어려운 음악가. 그만의 음악이 가진 순수한 에너지가 있다”고 평했고, ‘재즈 피플’은 “조화와 우아함 그 자체”라고 했습니다.


 두 음반 모두 2010년 발매됐지만, 이들의 또다른 장점으로는 탁월한 녹음을 꼽을 수 있습니다. 오디오 테스트의 레퍼런스 CD로 사용해도 될 만큼 좌우 분리도와 해상도, 음장감 등이 뛰어나다고 굿 인터내셔널은 밝히고 있습니다. 음반을 좋은 오디오로 들어보지 못해서 확인은 못했습니다만, 저가 이어폰에서도 소리는 꽤 괜찮은 것 같습니다. 

Posted by 최우규

 예술 평론가들은 직업 자체가 마찰을 빚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술이라는 게 0부터 100처럼 절대적 척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같은 작품이라도 평론가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고, 같은 평론가라도 상태에 따라 같은 작품에 다른 평론을 내놓을 수도 있겠죠.

 

 실제 최근 김수현이 첫 주연을 맡은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둘러싸고도 그런 일이 벌어졌죠. 나름 이름 있는 평론가들은 대체로 이 작품을 혹평했습니다. 하지만 김수현 팬심에 힘입어 승승장구해 관객 600만명을 넘겼습니다. 특히 이 작품 팬들은 평론가들에게 "입만 살아서, 너희들이 직접 만들어보라"는 아주 고전적인 역공을 가했죠. 예전 심형래 감독의 <D워>를 놓고 진중권씨와 다른 평론가, 팬들 간에도 살벌하리만큼 비난전이 이어졌죠. 바로 그 평론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영국 가수 톰 오델의 음반 <롱 웨이 다운>이 나왔을 때 영국의 유명 음악 주간지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NME)’는 혹평과 함께 10점 만점에 0점을 줬습니다. NME는 24일(현지시각) 이 음반에 대해 ‘오델의 괴상한 발음, 3음절은 벤 하워드, 5음절은 아델, 4음절은 키언, 8음절은 플로렌스, 500음절은 마커스 멈포드’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독창적이지 않다는 것이죠.

 

Tom Odell의 정규 음반 소니뮤직코리아 제공


 또 ‘이 22살짜리 치체스터 출신(오델)은 불쌍하고 잘못 길이 들었는데, 유명인이 되기를 동경하다가 잘못해서 헝가리 출신 창녀를 밀매하는 업자 같은 음악 기획사의 손아귀에 떨어진 것 같다’고 했습니다. 또 ‘오델은 아마도 매우 전염성 강한 음악적 매독 같이 2013년도에도 잘 나갈 것’이라고까지 썼습니다. ‘인기는 끌겠지만 성병 같은 음악’이라는 엄청난 악평입니다.

 

 비행기 파일럿인 오델 아버지는 분을 참지 못하고 이 잡지에 전화로 항의했습니다. 물론 NME는 그 평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홈페이지에 0/10점 평점과 함께 그대로 걸려 있습니다.

 

Tom Odell 소니뮤직코리아 제공


 하지만 음반이 시장에 풀리면서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26일 영국 ‘오피셜 차트 컴퍼니’ 집계에서 이 <롱 웨이 다운>이 음반 차트 1위를 차지한 것입니다. 그것도 지난주 나온 카니에 웨스트의 초강력 신보 <이저스(Yeezus)’를 밀어낸 것입니다. 오피셜 차트 컴퍼니사는 “주의 중간이지만 <롱 웨이 다운>은 2~5위까지 음반 모두 합친 것만큼 팔렸다”고 밝혔습니다.


 오델을 발굴한 릴리 알렌은 NME의 악평이 나온 뒤 자신의 트위터 팔로어 400만명에게 “오델 음반을 사서 그에게 용기를 줘달라”고 썼습니다. 결국 오델이 NME에게 멋지게 한방 먹인 것입니다.


 톰 피터 오델은 어려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열세살 무렵 곡을 쓸 수 있게 됐습니다. 요크 대학에 입학하려던 그는 학문을 포기하고 리버풀의 한 음악단과대학에 응시했습니다. 그는 거기서도 배울 것을 찾지 못하고 그만뒀습니다.


 일찌감치 공연 무대에 선 그를 눈여겨 본 이가 바로 콜럼비아 레코드사 계열사인 릴리 알렌의 음반사 ‘인 더 네임 오브’ A&R 관계자입니다. A&R은 ‘아티스트 앤 레퍼토리(Artist & Repertoire)’ 약자로 음악가와 곡을 관리하는 부서입니다. 이 관계자는 릴리 알렌을 공연장으로 직접 데려와 오델을 보여줬습니다. 알랜은 “나는 원래 싱어 송 라이터 유형의 뮤지션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는 달랐다. 데이비드 보위를 상기시킬만큼 힘이 넘쳤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싱글 곡 ‘언아더 러브’가 나왔고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피아노를 내세우는 ‘피아노 팝’이면서 우수에 찬 목소리이 귀를 사로잡습니다. 그는 영국 특유의 사투리가 섞인 발음을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금발의 이 미청년은 결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미디엄 템포 곡들로 시종일관 생을 노래합니다. 요절한 미국 가수 제프 버클리를 연상시키는 곡들도 있습니다. 국내 음악 평론가들도 ‘아델의 남성 버전’(배순탁 <배철수의 음악 캠프> 작가), ‘새로운 피아노맨의 등장’(밴드 ‘불싸조’의 한상철) 등 칭찬했습니다.


 슬픈 가스펠 같은 ‘아이 싱크 이츠 고잉 투 레인 투데이’, 벤 폴츠 파이브를 연상시키는 ‘아이 노우’, 경쾌한 피아노 록 ‘홀드 미’, 매력적 목소리를 들려주는 ‘언아더 러브’ 등을 담고 있습니다.
 


Posted by 최우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좋아하시나요? 영국 출신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인 핑크 플로이드는, 제가 좋아하는 밴드 다섯을 꼽히면 반드시 들어갈만큼 좋아합니다.

 

  핑크 플로이드는 그간 세계적인 디지털 음악 흐름에 ‘역행’해왔습니다. ‘비틀스(the Beatles)’도 CD나 LP뿐만 아니라 온라인을 통해 음악을 다운로드받게 하거나 스트리밍(라디오 듣듯 온라인상에서 듣는 것)토록 해왔습니다. 하지만 핑크 플로이드는 이를 거부해왔죠. 자신들 음악은 한곡 한곡이 아니라 음반 전체를 콘셉트 개념으로 만든 것이어서, 들을 때에도 전체를 들어야 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이 때문에 이들 판권을 가진 EMI가 미국 음원 유통사인 ‘스포티파이’와 2011년 계약을 맺었을 때에도 핑크 플로이드 곡들은 서비스 목록에서 빠졌습니다. 앞서 2010년 핑크 플로이드는 EMI가 아이튠즈에 노래를 한 곡씩 팔도록 허용하자 고소하기도 했답니다.

 

 그런 더 이상 그들도 대세를 거스르지는 못하나 봅니다. 핑크 플로이드가 최근 EMI 측에 스포티파이에 노래를 서비스할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대신 조건을 하나 내걸었죠. 그들의 1975년 음반 <위시 유 워 히어(Wish You Were Here)>의 같은 이름 곡 ‘위시 유 워 히어’가 100만번 스트리밍되면 다른 곡들도 디지털 유통망에 풀겠다는 것입니다. 이 곡은 사흘도 안돼 100만건 스트리밍됐습니다. 이에 이들 노래는 스포티파이를 통해 들을 수 있게 됐습니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디지털 음원으로 듣기 좋은 핑크 플로이드의 10곡을 선곡했습니다.


 처음 꼽힌 곡은 ‘시 에밀리 플레이(See Emily Play)’입니다. 1967년 싱글곡으로 창립 멤버 시드 배릿이 활동할 때의 사이키델릭 곡이죠. 핑크 플로이드는 이 곡으로 처음으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두번째 곡은 1968년 음반 <어 소서풀 오브 시크리츠(A Saucerful of Secrets)> 수록곡인 ‘리멤버 어 데이(Remember A Day)>로 키보드 주자 리처드 라이트가 지은 곡입니다. 슬라이드 기타와 몽환적 키보드 연주 등 당대의 사이키델릭 곡 특질을 고스란히 안고 있습니다.


 세번째는 1969년 음반 <움마굼마<Ummagumma)>의 ‘그랜트체스터 미도우스(Grantchester Meadows)’로 로저 워터스의 어쿠스틱 기타가 이끄는 잔잔한 발라드입니다. 연주 동안 새 소리가 계속나는 등 당시 클래시컬 음악에서 시도되던 구체음악 형식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움마굼마

 

 

 네번째 곡은 <아톰 하트 마더(Atom Heart Mother)> 음반에 나오는 ‘팻 올드 선(Fat Old Sun)’입니다. 데이비드 길모어의 나른한 목소리와 슬라이드 기타가 아련한 느낌을 줍니다. 이 음반 커버를 보시면 아무 표시도 없이 젖소 한마리가 물끄러미 청자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다섯번째 곡은 1971년 음반 <메들(Meddle)>에 들어 있는 23분짜리 대곡 ‘에코우스(Echoes)’입니다. 초반에 다소 점잖게(?) 시작되지만 중반 이후 다양한 음향 효과와 이들 4인의 기교가 녹아들은 ‘진짜배기’ 프로그레시브 록의 진수를 들려줍니다.


 여섯번째 곡은 이들 최대 히트 음반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The Dark Side of The Moon)> 수록곡 ‘브레인 대미지(Brain Damage)’입니다. 데이비드 길모어와 로저 워터스의 노래와 연주, 절규하듯 하는 여성 보컬이 귀를 잡습니다. 이 음반은 미 ‘빌보드’에서 최장 기간(총 741주) 음반 차트에 올랐죠. 음반 커버에 그려진 빛 한줄기가 통과하는 프리즘은 꽤나 유명합니다.

 

 일곱번째 곡은 핑크 플로이드가 음원 유통의 조건으로 내걸었던 ‘위시 유워 히어’로, 1975년 동명 음반에 들어 있습니다. 초반에 라디오 주파수 잡는 듯한 잡음이 들리고, 프랑스 출신 재즈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그라펠리 연주가 살짝 나옵니다. 이어 데이비드 길모어의 어쿠스틱 연주와 노래가 들리죠. 정신병 등으로 밴드를 떠난 시드 배릿을 그리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제목은 고등학교 때 배운 가정법 과거이죠(ㅎㅎ). 즉, I wish you were here = I'm sorry that you are not here.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 위시 유 워 히어

 

 

 

 ‘간단, 저항, 오직 전진’만을 내세우는 펑크 음악이 몰아 닥친 1977년에도 핑크 플로이드는 프로그레시브 록을 고집하며 음반 <애니멀(Animal)>을 냈습니다. 이 음반 수록곡 ‘도그스(Dogs)가 여덟번째 곡으로 꼽혔습니다. 17분짜리 이 곡에서 이익 만을 쫓는 사업가를 개에 비유하고 있답니다. 보코더(사람 목소리를 기계음처럼 변화시켜주는 장치)로 개의 소리를 내고 있죠.

