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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들'에 해당되는 글 50건

  1. 2017.02.28 [경향의 눈]나비 효과 +α
  2. 2017.02.10 [경향의 눈] 대통령 면전에 서는 방법
  3. 2016.12.15 [경향의 눈]사적인, 지극히 사적인
  4. 2016.12.01 [사설]친박마저 퇴진 건의, 대통령의 조건 없는 사임만 남았다
  5. 2016.11.23 [여적]YS와 박정희 대통령 부녀
  6. 2016.11.21 [여적]가짜 뉴스, 진짜 뉴스
  7. 2016.11.21 [경향의 눈]시간은 누구의 편인가
  8. 2016.11.11 [여적] 미 대선 최대 패자는 여론조사
  9. 2016.11.11 [사설]세계를 뒤흔든 트럼프의 미 대선 승리와 불확실성
  10. 2016.11.07 [여적]대통령의 글쓰기
  11. 2016.11.07 [사설]연이틀 깜짝 인사, 분노한 민심에 기름을 붓는 자해행위다
  12. 2016.10.19 [정동에서] 뻔뻔함에 대하여
  13. 2016.08.31 [정동에서] 어떤 절벽들
  14. 2016.07.20 [정동에서] 대통령의 탈당 시계
  15. 2016.06.08 [정동에서]간신 곽개 뎐(傳)
  16. 2016.02.29 [정동에서] 진박의 진실한 공약들
  17. 2015.12.13 [아침을 열며] 커패시티
  18. 2015.10.12 [아침을 열며] 프란치스코와 고영주
  19. 2015.10.12 [아침을 열며] 롯데 ‘왕자의 난’과 당나라
  20. 2015.05.31 [아침을 열며]‘에바’와 ‘힌’
  21. 2015.03.29 [아침을 열며]돼지라도 돼달라
  22. 2015.01.25 [아침을 열며]‘이완구법’을 만들어라
  23. 2014.11.30 [아침을 열며]부자의 품격
  24. 2014.10.07 [아침을 열며]인문학과 스펙 사이의 젊은이들
  25. 2014.10.06 [아침을 열며]미생지신(尾生之信) (2)
  26. 2014.05.30 부자
  27. 2014.04.25 피에타
  28. 2014.03.20 좋은 표현 없나요
  29. 2014.02.13 센스 앤드 센서빌리티
  30. 2014.01.03 법과 원칙

2017.01.11 21:02:01 수정 : 2017.01.12 09:34:11 달포 전 쓴 칼럼


[경향의 눈]나비 효과 +α

영국 식민지 시절 미국에서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들은 브랜디나 와인보다는 값싼 럼을 즐겨 마셨다. 미국 정착민들은 구하기 쉽고 싼 카리브해 당밀을 수입해 럼을 만들었다. 그러자 영국은 1733년 프랑스령 카리브산 당밀에 높은 수입관세를 매기는 ‘당밀 조례’를 발표했다. 식민지 사람들에게 영국산 당밀을 사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조례는 미국 하층 노동자들까지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원하게 하는 도화선 역할을 했다. 미국 2대 대통령이던 존 애덤스는 1818년 8월11일 친구 윌리엄 튜더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난 당밀이 미국 독립의 중요한 요소였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왜 얼굴을 붉혀야 하는지 모르겠어. 수많은 위대한 사건들이 그보다 훨씬 사소한 이유에서 기인했지 않았나.”(에이미 스튜어트 <술 취한 식물학자> 발췌)

어마어마한 사건이 사소한 일에서 비롯된 경우는 부지기수다. 돌이켜보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도 마찬가지다. 경향신문 등 언론의 끈질긴 취재와 보도 노력을 폄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어찌보면 사소한 두 사건이 엮이면서 초대형 게이트로 비화한 것은 공교롭다.

2015년 7월 검찰은 해외 원정 도박장을 운영한 혐의로 범서방파 행동대장 이모씨를 체포했다. 조사과정에서 네이처리퍼블릭 정운호 대표가 100억원대의 도박을 한 게 드러났다. 정 대표가 선임한 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는 부당 수임료를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 정 대표가 앞서 다른 도박사건에서 전관인 홍만표 변호사를 선임한 게 드러났고, 홍만표 변호사-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진경준 전 검사장 연줄이 나왔다. 진 전 검사장은 게임회사 넥슨으로부터 주식을 받았고 우 전 수석 처가는 넥슨과 부동산 거래를 한, 그들만의 내밀한 속사정도 드러났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경향신문 자료사진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경향신문 자료사진


이때만 해도 사건은 법조 비리에 머물렀다. 한데 청와대가 끼어들어 우 전 수석을 비호하면서 문제가 커졌다. 그 뒤 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 설립, 삼성 등 재벌 민원 청탁, 최순실씨의 국정 개입, 박 대통령 세월호 7시간 행적, 최씨 딸 정유라씨 이화여대 부정입학,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 일파만파(一波萬波)로 번졌다. 한국에서 손꼽히는 ‘법꾸라지(법률 미꾸라지)’들과 정치꾼들, 정권의 부역자들이 청와대에서 농성을 하며 빠져나갈 길을 찾았지만, 하늘이 내려다보고 땅이 올려다보는 천라지망(天羅地網)을 벗어나지 못했다. 

최순실씨/경향신문 자료 사진최순실씨/경향신문 자료 사진


정유라씨 개도 뜻밖의 역할을 했다. 최순실씨는 3년 전 정씨 개를 최측근인 고영태씨에게 맡겼다. 고씨는 최씨가 설립한 ‘더블루K’ 이사다. 고씨는 운동을 하느라 개를 혼자 두고 나갔고, 그 때문에 최씨와 고씨 사이가 틀어졌다. 고씨는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개 문제로) 최씨가 모욕적인 말로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씨는 최씨가 박 대통령 옷을 맞추는 곳에 카메라를 설치해 녹화한 뒤 언론에 제보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나비 효과’의 실증(實證)이다. 이는 중국 베이징에 있는 나비 날갯짓이 미국 뉴욕을 강타하는 허리케인이 된다는, 작은 사건이 엄청난 결과를 낳는다는 과학 이론이다. 다만 박·최 게이트는 우연에 우연이 겹쳐서, 그것도 한 방향으로 비가역적으로 진행되는 나비 효과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 바로 시민들의 개인적, 집단적 의지가 개입된 점이다. 사감이 있었지만 고영태씨는 언론 제보를 하고, 검찰 수사에 응하는 내부 고발자 역할을 했다.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은 신변에 위협을 느낀다면서도 국회에서 증언을 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 TV조선, JTBC에는 시민 제보가 줄을 이었다. 의혹 내용을 직간접으로 확인해주거나, “답변할 수 없다”면서 적어도 거짓말을 하지 않은 정부와 업계 관계자들도 있었다. 


“최순실 이름도 못 들어봤다”던 대표 법꾸라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꼬리를 밟은 이는 평범한 누리꾼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주식갤러리(주갤러)’ 이용자가 제보한 동영상에는 2007년 최태민, 최순실 관련 의혹을 해명하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선 후보와 박 후보 법률지원단장이던 김기춘 전 실장 모습이 생생하게 잡혀 있다. 

촛불시위/경향신문 자료 사진촛불시위/경향신문 자료 사진


무엇보다 노동에 지친 피곤한 몸을 쉴 금쪽같은 토요일, 볼이 빨갛게 언 아이들과 촛불을 들고 나온 1000만 시민이 있었다. 이들은 검질기게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대통령 하야와 탄핵을 부르짖었다. 전체주의와 사상 통제를 통렬하게 비꼰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은 “기만의 시대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은 혁명적 행동”이라고 말했다. 신실하고 선량한 절대군주인 양 치장한 대통령에게 진실을 요구하는 것, 거짓의 둥지로 전락한 청와대 앞에서 촛불을 드는 행위 자체가 혁명적 행동이다. 촛불의 미약한 일렁임이 일으킨 파동은 혁명의 열풍으로 완성돼 가고 있다.

Posted by 최우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문장과 개념을 비비 꼬아놓은 역사·정치 서적보다 훨씬 나은 교보재다. 외부인들에게 미국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했다. 미국민은 독립 이래로 약자를 보호하고 자유를 숭앙하는 청교도적 면모를 자랑스러워했다. 이번 미 대선 기간에 유권자들, 특히 백인 저소득 노동자들은 이를 벗어버린 것 같았다. 한풀이와 이익 극대화를 위해 트럼프에게 손을 뻗었다. 트럼프는 골프장에 난입한 격투기 선수 같았다. 자기만의 규칙을 들이대며 난동을 피우다시피 했다. 그의 당선 이후 ‘이게 미국의 본심이었다’라는 분석이 대세였다.


도널드 트럼프도널드 트럼프

 트럼프는 당선된 당일만 점잖게 굴었다. 취임 직후 “설마 지킬까”라는 의구심이 들 만큼 논란 딱지가 덕지덕지 붙은 공약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파장이 가장 컸던 게 반(反)이민 행정명령이다. 이슬람 7개 국적자 입국·비자발급과 난민 입국을 90~120일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테러를 할 나쁜 놈들”이 들어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시민들은 주먹을 쥐고 시위를 시작했다. 트럼프는 콧방귀로 답했다. 균열은 진영 내부에서 시작됐다. 국무부 관리들은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메모에 서명을 했다. 샐리 예이츠 법무장관 대행도 트럼프에 맞서다 시쳇말로 잘렸다. 주 법무장관들은 행정명령 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판사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600곳 가까운 대학 총장들, 가수 마돈나, 레이디 가가, 배우 메릴 스트립, 나탈리 포트만 같은 스타들도 가세했다. 애플, 페이스북, 트위터 등 정보기술 기업 130여 곳도 의견서를 법원에 냈다. 저항에 고위관료, 판사, 거대기업, 스타 등 기득권층이 앞장섰다. 트럼프 취임 이후 2주 동안 벌어진 일이다. 이런 변증법적 전개가 실제 일어나다니, ‘이게 미국의 진심인가’ 싶기도 하다.


도널드 트럼프로 분장해 비꼬는 배우 메릴 스트립도널드 트럼프로 분장해 비꼬는 배우 메릴 스트립

 그래서 아쉽고 아프다. 한국 박근혜 정권의 반헌법적 조처는 임기 초반부터 시작됐다. 많은 징후와 경종, 사고에도 불구하고 저항은 3년 반 뒤에나 본격화됐다. 미국서는 줄탁( 啄)이 함께했지만, 한국서는 안에서 알을 깨려는 ‘줄’은 부족했고 밖에서 쪼아대는 미미한 ‘탁’에 의존했다. 보름과 3년 반이라는 저항의 속도 차이는 이렇게 갈렸다.


 프로이센 재상 비스마르크는 공직자를 “펜을 가진 동물”이라고 했다. 생각은 없고 반민주적인 엘리트들이 일을 지체시키고, 끊임없이 서류를 만들어낸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에선 의미 있는 숫자의 공무원들이 그런 동물이기를 거부했다. 한국에선 소수를 제외하고 짐승의 룰을 따랐다. 대통령과 실세의 말을 메모하느라 받아쓰기 실력만 늘었다.


 한국 일부 대학 총장들은 분에 넘치게 자리를 탐하려고 아등바등했다. 선거에서 2등 한 이가 1위를 누르고 선임되거나, 비선 실세 요구를 몰래 들어주다 들통나 망신을 당했다. 기업들은 불법적 요구에 저항보다는 거래로 대처했다. 돈을 갖다 바치며 민원을 해결했다. 일부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동료, 선후배를 ‘나쁜 사람’이라고 낙인찍어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대가로 정부와 관련 단체의 높은 직책을 챙겼다.


경향신문 김용민 화백 작품경향신문 김용민 화백 작품

 한국민이 유독 못났거나 비겁해서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보복 수단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그렇지 못하도록 견제되는 대통령제 차이인가. 그럴 수도 있다. 전란과 분단, 독재를 겪으면서 돋아난 아비투스(habitus)인가. 태극기와,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되지만 성조기를 함께 흔들며 눈물로 “우리 대통령을 살리자”고 호소하는 이들을 보면 그런가 싶다.


 그토록 강력하되 무책임했던 대통령이 시민들 요구로 물러나기 직전이다. 다음 대통령은 현 사태를 딛고 됐으니 농단과 작란이 재연되기는 어렵지 않을까. 미국 소설가 스티븐 킹은 말했다. “순진한 사람의 신뢰는 거짓말쟁이의 가장 유용한 도구다.” 현실에서 남의 선의에만 기대는 순진함은 어리석음과 동의어다. 의심하고 회의해야 한다. 누구든 주위에 실세와 비선이 있다. 대통령이 되면 응당 스스로 경계해야 하나 쉽지 않다. 전·현직 대통령은 물론, 현재 대통령을 꿈꾸는 후보들이 몸소 보여주고 있다.


촛불집회 - 경향신문 자료 사진촛불집회 - 경향신문 자료 사진

 공직자, 학자, 예술가, 시민은 대통령, 또 힘있는 사람 앞에서 선택해야 한다. 손을 내밀지, 주먹을 쥘지. 그 기준점, 잡기 어렵지 않다. 내 언행은 검사와 판사 앞에서 떳떳할 수 있나. 기자 회견장에서, 동료 앞에서, 가족에게 떳떳할까. 무엇보다 나 스스로에게 떳떳한가. 스스로 떳떳하다면, 역순으로 따져봐야 한다. 가족과 동료 앞, 기자 회견장, 재판정에서도 거리낌이 없나. 모두 ‘그렇다’면 그 언행은 해도 되는 권리일 뿐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이다. 그렇게 쥔 주먹의 힘은 술잔에 넘칠 만한 물 정도겠지만, 더해지고 보태져 대륙을 도저하게 흐르는 강이 된다.

Posted by 최우규

[경향의 눈]사적인, 지극히 사적인

최우규 논설위원


11월29일 박근혜 대통령은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단 한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지금 벌어진 여러 문제들 역시 저로서는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들이었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개인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은 결국 저의 큰 잘못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박근혜 대통령이 11월29일 청와대에서 3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머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어디서 많이 듣던 변명이다. 1972년 영화 <대부>에 그 원형(原型)이 나온다. 알 파치노가 열연한 마이클 콜레오네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총을 쏜 솔로조와, 그에게 매수된 경관 매클로스키 처단 계획을 세우면서 이렇게 말한다. “It’s not personal, Sonny. It’s strictly business(이건 사적인 게 아니야, 소니. 순전히 사업이야).”

영화 <대부>에서 주인공 마이클 콜레오네로 열연한 알 파치노.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3차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영화 <대부>에서 주인공 마이클 콜레오네로 열연한 알 파치노.

이 대사는 후대에 두고두고 변주된다. 2008년 영화 <테이큰>에서 국제 인신매매 브로커 파트리스 상 클레어는 주인공 브라이언 밀스에게 딸 납치가 “사적인 것은 아니다”라면서 목숨을 구걸한다. 브라이언은 “It’s all personal to me(나는 지극히 사적이야)”라며 총을 쏜다. 2015년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에서 아내와 딸을 살해당한 검사 출신 알레한드로는 멕시코 범죄조직 두목 파우스토 알라르콘의 집을 급습한다. 파우스토도 살인을 지시한 게 “사적인 건 아니었다”고 하지만, 알레한드로는 “나에게는 사적이야”라면서 복수한다.

영화 <시카리오>에서 알레한드로(왼쪽)가 자신 부인과 딸 살해를 지시한 멕시코 범죄조직 두목 파우스토와 이야기하고 있다.영화 <시카리오>에서 알레한드로(왼쪽)가 자신 부인과 딸 살해를 지시한 멕시코 범죄조직 두목 파우스토와 이야기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잘못된 내면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범죄집단 안에서 자라면서 받아들인 태도, 감정, 가치관 등이 그릇된 사고체계를 만들었다. 늘 죄를 짓고 있다고 느껴서야 버틸 수가 없다. 사적 감정에 따른 게 아니라 ‘일’이라고 세탁해야 한다. 박 대통령의 발언도 그런 내면화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친박들도 “대통령이 단돈 1원이라도 받았느냐”고 옹호한다.

그럼 공적 사업이라는 것인데, 그가 한 일의 결과는 공공의 이득으로 나타났어야 한다. 실제 이득은 누가 가져갔나. ‘비선 실세’ 최순실씨다. 그는 남의 돈으로 회사들을 운영하고 돈을 벌었다. 대기업에서 뜯어낸 말을 딸에게 주고, 조카에게도 사업을 챙겨줬다. 문화계 황태자라고 불리던 차은택씨도 돈푼깨나 챙겼다. 그래서 박 대통령에게는 제3자 뇌물죄 적용이 검토되고 있다.

비서실세 최순실씨박근혜 대통령 '비선실세' 최순실 씨가 11월9일 새벽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마친 뒤 구치소로 돌아가기 위해 호송버스로 향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사익 추구 안 했다” 발언보다 듣는 이를 분노케 한 발언은 “주변 관리”다. 현재 국정농단 사태가 그저 주변 관리를 못했기 때문이라는 발뺌이다. 이전 대통령들도 주변 관리를 못해 사달이 났지만, 대부분 돈을 챙긴 정도였다. 박 대통령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유권자들이 잠시 위임한 통치권을 ‘주변’에게 나눠줬다. 지난 4년간 권력 1위는 박 대통령이 아니라 최순실씨였다. 박 대통령은 집무실보다 관저에 머물면서 ‘혼밥’하고 TV드라마를 보며 지냈다. 연봉을 2억원 넘게 받는 공직자가 기실 히키코모리(引き籠もり·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 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병적인 사람) 생활을 한 것이다.

