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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

집사람의 성화도 있었고, 몇번 해보니 땀 빼는 재미도 있어 집 근처 인왕산을 오르내리고 있다. 회사에서 야근하고 대휴하는 날, 토요일 쉬는 날 오른다. 초등학교 6학년생 아들과 함께 오르면 좀 발걸음을 늦추고, 아니고 혼자 가면 3시간 정도 걸리는 코스다.




패션 감각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터다. 게다가 등산 관련 제품들이 너무 비싼 듯해서 그냥 평상복 차림으로 오가고 있다.


올 초에 두툼한 거위털 파카에 면 티셔츠, 무릎나온 트레이닝 복(이따금 거울에 비친 옷을 보면 내가 무릎을 꿇고 걷는 것 같다), 신은 지 5년이 넘어 엄지와 새끼 발가락 옆 부분에 금이 가기 시작한 워킹화를 입고 신었다. 그나마 코오롱 등산 스틱을 선물받아 갖고 다닌다. 이게 유일한 ‘등산용품 다운 등산용품’이다.


맨 손에 스틱을 드니 손이 시려워 손바닥에 빨간 고무를 입한 목장갑을 끼고 다녔다. 가방은 집사람이 신혼여행 때 들고갔던 천으로 된 백팩이다. 커피를 넣은 텀블러, 초콜릿, 수건, 휴지 정도를 넣는다.


이 차림새로 산에 올랐다가 퇴사한 회사 선배들을 만났다. 반갑게 인사하는데 한 선배가 “다른 건 몰라도 장갑이 그게 뭐냐. 하나 사라” 그런다. “예, 예” 했지만, 속으로 ‘이게 어때서’라고 했다.


그날 볕이 좋았다. 더워서 파카를 어깨 위에 걸치고 땀을 뻘뻘 흘리며 목장갑을 끼고 내려오다가 집사람과 마주쳤다. 집 사람은 “그게 뭐냐”고 한마디했다. "노숙인 직전 같아"라는 거다.

 

짙은 청색 파카, 짙은 회색 티셔츠, 짙은 회색 트레이닝, 청색 워킹화, 빨간 목장갑, 회색 면 백팩…. 아, 모양은 좀 빠진다. 다른 것 몰라도 장갑은 개비를 하자는 생각에 문구점에 갔더니 3M 장갑이 꽤 괜찮다. 2500원에 득템하고 좋아했다.


그 다음주는 더 따뜻해져 파카 대신 플리스 재킷을 입었다. 미국 연수 갔을 때 35달러 정도 주고 산 것이다. 뭐 이것도 그닥 모양이 예쁘지는 않다. 암튼 그 차림으로 산을 오르고 있자니 다른 사람들 차림새로 눈길이 갔다.



아! 놀라움. 이건 말로만 듣던 바로 그 히말라야 원정대 급 차림새가 아니던가. 재킷은 7대 기능이 다 들어가 있는 고어텍스 소재에 빛까지 반사시킨다는 그것들. 셔츠와 바지도 속건 기능이 있어 뽀송뽀송하다는 소재로 만들고 죽죽 늘어난다는 그런 것들이다.


등산화도 발가락을 보호하는 토캡에 뒤틀림 방지, 방탄소재 케블라가 들어가고 누벅 가죽에 고어텍스 필름을 썼다는 등. 백팩도 다양한 포켓에 가벼운 소재, 어깨와 허리를 잘 받쳐주는 인체 공학적 어쩌구.


모자와 장갑도 내가 입은 전체 가격에 맞먹는다는 것들이다.


그런가 보다 하다가 컴퓨터 앞에서 아까 본 것들을 가격을 검색해봤다. 재킷은 20만~70만원, 셔츠와 바지도 10만원대, 등산화는 10만~50만원대 등등. 이건 뭐.



헌데, 그렇게 멋진 차림새는 장착했지만 개념은 집에 놔두고 온 상춘객은 어찌 그리 많은지. 


전후방 3, 4미터에서도 맡을 수 있는 화장품과 향수를 바른 이들은, 정말 바로 귀가 조치 시키고 싶다.


이어폰도 아니고 외장 스피커로 음악을 듣는 이들은 어떤가. 걷는 내내 부인, 남편, 시누이, 직장 상사와 후배를 질근질근 씹어대는 등산객들. 자신의 정치, 사회, 경제적 입장을 내내 주장하면서 다른 이들 의견은 쓰레기라고 하는 이들. 그런 사람 만나면 발걸음을 빨리 해 추월하거나, 아니면 몇분 쉬면서 먼저 보내는게 상책이다.


산 위에서 음주는 위험한 것이지만, 막걸리 한 두잔이야 할 수도 있다. 헌데 얼굴은 벌겋고 숨결에서는 이미 산화되기 시작한 듯한 냄새를 뿜는 이들이 있다. 그냥 집에서 마시지 왜 여기를 왔는지.


무엇보다 꼴불견은 불륜족이다. 이건 누가봐도 불륜족인 이들도 있고, 밴드와 라인, 카톡으로 만난 동창중 슬금슬금 밀당하고 썸 타는 이들도 보인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등산로 초입에 카페나 술집이 많이 생겼는데, 등산은 않고 아예 거기 앉아서 술마시고 수다 떨며 연애하는 사람들도 많다”며 “화려하게 좍 빼입고 화장한 여성들, 화려하게 좍 빼입고 머리에 뭔가 바른 남자들은 그 쪽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아들과 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하면서 오르면 이 꼴 저 꼴 안봐서 좋지만, 혼자 오르면 어쩔 수 없이 그런 진상들과 마주쳐야 한다.


내가 바라는 등산은 그저 헉헉대면서 땀 흘리고, 이런 저런 공상도 해보고, 주위 풍광의 변화에 눈요기하는 정도였으면 좋겠다. 날이 좋아져 ‘망외’의 것을 탐하며 등산을 오는 사람이 점차 많아지면서 드는 생각이다.

Posted by 최우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