 
 아홉번째 곡은 이 밴드의 대표적 음반 <더 월(the Wall)> 수록곡 ‘컴포터블리 넘(Comfortably Numb)’입니다. 이미 앙숙이 된 데이비드 길모어와 로저 워터스의 최대 협업 작품으로 꼽힙니다. 핑크 플로이드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오페라> 등에 나타난 ‘소외효과’ 개념을 도입한 곡이기도 합니다. 또 핑크 플로이드 라이브 공연 때 단골 연주 곡이기도 합니다. 요즘은 그래서 로저 워터스 보컬보다는 데이비드 길모어 보컬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곡은 로저 워터스 탈퇴 이전 마지막 음반 <파이널 컷(The Final Cut)>에 들어 있는 ‘유어 포서블 패스츠(Your Possible Pasts)’입니다. 사실상 로저 워터스 개인 음반처럼 돼, 핑크 플로이드 마니아들은 높게 쳐주지 않지만 워터스 개인 역량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나중에 워터스가 낸 솔로 음반, 이를테면 <콘스 앤드 프로스 오브 히치하이크> 등과 비교해보면, 아무래도 핑크 플로이드 영향이 더 남아 있는 이 <파이널 컷>이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워터스의 코맹맹이 소리와 리처드 라이트※의 키보드 연주가 돋보입니다.

 

 (※'플로이디언'님께서 이 음반 만들 때에는 릭 라이트가 떠났다고 지적하셨습니다. 로저 워터스와 불화 때문이라고요. 확인결과 그게 맞습니다. 저도 오늘 그 사실은 처음 알았습니다. 이 음반 건반은 마이클 카멘과 앤디 브라운이 맡았네요. 역시 강호에는 은거 고수님들이 많습니다.)

 

 

Posted by 최우규

 

 43년이면 아이가 자라서 낳은 아이가 초등, 중학교에 갈만한 세월입니다. 그만큼 간격을 뛰어넘어 정상을 달리는 밴드가 있습니다. 얼마 전 소개한 영국 헤비메탈 밴드 ‘블랙 사바스’의 최신 정규 음반 <13>입니다.

 

 <13>은 18일 영국 ‘오피셜차트 컴퍼니’가 집계한 UK차트 음반 부문 ‘톱100’에서 수위에 올랐다고 음악 전문지 ‘롤링 스톤’이 보도했습니다. 이는 블랙 사바스가 1970년 두번째 음반 <파라노이드>로 음반 부문 1위에 오른 지 42년 8개월만입니다. 영국 음반 차트에서 정규음반으로 가장 오랜만에 1위에 오른 기록입니다.

 

 처음 구성됐을 당시 멤버인 오지 오스본이 35년 만에 보컬을 맡은 블랙 사바스는 최근 19번째 정규집을 냈습니다. 기타는 토니 아이오미, 베이스 기타는 기저 버틀러가 맡았다. 하지만 드럼 연주는 계약 문제 때문에 원래 멤버인 빌 워드 대신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과 ‘오디오 슬레이브’ 출신 브래드 윌크가 맡았습니다.

 

  이전의 가장 오랜만에 1위에 오른 음반은 포크의 전설 밥 딜런이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1970년 <뉴 모닝>으로 1위를 차지했고 38년 뒤인 2009년 <투게더 스루 라이프>로 1위에 올랐습니다. 3위는 지난달 19일 정상에 오른 로드 스튜어트의 음반 <타임>으로, 1976년 <어 나이트 온 더 타운>에 이후 37년 만입니다. 로드 스튜어트는 34년 전인 1979년에도 음반 차트 1위를 했었지만, <그레이티스트 히츠 볼륨 1(Greatest Hits Volume 1)>라는 편집 음반으로 오른 것입니다.

 

오지 오스본

오지 오스본은 영국의 유력 대중음악 주간지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와 인터뷰에서 “굉장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못한 일을 우리가 해냈다”며 “그런데 로드(스튜어트)도 우리만큼 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또 “요즘 나오는 것들은 엉터리 제품들”이라며 “하지만 우리나 로드, 엘튼 존 같은 이는 뭔가 다르다. 우리들은 이제 장인의 기술을 안다”고 자평했습니다.

 

 블랙 사바스는 지난 여름 ‘베스트 오브 블랙사바스’ 편집음반으로 27위에 오른 바 있습니다.

 

 이번 영국 음반 차트 2위에는 영국 모던록 밴드 ‘오아시스’ 출신 리암 갤러거 등이 만든 ‘비디 아이’의 음반 <비(Be)>가 차지했습니다. 3위는 로드 스튜어트의 음반 <타임>입니다.

 

영국 밴드 '비디 아이'의 새 음반 <비(Be)>. 음반 표지 모델의 가슴 부분을 모자이크 처리함.   로드 스튜어트의 새 음반 <타임>

 

 

 

 

Posted by 최우규

 “에험”하고 목을 고르는 소리가 나고 기타 전주가 나오고, 멜로트론 소리가 몽롱하게 흘러 나오던 노래 ‘원더 월’, 떠오르십니까. 1990년대 중반에 참 좋아했습니다. 영국 모던 록의 선두주자였던 ‘오아시스’는 그렇게 리암 갤러거의 목소리로 기억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애가 안좋을 수 있을까요. 다섯 살 터울인 노엘 갤러거와 동생 리암 갤러거는 사사건건 싸우고 다투다가 결국 갈라섰습니다. 오아시스 팬들의 만류를 뒤로 하고요.

 

노엘(오른쪽), 리암 갤러거 형제

 

 그 뒤 리암 갤러거는 남은 오아시스 밴드 멤버를 모아 밴드를 만들었습니다. 이름하여 ‘비디 아이’로, 구슬같은 눈입니다. 2년전 ‘디퍼런트 기어, 스틸 스피딩’이라는 음반을 냈습니다.

 

 그리고 13일 새 음반 ‘비(Be)’가 발매됐습니다. ‘오아시스’ - 노엘 갤러거 = ‘비디 아이’. 이번 음반 <비>는 이 공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노엘의 텁텁하지만 매력있는 목소리는 빠졌지만 리암의 좀더 매끈한 목소리는 그대로입니다. 브리티시 록의 영화를 고스란히 재연하는 노선도 지키고 있습니다.

 

비디 아이 두번째 음반 커버

 

 리암 갤러거는 음악전문지 Q매거진과 인터뷰에서 “이번 음반이 망하면 앞으로 더 이상 레코드를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자신이 있는 걸까요. 우선 음반 커버 사진부터 논란을 일으킬 것으로 보입니다. 벗은 상반신의 여성이 누워있는데, 손으로 가슴을 가렸지만 젖꼭지가 노출돼 있습니다.

 

 

  사진작가 해리 페치노티 작품으로, 부인을 찍었습니다. 페치노티는 1960, 70년대 영국 런던을 대표하는 잡지 <노바>의 예술편집장 겸 사진작가로 활동했다고 합니다.

 

 그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이번 음반에는 1960, 70년대 영국의 주요 록 계에서 유행했던 음악이 재연되고 있습니다. 바로 사이키델릭과 스페이스 록, 프로그레시브 록입니다. 다만 이를 고스란히 답습하려고 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곳곳에서 기울였습니다. 혼 섹션의 과감한 도입 등이 그렇습니다.

 

 첫 곡 ‘플릭 오브 더 핑커>에는 혼 섹션이 강하게 부각됩니다. 늘쩍지근한 리암 갤러거 목소리에다 과거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핑크 플로이드’가 시도했던 구체음악 요소도 삽입돼 있습니다. 곡 후반부에 남성 목소리가 들립니다. 이란 출신 영화배우 케이반 노박의 목소리로, 전위극 <마르키 드 사드의 연출 하에 사랭통 정신병원의 환자들이 연기한 장 폴 마라의 박해와 암살>에서 발췌했다고 합니다.

 

 두번째 곡 ‘솔 러브’는 어쿠스틱 기타와 드럼, 베이스로 시작합니다. 건조하면서 무심한 목소리로 나른합니다. 배경음에 1960년대 사용된 사이키델릭 록의 요소가 많이 들어있습니다. 세번째 곡 ‘페이스 더 크라우드’는 초기 로큰롤처럼 단순한 가락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두번째 싱글로 내놓은 ‘세컨드 바이트 오브 디 애플’는 울리는 소리와 찌그러트린 보컬이 인상적입니다. 혼 섹션도 마치 디스토션 걸린 기타 같이 연주됩니다.

 

 이후 곡들은 과거 거장들에 받치는 오마주 같습니다. ‘순 컴 투모로우’는 블루지한 기타 솔로가 강조돼 있습니다. 지미 헨드릭스 연주 풍으로, 와우와우 페달을 사용해 소리에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또 ‘이즈 라이트’와 ‘아임 저스트 세잉’은 이들이 ‘오아시스’ 시절부터 해왔듯 비틀스 소리를 재연해 놓았습니다. 리엄 갤러거 목소리는 흡사 존 레넌을 흉내내듯 노래했습니다. ‘샤인 어 라이트’는 ‘롤링 스톤스’처럼 풍부한 코러스와 키보드, 현악기 음 등이 골고루 배치돼 있습니다. ‘스타트 어뉴’에서는 무디 블루스나 바클리 제임스 하비스트 같은 1970년대 영국의 잔잔한 프로그레시브 록 사운드를 구사하고 있습니다.

 

 ‘도운트 브라더 미’는 형인 노엘 갤러거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괴롭히다(bother)’라는 단어를 ‘형(brother)’라고 바꿔 놓은 것입니다. 어쿠스틱 기타가 주도하는 발라드 곡이지만 뒤로 갈수록 키보드를 넣어 ‘호크윈드’ 밴드 같은 스페이스 록 분위기를 내고 있습니다. ‘불룸 피겨드’는 잔잔한 포크 록입니다.

 

영국 밴드 '비디 아이'

 이 음반에 대해 리암 갤러거는 “<(왓츠 더 스토리)모닝 글로리?> 이후 오아시스가 만들어야 했던 작품”이라고 했습니다. 그들 최대 히트 음반의 미래, 궤적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왓츠 더 스토리)모닝 글로리?> 음반만큼 중독성 있고 감칠 맛나는 멜로디는 없지만, 전통과 정통을 갖추려고 노력한 것 같습니다. 특히 리암은 그의 형 노엘에게 “자 들어봐. 내가 이겼지?”라고 놀리는 듯합니다. 불혹(不惑)을 넘어서서도 말입니다.

Posted by 최우규

  얼마전에 '아날로그' 기기에 대해 기사를 쓴 적이 있었는데요, 최근 조용필 등 가수들이 CD나 디지털 음원 이외에 LP를 내고 있습니다. 왜 이처럼 퀘퀘묵은 옛 음악 재생 매체가 다시 인기를 끌까요. 미국 뉴욕타임스도 이와 관련된 기사를 내놓았습니다.

 

   뉴욕타임스는 9일(현지시간) 미국내 LP산업이 부활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유명 가수들이 속속 LP를 새로 내고 LP 생산 공장도 늘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LP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음반 판매량 조사업체 닐슨 사운드스캔에 따르면 프랑스 전자음악 듀오인 ‘다프트 펑크’가 5월 중순 새 음반 <랜덤 억세스 메모리>를 냈을 때 첫주 판매량 33만9000장 중 1만9000장(6%)이 LP였다고 합니다.


 20대를 주요 팬으로 하는 그룹들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록 밴드 ‘더 내셔널’은 최근 음반 <트러블 윌 파인드 미> LP가 7000장이 나갔습니다. 밴드 ‘뱀파이어 위크엔드’의 <모던 뱀파이어스 오브 더 시티> 음반도 1만 장 나갔습니다. 뉴저지 출신 인디 밴드 ‘프런트 바텀스’도 자신들의 페이스북에 주문받은 LP를 옮겨 쌓는 사진을 올려놓았습니다.

