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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문장과 개념을 비비 꼬아놓은 역사·정치 서적보다 훨씬 나은 교보재다. 외부인들에게 미국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했다. 미국민은 독립 이래로 약자를 보호하고 자유를 숭앙하는 청교도적 면모를 자랑스러워했다. 이번 미 대선 기간에 유권자들, 특히 백인 저소득 노동자들은 이를 벗어버린 것 같았다. 한풀이와 이익 극대화를 위해 트럼프에게 손을 뻗었다. 트럼프는 골프장에 난입한 격투기 선수 같았다. 자기만의 규칙을 들이대며 난동을 피우다시피 했다. 그의 당선 이후 ‘이게 미국의 본심이었다’라는 분석이 대세였다.


도널드 트럼프도널드 트럼프

 트럼프는 당선된 당일만 점잖게 굴었다. 취임 직후 “설마 지킬까”라는 의구심이 들 만큼 논란 딱지가 덕지덕지 붙은 공약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파장이 가장 컸던 게 반(反)이민 행정명령이다. 이슬람 7개 국적자 입국·비자발급과 난민 입국을 90~120일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테러를 할 나쁜 놈들”이 들어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시민들은 주먹을 쥐고 시위를 시작했다. 트럼프는 콧방귀로 답했다. 균열은 진영 내부에서 시작됐다. 국무부 관리들은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메모에 서명을 했다. 샐리 예이츠 법무장관 대행도 트럼프에 맞서다 시쳇말로 잘렸다. 주 법무장관들은 행정명령 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판사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600곳 가까운 대학 총장들, 가수 마돈나, 레이디 가가, 배우 메릴 스트립, 나탈리 포트만 같은 스타들도 가세했다. 애플, 페이스북, 트위터 등 정보기술 기업 130여 곳도 의견서를 법원에 냈다. 저항에 고위관료, 판사, 거대기업, 스타 등 기득권층이 앞장섰다. 트럼프 취임 이후 2주 동안 벌어진 일이다. 이런 변증법적 전개가 실제 일어나다니, ‘이게 미국의 진심인가’ 싶기도 하다.


도널드 트럼프로 분장해 비꼬는 배우 메릴 스트립도널드 트럼프로 분장해 비꼬는 배우 메릴 스트립

 그래서 아쉽고 아프다. 한국 박근혜 정권의 반헌법적 조처는 임기 초반부터 시작됐다. 많은 징후와 경종, 사고에도 불구하고 저항은 3년 반 뒤에나 본격화됐다. 미국서는 줄탁( 啄)이 함께했지만, 한국서는 안에서 알을 깨려는 ‘줄’은 부족했고 밖에서 쪼아대는 미미한 ‘탁’에 의존했다. 보름과 3년 반이라는 저항의 속도 차이는 이렇게 갈렸다.


 프로이센 재상 비스마르크는 공직자를 “펜을 가진 동물”이라고 했다. 생각은 없고 반민주적인 엘리트들이 일을 지체시키고, 끊임없이 서류를 만들어낸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에선 의미 있는 숫자의 공무원들이 그런 동물이기를 거부했다. 한국에선 소수를 제외하고 짐승의 룰을 따랐다. 대통령과 실세의 말을 메모하느라 받아쓰기 실력만 늘었다.


 한국 일부 대학 총장들은 분에 넘치게 자리를 탐하려고 아등바등했다. 선거에서 2등 한 이가 1위를 누르고 선임되거나, 비선 실세 요구를 몰래 들어주다 들통나 망신을 당했다. 기업들은 불법적 요구에 저항보다는 거래로 대처했다. 돈을 갖다 바치며 민원을 해결했다. 일부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동료, 선후배를 ‘나쁜 사람’이라고 낙인찍어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대가로 정부와 관련 단체의 높은 직책을 챙겼다.


경향신문 김용민 화백 작품경향신문 김용민 화백 작품

 한국민이 유독 못났거나 비겁해서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보복 수단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그렇지 못하도록 견제되는 대통령제 차이인가. 그럴 수도 있다. 전란과 분단, 독재를 겪으면서 돋아난 아비투스(habitus)인가. 태극기와,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되지만 성조기를 함께 흔들며 눈물로 “우리 대통령을 살리자”고 호소하는 이들을 보면 그런가 싶다.


 그토록 강력하되 무책임했던 대통령이 시민들 요구로 물러나기 직전이다. 다음 대통령은 현 사태를 딛고 됐으니 농단과 작란이 재연되기는 어렵지 않을까. 미국 소설가 스티븐 킹은 말했다. “순진한 사람의 신뢰는 거짓말쟁이의 가장 유용한 도구다.” 현실에서 남의 선의에만 기대는 순진함은 어리석음과 동의어다. 의심하고 회의해야 한다. 누구든 주위에 실세와 비선이 있다. 대통령이 되면 응당 스스로 경계해야 하나 쉽지 않다. 전·현직 대통령은 물론, 현재 대통령을 꿈꾸는 후보들이 몸소 보여주고 있다.


촛불집회 - 경향신문 자료 사진촛불집회 - 경향신문 자료 사진

 공직자, 학자, 예술가, 시민은 대통령, 또 힘있는 사람 앞에서 선택해야 한다. 손을 내밀지, 주먹을 쥘지. 그 기준점, 잡기 어렵지 않다. 내 언행은 검사와 판사 앞에서 떳떳할 수 있나. 기자 회견장에서, 동료 앞에서, 가족에게 떳떳할까. 무엇보다 나 스스로에게 떳떳한가. 스스로 떳떳하다면, 역순으로 따져봐야 한다. 가족과 동료 앞, 기자 회견장, 재판정에서도 거리낌이 없나. 모두 ‘그렇다’면 그 언행은 해도 되는 권리일 뿐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이다. 그렇게 쥔 주먹의 힘은 술잔에 넘칠 만한 물 정도겠지만, 더해지고 보태져 대륙을 도저하게 흐르는 강이 된다.

Posted by 최우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