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우선, 고백컨데 팻 매스니의 팬입니다. 술 한잔 걸치고 음악이 나오는 곳에 가거나, 집에 가면 듣는 곡 5개를 꼽으라면 팻 매스니의 'Are You Going With Me'가 들어갑니다. 모든 음반을 다 좋아하지는 않지만, <Off Ramp> <Beyond The Missouri Sky>는 매우 좋아합니다.

 

     그의 음반은 애정을 곁들여 듣습니다. 그렇게 좀 핸디를 준다고 해도, 이 음반 <팻 매스니/탭-존 존스 북 오브 엔젤스 볼륨 20(Pat Matheny/Tap-John Zorn’s Book of Angels, Vol. 20>은 올 상반기 들어본 ‘비 클래시컬 뮤직’ 음반 중 감히 최고라고 꼽겠습니다. 클래시컬 음반은 몇 장 못들어봤고, 들어봤다고 해봐야 잘 알지도 못하니 논할 계제가 안됩니다.

 

 

 

 

 이 음반은 소속사가 겁을 먹어서인지 거의 프로모션 없이 지나간 것 같습니다. 안타깝지만 그게 요즘 음반계 현실입니다. 그럴 만도 한게, 팻 매스니는 한국서 공연은 잘 되지만 음반은 잘 안나가는, 재즈계 숙명 안에 들어 있어서입니다. 아마 이 음반도 국내에서 몇천장, 아님 몇백장 나간 것으로 끝났을 것 같습니다.


 나온 지 3개월 지나갔는데도 음반 글을 쓰지 않는 것에는 계속 부채감을 느껴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털겠습니다.

 

 이 음반은 팻 매스니가 다른 사람 음악으로 만든 첫 음반입니다. 그만큼 ‘뭔가’ 있겠죠. 존 존이라는 유태계 음악가는 전위 음악 쪽에서 시쳇말로 좀 '먹어주는' 사람입니다. 아방가르드, 퓨리 재즈, 퓨리 뮤직, 어느 이름으로든 그는 자신만의 영역을 쌓아 놓았습니다. 유대인이라는 뿌리에 기반하고 있으며 엄청난 생산량을 보입니다.


 미국 출신 색소폰 주자인 그는 어찌 들으면 중동 전통 음악을 어쿠스틱, 혹은 일렉트릭 악기로 연주한다는 느낌도 들고요. 존 콜트레인이나 텔로니어스 몽크 후기의 전위적이면서도 관조적인 연주와 달리 그는 좀더 생동감이 있습니다. 물론 동양에서는 한국의 강태환이 있었고, 일본에 야마시타 요스케가 있습니다. 그도 그처럼 힘있는 대로 블로윙합니다.

 

팻 매스니(왼쪽)와 존 존

 그는 1994년부터 구전으로 전해지는 민속 음악들을 정리했습니다. 그래서 500여곡 정도 작곡했다고 합니다. 그중 200여곡은 자신을 포함해 자신의 레이블인 ‘자딕’ 소속 아티스트들이 여러 형태로 재연했습니다. 팻 매스니가 연주한 곡들은 나머지 300여곡 가운데 선택한 것입니다. 존 존은 그 300여곡을 불과 3개월만에 모두 만들어 냈다고 합니다.

 

 그 이전에도 대면하지 않았던 매스니와 존은 이 음반을 만들면서도 대체로 e메일로 의견을 주고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 음반의 아이디어는 고스란히 팻 매스니의 것이라고 봐야겠지요.

 

 팻 매스니야 학구적이면서도 좀 도회적 인상을 갖고 있지만, 이번 음반에서 그야말로 탈 장르적인 지점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는 오넷 콜맨과 함께 1985년 음반 <송X:20주년(Song X : Twentieth Anniversary)에서 프리 재즈 음악을 들려준 바 있습니다. 당시에도 그는 오넷 콜맨의 색소폰과 자신의 기타를 버무린 곡들을 선보였습니다. 프리 재즈와 고운 발라드를 ‘반반씩’ 섞어 기존 팬들에게 소구한 측면이 있습니다.

 

 요번 음반 보면 순수 연주 시간만 50분 40초입니다. 길지도 짧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수록곡은 6곡입니다. 짧은 곡은 6분, 긴 곡은 11분이 넘습니다. 호흡이 좀 길죠.

 

 이런 음반 구성은 2005년 <더 웨이 업(The Way Up)>에서도 선보였습니다. <더 웨이 업> 음반은 별 다른 제목도 없이 ‘오프닝’, ‘파트1’, ‘파트2’, ‘파트3’로 돼 있습니다. 오프닝만 5분 짜리이고, 나머지는 15분부터 26분입니다. 그럼에도 이 음반이 지겹지 않은 것은 (팬심이 크게 작용했겠지만) 극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곡의 구조와, 팻 매스니 그룹의 빼어난 연주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팻 매스니/탭-존존스 븍 오브 엔젤스 볼륨 20> 수록곡들 모두 쉼 쉴틈 없이 청자를 밀어붙입니다. 연주의 '합'도 놀랍습니다. 그럴만한 게 드럼을 제외한 모든 연주를 팻 매스니가 합니다. 그는 기타, 베이스, 시타, 건반, 오케스티리온에서 쓰여진 반도네온 등 악기들을 자신이 직접 연주하고, 사운드를 만들어냅니다. 드럼은 오랜 동료 안토니오 산체스에게 맡겼습니다.