인디밴드 ‘프런트 바톰스’가 자신들의 LP를 옮기고 있다. 페이스북 캡쳐

 

 비틀스와 롤링스톤스, 밥 딜런 등 대가들의 옛 명반들도 새로 LP로 찍혀져 팔리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만 LP 생산 공장은 10여 곳을 넘어섰습니다. 2000년 ‘브루클린 포노’사를 연 토마스 버니치는 “1년에 44만 장 정도를 찍는다”고 밝혔습니다. 캘리포니아 카노가 파크에 위치한 ‘레인보 레코즈’ 사장 스티브 쉘던은 “연 생산량이 600만에서 720만 장 정도 된다”고 말했습니다.(생산량이 그렇다는 것이지, 그만큼 찍어낸다는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캔자스 살리나에서 2011년 문을 연 ‘퀄리티 레코드 프레싱스’ 챠드 카셈 사장은 “광고하느라 단 1달러도 쓰지 않았지만 공장을 연 날부터 바쁘다”고 말했습니다. CD가 LP를 대체하던 때 LP 공장은 다른 기기를 만드는 쪽으로 업종을 변경했습니다.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프레스 기기는 1982년에 제작된 것입니다. 몇몇 공장들은 새 기기를 들이려고 알아보고 있으나 가격이 문제입니다. 한 대에 50만 달러(약 5억7000만원) 정도나 된다고 합니다.

 

미 LP제조사 ‘퀄리티 레코드 프레싱스’의 작업장면. 홈페이


 LP 판매는 어떨까요. 닐슨 사운드스캔의 데이비드 바쿨라 부사장은 “LP가 지난해 미국에서 460만 장 정도 판매됐는데 2011년에 비해 18% 많다”며 “이는 전체 음반 시장의 1.4%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올해 550만 장 정도가 팔릴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하지만 생산자나 소매업자, 비평가들은 닐슨의 예측은 일부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카셈 사장이나 애스터 사장은 미국에서 지난해 2500만 장의 LP가 생산됐다고 밝혔습니다. 또 유럽과 아시아에서 찍힌 제품의 일부는 미국 시장에 들어왔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생산자들은 “CD와 달리 LP는 일방통행식으로 판매됩니다. 음반사는 (CD와 달리)안 팔린 LP의 반품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이 때문에 음반사나 소매상 모두 실제 팔릴 양만 주문한다는 것입니다. 또 LP 표지에는 “보기 흉해서”(카셈 사장) 바코드를 새기지 않기에 판매액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습니다.


 부수적 제품 판매로 LP 시장 상태를 점검해볼 수도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오디오 터닝’은 프로-젝트 턴테이블(LP 재생기)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 하인즈 리흐테네거 사장은 “한 달에 8000대 정도를 팔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미 '어쿠스틱 사운드'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LP들 회사 홈페이지


 시카고의 오디오 마니아 용품 업체인 ‘뮤직 디렉트’도 한 대당 249달러(약 28만3000원) 하는 턴테이블부터 2만5000달러(2840만원) 하는 제품까지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답니다. 판매이사인 조쉬 비자는 “지난해 LP 50만 장, 턴테이블은 수천 대를 팔았다”고 말했습니다. 비자는 “구매자들이 베이비붐 세대의 LP 향수에 걸린 사람들만은 아니다”라며 “우리가 젊었을 때 했듯 젊은이들이 음반을 모으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비자의 다음 발언은 사뭇 의미심장합니다.

  “LP 붐이 예전처럼 생겨날 것을 기대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실제 일어났고 원점으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에게 ‘왜 CD는 안듣느냐’고 물어보면 ‘CD? 아빠가 CD를 들어요. 근데 내가 왜 CD를 듣겠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런 젊은이들에게 이미 CD가 옛 것이고, LP가 최신 유행의 물건이 된 것입니다.  

 

Posted by 최우규

 딥 퍼플-레인보우-블랙 사바스-화이트 스네이크-제퍼-제임스 갱-오지 오스본 밴드-이언 길런밴드-디오…. 선수끼리는 통하나 봅니다. 어느 밴드 하나를 좋아하게 돼 연관 밴드들을 찾다보면 저렇게 끝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분화합니다. 멤버들끼리 오가며 음악적 교감도 하고, 다투기도 합니다. 다들 훌륭한 밴드들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레인보우를 제일 좋아합니다. 저 밴드들 중에서 레인보우의 ‘스타게이저’를 듣고는 ‘뿅’하고 빠져 들었습니다. 오리는 부하한 뒤 처음 본 생명체를 어미로 여기고 따른다는 데, 사람도 처음 좋아하게된 음악이나 가수를 계속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저만 그런가요?)


 저 밴드들 멤버중 로니 제임스 디오, 랜디 로즈, 타미 볼린, 존 로드 등은 이미 타계하셨습니다. 세월이 그만큼 흐른 것이죠.


 다음은 그 중 한 밴드 이야기입니다. 1969년 영국 버밍행에서 4명의 가난한 집 자제들이 밴드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보컬에는 존(오지) 오스본, 기타에는 안소니(토니) 아이오미, 베이스에 테렌스(기저) 버틀러, 드럼에 윌리엄(빌) 워드였습니다. 영국은 물론 세계 록 음악계를 레드 제플린, 롤링 스톤스, 딥 퍼플, 예스, 킹 크림슨 등 슈퍼 밴드들이 호령하던 때였습니다. 일부는 이즈음 태동했고, 일부는 이미 최고 밴드로 군림했습니다.

 

블랙 사바스 홈페이지


 4명의 청년은 당초 ‘폴카 툴크’라는 이름을 내세웠다가 다시 ‘어스(지구)’로 개명했으나, 같은 이름의 밴드가 있는 것을 알고 ‘블랙 사바스’로 바꿨습니다. 마리오 바바 감독의 공포영화에서 이름을 따온 것입니다.


 밴드 분위기를 고민해온 기저 버틀러는 음악 자체를 공포스러운 음악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버틀러는 노래 가사를 쓰는 등 블랙 사바스 콘셉트를 구성해온 사람입니다. 오지 오스본은 최근 ‘롤링 스톤’과 인터뷰에서 “(밴드를 만들 당시)호러 뮤직을 만들기로 했었다”고 회고했습니다.


 마침 오지 오스본은 음산하고 얇은 톤의 목소리를 가졌습니다. ‘파라노이드’ ‘굿바이 투 로맨스’ 등 들어보시면 음산함과 쓸쓸함을 그렇게 잘 드러낼 수 없습니다.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손가락 일부가 잘린 토미 아이오미는 다른 유명 밴드 기타주자와 달리 빠른 피킹이나 아르페지오를 할 수 없었답니다. 대신 느리고 낮은 단조에 찌그러지는 소리를 냈죠. 하지만 전화 위복처럼 밴드 분위기에 잘 맞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내놓은 첫 음반 <블랙 사바스>는 평단의 호응을 받지 못하지만, 2집 <파라노이드>가 대박을 쳤습니다. 이후 이들은 6개의 음반을 더 냈지만 오지 오스본이 술과 약물에 빠지면서 밴드에서 해고가 됐습니다. 이후 로니 제임스 디오가 보컬로 한 시대를 풍미했고, 데이브 도나토, 글렌 휴즈, 레이 길런, 토니 마틴 등이 보컬로 뒤를 이었습니다.


 그리고 35년 만에 오지 오스본과 토니 아이오미, 기저 버틀러가 다시 뭉쳐 블랙 사바스 본래의 사운드를 살린 음반을 냈습니다. 1978년 <네버 세이 다이> 이후 처음입니다.


 19번째 정규집 <13>에는 계약 문제로 드럼 연주는 빌 워드 대신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오디오 슬레이브’ 출신 브래드 윌크가 맡았습니다.

 

블랙 사바스 새 음반 <13> 유니서벌뮤직코리아 제공


 <13>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 음반 발표한 날짜(2월13일), 이번 음반 발표연도(2013년)을 가리킵니다. 물론 블랙 사바스 특유의 사악하고 음울한 상징으로서 13, 즉 성서에 나오는 짐승의 수, 서양인이 불길하다고 여기는 13일의 금요일 등도 은유하고 있습니다.


 소리는 여전합니다. 음반은 8분짜리 대곡 ‘엔드 오브 더 비기닝’으로 시작합니다. 이는 2013년 5월 TV시리즈 <CSI> 마지막 편에서 선보인 것입니다. 이들은 “로봇 유령이 될 필요는 없어/인간 숙주에 점령당한 채”라며 물질 문명을 한탄했습니다.

 

기저 버틀러, 오지 오스본, 토미 아이오미(왼쪽부터) 등 블랙 사바스 현재 멤버들 유니서벌뮤직코리아 제공


 밴드 역사상 처음으로 ‘빌보드 헤리티지 록’과 ‘방송 차트’ 1위를 안겨준 ‘갓 이스 데드?’, 묵직하면서도 현란해 ‘로우너’ 등을 담고 있습니다. ‘자이트가이스트’는 이전 음반 <파라노이드>의 ‘플래닛 캐러반’을 연상시킵니다.

 

 특히 8분짜리 대곡 ‘갓 이스 데드?’는 논란을 일으킬 법 하지만 결국 “나는 신이 죽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는 가사로 끝납니다.


  어찌 보면 그들 답지 않게 정치적 타협을 한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그들도 나이를 먹은 것일까요?

 

 물론 음악만 들어보면 종교인들이 질색할만큼 무겁고 음산합니다. 헤비메탈의 원형을 제시했던 이들이 30여년만에 다시 제시하는 헤비메탈 음악의 과거와 현재 모습입니다.

 

 해외 평단 평가도 나쁘지 않습니다. 별점에서 3개 반에서 4개쯤 받고 있습니다.

Posted by 최우규

 

 

 한참 프로그레시브 록에 빠져있을 때 들은 조지 벤슨과 얼 클루의 콜레보레이션 음반은 충격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음악이"라고, 마치 개안한 듯했습니다. 록의 속주를 무색케하는 핑거링, 유연함, 재즈 특유의 블루노트가 만들어내는 묘한 불협화음 속의 조화, 따라서 두드려 보면 엇박으로 빗나다가 어느 순간 맞아 떨어지는 싱코페이션(음 당김) 등. 연주 자체가 경이로웠습니다.

 

 조지 벤슨과는 그렇게 처음 닿았지만, 그에게 빠지게 된 것은 카펜터스의 노래로도 유명한 'This Masquerade'라는 곡 때문입니다. 노래도 정말 멋지지만, 기타 연주도 훌륭하고요. 나중에 <브리징>이라는 음반에서 그의 진수를 들었지만요. 그 조지 벤슨 이야기입니다.

 

조지 벤슨

 

 

 "재즈는 어려운 장르다”라는 음악 팬들이나, “요즘 재즈 음반은 극단적 심미주의로 간다”는 재즈팬 모두를 만족시킬만한 음반이 나왔습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라프는 재즈 가수 겸 기타리스트 조지 벤슨이 재즈 가수 겸 피아니스트 고(故) 냇 킹 콜의 헌정 음반 <인스피레이션>이 4일 나온다고 밝혔습니다. 국내 들어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텔레그라프는 홈페이지에 음원들을 걸어 놓았습니다. 아마 CD가 나오면 내려질 것 같습니다.

 

 이 음반은 스윙과 모던 재즈 시대에 중요한 연주자로 한 획을 그은 냇 킹 콜의 히트곡을 한 세대 후배 뮤지션인 조지 벤슨이 재해석한 것입니다.

 

조지 벤슨의 <인스피레이션 : 어 트리뷰트 투 냇 킹 콜> 음반


 벤슨은 “내가 젊어서 음악 경력을 시작할 때 가장 큰 영감을 준 연주자가 콜”이라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조지 벤슨은 8살의 나이에 콜의 히트곡인 ‘모나리자’를 녹음했죠. 그 노래를 이 음반의 첫 곡으로 실었습니다.


 이 음반의 미덕은 두 거장의 소통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뛰어난 아티스트들이 조지 벤슨을 돕고 있습니다. 그래미 상의 재즈, 클래식 두 부문을 동시 제패했으며 퓰리처상을 받기도 한 트럼펫 주자 윈튼 마살리스, 여배우이자 싱어송라이터로 뮤지컬 <위키드>로 토니상을 받은 이디나 멘젤, 마이클 잭슨 추모 공연 때 마지막 곡 ‘힐 더 월드’를 불렀던 주디스 힐이 목소리를 보탰습니다.


