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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녀봉에 있는 선명우의 소금집에서 내려다보는 금강은 정말 비단을 깔아 놓은 듯 매끄럽고 유장했다. 계룡산의 허리 짬을 파고 돌다가 공주 부여의 옛꿈을 쓰다듬고 내려오는 강물이었다. 흐르기 때문에 강인 것인지, 강이기 때문에 흐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강물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리면 멀리 계룡산의 연접한 줄기줄기도 머물지 않고 마냥 흐르고 흘렀다. 흐르고 머무는 것이 자연이려니와, 흐르고 머무는 것이 곧 사람이었다.”(박범신 소설 <소금> 357쪽)


 박 작가는 <소금>에 충남 강경의 옥녀봉과 금강을 이렇게 옮겨 적었다. <소금>은 자본주의의 소비 네트워크에 휘말려 삶을 빨대로 빨리는 아버지들을 다뤘다. 주인공 선명우도 아버지를 빨고, 그는 부인과 딸들에게 빨린다. 선명우가 천하게 번쩍이는 현실을 버리고 가난과 남루함, 웅숭깊은 자연을 찾아가 머문 곳이 옥녀봉 소금집이다.


 문학은 현실의 거울일 것이다. 모양을 비추지만 만질 수 없다. 한데 거울 속에 들어가 책 문장 사이, 단어 사이에 숨어 있는 실재들을 맛볼 수 있다면 어떨까. 소설 속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와 거울 속을 돌아다닌 것처럼 내 발로 직접 가볼 수 있다면. 


 충남 강경과 논산은 박범신 작가의 소설 <소금> 독자들에게 맞춤한 곳이다. 가시 많은 생선 살을 발라 먹듯 작가와 주인공들의 발자국을 따라 밟을 수 있는 곳이니 말이다.


 ‘경향 70년, 70인과의 동행’ 참가자 70여명이 23일 땡볕이 내리쬐는 강경 옥녀봉을 찾았다. 박 작가 안내로 옥녀봉 꼭대기에 서자 금강과 논산평야가 눈앞에 펼쳐진다. 고목들이 서늘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금강과 논산평야23일 충남 강경 옥녀봉에서 내려다본 금강이 논산평야를 끼고 휘돌고 있다. 강경 _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옥녀봉에는 보름달 뜬 날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와 경치를 즐기고 맑은 강물에 목욕하고 놀았다는 전설이 서려 있다. 박 작가는 “그건 건전 버전이고, 에로틱 버전이 있다”고 껄껄 웃었다.


 옥황상제 막내딸이 선녀들과 목욕을 하다가 너무 늦었다. 허겁지겁 날개옷을 입고 하늘로 올라갔다. 

 옥황상제가 구름 밑을 내려다보니 한 선녀의 옷매무새가 흐트러져 젖가슴이 보였다. 옥황상제는 “단정치 못한 저 아이는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알고 보니 애지중지하던 막내딸이었지만, 지시를 거두지 못했다고 한다.


박범신 작가‘경향 70년, 70인과의 동행’ 참가자들이 23일 박범신 작가 소설 <소금>의 무대인 충남 강경과 논산을 찾았다.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강경 옥녀봉 공원에서 박 작가(가장 앞)가 이곳에서 보낸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강경 _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박 작가가 탐방객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금강 포구에 과거 2~3㎞나 파시가 늘어섰다고 합니다. 제 고향은 여기서 8㎞ 떨어진 곳입니다. 중2 때 강경읍으로 이사갔죠. 저 금강 하구를 지금은 막아놨습니다. 강물은 흘러야 하는데, 농업용수로도 못 씁니다.”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박 작가는 금강변 갈대밭을 가리키며 “날 키운 자궁”이라고 했다. 

 그는 강경읍에서 익산 남성고를 기차로 통학했다. 하지만 새벽밥 먹고 나와 역으로 안 가고 갈대밭에 가서 매일 하루 책을 2권씩 읽었단다.