 

 수록곡 이름이 뜻하는 바가 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음반 제목에 ‘천사의 책’인 것으로 봐, 천사들 이름이 아닐까 하는 추측은 가능합니다. 실제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마스테마(Mastema)’는 수많은 악마들을 조종하여 인간을 유혹하고 타락시키는 일을 하는 천사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사리엘(Sariel)’은 대천사의 하나로, 죄의 길로 유혹당하는 인간들의 영혼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고 돼 있습니다. 파누엘도 신의 사자라고 합니다.

 

 음반을 들어봤습니다. 1번 트랙은 ‘Mastema(마스테마)’입니다. 뒷 배경으로 이스라엘 전통 민요를 깔고 전면에는 디스토션을 잔뜩 건 기타 솔로가 이어집니다. 특히 도드라지는 것은 드럼입니다. 7분20초짜리 중간 길이 곡입니다.


  숨이 좀 가빠질 때 쯤인 4분 어간에서 소리도 줄이고 리듬도 줄인 뒤 다시 주제부가 재연됩니다. 이번엔 헤비메탈 기타 같기도 합니다. 팻 매스니 기존 팬, 오레건, 마하비쉬누 오케스트라, 바이탈 인포메이션 같은 퓨전 밴드, 앨런 홀스워드는 물론 영국 록 밴드 젠틀 자이언트 면모도 보여줍니다. 끝부분에는 과거 핑크 플로이드의 ‘에코’나 킹 크림슨의 찌그러든 전자 음도 나옵니다.

 

 2번 트랙은 분위기 바꿔 조용한, 어쿠스틱 소리가 나오는 ‘알빔(Albim)’입니다. 지중해 느낌의 음악은 재즈 기타리스트 빌 프리셀의 도회적 느낌이 나면서도, 정겹습니다. 드럼 하이햇 소리도 시종 귀 위쪽에서 찰랑거립니다. 이 때문에 곡 자체는 '단조(마이너)'이지만, 리듬은 흥겨운 묘한 이질감을 전달해줍니다. 중반부터 들어오는 반도네온 소리가 보강됐습니다. 이 곡은 9분 7초짜리입니다. 후반부로 치달을 때 나오는 음울하다못해 불온하기까지 한 소리는 긴장감을 더합니다.

 

 세번째 곡 ‘타르시스(Tharsis)’는 일렉트릭 기타와 탬버린으로 시작합니다. 반복적 프레이즈의 도입부가 끝나고 나오는 팻 매스니 특유의 기타 신디사이저가 나옵니다. 이 곡에 들어서야 왠지 안심이 됩니다. “그래, 이 음반은 바로 팻 매스니 음반이구나”라고 선언하는 곡인 것 같습니다. 꼭 그의 인기 음반 <오프램프>에서 가져온 듯한 곡입니다. 그만큼 익숙한 소리와 곡 전개입니다.

 

 네번째 곡 ‘사리엘(Sariel)’은 다시 2번 곡처럼 조용한 어쿠스틱 소리로 시작됩니다. 소박한 스트로크와 아르페지오, 꼭 흑백 중동 영화의 OST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도입부는 세번째 곡인 ‘Tharsis’를 좀더 천천히 연주한 듯합니다. 이 곡 역시 중반 이후 기타 신디사이저가 중첩돼 나옵니다. 막판에 나오는 제멋대로 연주는 전형적 프리 재즈, 혹은 아방가르드 뮤직입니다.

 

 다섯번째 곡 ‘파뉴엘(Phanuel)’도 어쿠스틱 기타로 시작해 신디사이저 배경을 버무립니다. 영국 밴드 ‘킹 크림슨’ 팬이라면 몹시 반가워할 만한 곡입니다. 로버트 프립이 각종 음반에서 시도했던 즉흥연주가 실려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나 명상하려는 이들에게는 권할만한 곡은 아닙니다. 1980년대 유럽 프로그레시브 록에서 시도됐던, 포플부나 고블린이 내놓은 ‘으스스한’ 곡입니다. 중반부 이후에는 잠깐 낭만적이면서 아름다운 멜로디가 흘러, 뜻밖입니다.

 

 여섯번째 곡은 ‘허미즈(Hermiz)’로, 대놓고 퓨리 재즈입니다. 오넷 콜맨과 협연해 <송 X> 음반을 냈던 그이지만, 30년만의 이 음반 마지막 곡을 퓨리 재즈로 마무리한다는 것은 청자의 허를 찌르는 것입니다.


 더욱이 팻 매스니는 여기서 기타가 아니라 피아노를 칩니디. 그것도 존 케이지처럼 몇분간 아무 것도 안치는 것도 아닙니다. 피아노를 타악하듯, 그러면서도 분명하게(혹은 의외로) 코드 진행이 엿보이는 연주를 들려줍니다. 팻 매스니는 분명 피아노를 연주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끝납니다. 이걸 허탈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긴장의 급작스런 해소라고 해야 하나요.

 

 정리하겠습니다. 팻 매스니 팬이라면, ‘필청’입니다. 복잡하고, 정교한 연주를 좋아하는 퓨전재즈나 재즈록 팬이라면 더 좋아하실 겁니다. 매일 달콤한 케이크를 먹어서, 뭔가 톡 쏘는, 고추냉이 같은 게 먹고 싶다면 주저 하지 말고 집어드세요.

Posted by 최우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