 벤슨은 수년전 냇 킹 콜 헌정 라이브 공연을 한 뒤 이번 음반을 구상했다죠. 이번 음반은 42인조 연주단인 ‘헨리 맨시니 인스티튜트 오케스트라’의 협연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벤슨은 “난 매 순간 순간을 느끼고 있다”고 감격스러워했답니다.

 

냇 킹 콜

 음반에서 조지 벤슨이 8살 때 부른 첫곡 ‘모나리자’에 이어 빅 밴드의 유연한 스윙과 조지 벤슨의 꾸밈없는 기타가 조우하는 ‘저스트 원 오브 도스 띵스’가 뒤를 잇습니다.


 세번째 곡은 냇 킹 콜과 딸 나탈리 콜의 협연으로 유명해진 ‘언포게터블’입니다. 1951년 노래로, 딸 나탈리는 아버지 사후인 1991년 원곡의 일부를 지우고 자신의 목소리를 더해 듀엣 곡처럼 만들었습니다. 정말 둘이 얼굴 마주보고 부른 노래처럼 기~가 막힙니다.

 

조지 벤슨은 이번 음반에서 원튼 마살리스의 트럼펫 연주를 도입했습니다. 아련한 발라드로 부르다가 곡 말미에 보사노바로 흥겹게 전환했죠. 특히 조지 벤슨 특유의 스캣(“두비 두비 두바”처럼 뜻 없이 곡조를 흥얼거림)과 기타 합주가 귀를 잡아 끕니다.

 

 대중적인 인기를 끈 ‘웬 아이 폴 인 러브’는 조지 벤슨이 이디나 멘젤과 함께 노래를 불러 감미로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스마일’에서는 독일의 대표적 트럼펫 주자 틸 브뢰너가 돕고 있구요. ‘투 영’에는 주디스 힐이 노래를 함께 부릅니다. 마지막 곡은 8살이 아닌 현재의 조지 벤슨이 부른 ‘모나리자’입니다.


 냇 킹 콜은 1930, 40년대 스윙과 모던 재즈시대에 피아노 연주로 당대 및 후대 연주자들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스윙 재즈의 화려함과 모던 재즈의 박자감을 함께 살리는 그의 주법은 이후 오스카 페터슨이나 빌 에반스 등이 계승했다는 평가를 받는다죠.


 콜은 1950년대 녹음했던 ‘모나리자’가 차트 넘버원을 기록하면서 가수 쪽에 더 무게를 두고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당대 재즈 아티스트 중에는 그처럼 연주자에서 가수로 탈바꿈해 인기를 얻은 이들이 많습니다. 루이 암스트롱도 그랬구요. 인기가 아무래도 앞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 이들에게 집중되니까 그랬다더군요. 콜은 1960년대 이후 크루너(프랭크 시내트라, 팻 분, 앤디 윌리엄스처럼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가수)로서 명성을 쌓았습니다. 하지만 재즈계에서는 “백인 가수 흉내나 낸다”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아카데미, 그래미 상을 받았고, 1965년 폐암으로 사망했습니다.

 

   딸 나탈리도 아버지를 따라 음악을 했고, 훌륭한 노래 솜씨를 들려줍니다. 리듬앤드 블루스와 재즈에 기반을 둔 팝 음악으로 가수로서 성공을 거뒀습니다.

 11살 때 데뷔했고, 1975년대 중반 그녀는 리듬 앤 블루스 음반으로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1980년대 아버지 곡을 갖고 음반을 내 인기를 끌었습니다. 1991년과 2008년 자그마치 20년 텀을 두고 <Unforgettable: With Love>, <Still Unforgettable>로 각각 그래미상을 받았습니다. 

 

 조지 벤슨도 냇 킹 콜 전철을 밟았습니다. 우연인지. 그가 10대 시절인 1962년 잭 맥더프 밴드에서 연주했을 때 찰리 크리스천, 웨스 몽고메리 등을 이을 재즈 기타리스트로 언급됐습니다.


 그가 대중적 인기를 얻은 것은 첫 솔로 음반 <브리징>을 냈을 때입니다. 속주와 스윙감, 멜로디 작법 등 뛰어난 연주력 못지 않게 빼어난 노래 실력을 뽐냈습니다. 아직 이 음반 못들어보신 분에게 '강추'합니다. 


  이후 리듬 앤 블루스 느낌이 들어간 팝 음악을 주로 다루며 연주자보다는 가수의 길을 걸었습니다. 소위 정통 재즈 뮤지션들이 아쉬워하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팝의 시대가 가고 대중음악계가 힙합과, 록, 댄스 등으로 갈아타면서 조지 벤슨은 다시 재즈로 방향을 바꿔 기타와 노래를 병행하는 은반을 내게 됩니다.

 

 이번 음반은 음악 팬에 골고루 소구토록 만들어졌습니다. 모던-비밥-쿨-퓨전-아방가르드 등 다양하지만 재즈 골수 팬이 아니라면 접근하기 어려웠던 이들에게는 초기 재즈 빅밴드의 흥겨움과 발라드의 달콤함을 곁들여 전달합니다. 골수 팬이라면 조지 벤슨의 유연한 노래와 기타 연주, 윈튼 마살리스 등 뛰어난 연주자들의 기량도 함께 맛볼 수 있어 좋습니다.


 재즈 초심자, 팬 모두 좋아할 법한 음반입니다.
 
<Inspiration: a Tribute to Nat King Cole>
1. Mona Lisa - Lil’ Georgie Benson(age 8)
2. Just One Of Those Things
3. Unforgettable(featuring Wynton Marsalis)
4. Walkin’ My Baby Back Home
5. When I Fall In Love(featuring Idina Menzel)
6. Route
7. Nature Boy
8. Ballerina
9. Smile(featuring Till Bronner)
10. Straighten Up And Fly Right
11. Too Young(featuring Judith Hill)
12. I’m Gonna Sit Right Down And Write Myself A Letter
13. Mona Lisa

Posted by 최우규

 김현철 1집, 이승렬 1집을 처음 들었을 때 꽤나 놀랐습니다. “와, 이런 음악도 있네.” 그냥 노래가 좋아서 뿐만 아니라 특이해서입니다. 한국 록이나 발라드에 묻은 ‘한국적 달콤함’이 좀 적어서입니다.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특이함, 독특함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한 달 전쯤 들은 이 음반이 그랬습니다. <솔튼 페이퍼>라는 제목의 미니 음반은 독특했습니다. 다른 데서 들어보지 못했던 작법과 편곡으로 시종일관하더군요.


MYK 미니 음반 <솔튼 페이퍼>



 국내 밴드라는데 처음 들어봤고, 누군가 하고 찾아봤더니 언더그라운드 힙합 쪽에서는 꽤 실력있는 ‘선수’라고 하더군요. 근데 음악은 힙합이 아닌. 나중에 보니까 가수 이승환이 그의 노래중 데모 1분을 듣고는 “물건을 찾았구나 싶었고, 단박에 계약을 했다”고 합니다. 9년만에 자신이 대표인 음반 제작사 ‘드림팩토리’에서 신인 가수 음반을 제작했습니다. 힙합 그룹 ‘에픽하이’의 타블로는 “웬만한 뮤지션은 무서워서 만들지 못할 음악을 하는 친구”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주인공은 MYK(29·본명 김윤민)입니다. 이름 약자가 김윤민이면 KYM이어야 하고, 미국 식으로 ‘윤민 킴’이면 YMK일텐데 왜 MYK일까. 소속사에 물어봤더니, 영어 이름이 ‘마이클’이어서랍니다. ‘마이클 윤민 킴’을 MYK로 쓴 겁니다.


 음반 겉장 사진에는 나무와 하늘, 갈대가 보입니다. 어쿠스틱, 아날로그 등 자연의 강조인 셈이죠. 그 뒤쪽에 송전탑이 지나갑니다. 생뚱 맞지만, 어쩌면 이 안에 솔튼 페이퍼의 콘셉트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포크, 모던록, 힙합의 자연스런 조화입니다.


 첫곡 ‘애프터 더 레키지’는 어쿠스틱 기타와 첼로에, 나른한 목소리, 몽환적 느낌을 주는 포크 곡입니다. 빈티지(오래된) 느낌을 내기 위해 낡은 싸구려 기타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프라이드 데이’에는 디제이가 음반을 긁어내는 ‘스크래치’ 소리와 합창의 루핑(드럼과 베이스, 기타 연주를 한 두 마디 만을 계속 반복함) 등 힙합 요소를 넣었습니다.

 ‘모자’는 모던 록이지만, 그 안에 힙합에서 쓰는 그루브함(통통 튀는 느낌)을 섞었습니다. 정말 Modern한 소리가 납니다.

 피아노 소리로 시작하는 ‘하트 스톰’은 영국 브릿팝 밴드 노래 같은 곡입니다. 영국 밴드 ‘콜드 플레이’를 연상시킨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라이브에서 인기를 끄는 곡이라고 합니다.

 전 ‘홈’이라는 곡에서 놀랐습니다. 왠 여성 가수의 애절하고 가녀린 목소리가 귀를 잡습니다. 알고 보니 세계적 힙합 가수 ‘스눕 독’이 조련하는 폴란드 출신 여가수 아이자 라쉬라고 합니다.

 얼마 전 태어난 자신의 아들에게 “세상은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어둡지는 않아. 이따금 어려워보이기는 하지만, 네가 자라면 결국 인생은 멋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고 긍정을 전하는 ‘어텀’은 깔끔한 포크입니다. MYK는 개인적으로 이 노래를 제일 좋다고 꼽았습니다.


 ‘에픽하이’의 타블로가 랩을 하는 ‘러브송’은 ‘솔튼 페이퍼’의 지향을 보여줍니다. MYK가 직접 스크래칭을 했고, 록과 포크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워낙 영어를 잘해서인지, 그리고 힙합을 몸에 익히고 있어서인지, 플로와 라이밍이 기가 막힙니다.


 MYK는 절창 가수는 아닙니다. MBC <위대한 탄생> 같은 데 나가면 좋은 점수를 받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잔잔하면서도 질감 좋은 목소리를 갖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이 음반을 만들면서 프로듀싱, 어쿠스틱·일렉트릭 기타 및 피아노·신디사이저 그리고 퍼커션 연주, 스크래칭, 작사, 작곡, 현악 편곡까지 해냈습니다. 사실상 원맨 밴드인 셈이죠.


 공연 때에는 MYK가 맡고, 기타는 진실, 베이스 김충선, 드럼 송재영, DJ 짱가(장상준)이 밴드로 나서 연주를 합니다.


음반 <솔튼 페이퍼>를 낸 MYK가 5월 21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MYK의 다재다능함에는 그럴 만한 자양분이 있었습니다. MYK는 미 캘리포니아주 마운틴 뷰에서 태어나 21살 때까지 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한국말 발음이 어색합니다. 본인은 꽤 노력하고 있는데 아직 ‘빠다’ 발음이 잘 안빠진다고 합니다. 인터뷰할 때 한국말로 해놓고는 자꾸 옆에 있던 매니저에게 “make sense(말 돼요)?”라고 물어봤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삼성전자 ‘가로본능’ 폰, 목걸이형 MP3플레이어 ‘아이리버’ 등을 디자인한 세계적 디자이너 김영세 이노 디자인 대표입니다. 남들 같으면 음반 홍보할 때 그럴 거 내세울만도 한데, 보도자료 어디에도 없더군요. 김 대표 이야기를 물어봐도, 그저 ‘아들이 아버지 이야기하듯’만 합니다.


 김영세 대표는 대학 시절 한국 저항가수의 상징 김민기씨와 함께 ‘도비두(도깨비 두마리)’라는 통기타 그룹을 만들어 대학가를 풍미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음악과 접했다고 합니다. 조용필, 소방차 등의 음악을 들었다고 합니다.