그 사이 최순실씨는 대통령 연설문 수정, 장차관 간택도 했고, 국무회의·수석비서관회의 개최 지시까지 했단다. 최씨는 2013년 10월 말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국무회의를 열든지 정 안되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열 것’을 주문했다. 정 전 비서관이 어려움을 호소하자 최씨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준비하라”고 다그쳤다. 10월31일 오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가 열렸다.


무려 157년 전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 이렇게 썼다.

“지배자 이익이 국민의 이익이 되고, 지배자 의지가 곧 국민 전체의 의지가 돼야 하는 시대다. 따라서 국민이 자신의 의지를 견제할 필요가 없어졌다. 국민이 스스로에게 횡포를 부릴지 모른다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지배자는 국민에 대해 철저하게 책임을 져야 하고, 그렇지 못할 때에는 국민에 의해 즉시 권좌에서 쫓겨나게 된다. 따라서 국민이 권력의 사용처와 사용 방법을 엄격히 규정한다면, 그 권력을 지배자에게 안심하고 맡길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을 대신해 행사하기 편리하도록 지배자 손에 집중돼 있을 뿐, 그것은 사실상 국민의 권력인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를 딱 거꾸로 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자식들이 수학여행가다 물에 빠져도 손쓸 수 없고, 시위에 나섰다가 물대포에 맞아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가 낸 세금을 엉뚱한 데 쓰고, 내가 산 물건의 이문으로 엉뚱한 사람이 배불린 게 보였다. 촛불집회에 나간 이유다. 혹시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촛불을 들었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나는 지극히 사적이었다.”


Posted by 최우규



2016.11.28 23:32:02

새누리당 친박근혜계 중진 의원들이 어제 모임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명예 퇴진’을 직접 제안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에 주목한다. 전날 전직 국회의장 등 원로들의 퇴진 제안에 이어, 여당 주류까지 퇴진 요청에 동참한 것이다. 늦었지만 전국에서 190만 촛불이 켜지는 현 상황의 심각성을 친박 핵심들도 인식하게 됐다는 증좌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이들 제안을 스스로 누차 밝힌 대로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주류 중진들은 어제 시내 모처에서 비공개 오찬 회동을 하고 박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는 것을 고집하기보다는 국가와 본인을 위해 명예로운 퇴진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건의를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이들은 4~5% 지지율에 머무는 박 대통령을 지탱해주던 마지막 보루였다.

서청원 의원은 회동 후 “국가와 대통령을 위해 탄핵보다는 ‘질서있는 퇴진’이 맞다는 데 공감했다”고 말했다. 또 “최종 결정은 대통령이 하는 것이지만, (야당의 본회의 표결 추진 전에) 선언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이들은 허원제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이 같은 내용을 전했다. 서 의원도 박 대통령에게 이 같은 의견을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오른쪽)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진석 원내대표에게 대화를 요청하며 손짓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오른쪽)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진석 원내대표에게 대화를 요청하며 손짓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당내 분위기도 급속히 퇴진 쪽으로 기울고 있다. 대통령 탄핵 추진 요구에 펄쩍 뛰던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친박 중진들의 건의에 대해 “박 대통령이 여러 의견을 듣고 있으니 참고하시지 않겠느냐”며 “고명하신 국가 원로들 고견을 바탕으로 당 어른들도 시국수습 의견을 낸 것 같아 보인다”고 평가하며 변화된 태도를 보였다. 

마지막까지 민심에 맞서던 친박 주류도 대통령 임기 축소에 동의하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촛불민심은 5주째 계속되면서 바람에 꺼지기는커녕 늘어가고 있다. 검찰 수사에서는 박 대통령이 연루된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에 퇴진 요구를 넘어 “체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조만간 국회에서는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발의되고, 현재 흐름이라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 지지도는 한국 역사상 최저인 4%(한국갤럽)까지 떨어졌고, 국회 제1당이자 여당인 새누리당은 정당 지지도에서 3위로 전락했다. 

유권자와 부대껴야 하는 지역구 의원들은 민심 흐름을 절감하고 있다. 오죽하면 한 친박 의원이 “맞아 죽을까봐 무서워 지역구에도 못 내려가고 있다”고 하소연할 정도이겠는가.

정권도 내부에서 붕괴하고 있다. 사의를 표한 뒤 박 대통령의 집요한 만류를 뿌리쳐온 김현웅 법무부 장관 사표가 결국 수리됐다. 교육부마저 박근혜 정권이 추진해온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철회안을 내놓는 등 원심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 

친박 주류 핵심의 태도 변화로 ‘청와대에서 장기 농성’이라는 박 대통령의 기존 전략은 폐기될 수밖에 없다. 이제 선택지는 둘로 줄었다. 퇴임 시한을 못박고 국회와 정부에 질서있게 권력을 인계하는 방안과, 끝내 버티다가 친박까지 가세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된 뒤 청와대에서 유폐돼 헌법재판소 결정을 기다리는 것이다. 특히 탄핵이 추진되면 헌법재판소에서 소추안이 인용되든 안되든 나라 꼴이 엉망이 된다는 점은 박 대통령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 비정상인 한국 국정을 정상화하는 방안인지 두 번 다시 물을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퇴진 선언에 개헌이나 면책 등 이런저런 조건을 달거나 퇴임 시점을 명확하게 못박지 않으면 탄핵 회피용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퇴진 선언을 계기로 국회 내 탄핵 절차 진행을 훼방한 뒤 다시 지지부진하게 끌려고 한다면 더욱 거센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190만명의 촛불시민이라면 그 정도 꼼수는 능히 들여다보고 남을 것이다.

이제 박 대통령은 국정 최고지도자로서 결단을 내릴 시점이다. 조건 없이, 가급적 이른 시점의 날짜를 분명히 택해 사임한다고 약속해야 한다. 또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스스로가 초래한 국정 난맥상에 깨끗하게 사과를 하고, 이론의 여지가 없는 ‘퇴진 로드맵’을 밝혀야 한다.

또 변호인 뒤에 숨어 검찰 수사를 방해할 것이 아니라, 숱하게 제기된 모든 의혹과 관련해 성실하게 조사를 받아야 함은 물론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때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선서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제11조가 살아 있음을 몸소 보여주는 것도 시민에 대한 마지막 도리다.

Posted by 최우규



 2016.11.22 20:39:59

22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김영삼(YS) 전 대통령 1주기 추모식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추진파’ 회동을 방불케 했다. 정세균 국회의장과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심상정 정의당 대표, 노회찬 원내대표가 참석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문재인·손학규 민주당,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등 대선주자도 함께했다.

22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김영삼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모식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왼쪽)이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운데)를 사이에 두고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강윤중 기자22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김영삼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모식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왼쪽)이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운데)를 사이에 두고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강윤중 기자

추모위원장인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위기를 맞을 때마다 대통령님을 떠올린다”며 “근자에 국민은 실체를 드러낸 권력층의 무능과 부도덕에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작 이 고언을 들어야 할 ‘친박(근혜)계’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친박 맏형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은 불참했다. YS와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함께 만든 ‘민주화추진협의회’ 대변인 출신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 YS와 동향인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빠졌다. 

YS는 정치 인생에서 박정희·박근혜 전·현 대통령 부녀와 악연을 이어왔다. 1979년 ‘YH사건’이 터지자 박정희 정권은 그해 10월4일 국회에서 YS 제명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가택연금된 YS는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말했다. 시민 분노는 거세지고 10월16일 부산·마산 학생들이 ‘부마항쟁’을 일으켰다. 열흘 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총에 맞아 숨졌다.

1979년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시내에서 경찰 기동대원들이 시민들과 뒤엉켜 걷고 있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제공1979년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시내에서 경찰 기동대원들이 시민들과 뒤엉켜 걷고 있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제공

 박근혜 대통령은 YS 퇴임 후인 1998년 의원 배지를 처음 달았다. YS는 사석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독재자의 딸”이라고 부르며 백안시했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YS는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 2012년 7월 대선 경선 중이던 김문수 경기지사가 서울 상도동을 찾아와 “이번에는 토끼(김 지사 자신)가 사자(박근혜 후보)를 잡는 격”이라고 하자, YS는 “사자가 아니다. 그건 아주 칠푼이”라고 혹평했다.

지난해 YS 서거 때 차남 김현철씨는 “민주화가 다시 불타는 조짐을 보이는 이 시점에서 아버지는 ‘진정한 통합과 화합’이라는 유지를 남겨주셨다”고 말했다. 그 1년 뒤 통합과 화합 대신 국정농단 때문에 온 나라가 혼돈에 빠져 있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이 안 올까’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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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뉴스 제작자인 폴 호너는 17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내 덕분에 백악관에 있게 됐다”고 말했다. 호너가 유명 언론을 흉내 낸 사이트에 글을 게재하면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져나갔다. 호너는 반(反)트럼프 시위가 돈을 받고 하는 것이라는 가짜 뉴스를 만들었다. 트럼프 지지자들을 조롱하기 위한 것인데, 이를 진짜로 믿었다. 호너는 “트럼프 캠프 선대본부장도 한 시위자가 3500달러를 받았다는 뉴스를 사실로 여겨 게시했다”고 밝혔다.

호너는 “트럼프가 하고 싶은 아무 말이나 했고, 사람들은 그걸 믿었다”며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도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 “사람들이 더욱 멍청해졌다”며 “계속 뭔가를 여러 사람이 보도록 돌리는데, 누구도 사실 확인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가짜 뉴스는 미 대선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영향을 끼쳤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대변인은 어린 소녀 시신 사진을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마약상에게 성폭행당한 뒤 살해됐다는 것이다. 사진 출처가 필리핀이 아닌 브라질로 밝혀졌으나, 두테르테 지지자들은 계속 사진을 마약과의 전쟁을 옹호하는 데 활용했다.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2014년 대선 당시 중국계 기독교도, 공산주의자라는 의혹이 커지자 증명 서류를 공개하고 메카 순례를 다녀왔다. 2014년 에볼라 사태 때 시에라리온에서는 ‘뜨거운 소금물 목욕이 예방·치료법’이라는 잘못된 정보가 확산됐다. 

국내에서도 가짜 뉴스가 시민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한 목사가 “촛불집회 참석자들이 5만원, 10만원 돈을 받았다”고 설교했고, 목사라는 권위에 힘입어 설득력 있는 소식으로 유통됐다. 부산 해운대 엘시티 사건에 유력 정치인들이 연루됐다는 소식도 지라시(사설 정보지)로 나돌다가 뉴스로 보도됐다. 

한데, ‘청와대 1인자는 최모씨’ ‘호스트바 출신 측근’ ‘청와대 수석이 재벌 돈 뜯어 재단 설립’ ‘말 타고 명문대 입학’ 등 막장 드라마 소재 같은 일들은 실제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소셜미디어를 달구는 뉴스 중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Posted by 최우규



2016.11.16 21:13:41

집권 후 모든 분야를 망가뜨린, 심지어 ‘보수가 경제는 잘한다’는 잘못된 신화마저 깬 이 정권이 잘하는 게 하나 있다. 시간 벌기다. 박근혜(일명 ‘길라임’) 정권을 지탱해온 기제(機制)는 딱 이거 하나다. 불리한 상황이 되면 침잠해 버텼다. ‘개·돼지 같은’ 민중이 뭐라고 하든, 시간을 보내면 됐다. 배곯고 고달픈 시민은 지레 지치기 마련. 그래서 ‘흐지부지’는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부사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한 손이 잘린 뒤 수감된 이강희 논설주간은 이런 통화를 한다.

“우린 끝까지 질기게 버티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나라 민족성이 원래 금방 끓고 금방 식지 않습니까. 적당한 시점에서 다른 안줏거리를 던져주면 그뿐입니다. 어차피 그들이 원하는 건 진실이 아닙니다. 고민하고 싶은 얘기는 고민거리를, 울고 싶은 얘기는 울 거리를, 욕하고 싶어 하는 얘기는 욕할 거리를 주는 거죠. 열심히 고민하고 울고 욕하면서 스트레스를 좀 풀다 보면은 제 풀에 지쳐 버리지 않겠습니까. 예? 오른손이오? 까짓 거 왼손으로 쓰면 되죠.”

과연, 얼마 전까진 그랬다. 세월호 참사가 터진 게 947일 전인 2014년 4월16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뺨에 흐르는 눈물을 훔치지 않는, 본능마저 거스르는 놀라운 모습을 연출한 사과 이외에 한 것이 없다. 진상규명에 부정적 입장을 가진 이들을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 보내 훼방 놓았다.

특조위 활동 연장 문제를 놓고 박 대통령은 “국민 세금이 많이 들어가는 문제”라고 했다. 시민 300여명이 생짜로 숨진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 세금을 더 쓰면 안된다는 것이다. 참사가 난 지 2년이 넘어 시민들의 피로도가 올라갈 즈음이었다. 서울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천막 농성장을 향해 “이제 그만하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던 차다. 9월30일 정부 방침에 따라 특조위 활동은 종료됐다. 시간은 세월호 유가족들 편이 아닌 듯했다.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도 마찬가지다.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서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다. 투병 317일 만에 숨졌지만, 정부와 보수 측에선 진상규명보다는 ‘부검 논란’을 부채질했다. 371일째인 현재까지 그 누구도 책임을 졌다거나 처벌됐다는 소식은 안 들렸고,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지던 차다. 

국가가 책임지겠다던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 미배정, 굴욕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 군사정권 때나 있던 역사교과서 국정화, 지역주민뿐 아니라 주변국과도 마찰을 빚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등에서도 박근혜 정권은 시간을 무기로 내세웠다. 한때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다가 곧 당사자들만의 문제로 축소되고, 더 시간이 흐르면 “반대를 위한 반대” 혹은 “종북주의자들의 악머구리” 프레임에 갇혔다. 

정권의 내부자와 공모자들은 대중들이 떠들다 입을 닫을 때까지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송로버섯 요리를 먹고, 명품 구두를 신었다. 빌딩을 사고, 고급 외제 승용차, 승마, 해외여행을 즐겼다.

그러다 파탄(破綻)이 났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얼마나 가겠나” 했겠지만, 두 달째다. 박 대통령은 으레 시간 벌기로 일관했다. 첫 보도가 나고 35일 만에 90초짜리 녹화 사과를 했다. 간을 보다가 지지율이 5%까지 폭락하자 열흘 뒤 재차 사과를 했다. 박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고 했다. 하나, 그를 대리하는 유영하 변호사는 “사실관계를 대부분 확정한 뒤 대통령을 조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했다. 관계자들 수사가 끝나려면 수개월이 걸릴 것이다. 

흥분하면 속을 고스란히 드러내 어찌보면 순진한 것 같기도 한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15일 이런 말을 했다. “대통령은 지금 어떤 사안이 터진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 노력에 따라 회복될 수 있는 지지율이라고 본다.” 이번에도 시간은 박근혜 정권 편일까.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최근 미국 덴버대학교 정치학과 에리카 체노웨스 교수의 3.5% 법칙이 부각되고 있다. 1900년에서 2006년까지 발생한 시민 저항 운동을 분석해봤더니 한 국가 인구의 3.5%가 집회 및 시위를 지속할 경우 정권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다만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시위, 비폭력 시위’라는 두 가지 전제가 있다. 한국 인구 3.5%이면 180만명 정도다. 이들이 시간의 무게를 버티면, 정권은 버티기 어렵다는 것이다. 

외국 교수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시민들은 이미 알고 있다. 시간은 힘센 이의 편이 아니다. ‘흐지부지’를 거부하는, 끈질긴 이의 편이다. 영화 속 이강희 주간과 달리 박근혜 정권은 이미 오른손을 잃었고, 이제 왼손도 잃고 있다.

Posted by 최우규

 45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최악의 패자는 여론조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주요 언론사와 여론조사기관 대부분이 ‘이단아’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보다는 ‘모범생’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 승리를 예상했다. 뉴욕타임스는 클린턴 후보 당선 가능성을 84%로, 프린스턴 선거 컨소시엄과 허핑턴포스트 등은 99%로 봤다. 워싱턴포스트와 ABC방송은 47% 대 43%로 클린턴 우위를 점치는 등 주요 기관 11곳 중 9곳이 틀렸다. 망신을 당한 기관들은 반성문을 냈다. 9일(현지시간) 미국 여론조사 연합회는 “이번에는 완전히 틀렸다”면서 “여론조사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말했다.


 반면 대선 직전 트럼프 후보 우위를 점친 유력 기관은 2곳에 불과했다. LA타임스와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은 공동조사에서 48%인 트럼프가 43%의 클린턴을 앞섰다고 7일 밝혔다. 이어 경제전문매체 인베스터즈 비즈니스 데일리(IBD)와 여론조사기관 테크노메트리카 마켓 인텔리전스(TIPP)는 8일 45% 대 43%로 트럼프 우위를 예상했다.