 옥녀봉 밑에 <소금> 주인공 선명우의 살림집이 있다. 방 2칸짜리에 시멘트벽과 바닥, 슬레이트 지붕. 초라한 곳이다. 이곳에서 주인공이 자아를 회복한다.

소금집‘경향 70년, 70인과의 동행’ 참가자들이 지난 23일 박범신 소설 <소금>의 배경이 된 주인공의 집을 둘러보고 있다. 강경 _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박 작가는 “여긴 옛집들이 많이 남아 있어 연속극을 찍으러 많이 온다”며 “개발의 광풍이 이곳을 덮쳤다면 이곳을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강경에는 옛 벽돌 건물이 많다. 벽돌도 세월이 갈아낸 듯 색은 바랬고, 닳고 닳아 옆 날과 각은 죽어 있다. 그걸 박 작가는 “옛사랑, 문학의 마음”이라고 했다. 남루하고 퇴락한 것들, 사라지는 것, 모자란 것, 눈물겨운 것들…. 선명우의 첫사랑 세희가 입었던 ‘실밥 풀린 메리야스’ 같은 심상이다.


 강경에는 기독교 관련 유적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옥녀봉 공원 안에 한국 침례회 최초 예배지가 복원돼 있다. 조선 말기 강경과 인천을 오가던 포목장수 지병석 집사의 가택이다. 1895년 폴링 선교사가 이곳에서 첫 주일 예배를 드렸다.

 옥녀봉에서 골목길을 내려오면 1924년 건립된 강경성결교회 유적이 나온다. 현존하는 유일한 개신교 한옥 교회다. 남녀가 드나드는 문이 달랐단다.


 잠깐 차를 달리니 강경근대역사관이 나왔다. 1905년 한호농공은행 강경지점으로 설립됐다가 한일은행으로 바뀐 곳이다. 근대 건물다운 외관을 가졌지만, 은행이라는 특성 때문에 입구가 작다. 옛 교과서, 저울, 손풍구, 곤로, 풍금, 재봉틀, 작두, 베틀, 기계 등 시간이 멈춘 듯한 물상들이 전시돼 있다. 송재권 해설사(60)는 “논산·강경에 등록문화재 11곳이 있는데 그중 1곳만 논산 연산역에 있고 나머지 10곳은 강경에 있다”며 “그만큼 예전에 흥했던 곳”이라고 말했다.


 역사관 바로 길 건너에 젓갈 시장이 있다. 하항(河港)과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잃은 강경이 호구책으로 삼았던 젓갈이 이젠 대표 상품이 됐다.


 논산시를 가로질러 15분가량을 가면 관촉사가 나온다. 국내 최대 석불로 보물 218호인 석조미륵보살입상이 풍광을 압도한다. 968년 혜명(慧明)이 창건한 이 사찰에는 미륵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 여인이 산에서 고사리를 꺾다가 아이 우는 소리를 듣고 가보았더니 큰 바위가 땅에서 솟아나고 있었다. 소식을 전해 들은 고려 4대왕 광종은 그 바위로 불상을 조성하라고 명했다.

미륵불상충남 논산시 은진면 관촉사에 있는 보물 218호 석조미륵보살입상. 논산 _ 강윤중 기자


 혜명은 석공 100명을 데려와 37년에 걸쳐 불상을 만들지만, 너무 커서 세우지는 못하고 걱정만 했다. 이때 아이들이 삼등분된 진흙 불상을 만드는 놀이를 보게 됐다. 평평한 땅에 발톱부터 손까지 불상을 세우고, 그 옆에 흙을 비스듬히 쌓아 손부터 이마까지 부분을 위로 끌고 올라가 몸통 위에 올렸다. 그 옆에 또 흙을 쌓고 마지막 이마 위쪽 부분까지 쌓았다. 흙을 치우니 불상이 제대로 세워졌다. 혜명이 그대로 따라 해 불상을 세웠다. 아이들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었다.

 탐방객 중에는 풍진을 108배로 씻는 이도 있었고, 고즈넉한 그늘에 앉아 땀을 닦는 이도 있었다.