 MYK는 “부모님 말씀이 제가 말하기 전에 노래를 하고, 걷기도 전에 춤을 췄다고 합니다”라고 하더군요.


 

 MYK는 초등학교 다닐 때인 1994년 너바나, 그린데이 등 그런지 펑크 밴드 음악을 들으며 밴드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장기자랑에도 나갔고요. 중학교 가서는 힙합을 들었습니다. 친구 아버지가 하는 빵집, 자기 아버지 차고 같은 데서 힙합 파티를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에도 음악에 심취했답니다. 아버지는 그가 ‘당연히’ 대학에 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다른 공부가 별로이면 미대를 가보라”고 권하기도 해, 실제 MYK는 미술을 1년 반 정도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첫 자작곡은 고3 때 나왔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무작정 로스앤젤레스로 향했습니다. "음악을 하려면 할리우드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서"라고 합니다. 거기서 예전 밴드 멤버를 불러 모아 음악을 했습니다. 좀 제대로 배워보자고 해서 LA에 있는 '뮤지션스 인스티튜트(MI)'에 들어갔습니다. 이곳은 수년동안 공부하면서 학위를 따는 코스도 있고, 1년 혹은 몇개월 짜리 프로그램도 있다고 합니다. 그는 레코딩 엔지니어링 프로그램 6개월짜리를 이수했습니다.


 이후 아버지의 "한번 한국에 가보라"는 권유로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당시 본인은 'discourage(좌절), hopeless(절망) 상태'였는데, 한국에 들어와서 교포들을 만나서 친구로 사귀는 과정을 통해 많은 에너지를 얻었답니다.

 

 이 때 에픽하이의 타블로를 만났습니다. 타블로는 MYK 사촌 형과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인연이 있었습니다. MYK는 타블로와 첫 대면을 아직도 정확히 기억했습니다. 타블로가 ‘에픽하이’ 3집을 준비하던 때입니다. 스타벅스에서 만났고, 데모 음악을 듣고는 이런 점은 잘한다, 이게 좋다는 식으로 자기 음악을 짚어두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음악적 교류는 언더그라운드에서 밴드와 힙합 고수로 손꼽히게 해줬습니다. ‘에픽하이’에 YMK가 참여해서 제4의 멤버라고도 불립니다. 그리고 그간 자신의 음악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첫 음반을 내게 된 것입니다.


 그의 음악은 당연하게도 취향과 밀접하게 닿아 있습니다. 펄 잼, 앨리스 인 체인, 사운드 가든, 그린데이 같은 펑크 폭 밴드부터 3·11, 키드 쿠디, 너드 같은 얼터너티브 힙합 등을 좋아합니다. 포크도 좋아합니다. 그는 최근 음반 공개행사 때 “김민기 선생님이 내 롤 모델”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왜 이번 음반 이름을 'salt and pepper'(소금과 후추. 양식의 대표적 양념)도 아닌 'Salt'N Paper'라고 지었는지 물었습니다. 이승환이 만들어준 이름이라고 합니다. MYK는 "자연, 날 것, 아날로그 그런 느낌이 나서 참 좋았다"라고 말했습니다.


음반 <솔튼 페이퍼>를 낸 MYK가 5월 21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그에게 그의 음반을 잘 듣는 법을 요청했습니다.

 “어. 이런 거 잘 못하는데요. 암튼 비오는 날, 야외에서 맨발로, 혹은 바닷가에서, 아무튼 자연 속에서 우울하거나 주관적이 될 때 생각이 많아져서 예전 생각하고 싶을 때 그럴 때 들어보세요.”


 최근 서울재즈페스티벌 무대에 섰던 그는 이번주 KBS2 음악 프로그램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가 녹화를 합니다. 또 8월 경기 이천시에서 열리는 지산 월드 록 페스티벌에도 설 예정입니다. 앞으로 그의 무대를 기대해봅니다.

 

Posted by 최우규

 현란하면서도 강렬한 키보드 연주가 도입부를 이끌고, 곧이어 깊고 거친 저음이 이어집니다.


 “You know that it would be untrue
 You know that I would be a liar
 If I was to say to you
 Girl, we couldn‘t get much higher

 Come on baby, light my fire
 Come on baby, light my fire
 Try to set the night on fire…”

 

 1960, 70년대를 풍미한 사이키델릭 록 밴드 ‘도어스’의 히트곡 ‘라이트 마이 파이어’ 도입부입니다.

 

 

the Doors

록 밴드는 대체로 일렉트릭 기타, 베이스 기타, 드럼을 기본으로 하고, 키보드를 두는 밴드와 안두는 밴드로 나뉩니다. 하지만 이 도어스는 독특하게 베이스 기타보다는 키보드를 도입했습니다. 키보디스트 레이 만자렉의 역량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펜더 로즈’ 전자 오르간으로 베이스 부분을 연주했습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는 전자 오르건 ‘복스 콘티넨탈’의 몽롱한 음으로 리드 음을 짚어갑니다.

 

 그 레이 만자렉이 20일(현지시간) 독일 로젠하임의 한 병원에서 지병인 담도암으로 별세했습니다. 향년 74세.

 

 


 도어스 기타리스트 로비 크리거는 이날 성명을 통해 “나의 친구이자 훌륭한 밴드 동료인 만자렉이 세상을 떠나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만자렉은 내 삶의 가장 소중한 부분이었다”며 “지난 시간 만자렉과 함께 도어스 곡을 연주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고 말했답니다.

 

20일 숨진 록밴드 ‘도어스’의 키보디스트 레이 만자렉이 2012년 8월 미국 로스 앤젤레스에서 열린 선셋 스트립 뮤직 페스티벌에서 연주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만자렉은 폴란드 이민자의 아들로 1939년 2월 미 시카고에서 태어났습니다. 10대에는 초기 로큰롤 형식인 ‘부기우기’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1962년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해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법학과를 들어갔다가 자퇴했고, 이 학교 영화과에 들어갔다. 여기서 보컬 짐 모리슨을 만났고 드러머 존 덴즈모어, 기타리스트 크리거를 모아 도어스를 구성했습니다.

 

 1967년 첫 음반 <더 도어스>에서는 ‘라이트 마이 파이어’가 인기를 모았죠. 이들은 블루스, 클래시컬, 컨트리, 팝을 섞은 독특한 음악으로 승부했습니다. ‘라이더스 온 더 스톰’, ‘디 엔드’ ‘로드하우스 블루스’ ‘L.A.워먼’ 등을 히트하며 승승장구합니다.


 이들 멤버의 실력도 빼어납니다. 만자렉은 몽환적이면서도 공격적 리프를 이용합니다. 크리거의 슬라이드 기타도 인정받았습니다. 존 덴스모어의 강렬한 드럼 연주, 그리고 무엇보다 모리슨의 거칠고 자유분방한 목소리, 카리스마는 당대 최고의 케미스트리를 이루죠. 시에 심취했던 모리슨은 가사도 시적으로 지었습니다.

 

 모리슨의 기행도 늘 주목받습니다. 술에 취해 무대에 오르기도 하고, 관중에게 욕설을 합니다. 1969년 3월1일 마이애미의 디너 키 회관 공연에서 모리슨은 공연 도중 바지를 벗었습니다. 이후 ‘공개적으로 자신의 은밀한 부위를 내보이고 음란하고 외설적인 행위’로 고소당했습니다. 실제 유죄를 선고받습니다.

 

짐 모리슨

 

 약물과 알코올에 찌들었던 짐 모리슨은 1971년 7월3일 27세의 나이로 프랑스 파리 자신의 아파트 욕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약물 남용이었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추측입니다. 메이저 신에서 활동한 기간은 불과 5년이었지만 그가 남긴 이미지는 굉장히 강렬합니다. 쫙 달라붙는 가죽 바지, 며칠이나 감지 않은 것 같은 머리, 세상을 조롱하고 반항하는 듯은 눈빛 등.

 

 도어스는 모리슨 사후 음반 2개를 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멤버들은 만자렉을 보컬로 내세워 2개의 음반을 내지만 팬들은 외면했고, 밴드는 점차 와해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만자렉은 1973년 솔로 음반 <더 골든 스캐랩>을 내고 순회공연을 했습니다다. 1974년 <더 훌 팅 스타티드 위드 로큰롤 나우 잇츠 아웃 오브 콘트럴>을 냈구요. 이후 자신의 밴드인 ‘레이 만자렉스 나이트 시티’를 구성해 음반 2장을 냈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후 펑크 물결이 몰려들어왔습니다.  펑크 밴드가 ‘엑스’가 만자렉에게 함께 일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수차례 함께 공연을 했고, 음반 <로스 앤젤레스>를 냈습니다. 만자렉이 프로듀싱한 이 음반은 펑크의 주요 음반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1983년 오페라를 콘텝트로 만든 음반 <카르미나 부라나>는 실패했구요.  그는 비트 세대 시인 마이클 매클루어 시에 자신의 키보드 연주를 얹은 음반 <러브 라이언>을 1993년 내 호평을 받았습니다.  2000년대 들어 그는 영국 가수이며 배우인 대릴 리드와 함께 음반을 냈습니다.

 

 그의 연주는 여전했지만, 음악의 완성도나 인기는 도어스 때만 하지 못했습니다. 말년에 그는 기타리스트 크리거, 그리고 아인 애스트베리 등과 밴들르 구성해 ‘21세기 도어스’ 순회공연을 했습니다. 이에 도어스 드러머 존 덴스모어가 무단으로 밴드이름을 도용했다고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Posted by 최우규

  국내에서도 바지를 많이 내려서 팬티가 보이게 입는 이들이 이따금 보입니다. 이 패션의 종결자로 저스틴 비버라는 19세 캐나다 출신 가수가 꼽힙니다. '저렇게 입고도 바지가 흘러내리지 않는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바지를 과다하게 내려 입습니다. 팬티의 위쪽 띠 일부가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3분의 1정도 보이게 입죠.

 

저스틴 비버 유니버설 뮤직 코리아

 

 

 그 저스틴 비버 이야기 좀 해보려고 합니다. 미국의 음악 조사기관 ‘퍼블릭 폴리시 폴링’이 5월 6, 7일 미국인을 대상으로 유명 가수들에 대한 호감, 비호감도를 조사했습니다. 그중 가장 몰표를 받은 이가 크리스 브라운이었습니다.

 

크리스 브라운 홈페이지

 응답자의 57%는 그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했고, ‘긍정적’이라는 이는 13%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예전 연인인 가수 리한나를 2009년 그래미상 시상식 직전 폭행해 물의를 빚었다. 5년 간의 보호감찰과 6개월 사회봉사 명령을 받았다.

 

한 방송에서 진행자가 리한나 폭행한 사건에 대해 얘기를 꺼내자 대기실 유리 박살내고 난동을 부렸답니다. 트위터에 '4단어로 된' 욕설을 올리는 등 대표적 악동이죠.

 

 그 바로 뒤를 이은 이가 저스틴 비버입니다. 응답자의 54%가 ‘부정적’이라고 합니다. 이 19살짜리 꽃미남 가수를 좋아한다는 응답은 20%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이 조사의 총 응답자는 571명이어서, 미국인 전체를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여론조사에서 인구별, 성별, 지역별로 골고루 대상 집단을 모집해 적어도 1000명은 조사해야 어느 정도 대표성을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조사는 '알아나 보자' 정도로만 받아들이면 될 듯합니다. 다만 최근 저스틴 비버가 각종 말썽을 일으키고 있어 주요 팬층인 10대를 자녀로 가진 부모들로부터 몰표를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월드투어중인 저스틴 비버는 최근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 람보르기니 스포츠카를 몰고 거리를 폭주하다 여러 차례 단속 카메라에 적발됐습니다.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는 만 21세 이상만 운전면허를 가질 수 있어, 비버는 현행법 위반입니다.