 이 두 곳의 여론조사 기법은 좀 달랐다. LA타임스는 투표 의향에 중점을 뒀다. 조사 때마다 응답자를 무작위 추출하는 대신 3000여명을 골라 추적 조사했다. 그러면서 2012년 대선 때 누구를 찍었는지를 기반으로 가중치를 주고, 실제 투표할지도 거듭 물었다. 인터넷을 통한 조사도 병행했다. 그 이유에 대해 USC 경제·사회조사 사이프센터 아리 캡테인 책임자는 “일부 유권자들은 조사원과의 직접 면담에서 트럼프 지지 사실을 인정하길 부끄러워했다”고 말했다.

 IBD·TIPP도 자신들만의 방식을 썼다. 보통 여론조사기관은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인구통계학적으로 응답자를 고르지만 이곳은 연령, 성별, 인종, 지역 등 인구총조사 결과에 맞춰 응답자를 골랐다. 또 응답자들의 ‘정당 지지’(지지 정당이 있으면 일시적으로 다른 정당에 투표했다가도 특별한 사정이 없어지면 다음 선거에서는 원래 정당을 지지함) 여부에도 가중치를 줬다. 투표 의향에 무게를 둔 두 곳의 기법은 ‘비정통적, 실험적’이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이들 예상이 맞았다. 이번에는 여론조사기관도 ‘이단아’들이 이긴 것이다.     최우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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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예상을 깨고 승리했다. 미국민은 물론 전 세계는 지난 6월 영국의 예상치 못했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 때를 넘어서는 충격을 받고 있다. 미 CNN 방송은 투표 전날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 당선 확률이 91%로 높아졌다고 보도하는 등 대부분 언론은 트럼프의 패배를 점쳤다. 주가의 흐름도 같은 방향이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트럼프는 손쉽게 승리했다. 미 정가 경력이 전혀 없는 ‘아웃사이더’가 미 대통령이 되는, 240년 미국사 최초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트럼프 승리에는 기존 지지층인 쇠락한 중서부 제조업 지대(러스트 벨트) 백인 노동자들이 결집한 데다 샤이 트럼프(숨어있던 트럼프 지지자들)가 대거 투표장으로 나갔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정치 공학적 분석만으로 트럼프 승리를 분석하기는 부족하다. 오히려 미 워싱턴 정가와 주류 언론, 월가 등으로 표징되는 기존 질서를 유권자들이 거부했다고 보는 게 마땅하다. 기득권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들이 패배한 것이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 경찰을 자처하며 개입주의 노선을 유지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개방주의라는 세계 질서를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부는 소수에 집중됐고, 불평등은 심화했다. 노동자들은 오르지 않는 임금 통장을 쥐고, 월가와 워싱턴 정가 요인들의 번쩍이는 삶을 질시해야 했다. 8년 전 버락 오바마 미 민주당 후보가 외쳤던 ‘변화’의 바람도 기득권을 흔들지 못했다.

 그 불만을 어느 정치인보다 날것으로 이야기한 게 트럼프 후보다. 억만장자, 부동산 재벌인 트럼프 후보는 TV 연예 프로그램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며 오직 미국만을 위한 미국을 내세웠다. 일자리 보호를 명분으로 멕시코 불법 이민자를 막을 장벽을 설치하겠다면서 멕시코 이민자를 강간범이라 불렀다. 여성을 ‘미스 돼지’ ‘미스 가정부’ ‘빔보(골빈 미녀)’라고, 무슬림은 ‘테러범’으로 비하했다. 소수자 옹호, 이민자 수용 등 관용과 정치적 올바름보다는 ‘내 일자리와 내 재산’ 보호 같은 욕망의 정치를 대리했다. 백인 저소득층, 보수층을 중심으로 열광적 지지를 받는 ‘트럼피즘’이 뒤를 따랐다.

 트럼프 후보는 미 정당·정치 제도의 틀도 깼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만든 미 공화당에 혈혈단신 들어가 강자 16명을 패퇴시키더니, 결국 민주당 클린턴 후보까지 무릎 꿇렸다. 미 대선 과정을 정책과 공약의 경쟁이 아니라 추문 폭로와 이전투구로 얼룩지게 만들었다. 대선판은 쇼 비즈니스에 다름 아니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추악한 선거운동은 모두 그가 기획해낸 것이다. 그에 맞선 클린턴 후보는 기성정치의 대표자로 각인됨으로써 유권자의 염증을 풀어주지 못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대표해온 진보와 변화를 자신의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였다. 지지율 50%가 넘는 현역 대통령 오바마의 지원도 기득권의 성에 갇힌 클린턴을 구출하지 못했다.

 트럼프 후보는 미국 사회에 분열과 갈등의 씨앗을 뿌림으로써 미국 민주주의 모델을 위기로 몰았다. 그러나 변화에 대한 열망이 있을 때에는 그 변화를 반영하는 정치적 결과를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가 살아 있다는 점도 보여줬다. 결국 트럼프 후보는 유권자들의 기성 체제에 대한 미국 보통 시민들의 뿌리 깊은 혐오와 새로운 체제를 위한 변화 열망에 기대 고 전복과 부인, 부정을 무기로 미국 대권을 거머쥔 것이다. 지금까지 정치학 교과서는 상당 부분 새로 써야 할 판이다.

 45대 미국 대통령 트럼프 앞에는 난제가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최악의 선거라는 혹평을 받은 이번 대선 기간 갈가리 찢긴 미국의 상처를 치유하고 통합을 이뤄내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미 공화당이 상·하원에서 모두 다수당이 됐다. 하지만 트럼프 후보가 지금까지 보여준 독불장군식의 태도라면 여야 모두와 갈등할 때 국정을 원만하게 이끌기는 어렵다. 또 기존에 내놓은 공약들을 구체화하고, 합리적 의견을 도출해 실행가능한 대안이 되도록 다듬는 것도 무거운 숙제다. 특히 자신의 당선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브렉시트보다 몇 배는 강력할 것이라는 우려를 잠재워야 하는 과제도 있다.

 트럼프 후보는 오바마 대통령의 불법 이민자 추방을 유예하는 이민개혁 행정명령 폐지, ‘오바마케어’(국민건강보험 가입 의무화) 백지화, 소득세와 법인세 등 감세, 각종 자유무역협정 폐기나 재협상, 환경규제를 천명한 파리협정 탈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기여도 축소 등을 천명해왔다. 미국제일주의, 반세계화, 신고립주의, 보호무역 기조다. 트럼프는 기존 우방보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의 관계 진전 등 국제 정치에서의 격변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구체적 대안을 내놓지는 않았다. 기성 질서 거부라는 그의 분명한 입장과는 달리 그가 생각하는 다른 질서가 무엇인지, 그의 비전이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트럼프 시대의 미국, 나아가 트럼프 시대의 세계는 불확실성에 휩싸여 있다. 미국인은 물론 세계인은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

Posted by 최우규

서점가에 조용한 돌풍이 일고 있다. 나온 지 29개월 된 책이 최근 베스트셀러로 부상했다.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의 <대통령의 글쓰기>. 교보문고는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2일까지 이 책 판매량이 직전 열흘보다 76.6배 늘었다고 4일 밝혔다. 11월 첫째주 온라인 종합 판매량도 지난주보다 30계단 오른 5위다. 온라인서점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에서도 모두 종합 5위를 차지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청와대에서 8년 근무한 강 전 비서관은 이 책에서 기조를 잡아라, 제목을 붙여라, 타이밍을 잡아라40가지 소주제로 대통령들의 글쓰기 방식을 소개했다. 또 두 대통령의 글쓰기가 얼마나 엄밀했고, 소통이 활발했는지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연설문) 단어 몇 자 고쳐 내려오면 만점 수준. 한 단락을 긋고 좌우 여백에 다시 쓰면 매우 양호. 한쪽 전체에 가위표를 치고 뒷장에 다시 쓰면 좀 심각하다. 더 큰 문제는 녹음테이프가 내려오는 경우다. 대통령이 고쳐보려 했지만 손을 댈 수가 없을 때 직접 녹음을 해서 보낸다. 이것을 우리는 폭탄이라고 불렀다.”(14)

“2006년 신년사 준비. (무현) 대통령이 연설비서실에서 보고한 초안을 수정해 내려보냈다. ‘국민 여러분, 개해가 밝았습니다로 시작했다. 초안은 국민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였다. 아무리 개띠 해지만 설마 대통령이 개해라고 하셨을까. 대통령에게 여쭤봤다. 대통령은 당연하다는 듯이 “(‘새해개해로 친) 오타네하는 거였다. 확인과 퇴고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는 기회였다.”(142)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 연설문을 사전에 받아 빨간펜으로 첨삭했다는 의혹이 보도된 뒤 책 판매량이 늘었다. 비선 실세가 대국민 메시지까지 멋대로 주물렀을 가능성에 분노한 독자들이 두 대통령의 글쓰기를 돌아보게 됐다는 설명이다.

강 전 비서관은 지난해까지는 두 대통령에 대한 향수 덕에 이 책이 팔렸는데, 최근에는 자신의 생각을 갖고 글을 쓸 수 있는 대통령이 두 분밖에 없었다고 독자들이 느낀 것 같다좀 씁쓸하다고 말했다. 왜 안 그렇겠나.

Posted by 최우규

박근혜 대통령이 이틀 연속 ‘깜짝 인사’를 단행했다. 그제는 노무현 대통령의 청와대 정책실장이던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국무총리로 지명하더니, 어제는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이던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을 자신의 비서실장에 앉히겠다고 발표했다. 인사권을 휘둘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덮고 분노한 민심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번 인사는 절차와 과정도 문제지만, 예상외 카드로 자신이 처한 위기를 모면해보려는 그 저의가 노골적이다. 박 대통령의 독단과 독선은 이제 섬뜩하기까지 하다. 

퇴장하는 박근혜 대통령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청와대 춘추관 기자회견장에서 비선 실세 최순실씨 국정농단과 관련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퇴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제 김병준 교수 지명을 놓고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에서도 분노가 거세졌다. 시민들로부터 퇴진 압박을 받으면서도 여야, 국회와의 협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인사권을 휘두르는, 여전한 오기와 독선 때문이다. 야당과 인연을 가진 인물을 내세워 야권 분란은 물론 김 교수가 주장해온 이원집정부제 등 개헌으로 시선 전환을 꾀하려 했음이 명백하다. 그래 놓고 여야에 인선안을 받으라고 요구했으니 대통령 퇴진 목소리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또 깜짝 인사를 단행했다.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화해와 포용의 가치를 바탕으로 어려운 시기에 대통령을 국민적 시각에서 보좌하며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데 적임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한데 한 위원장이 국민 대통합을 이뤘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바도 없다. 이제 와서 그가 박 대통령과 마주 앉아 시민의 의견을 제대로 전달해줄지도 의문이다.

박 대통령은 이 같은 오불관언 인사로 여야 할 것 없는 비판에 직면했다. 새누리당에서도 “국회와의 협의 없이 총리를 지명하여 갈등이 고조된 그 다음날 비서실 인선을 강행했다. 비서실 인선 시기를 이렇게 잡은 것은 대통령의 일방 독주 선언”(하태경 의원)이라는 비난이 나왔다. 결국 청와대와 새누리당 내 일부 친박계만 환영하는 인사가 돼버렸다. 

박 대통령은 ‘통합과 화합’ 명찰을 단 인물을 내세워 현 국면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눈 밝은 시민이 그런 잔수를 못 알아볼 리가 없다. 

최근 주말 날씨를 알아보는 시민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5일 열리는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범국민행동’ 문화제에 참석하기 위해서란다. 그만큼 시민의 분노가 턱밑까지 찼다는 사실을 박 대통령은 뼈아프게 자성해야 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방탄용’ 인사권을 거두고, 국정 방향과 자신에 대한 조사 방법을 국회와 논의하는 게 그나마 정도일 것이다.   2016.11.03

Posted by 최우규




“유신 때나 이랬다.” “유신 때에도 이렇지는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저항하던 시민이 공권력의 개입 혹은 공격에 의해 숨진다. 1973년 최종길 교수가 숨졌고, 2016년 백남기 농민이 숨졌다. 박정희 정권은 중앙정보부를 동원해 최 교수 사인을 은폐하고, 박근혜 정권은 유감 표명은 없이 부검만 고집하고 있다.


백남기 농민 빈소시민들이 서울대학교병원의 백남기 농민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비선(秘線)은 공식 계통보다 강했다. 1975년 고 최태민씨는 대한구국선교단을 발족해, 자신은 총재에 취임하고 당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박근혜 대통령을 명예총재로 추대했다.

최씨에 대한 당시 수사자료에 “행정부, 정계, 경제계, 언론계 등 각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올해 국정조사에서는 최태민씨 딸 순실씨와 외손녀 정유라씨 이름만 도드라졌다. 재벌 팔을 비틀어 며칠 만에 수백억원을 모아 재단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최순실씨, 그와 친하다는 차은택 전 문화창조융합본부장 등의 이름이 곳곳에 등장했다.


최씨 딸 정씨는 재벌 2·3세, 공주·왕자들이 많이 한다는 마장마술을 배워 선수가 됐다. 자기 돈은 별로 들이지 않았다. ‘금수저를 넘어 국(國)수저’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경향신문 홈페이지최순실씨 딸 정유라씨 관련 기사를 게재한 경향신문 홈페이지.



예전 박 대통령은 정부와 여당을 종 부리듯 했고, 지금 박 대통령도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 사람들이 아직도 있느냐”는 지엄한 물음에 해당 공무원들이 옷을 벗을 정도니.


그때 청와대에 차지철 경호실장이 있었다면, 지금은 우병우 민정수석이 있다.


여당의 굴종은 더 노골적이다. ‘최순실 게이트’나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에 일언반구도 않고 청와대와 최순실씨 방어만 하던 여당이다. 한데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과정에서 북한 의견을 물었다는 ‘송민순 회고록’에 여당은 위원회를 꾸리고 최고위원회의, 중진 연석회의, 의원총회 등을 열어 화력을 쏟아붓고 있다. 남(야당)이 공세하는 것은 “민생 외면”이고, 자신(여당)이 하는 것은 “진상 규명”이란다.


40여년 전과 달리 이 정권은 경제에는 무능하지만, 불신과 갈등 조장에는 더 유능하다. 김제동씨 영창 발언을 놓고 ‘국방부 장관은 개그맨’과 싸우고, 백남기 농민 부검 건을 놓고 ‘프레지던트(대통령)는 레지던트(수련의)’와 싸운다고들 한다. 검찰을 시켜 자신들 핵심 인물은 쏙 빼고 야당 주요 인사들만 선거법으로 징치하려고 한다. 그 낯두꺼움은 갑남을녀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고래(古來)로 무류(無謬·infallibilitas), 무치(無恥·impudentia)는 영웅의 특질이었다. 오류로 비치는 것도, 본디 그렇게 하도록 돼 있어서다. 그러니 무얼해도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북구 신화의 주신(主神)은 오딘이다. 

오딘북구 신화의 주신 오딘

그는 강력한 힘과 지혜를 가졌지만, 공명정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기후의 신답게 변덕을 부리고, 거짓말과 배신도 밥 먹듯 했다. ‘불화를 일으키게 하는 자’라는 별칭도 있다.


지혜를 갈구하던 오딘은 거인 흘레바르드로부터 마법 지팡이 간반테인을 얻고는, 거인의 정기를 없앴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것이다. 그를 수호신으로 하는 이들은 배신에 의한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한 고조 유방(劉邦)도 오딘 못지않다. 중국 역사상 두번째로 천하를 통일한 그는 공신들을 하나씩 제거해나갔다. 유방은 일등 공신 한신을 초나라 왕으로 봉했다가 반란을 의심해 왕위를 박탈하고 회음후로 봉해 도성에 잡아두었다. 결국 한신은 모반한 진희를 도우려 했으나 들켜, 목이 달아났다.


유방은 팽월, 영포, 장도 등도 없앴다. 400년 제국 기틀에 누가 될 것 같으면 모조리 제거한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뻔뻔함은 북구 신화 ‘에다’나 사마천 ‘사기(史記)’에 나올 법하다. 스스로를 전능한 신이나 수백년 왕조의 비조(鼻祖)쯤으로 여기는 것 같아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 박근혜 정권은 교체된다는 사실이다. 주체가 여든, 야든. 대통령 선거날 2017년 12월20일까지 428일, 대통령 퇴임일 2018년 2월24일까지 494일 남았다.


그 이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검찰이 현 정권 실세와 비선을 지금처럼 보호해줄까. 천만의 말씀이다. 검찰이야말로 뻔뻔함의 대명사다.


2003년 비주류 중의 비주류여서 ‘만만한’ 노무현 대통령과 맞짱 뜨던 검사들의 기개는 이후 두 정권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 칼날의 방향이 달라졌던 게 주지의 사실이다.


현재 제기되는 의혹은 대검과 서울지검 어느 캐비닛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을 것이다. 빛을 볼 날을 기다리면서.

Posted by 최우규




여기 한 정치인이 있다. 외조부와 종조부가 총리였고, 아버지는 장관이었다. 그도 총리다. 인근 국가에서 보면 보편적 세계 질서, 평화와 안녕보다는 자국 이기주의를 내세우는 못된 정치인이다. 대놓고 그 나라 우익 이익을 대변한다. 영구 집권과 자신의 임기 연장을 꾀하는 정치꾼이다.