 논산시 가야곡면 탑정 호숫가에 있는 박범신 작가 집필실로 향했다. 박 작가 집 ‘와초재’ 마당에는 배롱나무 한 그루가 있다. 소설 <소금>에도 나오는 소재다. 박 작가는 이 나무를 폐교 운동장에서 옮겨 심었다. 깨끗한 껍질은 청결과 고요함을 상징한다. 스스로 수양하는 선비들이 사랑방 앞에 심어두고 닮으려고 했다고 한다. 

박범신 작가 집 '와초재'‘경향 70년, 70인과의 동행’ 참가자들이 지난 23일 충남 논산시 가야곡면 소재 박범신 작가의 집 '와초재'를 둘러보고 있다. 논산 _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땡볕을 걱정한 박 작가는 탐방객을 모두 집 안으로 들이곤 ‘삶과 글, 고향’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동양에서는 인체나 우주 모두 흙, 물, 불, 바람, 하늘 5가지 원소가 균형을 이뤄야 건강하다고 본다. 해방 이후 온통 불의 역사였다. 모진 담금질을 해가며 먹고사는 불의 역사로 살았다. 기득권과 지도층도 불의 역사로만 먹고사니 모두 불타 죽을 지경이다.”

 박 작가는 모성, 여성, 관용, 부드러움을 담은 ‘물의 역사’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영원히 청년 작가로 살고 싶다”고 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박범신 작가 강연‘경향 70년, 70인과의 동행’ 참가자들이 지난 23일 논산시 가야곡면 박범신 작가의 집필관에서 작가의 강연을 듣고 있다. 논산 _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30분 예정된 강연은 2시간 넘게 진행됐다. 박 작가는 1층 거실은 물론 2층 집필실, 화장실도 모두에게 공개했다. 헤밍웨이가 맨발로 일어선 상태로 글을 쓰던 쿠바 아바나의 집필실에 서보는 게 그 애독자의 꿈이 아닐까. 탐방객 70여명은 이날 호강했다.


 부산에서 부인과 함께 온 김현태씨(67)는 “박 작가가 인상은 차분하고 애잔해 보였는데 말씀하시는 게 어찌나 구수하고 진솔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탐방객들은 논산 부적면에 위치한 백제군사박물관으로 향했다. 황산벌에서 전사한 계백 장군 묘소도 이곳에 바로 붙어 있다. 박물관은 백제시대 유물과 그 시대의 갑옷, 칼, 창, 마구 등 군사적 유물들도 함께 전시해 놓았다.


 마지막 방문지는 돈암서원이다. 논산시 연산면에 있는 사적 제383호다. 1634년(인조 12) 예악의 대가인 김장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 위패를 모셨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훼철(毁撤)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다.

돈암서원'경향 70년, 70인과의 동행' 참가자들이 지난 23일 배롱나무 꽃이 활짝 핀 논산시 연산면 돈암서원을 둘러보고 있다. 논산 _ 강윤중 기자yaja@kyunghyang.com


 외삼문을 들어서면 유생들이 공부하는 강학 공간이 나온다. 왼쪽 건물 응도당은 보물 1569호다. 대들보가 웅장하다. 양성당, 좌우 동재, 서재, 장판각 등도 있다. 모두 단청을 하지 않고 흙과 나무색만 있다. 공부하는데 정신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란다.

 내삼문을 지나면 사당인 숭례사가 날렵한 자태로 앉아 있다. 이곳에도 배롱나무가 흐드러진 꽃을 안고 서 있다. 박범신 작가 집 마당에도 있던 나무다.


 연세대 국학연구원 서현경 전문연구원(47)은 “박범신 문학과 지역이 어떻게 만나는지, 한 작가가 지역사회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볼 수 있었다”며 “인생 이야기도 좋았다. 나이 많은 친구를 만나는 것은 좋은 지도를 찾은 것과 같다”고 말했다.

Posted by 최우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