 

 지난 4일 공연에 2시간이나 지각하고도 해명이나 사과도 없어 관객을 화나게 했습니다. 나중에도 이런 저런 변명을 했지만, 깔끔하게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5일에는 무대에서 한 남성 팬의 공격을 받으며 피아노가 쓰러졌고, 현지 한 클럽에서 술을 안 준다는 이유로 45분 만에 자리를 뜨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지붕 위에 올라타는 소동을 벌였습니다.

 

  앞서 유럽과 터키 등지에서도 애완용 원숭이 밀반입, 밀입국 시도, 투어버스 마약 소동 등 잇단 말썽으로 구설에 올랐죠. 특히 4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안네 프랑크 박물관을 찾아 방명록에 “안네 프랑크도 살아있다면 내 팬(belieber, 비버의 이름인 Bieber과 신봉자라는 believe를 합성한 말)이 됐을 텐데”라고 적었다가 "무개념"이라는 호된 역풍에 시달렸죠. 바지를 내려 팬티가 보이게 하는 그의 스타일은 소년들의 열광을, 부모들의 질색을 사고 있습니다.

 

심하게 바지를 내려 입는 저스틴 비버 패션

 

 저는 그를 보면서, '못되게 웃자란' 청년을 연상하게 됩니다. 예전 매컬리 컬킨이 <홈 얼론> 시리즈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으나, 부모의 보살핌을 잘 못받으면서 망가진 것을 봤기 때문입니다. 저스틴 비버가 조만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그리고 지금의 꽃다운 이미지가 사라지면 그 역시 망가진 젊은 청춘이 될 개연성이 높아서입니다. 좀 우려되는 바입니다.(지나치게 오지랍이 넓은가요?) 


 퍼블릭 폴리시 폴링 조사 이야기를 더 해보겠습니다. 선정적 공연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레이디 가가로 싫어한다는 응답자는 50%, 좋아한다는 응답자는 29%였습니다. 국내에서는 그의 내한 공연을 앞두고 보수 기독교계에서 반대 운동을 한 바 있습니다.

 

 크리스 브라운의 옛 연인 리한나는 좋아한다 30%, 싫어한다 39%였고요. 리한나 역시 굉장한 스타성을 갖고 있지만, 또한 염문설과 선정적 공연으로 할리우드 가십거리로 등장하곤 합니다.


 그럼 긍정적 이미지를 가진 이는 누굴까요. 25살의 영국 출신 여가수 아델로, 긍정적으로 답한 이가 54%였고, 부정적 이미지는 18%에 불과했습니다.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요절 이후 비슷한 음색(솔과 리듬앤 블루스 감성을 지녔고 가창력과 호소력이 뛰어난 목소리)을 가진 그가 나타나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죠. 

 

영국 출신 여가수 아델 강앤뮤직 제공

 

 

  미국의 ‘국민 여동생’이라는 별칭을 가진 컨트리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는 53%의 긍정 답변, 27%의 부정 답변을 얻었습니다. 최근 10여년만에 음반을 낸 가수 저스틴 팀벌레이크도 긍정 52%, 부정 24%로 호응을 얻었습니다. 팝 스타 비욘세는 51% 긍정, 30% 부정 응답을 얻었지만, 그녀의 남편 제이지는 25%의 긍정만 얻었구요.

 

 


 음악의 장르중 클래식 음악은 응답자의 77%, 재즈는 71%가 ‘긍정적’이라고 했습니다. 반면 랩에 대해 호의적이라는 답은 19%에 불과했고, 부정적이라는 답이 68%였답니다.

 

날카로운 독자들은 "긍정, 부정을 합쳐도 100%가 안된다"고 의아해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나머지는 "모르겠다" 혹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입니다.


 

Posted by 최우규

 대중음악 좋아하시는 분들, 꼭 해본 게 있을 것입니다. 바로 상상 속의 ‘슈퍼 밴드’ 만들기입니다. 이를테면 기타에는 제프 벡, 키보드에는 스티브 윈우드, 보컬에 로니 제임스 디오, 베이스에는 존 폴 존스, 드럼에는 카마인 어피스 등등. 아니면 기타 조 새트리아니, 베이스 기타 빌리 쉬언, 드럼 마이크 포트노이는 어떨까요. 축구, 농구, 야구, 배구 등 스포츠에서도 ‘슈퍼 팀’ 만들기는 누구나해봤을 것이고요.

 

마일즈 데이비스 홈페이지 캡쳐

 그런데 만일 지미 헨드릭스가 기타를 치고, 마일즈 데이비스가 트럼펫을 불며, 폴 매카트니가 베이스 기타를 친다면….

 

 지미 헨드릭스는 1960년대 말 불과 4년의 활동으로 블루스 록과 하드록의 전설이 됐습니다. 마일즈 데이비스는 재즈에서 한 장르에 머물지 않고 밥과 쿨, 재즈-록(퓨전 재즈) 등 다양한 부문의 선구자 역할을 했구요. 영국 밴드 ‘비틀스’의 베이스 기타 주자 폴 매카트니는 존 레논과 함께 ‘팝’ 음악을 예술의 경지로 올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사실 이들에 대해 이런 식으로 어줍짢게 규정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죠.

 

지미 헨드릭스 유작 음반 <피플, 헬 & 앤젤스> 소니뮤직코리아 제공

 이 같은 전설중의 전설들이 함께 음반을 내놓을 뻔 했다고 합니다. 음악 전문지 ‘롤링 스톤’과 영국 일간지 텔레그라프는 10일(현지시각) “지미 헨드릭스가 마일즈 데이비스와 함께 슈퍼 그룹을 만들면서 폴 매카트니에게 참여를 청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헨드릭스가 1970년 숨지기 1년 전 헨드릭스는 마일즈 데이비스와 함께 레코드를 녹음하려고 했습니다. 헨드릭스와 데이비스는 재즈 드러머인 토니 윌리엄스와 함께 1969년 10월21일 폴 매카트니가 속한 비틀스의 음반사인 ‘애플 레코드’에 전보를 보냈습니다.

 

 “이번 주에 뉴욕에서 함께 녹음을 하려고 함. 이리로 와서 베이스를 연주하는 게 어떤지. 앨런 더글라스에게 전화해시길. 212-581-2212. 지미 헨드릭스 마일즈 데이비스 토니 윌리엄스.”

 

 

 

 매카트니가 이같은 요청을 알고 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전보는 음반 프로듀서인 앨런 더글라스과 접촉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영국 런던에서 미국 뉴욕으로 건너오라는 요청을 이렇게 전보 같은 것으로 한 것으로 보면 이런 제의는 즉흥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날 비틀스 보좌역이던 피터 브라운은 매카트니가 휴가중이고, 두주 이내로 복귀하지 않을 것 같다고 응답했습니다.

 

폴 매카트니 공식 페이스북 캡쳐

 헌데, 당시 매카트니에게 별로 좋지 않은 때였던 것 같습니다. 같은 날 뉴욕의 ‘WABC’ 방송의 DJ 로비 욘지는 폴 매카트니가 죽고, 가짜가 대신 역할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또 비틀스 내부 알력도 심했다고 합니다.

 

 마일즈 데이비스는 1990년 자서전에서 이따금 뉴욕의 아파트에서 헨드릭스와 합주를 했었지만 재정적 문제, 바쁜 스케줄 때문에 스튜디오 연주는 못했다고 회고했습니다.

 

 헨드릭스 전기 작가인 찰스 머레이 등은 데이비스가 그 녹음에 5만 달러를 요구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데이비스는 자신의 책에서 그와 편곡자인 길 에반스는 헨드릭스가 런던에서 숨졌을 때 녹음을 하려고 유럽에 있었다고 썼고요.

 

 전문 공연장인 ‘하드 록 카페’의 메모 수집품중 하나인 이 전보는 1995년 경매에서 산 것이다. 최근 지미 헨드릭스의 미발표 곡을 모은 <피플, 헬 앤드 앤젤스> 음반 발매로 함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하드 록 역사연구가인 제프 놀런은 “이 전보에 대해 일부 헨드릭스 전문가들은 알고 있었지만 일반 팬들은 많이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라며 “만일 그 밴드가 만들어졌으면 엄청났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전보는 현재 체코의 프라하에 있는 하드록 카페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당시 보내진 전보

 

 음악을 좋아하는 후배에게 "만일 헨드릭스, 데이비스, 매카트니가 밴드 만들면 어떨 것 같으냐"고 물었습니다. 그 후배는 "잘 안될 것 같다. 한 명이 리드해야지, 잘 안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실제 그럴 법도 합니다. 지금까지 소위 슈퍼밴드라고 불리던 모임이 오래 가지는 않았습니다. 확고한 리더, 혹은 집단 지도체제가 확고하게 서지 않은, 너무 잘난 사람들이 모인 밴드는 대체로 단명하고 말았습니다. 크림, 블라인드 페이스, U.K., 하니 드리퍼스 등이 그렇죠. 그래도 '헨드릭스, 데이비스, 매카트니 & 윌리엄스' 음반은 (있다면) 무엇보다 정말 탐날 것 같습니다.

Posted by 최우규

   1998년 국제부에서 막내 기자로 있을 때였습니다.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 인턴직원 모니카 르윈스키의 섹스 스캔들이 화제가 됐습니다. 케네스 스타라는 특별검사가 이들을 상대로 수사했고, 약 1만여페이지 분량의 수사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그걸 읽고 기사를 쓰라는 특명이 내려와, 몹시 허덕였던 기억이 납니다.(물론 저 혼자 다 쓰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불과 2000페이지만 보면 되는 거였죠. ㅠ.ㅠ)

 

 클린턴은 어려서 양부 밑에서 자라며 고생을 했습니다. 맞기도 했답니다. 회사 들어오기 수년전에 타임에서 읽은 기사가 기억납니다. "클린턴 가정 형편이 어려워 집 인근에 있던 도축장에서 소 갈비를 얻어다 먹어야 했다"는 기사였습니다. '우와, 없이 살아서 갈비를 먹는데'라는 턱없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1960년대에는 소를 도축하면 고기 이외에는 버린 점을 생각하면 클린턴이 어렵게 자란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는 고교 시절에는 아칸소 주(클린턴이 대통령 되기 전에 미국에 이런 주가 있는지도 몰랐죠) 학생 대표로 뽑혀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만났답니다. 워싱턴에 있는 조지타운 대학교를 나오고, 영국 최고 명문인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로즈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미국으로 돌아와 예일 대학교 법학대학원을 졸업하고 1973년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죠. 이 때 힐러리 로댐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클린턴은 아칸소 주 법무장관, 최연소 주지사(32세)를 했고, 1992년 선거에서 현직 공화당 출신 대통령인 조지 부시와 무소속 후보인 로스 페로를 꺾었습니다. 이 때 그가 내세웠던 캠페인 문구 “문제는 경제야, 이 멍청아!(It‘s the economy, stupid!)”는 그 뒤에도 두고두고 패러디돼서 쓰였습니다.


 변호사 출신 답게 말도 잘하고 위기상황에서 잘 빠져나갑니다. 르윈스키와 성관계 여부를 묻자 클린턴 당시 대통령은 ‘부적절한(inappropriate) 관계’라는 교묘한 말로 빠져나갑니다. 별명이 ‘뺀질이 윌리(Sleek Willie)’인 그 다운 답변이었습니다.

 

 그는 평화 교섭자로서 업적을 남겼습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북 아일랜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평화 교섭에서 주요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2009년 8월 4일 직접 북한 평양으로 날아가 억류됐던 미국 여기자 2명을 풀어냈죠.