자신은 그런 특질을 부인하지 않는다. 은근히 부각시킨다.


한국민은 그를 싫어한다. 8월 아산정책연구원 외국 정치 지도자 호감도 조사에서 10점 만점에 1.84점으로 꼴찌에서 두번째다. 자국에서 인기는 안정적으로 높다. 그럴 수밖에. 현재 유권자는 물론 미래 표심까지 아우르는 정책에 올인해왔기 때문이다.


바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내각총리대신이다. 그는 각종 ‘절벽’(꽉 막힌 상황) 상황을 타개하는 데 진력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아베 신조 일본 총리



‘소비 절벽’을 깨는 제일 좋은 방법은 소득을 올려주는 것이다. 일본은 최저임금액을 평균 25엔(274원·이하 30일 현재) 올려 823엔(9012원)으로 정했다. 이는 지역별로 다르게 10월부터 적용된다. 물가가 제일 비싼 도쿄는 932엔(1만205원), 가장 낮은 미야자키현은 714엔(7818원)이다.


한국 정부는 내년 최저시급을 6470원으로 정했다. 올해보다 440원 올렸다. 일본이 잘사니까 최저임금이 높은 게 당연할까. 꼭 그렇지 않다. 질(質)이 문제다.


햄버거 빅맥 가격을 비교해 각국 통화 구매력 등을 평가하는 빅맥지수라는 게 있다. 7월 한국 빅맥지수는 3.86이다. 빅맥 하나를 사먹으려면 3달러86센트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3.47이다.


내년 최저시급을 달러로 환산하면 일본 도쿄는 9달러12센트, 한국은 5달러78센트다. 도쿄에서 1시간 일해 번 돈으로 빅맥 2개를 사먹고 2달러18센트가 남는다. 한국에선 빅맥 1개를 사먹으면 1달러92센트 남는다. 환율, 빅맥지수, 최저임금의 시점이 달라 오차가 있을 것이다. 다만 정변 같은 사태가 없는 한 이 추세는 유지될 것이다.


이보다 더한 차이가 있다. 아베는 정부 차원에서 “임금을 많이 주라”고 기업을 압박해왔다. 이를 통해 경기를 살리고, 월급쟁이 유권자와 그 가족 표심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행동한 것이다. 임금이 많이 올라 재계를 힘들게 할까봐 안달하는 한국 정부와는 사뭇 다르다.


아베 정부는 ‘취업·노동 절벽’ 상황을 일본판 ‘저녁이 있는 삶’으로 바꾸려고 한다. 여성 취업을 늘리기 위해 50만명의 아동 수용시설을 확보키로 했다. 베이비시터(육아도우미)를 고용하거나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기는 가구의 세금 부담도 줄일 방침이다.


노동자가 초과근무로 늦게 퇴근했을 때 출근 전에 최소한 휴식을 보장하는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인터벌 규제’ 제도를 내년 도입하기로 했다. 매월 마지막 금요일을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로 지정, 퇴근 시간을 오후 3시로 당기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일본도 ‘인구 절벽’은 심각한 문제다. 아베는 1억 인구를 지키겠다며 1억총활약 담당상(장관)을 임명했다. 저소득·비정규직 노동자가 안심하고 아이를 낳는 사회가 목표다.


써놓고 보니 이건 ‘찬안배진삼가(讚安倍晋三歌)’가 돼 버렸다. 어쩌다, 정치인이 표심을 얻으려 노력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격률(格率)이 시행되는 걸 부러워하게 됐을까.


바다 건너에 있는 또 다른 정치인 때문이다. 그도 대를 이어 대통령을 하고 있다. 그가 맞닥뜨린 상황은 일본보다 더하다. 소비, 성장, 노동, 고용, 결혼, 인구, 남북, 외교 등 모든 부문이 절벽 상태다. 한데 표심을 살피기보다는 ‘마이 웨이’만 고집하고 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다. 이원종 비서실장은 7월1일 국회에서 “대통령께서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100% 일하고 계신다”고 말했다. 대다수 유권자들은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른다. 다만 최근 박 대통령 행보 중 눈에 띄는 건 딱 2가지다. ‘비서 구하기’와 ‘기승전북(起承轉北·무슨 일이든 북한이 문제인 것으로 결론 내기)’이다.


기중 우병우 민정수석을 둘러싼 논란은 국정을 막아선 4면 절벽이 돼 버렸다. 조선시대로 치면 승정원(왕의 비서기관·청와대)의 좌승지쯤 되는 인사를 구한답시고 승정원과 의금부(검찰) 전체가 난장을 치는 형국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박근혜 대통령(오른쪽)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청와대 사진기자단



박 대통령은 우 수석 비판자를 ‘부패 기득권과 좌파 세력’이라고 규정하고, 청년들에게는 “자기비하와 비관, 불신과 증오”한다고 타박한다.


뭐, 좋다. 그게 소신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국민을 혼내기만 하지 말고 아베처럼 뭔가를 해줘야, 아니면 하는 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누구는 절벽이랑 싸우는데, 다른 누구는 스스로가 절벽이다.

Posted by 최우규



대통령 가운데 “나라를 엉망으로 다스리고 반대파랑 척진 뒤 탈당해 정권을 야당에 넘겨줘야지”라고 마음먹는 이가 있을까. 그럴 리가 없다. 모두 “국리민복을 이루고 정권을 재창출한 뒤 역사의 평가를 받겠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결과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았다. 1987년 개헌으로 5년 단임제가 된 뒤 대통령들은 대부분 궁지에 몰려 탈당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1992년 9월18일 여당 민주자유당에서 전격 탈당했다. 노 대통령은 박철언 의원을 내심 후계자로 점찍고 있었다. 김영삼 대선 후보는 강력 반발했다. 노 대통령은 YS 측과 상의도 하지 않고 탈당을 발표했다. 김영삼 대통령도 이회창 대선 후보와 갈등을 겪다가 1997년 11월7일 일방적으로 신한국당에서 나왔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2년 5월6일 새천년민주당을 떠났다. ‘최규선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 등에다 세 아들 비리 의혹이 고개를 들며 당에 부담이 될 때였다. 노무현 대통령도 열린우리당 요구에 2007년 2월28일 당적을 정리했다.


이명박 대통령만이 탈당하지 않고 임기를 마쳤다. 2011년 말 한나라당 내에서 대통령 탈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졌다. 이를 거부한 이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었다. 그는 2012년 1월19일 “차별화를 위한 차별화를 할 생각은 없다”며 당 안팎의 이 대통령 탈당 요구를 일축했다. 그의 이 말 한마디로 논란이 정리됐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 차례다. 그는 새누리당을 탈당할까. 한다면, 언제 할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7월26일 한국전 정전 60주년 행사 참석 등을 위해 방한한 존 키 뉴질랜드 총리와 정상회담에 앞서 현관에서 존 키 뉴질랜드 총리를 기다리며 시계를 보고 있다. _청와대사진기자단


탈당을 향한 임계점으로 다가가고 있다. 우선 지지층이 약화하고 있다. 박 대통령을 지탱해온 주요 축은 셋이다. 영남, 보수, 중·노년층이다. 최근 셋 모두 붕괴, 적어도 균열상을 보이고 있다. 4·13 총선 결과가 그렇다.


현 상황도 좋지 않다. 영남 지역에선 신공항, 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 민심을 잃고 있다. 보수도 등을 돌리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번주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청와대 우병우 민정수석 의혹과 4·13 총선 당시 친박·청와대의 공천개입 문제를 연일 대서특필하는 언론은 보수신문과 그 계열사인 종합편성채널이다.


국정운영 전반에서도 플러스 요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경제는 쪼그라들고, 양극화는 심화하고 있다. 청년실업, 보육문제 등 공약(公約)은 모두 공약(空約)이 됐다. 이 정부의 장기라던 ‘외교’는 파탄 직전이다. “통일은 대박”이라고 했지만, 이젠 누구도 이 정부의 통일 의지를 믿지 않는 지경이다.


박 대통령의 손발이 돼준 주요 축은 여당 새누리당의 ‘친박’이다. 이들은 4·13 총선에서 실패한 세력으로 낙인찍혔다. 본인들만 이를 부정하면서 고토 회복을 위해 분투 중이다. 하지만 실기했다. 맏형인 서청원 의원의 당권 장악을 마지막 기회라고 여겼던 듯하지만, 물 건너갔다. 박 대통령과 수시로 통화한다던 최경환·윤상현 의원도 총선 공천개입 실상이 드러났다. 구심력이 약화했으니, 앞으로 원심력이 더 커질 것이다.


박 대통령이 이 대통령 탈당을 막아준 것처럼 차기 여권 후보가 박 대통령을 지켜줄까. 박 대통령은 2012년 초 가장 강력한 여권 주자였다. 그런 자신감에다 ‘배신’을 가장 무거운 죄악으로 여기는 특유의 기질이 이 대통령 탈당 반대라는 선택에 이르게 한 것이다. 하지만 비박 후보라면 그럴 일이 없을 것이다. 차별화를 위해서라도 먼저 탈당을 요구할 수 있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처럼 임기 말 인기를 누린다면 모를까, 지지율이 떨어진 대통령을 떠받들 이유가 있을까.


이를 잘 알기 때문에 친박은 자기쪽 사람을 후보로 세우려고 한다. 이를테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영입해 대선 후보로 만들고 실제 권력은 자신들이 휘두른다는 복안일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측근 세력이 ‘노골적으로’ 민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한 적은 없다. 그게 우리 정치의 생리다. 


박 대통령에게는 기회가 있다. 역대 대통령들은 대선이 치러지는 해에 탈당해야 했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에게는 반년~1년 시간이 남아 있다. 그동안 친박을 정리하고, 내각을 정비하며, 국민과 소통하면서 국정에 전념하는 것이다.


초심으로 돌아가면 된다. 자신의 대선 출마 선언문과 후보직 수락 연설문, 대통령 취임사를 곱씹어 보면 길을 찾을 수 있다. “국민 한 분 한 분의 꿈이 이루어지는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각오로 이 자리에 섰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모두가 함께 가는 국민 대통합의 길을 가겠다” “국민 뜻에 부응하여 경제부흥과 국민행복, 문화융성을 이뤄낼 것”이라던 약속을 지키면 된다. 째깍거리는 탈당 시계를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Posted by 최우규



고래부터 천하에 간신은 늘 있었다. 기중 전국시대 조(趙)나라 대부 곽개(郭開)만 한 이도 드물 것이다. 시쳇말로 ‘역대급’이다.

곽개곽개


조나라 명장 염파는 진(秦)나라 침입에 대비해 보를 쌓고 지구전을 치렀다. 진은 세작을 동원해 “염파는 늙어 겁이 많다. 진 군사가 두려워하는 것은 조괄뿐”이라는 소문을 퍼뜨렸다. 한 때 염파에게 ‘소인배’라고 모욕을 당했던 곽개도 맞장구쳤다. 조 효성왕은 지휘관을 조괄로 교체했다. 조는 진과 싸워 크게 졌고, 염파는 위나라로 망명했다.

염파염파


효성왕의 아들 도양왕은 염파에게 사자를 보냈다. 곽개는 그 사자를 금으로 매수했다. 염파는 사자 앞에서 쌀밥 한 말과 고기 열 근을 먹어 보였다. 사자는 왕에게 “염 장군은 늙었지만 식사도 잘합니다. 그러나 신과 자리를 같이하며 세 번 오줌을 지렸습니다”고 아뢨다. 왕은 염파를 부르지 않았다.


도양왕 아들 유목왕 6년 지진이 나고 가뭄이 들어 민심이 흉흉해졌다. ‘진나라 사람은 웃고/ 조나라 사람은 통곡하리라/ 이것이 믿기지 않는다면/ 맨땅에서 털이 솟아나리다’라는 민요가 나돌았다. 그 다음해 땅에서 한 자가 넘는 흰 풀이 솟아났다. 곽개는 왕에게 이 사실을 숨겼다.


유목왕 7년 진나라는 조를 칠 태세였다. 조나라는 명장 이목과 사마상을 시켜 막게 했다. 진나라는 곽개에게 많은 금을 주어 “이목과 사마상이 모반하려고 한다”고 고하게 했다. 유목왕은 이목의 목을 베고 사마상을 해임시켰다. 석 달 뒤 조나라는 멸망했다.

이목이목


곽개는 간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여론을 왜곡했고 좋은 신하를 밀어냈다. 나랏일보다 사익을 앞세웠고, 뇌물을 받아 제 배를 불렸다. 왕을 나쁜 길로 꾀었다.


이를 2200여년 전 일로 치부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다. 도처에서 발견된다. 방위산업 부문만 해도 한 달이 멀다 하고 쌀 몇백 수레, 황금 몇 관짜리 비리가 적발된다. 최근 전·현직 판관들이 짬짜미해 사법권을 주물렀고, 전관들은 시민이 상상도 못할 돈을 거둬들이고 있음이 공개됐다.


재물을 챙겨야만 간신은 아니다. 이익을 좇아 무리를 이루고, 장(長)을 임금인 양 떠받들어 오도하며, 농단하는 것도 간신 짓이다. 아무 일 않고 숨어 자리만 보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청와대라는 곳에서는 대통령과 친하다는 몇몇이 십상시(후한 말 영제 때 환관들)로 불린다. 여론을 차단하고 대통령 ‘심기 경호’만 한다는 것이다. 온갖 인사를 이들이 결정한다는 말이 나돈 지도 오래다.


소위 ‘진박’이라는 이들은 나랏일을 하다 지난 4월 총선에 나왔다. 부국강병을 다짐하기보다는 다른 세력을 몰아내겠다면서 몰려다니다 역풍을 맞아 자기 붕당을 궤멸 직전까지 몰아갔다.


최근엔 대통령 건강을 놓고 때아닌 시비가 일고 있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아프리카, 프랑스 순방 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길고 빡빡한 일정을 링거로 버티면서 고군분투했다”고 밝혔다. 한데 이번 순방은 시작 전부터 말이 많았다. 국내 사정이 그악해서다.


남북을 둘러싼 미·일·중 힘겨루기 등 동북아 정세는 자심해지고, 경제는 내년이 다가오는 게 두려울 만큼 망가지고 있다. 두 정부에 걸친 대기업 뒤 봐주기는 미세먼지, 가습기 살균제 등 환경의 역습을 불렀다. 강남역 여성 살인,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등 시민들이 어이없이 목숨을 잃고 있다. 이쯤 되면 이건 나라가 아니라, 개인 스스로 목숨을 도모해야 하는 ‘정글’에 다름아니다.


대통령은 선친과 인연이 있는 아프리카 국가를 돌아보고, 프랑스에서 42년 전 잠깐 유학한 곳을 찾았다. 추억 여행이라는 지적은 이 때문에 나왔다. 이 판에 ‘링거 고군분투’ 운운하니, “임금께서 백성을 어여삐 여겨 옥체를 돌보지 않고 집무에 임하시니 감읍하라”고 말한 것으로 들린다.


간신은 어떻게 존재하나. 군주의 어리석음이나 교활함이 토양이다. 눈이 어두워 간신임을 몰라볼 때 득세한다. 아니면 왕이 제 욕망을 채우려고 간신을 내세우기도 한다. 결국 부리는 이의 잘못이다.


간신은 야당에도, 야권 유력 주자 옆에도 있고, 기업과 단체에도 있다. 주목받지 않았을 뿐, 말 그대로 편재(遍在)한다.


조나라의 마지막 왕과 곽개는 어찌됐을까. 유목왕은 옛 초나라 땅 방릉으로 압송돼 구금됐다. 그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곽개는 진나라 왕을 따라 함양성으로 갈 때 황금이 너무 많아 가져가지 못했다. 나중에 옛집으로 돌아가서 뒤뜰에 묻어 놓은 황금을 파내 수레 여러 대에 실었다. 함양성으로 돌아가던 중 습격을 받아 목숨도, 황금 수레도 빼앗겼다. 남은 것은 ‘희대의 간신’이라는 오명뿐이다.

Posted by 최우규



20대 총선이 달포 앞으로 다가왔다. 야권은 쪼개져 삿대질하며 악머구리처럼 싸운다. 여당에도 난리가 났다. 먹을 것이 많아서다. 달려드는 이가 많아지니 다툼이 커지는 건 정글의 법칙일 터.


이 야단 와중에 코미디가 벌어지고 있다. 국회의원 후보자가 병아리도 아닌데 감별사가 나타났다. ‘박근혜 대통령을 위하는 진실한 사람’인 진박(眞朴)인지, 진실한 체하는 가박(假朴)인지 가려준다는 것이다.


기중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이 갑이다. 경제부총리씩이나 했던 분이 몸을 낮춰 감별사를 자처했다. 주로 강세 지역을 주유하며 진박을 낙점한다.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 _권호욱 선임기자


최 감별사가 진박 후보들을 치켜세우는 말들이 요즘 말로 아재(아저씨) 개그 뺨친다. 지난 3일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의 대구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는 “정 후보가 붓글씨에 일가견이 있다. 우리 또래 중에 붓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 없는데, 진실한 사람”이라고 감별해줬다.


2일 윤두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대구 사무소 개소식에도 거둥하듯 등장해 “윤 후보가 참 감각이 탁월하다. (개소식 날짜를)오늘 박 대통령 (64세)생신날로 뽑았죠. 그 정도는 돼야 국회의원을 한다니까”라고 말했다. 


1일 이헌승 의원의 부산 사무소에서는 “2007년 박근혜 대표 경선 때 내가 종합상황실장을 했고 이헌승 의원이 수행단 부단장을 했는데 뚝심 있는 사람이다. 진실한 사람과 함께해야 진실한 사람 아닌가”라고 했다. 자신이 진박이니, 자신과 함께했던 이 의원도 진박이라는 깔끔한 논리다.


2009년 용산참사 때 강경 진압을 지휘한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은 경주 선량이 되겠단다. 12일 최 감별사는 그를 향해 “출중한 국가관을 갖고 있고, 한국공항공사를 성공적으로 이끈 경영능력을 가진 훌륭한 후보”라고 했다. 공항공사 산하 국내 공항에서 사건, 사고가 잇달았다는 소식은 못 들은 듯하다.


그래서, 그의 감별법은 덜 진실해 보인다. 그것보다 훨씬 나은 기준이 있다. 진박 피라미드 정점에 있는 박근혜 대통령 의지를 얼마나 실현해 내는가를 보면 된다.


북한 핵실험과 로켓 발사로 한반도 긴장이 증폭되자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카드를 들고나왔다. 이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탐지해 격추하는 시스템이다. 중국은 사드가 자국을 겨냥할 것이라고 반발하고, 야권도 “동북아에 신냉전을 불러올 것”이라고 타박한다.



이럴 때 진박들이 떨쳐 일어나야 한다. 대구든, 경기 평택이든 “사드를 내 지역구에 유치하겠다”고 공약하면 된다. 아마 그분께서는 ‘국회에서 피를 토하듯 열변하는 것’보다 이를 더 좋아할 것이다.


지역구민들이 좋아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니 후보자의 ‘진박 의지’가 중요하다.

지역구 사무소나 자택에서 101m쯤 떨어진 곳에 사드 레이더를 설치하겠다는 공약까지 하면 금상첨화다. 사드 레이더 관련 보고서는 ‘100m 이내에서 심각한 화상과 내상을 입힐 수 있다’고 돼 있다. 한민구 국방장관도 “사드 레이더는 최소고각이 고도로 유지되기 때문에 100m 이내만 조심해야 할 구간”이라고 했다. 


그러니 레이더 100m 바깥에서 숙식을 하는 정도의 기개를 보여야 한 조각 붉은 마음을 떨쳐보일 수 있지 않겠는가.


핵 무장을 하자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좋다. 그게 진박으로서 진심이라면 아예 “내 지역구에 핵 재처리 시설, 핵 미사일 시설, 미국 전략핵 시설을 세우겠다”고 유권자들에게 약속하면 된다. 핵 ‘3종 세트’도 좋고, 사드와 핵의 ‘1 + 1 콤보 세트’ 공약도 믿음직할 것이다.


그것 말고도 꽤 많다. 지역구에 개성공단 대체 시설 건설 및 한달 평균 임금 18만600원의 노동력 제공, 북 최고위층 암살 특수부대 시설 건립, 복무 중인 진박 자제들의 이동형 대북 확성기 지원 근무 등도 눈길을 끌 만한 공약이다.


참, 박 대통령이 그토록 원해 마지않던 테러방지법이 국회 본회의에 직권상정됐다. 이참에 국가정보원으로 하여금 진박들의 통신 감청과 계좌 조회 허용을 공개 천명하면 어떨까. ‘몽매한’ 유권자들이 국정원의 권력 오·남용을 우려하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몸소 보이라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의원이 지난 2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 강행처리를 반대하는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하고 있다. _ 이준헌 기자


마침 국정원은 “북한이 반북 활동가, 탈북자, 정부 인사 등에게 독극물 공격을 하거나 중국 유인 후 납치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에 비판적인 정부·정치권 인사나 언론인에게 신변 위해를 가할 수 있다”고 했다. 


테러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자신의 정보쯤이야 국정원에 건네주고 감시해달라고 요청하면 일거양득 아닌가.

Posted by 최우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최고위급 직책에 있던 이가 들려준 이야기다.

“사람도 그렇지만, 국가나 정부도 커패시티(capacity·역량)에는 한도가 있어. 갑자기 커지지 않거든. 모든 문제를 한번에 다 풀 수 없어. 하고 싶은 일을 한꺼번에 벌여 놓았다가는 모두 망칠 수 있어. 그래서 정책 순위를 정하는 게 중요하지.”

김영삼 정부는 군 사조직 하나회 척결부터 금융실명제, 12·12 쿠데타, 광주 학살 단죄 등 역사 바로 세우기까지 한 정권에서 하나 하기도 힘든 일들을 해냈다. ‘첫 문민정부’라는 명분에, 민심의 절대적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정부도 초반부터 많은 일을 벌였다. 외환위기 극복이 최우선 과제였다. 햇볕정책, 의약분업, 교사 정년 단축, 국민건강보험 출범 등도 추진했다. 순탄치 않았다. 의약의 합리화와 약품 남용을 방지한다는 의약 분업 제도에는 양측 모두 반대했다. 시위가 계속됐고, 의원과 약국의 집단폐업으로 이어졌다. 정년을 65세에서 62세로 줄이려 하자 교사들이 반발했다. 그래도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극복을 내세워 정책을 밀어붙였고, 정착시켰다.

노무현 정부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포함해 언론관계법, 사립학교법, 과거사청산법 등 ‘4대 개혁입법’을 과제로 내세웠다. 보수진영은 사생결단의 기세로 달려들었다.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먹고사는 문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입법’을 힘으로 밀어붙여 정치혼란을 부채질하고 정국을 파행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국민과의 공감대, 야당과 합의 없이 밀어붙이겠다는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고 비난했다.

전선이 다변화하다 보니 힘을 집중하지 못했다. 152석 의원들은 제각기 손발을 놀렸다. 양김 정부에 비해 노무현 정부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 약했다.

개혁의 결실은 제대로 여물지 못했다.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냈어야 할’ 국가보안법의 칼날은 여전히 시퍼렇다. 언론관계법은 핵심 내용이 대부분 완화된 가운데 개정됐다. 사립학교법은 한나라당의 57일간 장외 투쟁 끝에 재개정됐다. 과거사 청산이 그나마 성과를 냈다.

방향이 문제가 아니었다. 커패시티를 따지지 않고 의욕만 앞세운 것이다. 머릿수만 믿고 밀어붙이니 허방에 빠지기 일쑤였다.

이명박 정부는 ‘ABR(Anything but Roh·노무현 정부가 한 것만 아니면 돼)’만 내세웠으니 별로 되짚어볼 것도 없다. 그저 ‘한반도 대운하’에만 골몰했다. 하다하다 안되니까 ‘4대강 사업’으로 신장개업해 기어이 땅을 파헤쳐 놓았다. ‘뉴라이트’ 터전을 시나브로 만들어준 게 보수 진영에게는 공이라면 공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손짓을 섞어가며 단호한 표정으로 발언하고 있다._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정부는 어떤가. 임기 1년차에는 인사 난맥으로 호시절을 흘려보냈다. 인턴 성희롱이 밝혀져 전 국민에게 영어 ‘그랩(grab·움켜쥐다)’의 의미를 알려준 당시 청와대 대변인, 아침마다 출근쇼를 하며 박 대통령 수첩에 들어 있는 인사들의 자질을 보여줬던 총리 지명자…. 오죽하면 후보자를 못 내고 이전 정부 각료를 그대로 썼을까.

2년차에는 ‘세월호 참사’ 때 무능과 무심을 한껏 드러내 보였다. ‘그 분의 7시간 미스터리’만 남기고. 3년차에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에 허둥대다 봄·여름을 보내더니, 찬바람 부니까 밀어붙이기 바람몰이를 하고 있다. 노동개혁, 공공부문 개혁, 교육개혁, 금융 시스템 개혁 등 좋은 말 다 갖다붙인 정책을 시행하겠단다. 그게 잘 안되니 야당에만 윽박지르고 있다.

예서 그치지 않고 ‘선친 한풀이’가 목적이라는 의구심을 부를 게 뻔한데도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단다. 시위 때 복면을 못하게 하겠다면서 국민을 ‘IS(이슬람국가)’에 빗댄다. 자신들이 공약했던 복지정책들을 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이 하겠다고 하자 막고 있다.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모두 해치울 태세다. 이쯤 되면 이 정부는 이전 정부에서 배운 게 없다는 게 명확해 보인다. 그 결과도 뻔하다. 그럴듯하지만 맛은 없는 꽃사과일 게. 그런 무능, 무지, 무사고를 고마워해야 하나.

한데 이 정부는 운도 좋다. 카운터파트인 야당 말이다. 강력하고 능력까지 있던 옛 한나라당과 달리, 지금 야당을 보면 제정신이 아닌 듯하다. 함께 손잡고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도 다음 싸움이 어려울 판인데, 도토리 키재기 하느라 여념이 없다. 요즘 일요일마다 ‘7일장 차력 쇼’를 보는 것 같다.

그러니 이 정부의 한심한 커패시티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것을 하나씩 해낼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최우규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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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렬하고 부박한 주장을 펴느니, 한 줄 보태거나 덜 것 없는 옥고(玉稿)를 옮겨 적는 게 낫겠다. 최근 접한 연설문이 꼭 그렇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9월24일 미국 의회에서 상·하원을 상대로 연설을 했다. 당시에는 난민, 전쟁 반대, 지구온난화 대책 등 현안과 관련된 언급이 주목받았다. 하지만 말씀의 고갱이는 ‘일반론’에 스며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극단’을 우려했다.

“우리는 모든 근본주의를 유념해야 합니다. 종교, 이데올로기, 혹은 경제체제 등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폭력과 싸우기 위해서는 정교한 균형이 필요합니다. 종교적 자유, 지적 자유, 개인적 자유를 보호하면서 말입니다. 특히 주의해야 할 유혹이 있습니다. 바로 모든 것을 선과 악, 말하자면 의인과 죄인으로 나누는 단순한 환원주의입니다. 아물지 않은 상처로 고통받는 수많은 형제, 자매들이 세상을 두 진영으로 나누는 모든 형태의 극단주의에 맞서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독재자와 살인자 자리를 차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의 증오와 폭력을 흉내내는 것입니다.”


 개탄은 바로 앞에 있는 의원들을 향했다.

“정치가 진정 인간을 위한다면, 경제와 화폐의 노예가 돼서는 안됩니다. 위대한 공동선을 성취하기 위해 모두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지엄한 요청의 표현이 바로 정치입니다. 재화, 이익, 사회적 삶을 정의롭고 평화롭게 함께 누리기 위해 사적인 이익을 희생하는 그런 공동체 말입니다.”


교황이 생각하는 경영은 무엇일까.

“천연자원의 정당한 사용, 기술의 합당한 적용, 기업 정신의 활용은 경제를 현대화하고 포용적이고 지속가능케 하는 핵심 요소들입니다. 부를 창출하고 세상을 발전시키는 경제활동은 고귀한 천직입니다. 특히 일자리 창출을 공동선에 기여하는 주요한 요소로 볼 때 경제활동은 해당 지역에서 가치있는 번영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미래도 걱정했다. ‘삼포·오포세대’라 칭해지는 한국 젊은이를 측은히 여기는 양.

“젊은이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요청합니다. 어떤 젊은이들은 길을 잃고, 목표도 없으며, 폭력, 약물남용 그리고 절망의 미로에 빠져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가정을 꾸리지 못하게 압박하는 문화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미래의 가능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인 4명을 내세워 이상을 설파했다.


“에이브러햄 링컨처럼 자유를 수호하고, 마틴 루터 킹이 하고자 했던 것처럼 모든 이들이 완전한 권리를 꿈꿀 수 있도록 하는 문화를 길러내는 국가는 위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로시 데이가 부단히 일했듯 억압받는 이들의 정의와 대의를 위해 분투할 때, 토머스 머튼이 묵상적 방법으로 실현했던 것처럼 대화와 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믿음의 과실을 내기 위해 노력하는 국가 또한 위대합니다.”


도로시 데이는 미국 사회당에 입당했고 사회주의 신문 기자로 일했다. 트로츠키를 만나 인터뷰하고 아동노동과 가난한 자들의 현실을 보도했다. ‘가톨릭 노동자운동’을 이끄는 등 평생 좌파사상과 반전활동으로 연방수사국(FBI)의 집중 감시를 받았다.


토머스 머튼은 컬럼비아 대학 시절 젊은 공산주의자들의 모임에 참여하고, 불교 승려와 교분을 맺었다. 26살 때 뉴욕 빈민가 할렘 흑인들에게 자신의 물건을 모두 나눠주고 가톨릭 수도사가 됐다. 평생 빈자들에 대한 헌신, 청빈, 종교 간의 대화를 추구해왔다.


데이와 머튼이란 이름을 들으니, 세속적이고 얄궂은 궁금증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전직 대통령을 “변형된 공산주의자”라고 하고, 제1야당 대표에게는 “공산주의자로 확신한다”고 하고, 5·16쿠데타를 “정신적으로 혁명”이라고 하는 이가 국내에 있다. 공안적 신념을 자랑스러워하는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다. 



그의 눈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떻게 비칠까. ‘급진’ 좌파 데이와 머튼을 칭송하고, 재화, 이익과 사회적 삶을 정의롭고 평화롭게 함께 누려야 한다고 주창했으니 말이다.


마침 교황이 답한 바 있다. 9월22일 한 기자가 “미국 보수 논평가들 중에는 교황을 공산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나는 교회의 사회적 교리를 넘어서는 어떤 말도 한 적이 없다고 확신한다”며 “나는 (가톨릭)교회를 따르고 그런 점에서 내가 틀렸다고 보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어 “아마도 내가 약간 왼쪽으로 치우쳤다는 인상을 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이 내게 사도신경을 외워보기를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우문현답이다.


Posted by 최우규

 당 태종 이세민은 중국 역사상 청의 강희제와 함께 성세를 이룬 명군으로 손꼽힌다. 훗날 사가들은 당 태종의 치세를 정관지치(貞觀之治)라고 기렸다. 정치·경제·문화·예술 등 모든 면에서 최고를 구가했다. 

동쪽 끝 고구려와 서쪽 토번(티베트)을 제외한 모든 나라를 복속하게 했다. 천하를 일통한 것이다.


그런 당 태종도 골육상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부친인 고조 이연은 장자 이건성을 태자로 삼았다. ‘적장자’ 원칙을 적용한 것이다. 이세민은 진왕(秦王)에 봉해졌다. 형제간 불화의 시발이었다.



당 태종


정권 창출의 공은 이세민이 컸다. 수 양제가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으키자 민심이 등을 돌렸다. 군웅이 할거했고, 이세민은 지역 군 사령관이던 아버지 이연을 설득하여 군사를 일으켰다. 이들은 여섯 차례의 전쟁을 치렀다. 그중 이세민이 네 번 전쟁을 이끌어 모두 승리했다. 서기 618년 당이 건국했다.


이세민은 태자 이건성과 궁 안팎에서 힘 겨루기를 했다. 

그러다 형 이건성과 동생 이원길을 궁궐로 불러들이고는 활로 쏴죽였다. 자식들도 살해했다. 이름하여 ‘현무문(玄武門)의 변(變)’이다. 이후 부친을 겁박해 태자에 오르고, 황제가 됐다.


업보였는지, 그도 재위 중 태자를 교체하는 지경에 이른다. 당 태종은 후계 혼란을 막기 위해 8살이던 첫째 아들 이승건을 황태자에 책봉했다. 장후윤, 이백약, 우지녕, 공영달 등 석학들로 하여금 태자를 교육하도록 했다.


태자는 아버지 앞에서는 충효를 운위하고, 뒤에서 궁녀, 환관들과 가무하며 놀았다. 민가의 소와 말을 훔쳐 요리한 뒤 나눠 먹었다. 간언하는 자를 죽이기까지 했다.


보다 못한 당 태종은 태자를 폐위시키려고 했다. 태자는 무관 후군집 등 20여명과 태자당을 결성하고 정변을 모의했다. 당 태종은 이를 알아차리고 결국 내쳤다. 15살이던 아홉째 아들 이치를 태자로 세웠다.


당 태종은 이런 불운을 딛고 뛰어나게 치국했다. 위징, 방현령, 두여회, 왕규 등 신하들과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를 논했다. 

이를 사관인 오긍이 정리한 책이 제왕학과 처세술의 교본으로 일컬어지는 <정관정요(貞觀政要)>다.


당 태종은 바른말 하는 신하를 아꼈다. 한번은 조회를 마치고 내전으로 나온 그가 격분해 장손황후에게 “위징이 또 짐의 말을 끊고 토를 달았소, 언젠가 그를 죽일 것이오”라고 했다. 황후는 조복으로 갈아입고 절을 하며 축하했다. 당 태종이 이유를 물었다. 


황후의 답은 이러했다. “군주가 성군이면 신하도 충신이라 했습니다. 위징 같은 신하가 직언을 한다는 것은 폐하가 성군인 까닭이니,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당 태종은 화를 풀었고, 위징을 더 중하게 여겼다.