 하지만 그도 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섭에는 실패했습니다. 바로 전설적 하드록 밴드 '레드 제플린'입니다. 미 CBS 방송국은 6일(현지시각) 클린턴 전 대통령이 레드 제플린 재결합 공연을 추진했으나, 성사시키지 못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지난해 ‘허리케인 샌디’ 피해 복구를 위한 뉴욕에서 자선 콘서트에 레드 제플린을 재결합시켜 무대에 세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샌디는 2012년 10월 말 쿠바, 미국 동부 해안에 상륙해 600억 달러 이상의 피해를 입혔답니다.


 당시 콘서트를 관장하던 ‘로빈 후드 재단’의 데이비드 솔츠맨은 “나와 영화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이 워싱턴 D.C.로 날아가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클린턴 전 대통령은 굉장했다”며 “그는 ‘정말 이 일을 하고 싶다. 환상적인 일이다. 난 레드 제플린을 사랑한다’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레드 제플린 생존 멤버인 로버트 플랜트, 지미 페이지, 존 폴 존스를 직접 만나 공연 참여를 요청했습니다. 마침 그 세명의 멤버는 자선 콘서트 전날 케네디 센터에서 열리는 ‘케네디 센터상’ 수상을 위해 뉴욕에 체류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노(No)”라고 거부했습니다.


 콘서트는 2012년 12월12일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려 수익금으로 5000만 달러(560억원)를 벌어 들였습니다. 6개 대륙에 중계된 이 콘서트에는 레드 제플린의 동년배인 ‘더 후’, 에릭 클랩턴, ‘핑크 플로이드’의 로저 워터스 등이 참여했구요. 1994년 커트 코베인이 숨진 뒤 해체된 ‘너바나’ 생존 멤버 크리스 노보셀릭, 데이브 그롤, 팻 스미어가 처음으로 모여 공연했다. 대미는 폴 매카트니가 장식했답니다.

 

the WhoPink Floyd 출신 로저 워터스

 

 

 ‘롤링 스톤즈’ 보컬인 믹 재거는 당시 “지금까지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공연중 가장 큰 규모의 늙은 영국 가수들 모임인 듯하다”며 “런던에 비가 많이 오면 당신(미국인)들도 와서 도와야 한다”고 농담했습니다.

 롤링 스톤스폴 매카트니(왼쪽)와 데이브 그롤(오른쪽)

 


 레드 제플린은 1980년 드러머 존 보냄이 숨진 뒤 해체됐습니다. 1985년 아프리카 난민을 돕자는 취지의 미국판 ‘라이브 에이드’ 때 한 무대에 섰습니다.

 

 2007년 12월 10일 런던의 O2아레나에서 애틀랜틱 레코드 창시자 아흐멧 어테건 추모공연 때 재결합해 공연했죠. 숨진 존 보냄 아들 제이슨 보냄이 드럼을 쳤습니다. 지미 페이지와 존 폴 존스는 투어를 계속하려고 했지만, 로버트 플랜트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합니다. 페이지에 따르면 플랜트는 “바쁘다”고 했다고 밝혔답니다.

 

 다만 플랜트는 지난 2월 음악 전문지 ‘롤링 스톤’에 내년(2014년) 재결성 공연을 할 지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내년 재결합을 다시 기대해볼만 하죠?


Posted by 최우규

 세계 4대 스래쉬 메탈 밴드로 메탈리카, 메가데스, 앤스랙스 그리고 슬레이어가 꼽힙니다. 뭐 3대 기타리스트, 3대 키보디스트 이런 누가 정한지 모르는 순위가 있긴 한데, 이들 스래쉬 메탈 밴드는 자타 공인입니다. 스스로 '빅4'라고 부르며 음반도 냈으니까요.

 

 그 중 하나인 슬리어어의 기타리스트 제프 한네만이 2일(현지시간) ‘간 부전’으로 사망했다고 로이터 등 외신이 보도했습니다. 향년 49세입니다.
 슬레이어는 홈페이지를 통해 “한네만은 간부전으로 고통받고 있었으며, 지역 병원에서 치료 중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속주와 변칙적 코드 진행을 선보이며 슬레이어 음악의 대표곡들을 냈던 한네만은 말년에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2011년 초 독거미에 물린 뒤 ‘괴사성근막염(Necrotizing fasciitis)’에 걸려 팔이 썩어 들어갔습니다. 이 때문에 슬레이어는 무대에 다른 사람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2011년 4월 그는 다시 돌아와 무대에 섰지만 병세가 악화돼 팔을 잘라낼 위기까지 갔습니다. 그러나 자르지 않고 부분 수술만 했었죠. 그 후유증으로 만성적인 간부전을 앓게 됐으며, 밴드 활동을 중단하고 치료에 전념했지만 결국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슬레이어는 죽음과 전쟁, 지옥의 공포 등을 생생하게 묘사했으며, 트윈 기타의 강렬한 속주와 굉음·비명에 가까운 보컬, 낮은 음을 내는 베이스 드럼을 두개 쓰는 ‘투 베이스 드럼’ 등으로 음악이 특징 지어집니다. 이 때문에 악마주의, 나치주의를 신봉한다는 논란을 불러 일으키곤 했습니다.


 이 밴드는 1982년 캘리포니아 헌팅톤에서 케리 킹과 제프 한네만이 만들었죠. 이들은 베이스 주자이자 보컬인 톰 어레이여, 드러머 데이브 롬바르도를 영입했습니다. 초반에는 헤비메탈 밴드 ‘주다스 프리스트’와 ‘아이언 메이든’의 곡을 주로 커버하다 좀더 빠른 연주를 지향하게 됩니다.


 데뷔 음반은 <쇼 노 머시(Show No Mercy)>로, 스래쉬로서의 지향점을 보여줍니다. 이후 낸 미니음반(EP) <헌팅 더 채플(Haunting the Chape)과 <라이브 언데드(Live Undead)>, 1985년 <헬 어웨이츠(Hell Awaits)> 등에서 저주와 고문 등을 다루며 광적인 팬들을 모았습니다.


 이들이 낸 최고 명반으로는 1986년 <레인 인 블러드( Reign in Blood)>가 꼽힙니다. 표지에 그려진 악마와 지옥 이미지 때문에 CBS 레코드는 판매를 거부했다죠. 하지만 이는 오히려 이들을 더 알리는 계기가 됐구요. 게펜 레코드로 갈아타 음반을 냈고, 이는 메탈리카의 <마스터 오브 퍼펫츠>와 함께 스피드·스래쉬 메탈 음악에서 동렬의 명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1994년 폴 보스태프가 새로운 드러머로 들어와 낸 <디바인 인터벤션(Divine Intervention)>도 빌보드 앨범 차트 8위에까지 오르며 성공을 거뒀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도 잘나갔습니다.  음반도 인기를 끌었고, 2007, 2008년 그래미 어워즈에서 ‘최우수 메탈 퍼포먼스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2010년 이들은 메탈리카, 메가데스, 앤스락스와 함께 라이브를 하고 <더 빅 포 : 라이브 프롬 소피아, 불가리아(The Big Four: Live from Sofia, Bulgaria)>를 내며 건재를 과시했습니다. 2011년 <데스 스킨 마스크(Dead Skin Mask)>까지 냈습니다.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계속된 슬레이어 행보가 한네만 죽음으로 멈출지 관심입니다.

Posted by 최우규

 이 밴드는 제가 10년만에 대중문화부로 복귀해 꼭 인터뷰해보고 싶었던 팀입니다. 바로 ‘로다운(Lowdown)30’이라는 블루스 록 밴드입니다.

 

 우연히 한 포털 사이트에서 이 밴드의 ‘아이 서 더 데블 라스트 나이트’를 들었습니다. ‘좀 한국식 영어 발음에 묵직한 기타톤, 묵직한 베이스, 묵직한(레드 제플린 존 보냄을 연상케하는) 드럼’ 등 온통 묵직했습니다. 굳이 '한국식' 영어 발음이라고 쓴 이유는, 그만큼 곡 진행은 '한국적'이지 않아서입니다.

 

블루스 록 밴드 ‘로다운 30’의 김락건, 김태현, 윤병주(왼쪽부터)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하지만 당시 이 밴드는 미국에 순회공연을 하고 있던 터였습니다. 미국 순회공연이라….

 한 30년 거슬러 올라가 1980년대 나이트 클럽에서 라이브 연주를 하는 밴드들을 소개할 때 쓰는 진부하지만 꽤 쏠쏠한 어구가 있습니다. “방금 동남아 공연을 성황리에 마치고 돌아온…”이라는 것입니다. 대체로 과장이었습니다. 해외공연은커녕 여권도 없는 팀도 허다했으니까요.

 

 이 3인조 블루스 록 밴드 ‘로다운 30’은 3월5일 출국해 4월9일 돌아왔습니다. 한국음악을 아이튠즈에 수출하는 ‘DFSB 콜렉티브’가 해마다 국내 유망 밴드 3팀씩 선정해 북미 순회공연을 하는 ‘서울소닉 노스아메리칸 투어’에 참여했었습니다.

'로다운 30'의 미국 로스 앤젤레스 딤 막 스튜디오 연주 모습 페이스북 사진

 

 

 로다운은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노브레인’ 등과 미국 샌 프란시스코, 텍사스 오스틴, 보스턴, 뉴욕, 샌디에고, 로스 앤젤레스, 캐나다 토론토를 돌았습니다. 빡빡한 스케줄이었지만, 블루스 록의 본토 미국에 자신들의 음악 맛을 보였다는 점에서 자긍심을 비쳤습니다. 저 희안한 이름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는 옛 남자(舊男)과 여자가 스텔라(옛날 현대가 내놓았던 승용차)를 탄다(riding)이라는 뜻입니다. 참, 로다운은 영어로 ‘비천한, 실상, 정보’라는 뜻도 있고, ‘블루스가 저음으로 느린 템포의, 혼을 흔드는 듯한’이라는 뜻도 있답니다. 참 잘 지은 이름 같습니다.

 

 이들은 100명 규모의 작은 클럽에서부터 미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리는 록 페스티벌·콘퍼런스인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캐나다 페스티벌인 ‘캐나디안 뮤직위크(CMW)’에도 섰습니다.

 

'로다운 30'의 미국 샌프란시스코 브로드웨이 스튜디오 라이브 페이스북

 

 보컬과 기타를 맡은 윤병주는 “미국 공연은 처음인데 한국 홍대 앞 클럽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다만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 야외 공연에서 사운드는 달랐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소리가 좋았다. 그러면서도 “다만 미국 팬들은 우리 노래를 처음듣는데도 낯설어하지 않고, 즐겁게 받아들인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드럼을 맡은 김태현은 “가서 연주해보니, ‘아 여기가 미국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외국인이 많아서가 아니다. 외국인은 홍대 앞 클럽에도 많고 이태원에도 많은데, 거기는 분위기가 좋았다. 소리도 좋고”라고 평가했습니다.

 베이스를 치는 김락건도 “소리는 정말 좋았습니다. 예전에 1990년대 홍대 앞 클럽에서 연주하면 베이스 소리는 묻혀서 들리지도 않았다”며 “요즘 한국도 많이 좋아졌다”고 거들었습니다.

 

 이들이 공통점으로 꼽은 ‘미국이 부러운 점’은 음악적 저변과 문화입니다. 윤병주는 “팬 층이 굉장히 넓고 선입견도 없고, 즐기려는 태도가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 음악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더군요. 윤병주는 “돌아보고 든 생각은 한국에서 잘하는 사람들은 거기서도 잘하는 것 같았다. 여기서 10%안에 드는 밴드는 거기서도 10%안에 드는 것이다. 취향을 떠나서 잘하는 것은 잘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살짝 한국 현실을 우려했습니다. 윤병주는 “사우스바이사우스이스트에 가보니까 한 60대 컨트리 뮤지션이 있었다.이미 전성기를 지나 내리막길이었는데도, 여전히 작은 클럽에 나와서 자기 노래를 하더라”고 말했습니다. “이건 지난해 낸 곡, 이건 몇년 전 곡”하면서. 윤병주는 저와 인터뷰에서 그 컨트리 가수가 누구인지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이후 로다운의 다른 인터뷰를 찾아보니 그는 레이 윌리 허바드였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전성기를 지나 내리막되면 안 나타나거나, 예전 것에 기대고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1970, 80년대 멋진 밴드들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없고, 형님급 연주자들은 전직했거나, 대학, 학원에서 실용음악을 가르치는 점 등 말입니다.