당 태종은 태자 이치를 가르치는 데 힘을 다했다. 밥을 먹을 때에는 “네가 농사의 어려움을 안다면 늘 밥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배를 탈 때는 “물은 배를 띄워 올리기도 하지만 배를 엎어 가라앉히기도 한다. 백성은 물과 같고 임금은 배와 같은 것”이라고 했다. 


당 1, 2, 3대 황제들의 골육지쟁 이후 1400년이 지났다. 한데 그 일이 한국과 일본을 넘나들며 재연되고 있다. 롯데사태다.


부친의 눈앞에서 형제가 적자 자리를 놓고 다툼을 벌이고 있다. 장자와 차남이 제 세력을 키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부친은 한쪽 편은 들었지만, 다툼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외려 혼란을 부추기는 양상이다.

이 난이 어떻게 정리될지는 오리무중이다. 현 단계가 현무문의 변인지, 태자 이승건 폐위 때인지도 애매하다.


7월17일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을 한국롯데 회장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의 ‘회장 임명장’에 서명하고 있다. _KBS 방송 캡쳐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재벌 개혁을 하겠다고 앙앙불락한다. 하지만 다들 안다. 경제민주화 공약 폐기 등 이 정부의 그간 행보를 봤을 때 기대하긴 어렵다는 것을.


결국 롯데 내부에서 해결해야 할 판이다. 종국에는 그룹을 분리하거나 승자가 독식하게 될 것이다. 이후 권좌에 앉은 이가 당 태종처럼 널리 인재를 구하고, 역린마저 건드리는 신하를 중용할지, 주주와 고객을 ‘배를 띄우는 물’처럼 귀하게 여길지 주목된다. 이를 이루면 정관지치에 이를 수도 있고, 아니면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위징의 탁견이 다시 증명될 것이다.


다만 바라보는 고객이나 주주들 입맛은 소태를 씹은 듯 쓰다. 서기 600년대 일을 21세기에 다시 보게 된 일이 면구스러워서다. 

별 도리가 있나. 현대 경영학이나 미래학의 어느 장(章)에서도 이런 일을 찾아보기 어려우니, 옛일이나 들춰볼 수밖에.

Posted by 최우규

아마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억울할 것이다. 지나간 줄 알았던 일들이 다시 들춰지고 있다. 그것도 속속들이. 총리 후보자가 됐기 때문이다.

그는 한 번 검증을 받은 적이 있다. 2013년 초 법무부 장관 후보자 때 말이다. 당시 헌법재판소장 이동흡, 국방부 장관 김병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김종훈 후보자 등이 낙마했다. 그는 청문회를 통과했다. 이번엔 오롯이 그만의 무대다.

황 후보자를 형용하는 단어들이 있다. ‘공안’ ‘보수’ ‘기독교’ 등이다. 황 후보자는 그 중 ‘기독교’를 가장 앞세운 것처럼 보인다.

기독교인이라는 점이 총리가 되는 데 결격사유가 돼서는 안된다. 헌법에 그렇게 돼 있다. 1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했다.

하지만 세간의 시비가 계속된다. 종교가 아니라 ‘편향성’ 때문이다. 그의 2012년 저서 <교회가 알아야 할 법 이야기>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우리 기독교인들로서는 세상법보다 교회법이 우선 적용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이 이 세상보다 크고 앞서시기 때문….”

교인으로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율사인 황 후보자는 실제 법 적용에서까지 그렇게 생각한다.

앞서 책에서 ‘교회 유치원 교사는 근로자’라는 대법원 판결에 황 후보자는 “심히 부당하다”고 썼다. “판결에 따르면 교회 유급 종사자들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는 결론이 되지만, 경제적 이익이 아닌 신앙적 가치를 추구하는 교회의 특성을 간과한 것”이라며 “교회와 같은 종교단체에 대해 그 특성상 노조를 설립할 수 없도록 노동법에 예외규정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노동권을 보장한 헌법보다 교회 안의 가치를 우선시한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일요일 사법시험 실시는 합헌’이라고 결정하자 그는 “종교의 자유의 본질을 침해하지 않도록 이미 대다수 국민들에게 휴일이 되고 있는 토요일 오후 등 주일 아닌 적당한 기회를 마련”할 것을 주장했다.

편향성은 예서 그치지 않는다. 2011년 부산고검장 재직 시절 부산 교회에서 이렇게 강연했다.

“김대중씨가 …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서울지검 공안부에서 수사를 받고 재판에 회부된 일이 있었다. … 이런 분이 딱 대통령이 되고 나니까 그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에 있었던 검사들은 물론 소위 공안통으로 이름나 있는 검사들은 전부 좌천되는 거다. … 저는 푸른 초장에 가서 연수생들하고 같이 놀면서 이렇게 지내고 있었다. 하나님께 ‘환란’으로부터 도피를 허락해주신 것에 감사드렸다. … 노무현 대통령 투신 사건 때문에 인사를 갑자기 하면서 젊어졌다.”

황 후보자가 지휘선상에 있었던 사건들은 어땠나.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였던 2005년 삼성 측이 정치권과 검찰 간부에게 돈을 줬다는 ‘삼성 X파일’ 사건이 터졌다. 금품을 주고받은 힘 센 이들은 무사했다. 이를 폭로한 기자들과 노회찬 의원만 기소됐다.

법무부 장관이 된 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대선 개입 사건에서 구속영장 청구와 공직선거법 적용을 주장하는 수사팀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아 시끄러웠다. 불법 댓글을 다는 국정원 여직원을 감시하며 “나오라”고 한 야당 의원과 당직자들이 ‘감금 혐의’로 기소됐다.

4·19 혁명은 “혼란”, 5·16 군사쿠데타는 “혁명”이라는 게 그의 표현법이다. 헌법에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라’고 돼 있는데도 말이다. 전관예우, 병역 면제, 증여세 탈루, 아파트 투기, 과태료 상습 체납 등 석연찮은 결격사유가 골고루 나온다.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가 29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내 법무부로 출근하고 있다. _ 연합뉴스


황 후보자가 읽었을 것이 분명한 <구약성경> ‘레위기 19장’은 이렇다.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 너는 네 백성 중에 돌아다니며 사람을 비방하지 말며 네 이웃의 피를 흘려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15~16절). 너희는 재판에든지 도량형에든지 불의를 행치 말고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고체를 재는 단위)와 공평한 힌(액체를 재는 단위)을 사용하라(35~36절).”

황 후보자는 성경 말씀을 제대로 따랐나. 세력 있는 자를 두둔하지 않고, 이웃의 피로 이익을 도모하지 않았나. 그의 저울과 추와 에바와 힌은 공평했나.

그 중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않은 것은 명백해 보인다.


최우규 산업부장

Posted by 최우규

태조 이성계와 무학 대사가 농을 주고받았다. 대업을 이룬 군주와 고승이지만, 왜 안 그랬겠나.

태조가 “내가 자세히 보니 대사 모습이 마치 돼지 같구려”라고 하자, 무학 대사는 “대왕께서는 부처님같이 생기셨습니다”라고 말했다. 놀란 건 태조다. “농을 했는데, 어찌 덕담을 하시오”라고 물었다.

무학 대사가 답했다.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의(豕眼見惟豕 佛眼見惟佛矣).”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 태조는 졸지에 돼지가 됐다. 군왕을 놀렸으니 목이 달아날 일이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신랄한 풍자 속에서 물아일체까지 설파하니 무애의 경지에 다다랐다 할 수 있다.

영어 표현 중 ‘It takes one to know one’이라는 게 있다. 비난하는 사람이 비난받은 사람의 결점을 가졌다는 뜻. 우리 속담으로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다.

모두 자신의 처지, 눈높이에서 사물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아무리 배움을 쌓고 경험을 많이 하더라도 눈높이는 대저 자신의 처지에 터잡은 것일 뿐이다.

곤궁한 이들을 긍휼히 여기는 것은 당연지사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 문제다. 제 눈높이에서 사안을 재단해 위로한답시고 나섰다가는 상대를 더욱 난처하게 할 수 있다. 약 올리는 지경을 넘어 비탄케 할 수 있다.

대통령 힐난하는 게 어쩌다 국민 스포츠처럼 된 건지 안타까운 일이다. 거기에 덧없는 한 줄을 보태는 것 같지만, 짚고 넘어가야겠다. 박근혜 대통령은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대한민국에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보라. 다 어디 갔냐고, 다 중동 갔다고…”라고 했다. 그는 그 직전 “국내(청년 일자리)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는 여기대로 하면서, 청년들이 지금이라도 빨리 해외에서라도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적극 노력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농처럼 중동 이야기를 했다.

박 대통령은 몸소 구직의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았을 것이다. 직장을 얻을 나이에 ‘어쩔 수 없이’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했고, 그 뒤로도 피고용인으로서 살아 본 적이 없다.

그가 보기에 일자리 찾기는 선친 집권 시절 중동 진출이나 독일 광부·간호사 파견 등과 다를 게 없을 것이다. 마침 직전 중동 순방도 다녀왔다. 그래서 자연스레 나온 발언이 “중동 가라”다.

청년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어이쿠, 망극하옵니다”라고 했을까. 천만의 말씀. 대가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치렀다.

김 대표는 지난 23일 서울 신림동 고시촌을 방문했다. 청년과 소통하기 위해서다. 젊은이들은 ‘청년들 중동이나 가라? 너나 가라 중동!’이란 항의 손팻말을 들었다.

홍준표 경남지사도 농담인지 아닌지 아리송한 말로 구설의 중심에 섰다. 1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곳이지 밥먹으러 가는 곳이 아닙니다. 공부보다 급식에 매몰돼 있는 진보좌파 교육감님들의 편향된 포퓰리즘이 안타깝습니다.”

홍 지사는 학교 무상급식비 예산 지원을 중단키로 했다. 그 돈을 서민 학생 학원 지원비로 쓰려고 한다. 지원비를 받으려면 저소득 가정임을 증명해야 한다. ‘가난 증명서’를 내야 학원비와 무상급식을 받을 수 있다.

그는 어려서 가난했다. 중학교 시절 도시락을 쌀 수 없어 점심 시간에 수돗물로 배를 채웠다. 당초 육군사관학교로 가려다 법대-검사로 진로를 바꿨다. 아버지가 비료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면서다. 검사는 권력을 쥔 사람들이 저지르는 범죄를 처단하고 억울한 사람들의 하소연을 들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세월이 흘러 권력을 쥔 그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가난 증명서’를 요구하고 있다. 그들의 하소연은 들리지 않는 것일까. 그들 요구는 좌파 포퓰리즘인가.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후보(왼쪽)가 16일 경남 마산시 마산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도민과 함께 희망경남 만들기' 대회에서 같은당 홍준표 경남지사후보와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근대 과학의 선구자 아이작 뉴턴은 “내가 좀 더 앞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을 수 있었던 덕분”이라고 했다. 겸양이나, 그 또한 옳다. 아무리 천재라도 오롯이 홀로 그 업적을 다 이룰 수 있었겠나.

박 대통령이나 홍 지사라면 능력과 그 지위 덕에 남보다 어렵지 않게 그런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설 수 있을 것이다. 한데 지금 행태는 거인은커녕 수돗물을 마시던 소년 홍준표, 이역만리로 떠나야 했던 젊은이를 안타까워하던 청년 박근혜의 눈높이가 아니다. 오히려 왜곡된 기억과 비뚤어진 신념 때문에 자식을 잡아 먹은 거인 크로노스처럼 세상을 조감하는 듯하다.

부처와 거인은 고사하고, 그저 돼지 눈높이에서 먹을 것이라도 제대로 건사해달라고 빌어야 할 지경이다. 농담이 아니다.


최우규 산업부장

Posted by 최우규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버버리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는 험프리 보가트(오른쪽에서 두번째).

 예전에 모직 반코트를 입고 다녔다. 그러다 좀더 어른스러워 보이는 ‘바바리’를 처음 산 게 20년 전이다. 패션의 ‘ㅍ’자도 모르던 터라 무릎까지 덮이고 어느 정도 방수가 되는 그 국산 코트를 바바리라고 부르는 줄 알았다. 바바리가 실제로는 ‘버버리(Burberry)’라는 특정상표이고, 그런 유의 옷은 ‘트렌치코트, 레인코트’라고 부른다는 것은 수년 뒤에나 알게 됐다.



  영국 패션 브랜드 버버리는 1856년 토머스 버버리가 설립했다. 야외 활동에 적합한 소재인 개버딘(방수가 되는 면)으로 만든 비옷(레인코트)으로 유명해졌다.


  1차 대전 때 ‘참호(트렌치)’전에 입는 장교용 트렌치코트도 버버리가 납품했다. 레인코트 형태에 야간에 덮고 잘 수 있게 어깨 덮개가 추가되고, 수류탄이나 지도 등을 걸 수 있도록 D자형 고리를 달았다.

  트렌치코트는 전후 민간에서 인기를 얻었다. 멋쟁이 국왕 에드워드 7세는 늘 “내 바바리를 가져오게”라고 했단다. 그렇게 ‘바바리 = 트렌치코트’가 됐다.

  영국 제품 중 이런 것이 또 있다. 고급 스피커 ‘타노이(Tannoy)’다. 가이 R 파운틴이 1926년 설립한 타노이는 그 명성에 힘입어 보통명사와 동사로 웹스터 사전에 올랐다. 명사는 ‘공공 음향 재생 시스템 (Public Address System)’이고, 동사는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다’라는 뜻이다.


  이처럼 압도적인 명성과 전통을 갖는 것은 모든 업체의 꿈일 것이다. 소위 ‘짚차’라는 말은 완성차 업체 크라이슬러의 ‘지프(Jeep)’에서 나왔다. 2차 대전 때 모든 종류의 지형에서 운용이 가능하도록 만든 군용 차량으로, 네 바퀴가 구동하는 방식이다. 이름을 ‘다용도’라는 뜻의 ‘제너럴 퍼포즈(General Purpose)’ 발음에서 따왔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에 투입됐던 4륜 구동 자동차 '지프'.



  건설현장에서 굴착 작업에 쓰는 중장기 ‘포클레인’은 프랑스 업체 ‘Poclain’이고, 쇠침을 박아 종이를 묶는 지철기(紙綴器) ‘호치키스’도 상표 ‘E. H. Hotchkiss’다.

  이젠 물품의 종류가 폭증하고, 경쟁도 치열지면서 특정 제품, 상표가 보통명사 반열에 오르기는 쉽지 않다. ‘구글’은 치열한 인터넷 검색 엔진 간 경쟁을 뚫고 보통명사화했다. 2006년 메리엄 웹스터 사전 및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동사로 등재된 것이다. ‘구글을 이용하여 인터넷 정보를 검색하다’라는 뜻이다.

  인물 중에는 어떨까. 위인, 영웅이 아닌 이 중에도 그런 위상을 가진 이들이 있다. 미국 인권운동가 로자 파크스는 1955년 12월1일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운행되던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이는 흑인 민권운동을 촉발시켰고, 1년 뒤 버스 안 인종분리 정책은 폐지됐다. 파크스는 인종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리키는 보통명사인 셈이다.

  한국에선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이 ‘안철수현상’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개인 안철수씨가 아니라, 참신하고 깨끗한 정치인으로서 ‘안철수’를 유권자들이 정치의 장으로 소환한 것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보통명사처럼 입에 오르내린 바 있다. 그는 2004년 1월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배수진을 친 뒤 정치관계법 개정을 주도했다. 1인2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금품·향응 50배 과태료 등을 도입했다. 이들 법에는 정당법 등 실제 이름이 있지만, ‘오세훈법’으로 기억된다. 이 법은 돈 정치를 크게 줄이는 계기가 됐다.

  한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을 지낸 김영란 변호사는 ‘김영란법’ 제정을 주도해왔다. 바로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공무원이 직무 관련성이 없는 사람에게 100만원 이상 금품·향응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법이 시행되면 공직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연수원에 마련된 후보자 사무실로 출근해 기자들에게 아들 병역문제 관련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 (출처 : 경향DB)


  마침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국무총리에 지명됐다. 그는 “대통령에게 쓴소리 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총리직을 쓴소리 하는 자리로 한계 지을 일이 아니다.

  대신 총리직을 걸고 ‘이완구법’을 만들어야 한다. 경제민주화든, 보편적 복지이든, 부패방지든, 사회적 대타협이든 우리 사회 일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시민 일반을 위한 법 말이다. “ ‘이완구법’ 덕분에 한국이 ○○○가 됐다”는 말이 ‘타노이’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게 총리직 이후 행보 때 ‘충청도 대망론’ 같은 정치공학을 내세우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발판이 될 것이다.


최우규 산업부장

Posted by 최우규

옛 부자들 가운데 여태 존경받고 기려지는 이들이 있다. 버는 방법이야 제각각이지만, 그들에겐 품격과 절제, 정의가 있었다.

부자하면 경주 최 부잣집이 첫손에 꼽혔다. 400년 동안 9대 진사와 12대 만석꾼을 배출했다. 최 부잣집은 기실 3000석 정도를 수확했단다.


1석은 성인이 1년 먹을 양식으로, 도정한 쌀로는 144㎏, 도정 안 한 벼는 200㎏이다. 도정한 백미는 농협수매가 기준으로 29만8800원이다. 3000석은 9억원 가까이 된다. 당시 농경사회에서는 어마어마한 부자다.

최 부자 집안은 수확한 쌀 중 1000석은 집에서 쓰고, 나머지는 과객과 주변 어려운 사람을 위해 썼단다.


문파(汶坡) 최준(崔浚)
















 최 부잣집에는 육훈(六訓)이 내려온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 마라, 만석 이상 재산을 모으지 마라,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기에 땅을 늘리지 마라, 시집온 며느리는 3년간 무명옷을 입으라’다.


 그 집안 마지막 부자 문파(汶坡) 최준(崔浚)은 막대한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모진 고문을 당했다.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은 어떤가. 물려받은 6000석 재산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명예나 지위 욕심이 없어 어떤 단체에서도 장(長)을 맡은 적이 없다.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


1910년 경술국치에 우당의 6형제 가족 50여명은 전 재산을 처분해 서간도로 망명했다. 황무지를 개간하고,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해 신흥강습소(신흥무관학교 전신)를 설립했다. 1932년 11월 일본 경찰에 잡혀 고문 끝에 만주 뤼순 감옥에서 숨졌다.


서울 중구 정동에 있는 덕수궁 중명전에서 열리는 ‘난잎으로 칼을 얻다-우당 이회영과 6형제’는 우당 일가를 돌아보는 전시다. 내년 3월1일까지 계속된다. 우당은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기 위해 난(蘭)을 쳐서 팔았다고 한다. 간난과 용맹 속에서도 아취를 잊지 않았던 것이다.


요즘 한창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부자들도 있다. 서울 강남의 압구정동 모 아파트 주민들이다. 1980~1990년대 고가 아파트의 대명사 같은 곳이었다. 지난 10월7일 이곳 한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서 경비원 이모씨(53)가 분신했다.

그는 평소 70대 여성 입주민으로부터 인격 모독적 발언을 들어 힘들어했다고 한다. 동료들은 그 입주민이 “경비, 이거 받아 먹어”라며 5층에서 떡 같은 음식을 던지는 등 폭언과 비인격적 대우를 해왔다고 전했다.

전신 3도 화상을 입은 이씨는 한달간 투병하다 숨졌다. 처음엔 사과를 거부하던 그 입주민은 숨진 경비원의 빈소를 찾아와 “아저씨, 미안해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라며 통곡했단다. 이씨 부인은 그 입주민에게 “앞으로는 그렇게 사람들을 괴롭히지 말고 잘 좀 해주시라”고 당부했다. 이쯤에서 끝났으면 모파상이나 오 헨리의 단편소설 속 비극 같은 일로 그쳤을 것이다.

한데 더한 반전이 일어났다. 아파트 입주민들이 관리 용역업체 연장 계약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11월19, 20일 이틀간 그 업체 소속이던 경비원 등 노동자 106명 전원에게 해고통보가 갔다.

주민들은 “그간 수의계약을 해왔는데 이번부터 공개입찰로 방식을 바꿀 예정”이라며 “결정된 것은 없고 12월4일 입주자대표회의에서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용역업체가 입찰을 따내면 된다는 식이다. 하지만 때가 때인 만큼 경비원들의 불안은 당연지사다.

그 아파트 매매가는 13억6500만원에서 22억5000만원 정도다. 재산 가치로 치면 4500~7500석꾼인 셈이다. 경비원 월급은 120만원 안팎이다. 단순계산하면 한 푼도 안 쓰고 100년을 모아야 14억4000만원을 쥘 수 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울일반노동조합 조합원들이 13일 서울 압구정동 모 아파트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비노동자 분신사고 규탄 및 재발방지를 촉구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그곳 주민들에게 육훈을 지키고 나라를 구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주민들 중에는 기부를 하고 나라를 걱정하며 품격과 절제를 갖춘 이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밖으로 비치는 상황만 보면 ‘없이 사는 사람들을 괄시하다가 쫓아내려고 한다’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 없게 됐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라에 도(道)가 있을 때 가난과 천함이 부끄러운 것이며, 나라에 도가 무너져 있을 때에는 부유와 귀함이 부끄러운 것이다(邦有道 貧且賤焉 恥也, 邦無道 富且貴焉 恥也).” 우리가 사는 나라는 어떠한가. 하긴, 2000년 전 중국 후한을 농단했다던 환관들 ‘십상시(十常侍)’가 다시 운위되고 있다.


최우규 산업부장

Posted by 최우규

8월30일 썼던 칼럼




인문학(人文學), 라틴어로 ‘후마니타스(Humanitas)’, 영어는 ‘휴매니티스(Humanities)’다. 말 그대로 사람, 사람됨을 다룬다. 언어학, 문학, 역사, 철학, 예술 등 교양의 기본 학문을 지칭한다.


후마니타스라는 말은 로마의 정치가, 웅변가, 철학자, 저술가인 키케로가 기원전 55년 쓴 <변론가론(De Oratore)>에 나온다. ‘공익을 위해 일하기 합당한 미덕을 갖도록 교육받는 이상적 웅변가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뜻한다. 고전 문학, 시 같은 ‘좋은 학문(bonae litterae)’을 배우도록 돼 있다.



인문학은 암흑의 중세를 버텨내고 르네상스 때 꽃피웠다. 근현대에서 ‘교양을 위한 학문’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서 내내 뒷전이었다가 이제사 유행을 타는 것 같다. 지난해부터 ‘○○ 인문학’이니 하는 책과 강좌·강연들이 쏟아진다.


산업계까지 그 아취가 퍼지고 있다. 재계 13위 신세계그룹을 이끄는 정용진 부회장이 인문학 전파의 기치를 들었다. 그는 지난 4월8일 서울 신촌 연세대 대강당에서 학생 2000명에게 강연을 했다.


정 부회장은 “상대의 겉만 보는 게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읽으려고 하는 게 인문학의 시작”이라고 했다. 또 “지식만 많이 쌓은 사람이 아니고 인문학적 소양과 철학적 통찰력을 가진 사람을 뽑으려고 한다”고 했다.


정보기술(IT) 업체 중 가장 각광받는 카카오의 이석우 대표는 지난달 11일 한 행사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그는 “화가이면서 의사, 수많은 발명품을 만든 과학자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술가이자 건축가인 미켈란젤로가 전형적 융합형 인재”라며 “르네상스 시대를 이끈 이들 융합형 인재야말로 첨단 기술의 시대에 필요한 인재”라고 했다. 최양희 신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도 지난달 19일 간담회에서 “기술·산업·경제발전에서 패러다임 변화의 원동력은 상상력인데 이는 역사·문화·예술 등에서 도출된다”고 말했다.


기업이나 정부가 ‘돈 되는 학문’만 강조하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변화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다행이다.


그러면 이를 듣는 학생들 입장은 어떨까. 정용진 부회장은 당시 연세대 강연에서 “스펙이 중요하다고 해서 있는 돈 없는 돈 털어 스펙을 쌓아놨는데 어느 날 갑자기 신세계 부회장이 나타나 인문학 얘기를 하니 짜증이 날 것”이라고 했다. 공감한다.


카카오 이석우 대표의 ‘르네상스적 인물론’에는 어떨까. 어떤 교수는 페이스북에 “신입사원을 뽑아 활용하는데, 무슨 다빈치 등을 기준으로 한단 말이냐”며 “그런 인물은 카카오사 신입사원 직을 선택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썼다. 동감이다.


왜 그럴까. 선후가 바뀌어서다. 학생들은 문사철(文史哲)을 공부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할 수가 없다. 시험을 잘 쳐야 소위 명문고,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다. 대학 들어가서는 학점 관리, 자격증 취득에 봉사 기록까지, 참 어렵게 살아내야 기껏 기업 서류전형을 통과한다.




세월호 침몰 때 찍힌 한 동영상이 이를 웅변한다. 배가 기울자 한 학생이 아직은 심각성을 모르는 듯 이렇게 말한다. “배가 기우네, 그런데 기울기는 어떻게 구하지?” 새뮤얼 T 콜리지의 ‘노수부의 노래’나 셰익스피어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라는 문장을 읊조리는 게 아니라 수학 문제 풀이를 떠올릴 뿐이다.


아이들을 서바이벌 정글로 몰아넣고는,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처럼 전장에서 괴테, 도스토예프스키를 읽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들을 인문학으로 끌고 갈 게 아니다. 인문학이 이들에게 흐르도록 해야 한다. 기왕 말을 꺼냈으면 인문학적 교양이 깊은 이들을 사원으로 집중 선발해야 한다. 인문학 ‘특기자’ 몇 명 뽑으며 생색을 내서는 안된다.



괴테를 읽고 있는 체 게바라



그럼, 인문학의 효용은 뭘까. 쓸모가 있기는 한가. 이탈리아 시인 페트라르카는 키케로의 <아르키아 변호문>을 1333년 발견해 필사했다. 그 안에 인문학을 변호하는 구절이 있다.


“젊음을 유지하고 노후를 즐기게 하며 번영을 강화하고 역경의 피난처가 되거나 위안을 제공한다. 시골에 가거나 여행하는 밤에 우리와 함께하거나, 거친 세상의 방해를 받지 않고 집에서와 같이 편안한 즐거움을 준다.”


이런 인문학을 취업 스펙으로 쌓으라고 하는 교언보다는, “젊은 사람들을 위해 일자리를 만들어줄 혁신적 방법을 찾으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일갈이 더 시원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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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우규

 2012년 7월10일 한 유력 정치인의 연설은 반향을 일으켰다.


 “어떤 국민도, 홀로 뒤처져 있지 않게 할 것이다. 단 한 명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같이 갈 것이다. ‘원칙을 잃은 자본주의’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우리 국민은 불안하다. 국정운영의 패러다임을 국가에서 국민으로, 개인의 삶과 행복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경제민주화 실현’ ‘일자리 창출’ ‘한국형 복지의 확립’을 국민행복을 위한 3대 핵심과제로 삼겠다. 우리 경제는 효율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공정성의 중요성을 간과했고, 그 결과 경제주체 간에 격차가 확대되고, 불균형이 심화돼 왔다.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일은 시대적 과제다. 불필요한 규제는 철폐하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지만, 영향력이 큰 기업일수록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하는 데는 과감하고 단호하게 법을 집행하는 정부를 만들겠다. 복지가 국민 개개인이 가진 역량을 뒷받침하고 끌어내서 자립·자활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경제와 복지의 선순환이 일어나도록 만들어 가겠다. 복지수준과 조세부담에 대한 ‘국민대타협’을 추진하겠다. 공교육 내실화를 확실하게 실현해 사교육비를 줄이고, 교육 기회 격차도 줄이겠다. 남북 간 불신과 대결을 끊고 신뢰와 평화의 새로운 한반도를 향한 첫걸음을 시작하겠다. 정부 부처 사이 칸막이를 해소해 모든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고, 공유된 정보는 투명하게 모든 국민에게 공개할 것이다. 정치를 해오면서 제게 손해가 되더라도, 한번 드린 약속은 반드시 지켜왔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에는, 제 정치생명을 걸고 싸워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경어를 보통 말투로 바꾸고, 내용을 발췌한 것이지만 그 울림은 여전하다.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의 18대 대선 출마선언문이다. 


 보수 정당의 강력한 대선 예비후보가 경제민주화, 복지, 개인, 조세, 공교육, 투명한 정부를 천명했다. 자신들의 의제를 빼앗긴 야당과 진보 진영은 망연자실했다.


 박근혜 의원이 누군가. 원칙과 신뢰를 기치로 내세웠던 이다. 이를 위해 자당 소속 이명박 대통령에게 수차례 맞섰다. 당내 갈등도 불사했다. 미생지신(尾生之信) 논란이 대표적이다. 춘추시대 노(魯)나라 사람 미생은 사랑하는 여자와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기다렸다. 여자는 오지 않고 소나기로 물이 밀려왔으나 미생은 자리를 뜨지 않고 기다리다 숨졌다.


 이 고사는 2010년 1월 세종시 수정안 논란 때 입길에 올랐다. 세종시로 수도 기능을 옮기는 게 못마땅한 이명박 대통령은 정운찬 총리를 내세워 세종시법 수정안을 발표했다. 박근혜 의원은 ‘국민과의 약속’을 내세워 수정안을 반대했다.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는 박 의원을 겨냥해 “미생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비가 많이 오는데도 기다리다가 익사했다”고 했다. 쓸데없는 명분만 고수하는 어리석음을 질타한 장자(莊子)식 해석이다.


 박 의원은 “미생은 진정성이 있고, 애인은 진정성이 없다. 미생은 죽었지만 귀감이 되고, 애인은 평생 손가락질 받으며 살았을 것”이라고 했다. 신의를 중시한 전국시대 책략가 소진(蘇秦) 입장이다. 박 의원은 또 “세종시 원안이 잘못된 것이라면 공약해서는 안되는 것이었고, 소신이나 생각이 변했다면 판단력의 오류”라고 했다.


2010년 7월 18대 대선 출마선언을 하고 있는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 _경향신문 자료사진


 박 의원은 2012년 12월19일 대선에서 당선돼 이듬해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지지자는 물론 반대파도 그라면 약속을 “손해가 되더라도”, “진정성을 갖고” 지킬 줄 알았다. “잘못된 것이었다면 공약해서는 안되고, 소신이나 생각이 변했다면 판단력의 오류”라고 했던 그이기에.


 연설을 한 지 2년3개월, 대통령이 된 지 1년8개월 됐다. 경제민주화 정책들은 실종됐고, 대기업 규제는 암덩어리 취급을 받고 있다. 복지는 뒷전이고, 서민증세만 계속되고 있다. 공교육 내실화는커녕, 그를 꾀하려는 교육감들을 정부가 막고 있다.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만 했지, 남북 간 불신과 대결은 계속됐다. 엊그제 대화가 시작된 건 다행이나, 물꼬를 튼 건 북측이다.


 세월호 참사 때 ‘대통령의 7시간’ 같은 정보는 감추기 바쁘다. 어떤 국민은 자식을 잃고 울부짖고 있다. 삶의 울력걸음에서 뒤처진 그들을 박 대통령은 내친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의 미생지신은 박근혜 의원의 미생지신과 같은가, 다른가. 박 대통령이 미생인가, 그가 말한 국민행복시대를 믿고 싶어했던 국민이 미생인가. 

 물이 턱밑까지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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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들

 부자는 행복할까. 적어도 헨리 엥겔하트는 그런 것 같다.


 56세인 그는 영국 자동차 보험사 ‘애드미럴’ 최고경영자다. 이 회사에는 사장실이 없다. 사장과 중역용 회사 차도 없다. 직원과 임원 출장비는 똑같고, 숙박에도 차별이 없다. 


 이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서는 ‘오락부’다. 이 부서는 직원을 즐겁게 할 행사를 궁리한다. 생일 잔치, 사무실 간이 축구, 동화 주인공 옷 입고 출근하기, 점심시간 컴퓨터게임 대회 등을 열고 있다.


 작은 회사니까 가능할까. 아니다. 이 회사 자산은 40억파운드(약 6조8468억원), 직원은 7000명이다. 런던증시 FTSE100에서 10년 연속 고수익, 고배당을 한 2개 기업 중 하나이다.


헨리 엥겔하트

 미국인인 엥겔하트는 당초 시카고 상품 거래소에서 일했지만 즐겁지 않았다. 영국으로 간 그는 1993년 애드미럴을 차렸다. 2004년 주식 상장으로 3000만파운드(510억원)를 벌었다. 


 이듬해 주주총회가 열렸는데 일사천리였다. 직원 1인당 6000만원 보너스 지급 건도 통과됐다. 한데 CEO 연봉 안건이 제출되자 총회장이 술렁였다. 백지수표라도 줄판인데 4억원도 안됐다. 보너스나 스톡옵션도 없었다. 외려 주주 사이에서 “너무 박하다”는 비난이 나왔다. 엥겔하트는 고집을 피웠고, 원안대로 통과됐다.


 10년이 지났지만 그의 연봉은 고작 40만파운드(6억8468만원)다. 다만 그는 이 회사의 15% 지분을 가진 부자다.


 그의 경영 철학은 뭘까. 엥겔하트는 “일이 재미있으면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고, 그럼 돈을 벌게 된다”고 했다. 국제노동기구(ILO) 연구조정관 이상헌 박사는 ‘페이스북’에 이 괴짜를 다룬 글을 통해 “자신의 주머니를 비우고 직원에게 나누어 주는 일, 쉽지 않다”며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더 어려워지는 일”이라고 했다.


 최근 한국 부자 중 새누리당 정몽준 전 의원이 주목받고 있다. 현대중공업 최대 주주로 재산이 2조원을 넘는다. 최근 서울시장 여당 후보가 됐다.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지난 26일 후보자 토론회에서 통합진보당 정태흥 후보는 그에게 “서울 시민 안전을 책임지겠다는데, (올해)현대중공업에서 산업재해로 8명이 사망했다”며 “이윤 극대화를 위해 현장을 불법이 난무하는 전쟁터로 만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몽준 후보는 “현대중공업은 경영과 소유가 분리된 모범적인 기업”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정태흥 후보가 “세월호 사고의 실질적인 책임자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말하는 것처럼 현대중공업 산재에 실질적 소유자가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정몽준 후보는 다시 “소유, 경영의 모범적 분리”만 강조했다.