 

블루스 록 밴드 ‘로다운 사진 김문석 기자kmseok@kyunghyang.com

 

 로다운은 서울 홍대 앞에 형성돼 있는 ‘인디’ 무대에서도 눈에 띄는 존재입니다. 2008년 발표했던 정규앨범 1집 <자이라(Jaira)>, 지난해 2집 <1>을 냈습니다. 또 미니 편집 음반 <서울 서울 서울>, <아스팔트> <언아더 사이드 오브 자이라> 등도 냈구요.

로다운 30의 첫 음반  로다운 30의 두번째 음반 <1>

 

 

 

 

 하지만 이들이 경력 6년차의 고만고만한 밴드가 아닙니다. 윤병주는 1990년대 가장 주목받은 밴드 ‘노이즈가든’에서 기타를 치며 주목받았습니다. 그 때 기타 키드 가운데서도 ‘좀 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가 노이즈 가든 탈퇴 이후 2000년 결성한 밴드가 바로 로다운입니다. 베이스를 맡은 김락건은 1990년대 하드록 밴드 ‘존 도우’ 출신이고, 드럼을 맡은 김태현은 세션활동을 하는 등 실력파들입니다.

 

 이들 음악은 한 수식어로 형용이 안됩니다. 강한 블루스인듯하면서도, 기존 문법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하드록, 곡에 맞춰 춤 출 수 있는 일렉트로닉 느낌도 들어있습니다. 록이나 블루스 하면 떠오르는 '정형성', 그 특유의 코드 진행에서 조금씩 이탈해 있습니다. 그래서 더 특이한 느낌을 주는 듯 합니다.

 

 윤병주의 노래는 처음 들었습니다. 인상과 참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는 머리를 박박 밀고, 180cm 키에 덩치도 큽니다. 하드한 소리가 나올 것 같습니다. 하지만 조금은 가늘고 높은 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그리고 'ㅅ' 발음을 할 때 마치 영어 'th'소리 즉, 소위 번데기 발음(θ)을 합니다.

 

 이들 음악의 특이함, 더 좋게 말하면 독창성은 멤버들의 다양한 취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윤병주는 블루스, 리듬앤블루스부터 힙합까지 다양한 음악을 좋아합니다. 그는 PC통신 시절 ‘헤비메틀 동아리’에서 엄청난 음악 지식과 글 솜씨를 자랑한 바 있습니다. ‘지금 음반 얼마나 있느냐’고 물었더니 “3500장 선에서 유지하려고 애쓴다. 좀 듣다가 안드는 것, 별로 인 것은 남 준다”고 말했습니다.

 

 긴 머리를 휘날리는 김락건은 모양처럼 ‘올맨 브라더스 밴드’ 같은 서던 록을 좋아합니다. 김태현은 ‘너바나’ ‘푸 파이터스’ 등 그런지 록과 ‘머틀리 크루’ 같은 깔끔한 메틀 음악도 선호합니다.

 

 블루스 록이지만 이들은 ‘빠르고 강렬함, 변화무쌍’이 아니라 ‘묵직하고 단순함’에 더 다가가 있습니다. 그래서 10년전부터 갖고 있던 우문(愚問)인 “빠르고 강한 연주를 안하는 거냐, 못하는 거냐, 아님 관심없는 것이냐”을 던졌습니다. 윤병주는 “그런 음악은 우리가 하고 싶은, 추구하는 음악이 아니다. 그러니 그런 음악이 우리 것에는 안나온다”고 답했습니다. 멋진 ‘카운터 펀치’입니다. 하지만 그도 연주 때 흥이 나면 빠른 아르페지오나 스트로크를 선보입니다.

 

 당초 3집을 이맘 때쯤 작업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서울소닉프로젝트 때문에 미뤄졌답니다. 이제 슬슬 작업을 시작해서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는 나오지 않을가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색깔이 들어갈 것 같으냐’고 물었습니다. 윤병주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 요소가 많이 들어갈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참 까칠한 ‘인터뷰이’입니다. ㅎㅎ

 

 윤병주는 “우리는 보도자료도 안내고 홍보도 안한다. 근데 요즘 언론을 보니까 홍보 자료를 그대로 베껴 쓰는 이도 있더라. 우리 음악은 블루스 록인데, 헤비메틀이라고 보도자료를 쓴다면 그대로 쓸 것 같았다. 음악 한번 들어보지 않고 그냥 받아서 쓰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제게 한 말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소위 ‘언론 종사자’로서 얼굴이 화끈해졌습니다.

 

 윤병주도 까칠하게 답한 게 면구스러웠던지, 한 마디 보태더군요. “우리가 좋아하는 식인데, 늘 다르다. 레드 제플린은 1집과 9집을 들어보면 음악이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그래도 그들의 음악은 레드제플린 음악이다. 코어가 안 바뀌기 때문이다. 그런 음악이 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5월4일 서울 문래동 문래예술공장에서 열리는 언더그라운드 페스티벌 ‘51+ 페스티벌’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또 격주에 하는 클럽공연, 여름에 록 페스티벌 한 군데는 갈 것 같다고 합니다.

Posted by 최우규

 최근 제프 벡 연주를 보면 대체로 젊은 여성 베이스 주자가 눈에 보입니다. 65세의 제프 벡이 이 20대 여성 베이스 주자 연주를 지긋하게 봅니다. 주착스럽다고 볼 수도 있고, 성장하는 후배를 흡족스럽게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녀는 호주 출신 탈 윌켄펠드라고 합니다.

 

 이처럼 멘토-멘티 관계는 음악계에서도 드문 일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신대철씨가 TV 음악 경쟁 프로그램 <탑 밴드>에 나왔던 ‘갤럭시 익스프레스’를 지원해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멘토와 멘티 이야기좀 해보려고 합니다.
 지난주 미국 뉴욕 매디슨 스퀘어가든에서 열린 ‘에릭 클랩튼의 크로스로즈 기타 페스티벌’에는 블루스 기타의 거장들이 대거 등장했습니다. 비비 킹, 에릭 클랩튼, 제프 벡, 버디 가이, 개리 클락 주니어, 부커 티, 앨버트 리, 지미 본, 타즈 마할, 케브 ‘모’는 물론 인기 가수 겸 연주자 존 메이어도 섰구요. 재즈 기타리스트 존 스코필드, 얼 클루, 퓨전 기타리스트 앨런 홀즈워드, 서던 록 밴드인 올맨 브러더스 밴드 등도 무대에 나섰습니다.

  

2013년 미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에릭 클랩튼의 크로스로즈 기타 페스티벌'                           AP연합뉴스

 

 

 하지만 가장 많은 호응을 얻어 낸 이는 누구였을까요. 퀸 설리번(Quinn Sullivan)이라는 기타리스트입니다. 그는 버디 가이와 함께 ‘댐 라이트’, ‘아 갓 더 블루스’를 연주했고, 마지막 잼 세션(간단한 약속만으로 이어가는 즉흥연주)에서 클랩튼, 지미 본, 로비 로버츠 등과 한 무대에 섰습니다. 특이한 점은 설리번은 이제 14살의 중학생이라는 것이죠.

 

 퀸 설리번                                    페이스북 캡쳐


 설리번은 ‘롤링 스톤’과 인터뷰에서 “진짜 초현실적이었다. 절대 못잊을 것”이라며 “내가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 섰고, 기립 박수를 받았다니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설리번은 2004년 크로스로즈 기타 페스티벌에서 선 바 있습니다. 설리번은 세살 때 연주를 시작했고 여섯살 때 유명 예능프로그램인 <엘렌 쇼>에 출연했습니다. 일곱살이 됐을 때 설리번은 매사추세츠 주의 뉴 베드포드에서 열린 버디 가이 공연장을 찾았습니다. 가족의 친구가 그를 무대 뒤로 가서 기타에 사인을 받도록 해줬죠. 거기서 설리번은 몇 가락을 즉석에서 연주했고, 버디 가이는 “너 이따가 내가 부를테니 준비해라”고 했답니다.

 

 그렇게 설리번은 무대에 섰습니다. 가이는 그 연주가 자신이 하는 게 아니라 설리번 것이라는 것을 관중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신 기타의 연결선을 앰프에서 빼버렸다고 합니다.

 가이는 “세상에 그런 식으로 연주할 수는 없었다. 그는 에릭 클랩튼을 치고, 내 곡을 치고, 스티비(레이본), 지미 헨드릭스 것을 쳐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나는 7, 8살 때 라디오도 못켰다. 저런 연주자는 내 생애 한명이나 나오려나”고 했습니다. 그런 거장의, 그런 칭찬이라니, 부럽습니다.

 

  버디 가이, 퀸 설리번, 에릭클랩튼(왼쪽부터)                                                                                 퀸 설리번 페이스북

 

 

 가이는 설리번에게 “너를 세상에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후 수년 동안 가이는 설리번을 꽤 유명한 무대들에 세웠습니다. 코넥티컷의 ‘게더링 오브 더 바이브스 페스티벌’에 비비 킹과 함께 섰구요. 또 아폴로 극장에서 허버트 섬린 추모 공연에 에릭 클랩튼, 롤링 스톤즈 기타리스트인 키스 리차즈과도 연주를 했다고 합니다. 또 2008년 버디 가이의 음반 <스킨 딥>에 참여시켰습니다.


 물론 버디 가이의 이런 지원에는 역풍도 불었습니다. 가이는 “설리번이 블루스 연주하기에는 너무 어려다는 헛소리가 나오는데, 내가 머디 워터스랑 같이 연주했을 때에도 나온 소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단 설리번 연주를 들어봐라. 그럼 딴 소리 안할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실제 버디 가이는 22살 때 머디 워터스, 존 리 후커스 등의 음반에 참여했고, 그 때 “젊은 놈이 블루스가 뭔지나 알아”라는 뒷 이야기가 많았다고 하네요.

 

 그럼 설리번은 엄청난 연습벌레일까요? 부모가 옆에 꿰고 앉아서 종일 손가락 뜯기 연습을 시킬까요.

 설리번은 기타 연습에 대해 “너무 빡세게(intense) 하지는 않는다”며 “하루에 여섯시간씩 연습하지는 않는다. 하고 싶을 때 하는 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저 보통 10대처럼 친구들과 놀고, <패밀리 가이> 같은 TV 만화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한답니다. 성적도 A나 B를 유지하구요. 공연이 있으면 선생님과 상의해 수업을 메꾸기도 한답니다. 참 근사한 소년입니다.

 “크로스로즈 공연 때문에 이틀을 학교를 빼먹었어요. 하지만 그 정도 가치는 있죠.”

 

 설리번은 멘토인 버디 가이로부터 매우 소중한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버디는 같이 있을 때마다 이야기를 해줘요. 사실 같이만 있어도 많은 걸 배워요. 그의 이야기와 지내온 일 등. ‘레코딩 계약을 잘못하면 안된다.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라’ 같은 말이요.”

 설리번은 데뷔 음반 <게팅 데어> 발매를 준비중입니다. 6월18일 발매 예정이구요. 내쉬빌에서 프로듀서겸 공동 작곡가 톰 햄브리지와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설리번은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 그리고 많은 레코드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또 “나는 계속 음악을 들으려고 하고, 내 귀를 열어 두려고 한다”고 했답니다. 

Posted by 최우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