 이 토론회에서 거론된 유병언 전 회장은 자식과 측근 등을 통해 2000억원대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월호 침몰 과정에서 과적 등 범법은 물론 비정규직 채용, 재산 빼돌리기, 책임 회피 등 나쁜 경영의 전형이 다 드러났다.


 안대희 전 대법관은 부자가 돼가고 있었다. 2006년 대법관 인사청문회 때 재산은 2억5700만원, 2012년엔 9억9300만원이었다. 올해 22억4000만원으로 늘었다. 



 지난해 변호사 개업 이후 5개월 만에 16억원을 벌었다. 하루 1000만원꼴이다. ‘전관예우’ ‘과다 수입’ 논란이 발목을 잡았다. 총리 후보자로 지명됐으나 엿새 만에 낙마했다.


 어떻게든 더 벌려다 벌어진 일이다. 이들은 행복할까.


 대통령궁은 노숙인 쉼터로 주고 월급 1만2000달러 중 90%는 기부하며 기른 꽃을 내다 파는 우루과이의 호세 무히카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적게 가진 사람이 아니라, 더 욕심을 내는 사람이 가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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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우규

칼럼들

‘피에타(Pieta)’는 이탈리아 말로 비탄(悲歎)이란 뜻이다. 또 기독교 예술 주제 중 하나다.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 시신을 안고 비통해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14세기 독일에서 처음 나타나 많은 예술가들을 매료시켰다. 비장미, 성(聖)과 속(俗)의 일치, 극한의 모성 등이 현현하기 때문이다.


가장 유명한 피에타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에 보관돼 있는 조각상일 것이다. 르네상스 거장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을 깎아 만들었다. 성모 마리아의 어찌보면 담담해 보이는 얼굴은 아들 잃은 어미의 참척(慘慽)을 역설(逆說)하고 있다. 그는 자식을 가슴에 묻고 이미 숨진 것이다.



그런 ‘피에타’를 실제 본 적이 있다. 사회부 사건기자 때이던 1995년 6월29일, 출입처인 서울 동부경찰서에서 취재를 마치고 귀사하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긴급 뉴스가 나왔다. 서울 서초동 삼풍백화점에서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처음엔 화재라고 했다가 가스폭발, 테러로 보이는 폭발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차를 돌려 현장으로 향했다. 퇴근시간대여서 구급차, 소방차에 보도차량까지 몰려 길이 막혔다.


먼지 자욱한 길거리에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그 풍경에서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건물 벽면이던 곳이 텅 비어 있고, 보이지 않아야 하는 건너편 아파트가 보였다. 2개 동 건물 중 B동만 남고 A동은 붕괴해 돌무더기가 돼 있었다.


B동 지하로 내려갔다. 식료품 매장이었다. 고개를 들어 천장 쪽을 보니 A동과 붙어 있던 부분은 무너져 있었다. 


콘크리트 벽은 깨졌고 철근만 고생대 물고기 뼈처럼 흉물스럽게 삐져나와 있었다. 철근 사이에서 무언가 눈길을 끌었다. 다가갔다.


유모차였다. 그 위를 한 여인이 몸으로 덮고 있었다. 아이를 콘크리트 더미로부터 보호하려는 노력에서였을 것이다.


유모차는 찌그러져 있었고, 여인은 미동조차 없었다. 숨진 그의 얼굴을 머리카락이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느껴졌다. 내 폐에 남아있던 공기를 ‘끄억끄억’하는 울음으로 몰아내던 비탄이, 악착같은 모성이, 어미의 가슴 같은 따뜻함이.


그날부터 꼬박 3주를 사고 현장에서 먹고 자며 취재했다. 502명이 숨지고, 6명이 실종됐다. 누가 구속되고, 어떤 제도가 만들어지고, 뭐를 점검하고 등등 당국 발표가 이어졌다. 변혁까지는 아니더라도 개선은 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 믿고 싶었는지 모른다.


수년간 그 여인과 유모차는 화인(火印)처럼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피에타’는 현실에서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미켈란젤로 작품만으로 족했다. 세월은 그 아픔의 예각을 갈아 둔각으로 만들었다. 19년이 지나갔고, 아들과 딸을 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이 어떤 표현인지 체감하게 됐다.


그러다 4월16일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하는 걸 TV서 봤다.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 등 470여명이 타고 있었다.


팽목항, 진도의 실내체육관, 단원고와 병원들에 수백의 피에타가 현신했다. 숨진 아이를 보던 아버지는 “우리 애가 추운데 양말까지 젖었다. 양말 벗겨달라”고 부탁했다. 어머니는 “시신을 건질 때마다 게시판에 인상착의를 아디다스, 나이키, 폴로 등 다들 상표로 하더라. 내가 돈이 없어 우리 애는 그런 걸 못 사줬다. 그래서 우리 애를 못 찾을까 걱정돼 나와 있다”고 했다.


뉴스를 보며 가슴 치는 이들 모두 피에타를 보고 있다. 스스로 피에타 인물이 됐다. 옛 화인도 다시 곪았다.

“얘들아, 미안하다”고 통감하는 모든 이들과 나 자신에게 모차르트 <레퀴엠 D단조(K.626)> ‘라크리모사(Lacrimosa·눈물의 날에)’를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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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우규

혹시 지금, 문득 떠오르는 보석 같은 한 구절이 있는가.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그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1970~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 문학을 접하던 청춘들이 너나없이 외우던 문장이다. 게오르그 루카치의 1914년 저작 <소설의 이론>의 그 유명한 서문 첫 구절. 이 문장은 수많은 이들을 문학의, 예술의 길로 이끌었다.

이건 어떤가.

“좋은 시는 강렬한 감정들의 자연스러운 넘침이다.”

시뿐만 아니라 예술, 문학을 정의하는 문장이다. 더 넣거나 뺄 단 하나의 단어도 없다. 글의 벽에 부딪힌 이에게 차디찬 정화수 같은 지침이다. 영국 계관시인 윌리엄 워즈워스가 1798년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와 함께 쓴 <서정 민요집> 서문에 나온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작품이야 명문의 향연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2막 1장에서 줄리엣은 로미오가 듣는 줄 모르고 독백한다.




“이름 속엔 무엇이 있나요? 우리가 장미를 그 어떤 다른 이름으로 부르든 여전히 향기가 나는걸.”

원수 가문의 이름을 가진 이를 사랑하는 처자의 탄식이다. 또 이름과 실재 문제까지 갈파하고 있다.

전문 작가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아포리즘을 길어낸 이들도 있다. 윈스턴 처칠은 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 의회를 방문해 “제가 바칠 것은 피와 땀과 눈물뿐”이라고 연설했다.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1863년 게티스버그 국립묘지 봉헌식에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결코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모두 두고두고 인용되는 경구다.

2005년 미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연단에 애플 창업자 고 스티브 잡스가 섰다. 그는 1960~1970년대 탐독한 잡지 ‘더 호울 어스 카탈로그’ 마지막 호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뒷면에 아침 시골길 사진을 실었습니다. … 사진 밑에 이렇게 써 있었습니다. ‘스테이 헝그리. 스테이 풀리시(Stay Hungry. Stay Foolish.) 마지막 인사말이었죠. 이는 제가 늘 바라는 바입니다. 여러분이 졸업을 하고 새 출발을 하게 되니 이렇게 빌겠습니다. 스테이 헝그리. 스테이 풀리시.”

배불러 하고, 잘났다고 안주하지 말라는 금언이다.

교보생명빌딩 봄편 (출처 :경향DB)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달라진 표현이 주목받고 있다. 의원 시절 절제되고 품격있는 말을 하던 그다. 요즘 ‘규제’ 문제를 놓고 전에 없이 강한 어조를 쓰고 있다. “쓸데없는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이자 제거해야 할 암덩어리”라거나, “사생결단하고 (이 문제에) 붙어야 한다”고 했다. 듣는 이에게 즉각 느끼고 아프게 하려고 그런 것 같다.

한국 경제를 이끌고 있다는 큰 회사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위기’를 무섭게 강조한다. 황창규 KT 신임 회장은 최근 “고객을 최우선으로 하지 않으면 KT의 미래는 없다”고 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도 “회사가 처한 상황 등을 고려해 소기의 성과와 수익성을 구현할 때까지 기본급의 30%를 반납하겠다”고 했다.

올초 신년사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다시 한 번 바꿔야 한다. 시간이 없다”고, 구본무 LG 회장은 “임직원 모두가 지금이 위기임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은 온통 위기이며 무시무시한 일만 있나. 미래와 희망은 도대체 없는가. 두고두고 가슴에 품어뒀다가 꺼내 볼 수 있는 ‘강렬한 감정의 자연스러운 넘침’과 ‘행복으로 이끌 별빛과 지도’ 같은 긍정의 표현을 해줄 이는 없을까.


최우규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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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우규

영국 작가 제인 오스틴은 19세기 중산층 삶을 소설로 그려냈다. <이성과 감성> <오만과 편견> <맨스필드 파크> <엠마> 등을 냈다.


오스틴은 악착같은 관찰력으로 사람들의 행태를 바라보고 그를 세밀하게 묘사했다. 또 날카로운 시각으로 물질지향적 세태와 중산층·귀족의 허위의식을 풍자했다.



그의 작품들은 20세기 들어 더 인기를 끌면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BBC의 ‘지난 천년간 최고 문학가’ 조사에서 셰익스피어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그의 작품 중 <이성과 감성>은 자매의 첫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성적인 엘리너는 차분하고 분별력 있다. 감성적인 마리앤은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사랑도 엘리너는 뜨뜻미지근하게, 마리앤은 불 같이 한다.


 오스틴은 어느 쪽 손을 들어줬을까. 소설에서 엘리너가 먼저 결혼을 한다. 그 뒤 마리앤이 결혼에 성공한다. 


이 때문에 클레어 토멀린 같은 평론가는 오스틴이 ‘이성’에 더 후한 점수를 줬다고 봤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그 조화에 방점이 있다고 한다.


누구에게는 안 그렇겠나. 최근 몇몇 기업은 이성과 감성 조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보여줬다.


지난달 31일 전남 여수에서 기름 유출사고가 났다. 3일 해양수산부 고위 관계자는 “GS칼텍스 송유관에서 유출된 사고이기 때문에 GS칼텍스 측이 1차 피해 보상 주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GS칼텍스는 즉각 “1차 피해 보상 주체라는 표현은 말도 안된다. 우리도 피해자”라고 반박했다.



불똥은 엉뚱한 곳에 튀었다.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다. 그는 5일 “사고의 1차 피해자는 GS칼텍스이고, 2차 피해자는 어민”이라고 했다. 비난이 빗발쳤다. 윤 전 장관은 다음날 해임됐다.


머리 만지는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출처: 경향DB)


GS칼텍스는 11일에야 사과했다. 허진수 대표이사 부회장 명의로 신문 1면 하단에 광고를 내고 “걱정과 우려를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처음엔 책임을 회피하려는 ‘이성’이 피해자와 이를 바라보는 국민 아픔을 보듬는 ‘감성’을 이겼다. 그러니 “우리가 피해자”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그러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되자 비로소 ‘감성’을 되돌아보게 된 것이다.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7일 국회 정무위원회는 NH농협카드를 대상으로 현장검증을 했다. 민주당 이상직 의원이 “농협은 ‘한국크레딧뷰로 직원 박모씨가 자료를 가지고 왔다’며 박씨만 희생양으로 삼는데, 내부 점검을 해봤느냐”고 물었다. 이에 이신형 NH농협카드 분사장은 “저희가 피해자”라고 했다. 이 의원은 “국민이 피해자이지, 농협카드가 피해자가 아니다”라고 질타했고, 다른 의원들도 가세했다. 이 분사장은 GS칼텍스와 달리 즉시 “사과하겠다”고 몸을 굽혔다.


최근 CJ가 벌인 일은 어떤가.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과 CJ그룹 이재현 회장 부친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간 유산 다툼이 계속되고 있다. CJ는 7일 홍보실 명의로 보도자료를 냈다. “진심어린 화해로 이 건을 마무리하고자 하는 원고(우리)의 진정성은 변함이 없다. 삼성이 제안한 화해를 위해 빠른 시일 내에 구체적인 대화 창구나 방법 등에 대해 논의하기를 기대한다.”


다분히 ‘언론 플레이’ 냄새가 난다. 가족간 화해를 이야기하면서 정작 당사자인 이건희 회장 쪽에 언질을 넣은 게 아니라, 언론에 배포했기 때문이다. 너무 머리(이성)를 굴린 탓에 공감(감성)을 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요란하게 언론을 통해 대화 창구나 방법 등을 논의하자고 하는 게 진정성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한 이건희 회장 측 변호인 보도자료에 더 공감이 가는 것이다. 진정성은커녕 ‘센스’라도 발휘했으면 어땠을까?


최우규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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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들

1960년대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학생이 학부모, 동문 앞에서 이런 연설을 했다.

 

“우리나라 거리는 혼란의 도가니입니다. 대학들은 폭동과 난동을 피우는 학생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우리나라를 호시탐탐 파괴하려 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무력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도처에 지금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부의 적과 외부의 적이 들끓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에는 법과 질서가 필요합니다. 법과 질서가 없다면 우리나라는 살 수가 없습니다.”

 

청중은 긴 박수를 보냈다. 박수소리가 멈춘 뒤 학생은 청중에게 조용히 말했다.

 

“지금 연설은 1932년 아돌프 히틀러가 한 것입니다.”

 

미국 역사·정치학자 하워드 진의 책 <오만한 제국>에 나오는 대목이다.

 

아돌프 히틀러는 독재자이며 학살자였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일을 벌이지는 않았다. 법과 원칙을 세웠다. 그것도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 ‘법과 원칙’만큼 명분으로 내세우기 좋은 게 없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유태인 학살에 앞서 1935년 ‘뉘른베르크법’을 통과시켰다. 독일 내 거주하는 유태인의 독일 국적을 박탈하고, 독일인과의 결혼을 금지하며, 공무담임권을 박탈하는 것이었다.

 

미국 인권 운동가 마르틴 루터 킹은 “독일에서 히틀러가 저지른 일들도 모두 합법적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했다.

 

조선 22대 왕 정조는 무심한 법 적용을 극히 경계했다. 관료가 사건 조사와 법 적용에서 태만하게, 기계적으로 혹은 잘못 적용하면 엄하게 징치했다. 대신 백성의 생명은 무한히 소중하게 여겼다. 모든 법 적용의 중심에 ‘사람’을 놓은 것이다.

 

그의 판결 원칙은 ‘무의처기의(無疑處起疑·의심할 것이 더 없는 곳에서 다시 의심을 일으키라)’다. 정조는 훗날 이조·병조 판서가 되는 서유방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황에서 털끝만큼도 의심할 거리가 없다고 해도, 의심할 것이 더 이상 없는 곳에서 또 의심을 일으켜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더 이상 의심할 것이 없는 완전한 지경에 도달한 뒤에라야 비로소 판결을 내릴 수 있다.”

 

관찰사 심이지에게는 “관찰사 직분은 형조나 지방 관아에서 형률을 맡은 관인인 검률(檢律)과 달라서 법례와 인륜 어느 한쪽도 폐기해서는 안된다”고 꾸짖었다.

 

 

보고하는 최연혜 사장 (경향DB)

 

지난달 말 민영화 논란 속에서 철도노조가 파업을 했다. 최연혜 코레일 사장은 시종일관 ‘법과 원칙’을 내세우며 노조를 몰아붙였다. 지난달 5일 호소문에서 “이번 파업은 명백한 불법 파업으로 법과 원칙에 따라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엄정하게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 사장은 15일에는 “법과 원칙에 따라 대처해 조기에 파업이 종료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파업이 끝난 31일에는 “법과 원칙에 따라 파업 참가자 징계 절차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과연 최 사장은 ‘법과 원칙’을 말할 자격이 있나. 4개 정권에 걸쳐 철도 업무에 깊숙이 간여한 데 시비 걸 생각은 없다. 하지만 반년도 안돼 입장을 180도 바꾼 점은 짚어야겠다.

 

그는 2012년 1월31일 조선일보에 ‘국익에 역행하는 고속철도 민간 개방’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수서발 KTX 운영법인에 대해 “복잡한 기계와 설비, 여러 사람의 손발이 완벽하게 맞아야 안전이 담보되는 철도 특성상 운영기관 다원화는 사고 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반대했다. 적자도 “부실경영보다는 부풀려진 수요 예측과 각종 부채를 떠안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 노조 주장 그대로다.



지난해 6월 아르헨티나에서 열차 충돌사고가 발생하자 최 사장은 트위터에 “철도를 포함한 교통부문이 1990년대 민영화된 이후 관리가 소홀해지면서 이 같은 대형사고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고 썼다.

 

최 사장의 진짜 법과 원칙은 6개월 이전 것인가, 아니면 이후 것인가. 하기야 최 사장이 윗선 지시 없이 오롯이 스스로의 소신과 원칙만으로 그랬을까 싶다.


하워드 진은 <오만한 제국>에 또 이렇게 썼다.

 

“법에의 절대적 복종은 일시적으로 질서를 가져올 수는 있으나, 정의를 가져오지는 못한다. 그리고 정의가 없을 때, 부당하게 취급당하는 사람들은 저항하고 반항하며 무질서를 가져오게 마련이다.”

 

최우규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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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우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