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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들

1960년대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학생이 학부모, 동문 앞에서 이런 연설을 했다.

 

“우리나라 거리는 혼란의 도가니입니다. 대학들은 폭동과 난동을 피우는 학생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우리나라를 호시탐탐 파괴하려 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무력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도처에 지금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부의 적과 외부의 적이 들끓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에는 법과 질서가 필요합니다. 법과 질서가 없다면 우리나라는 살 수가 없습니다.”

 

청중은 긴 박수를 보냈다. 박수소리가 멈춘 뒤 학생은 청중에게 조용히 말했다.

 

“지금 연설은 1932년 아돌프 히틀러가 한 것입니다.”

 

미국 역사·정치학자 하워드 진의 책 <오만한 제국>에 나오는 대목이다.

 

아돌프 히틀러는 독재자이며 학살자였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일을 벌이지는 않았다. 법과 원칙을 세웠다. 그것도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 ‘법과 원칙’만큼 명분으로 내세우기 좋은 게 없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유태인 학살에 앞서 1935년 ‘뉘른베르크법’을 통과시켰다. 독일 내 거주하는 유태인의 독일 국적을 박탈하고, 독일인과의 결혼을 금지하며, 공무담임권을 박탈하는 것이었다.

 

미국 인권 운동가 마르틴 루터 킹은 “독일에서 히틀러가 저지른 일들도 모두 합법적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했다.

 

조선 22대 왕 정조는 무심한 법 적용을 극히 경계했다. 관료가 사건 조사와 법 적용에서 태만하게, 기계적으로 혹은 잘못 적용하면 엄하게 징치했다. 대신 백성의 생명은 무한히 소중하게 여겼다. 모든 법 적용의 중심에 ‘사람’을 놓은 것이다.

 

그의 판결 원칙은 ‘무의처기의(無疑處起疑·의심할 것이 더 없는 곳에서 다시 의심을 일으키라)’다. 정조는 훗날 이조·병조 판서가 되는 서유방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황에서 털끝만큼도 의심할 거리가 없다고 해도, 의심할 것이 더 이상 없는 곳에서 또 의심을 일으켜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더 이상 의심할 것이 없는 완전한 지경에 도달한 뒤에라야 비로소 판결을 내릴 수 있다.”

 

관찰사 심이지에게는 “관찰사 직분은 형조나 지방 관아에서 형률을 맡은 관인인 검률(檢律)과 달라서 법례와 인륜 어느 한쪽도 폐기해서는 안된다”고 꾸짖었다.

 

 

보고하는 최연혜 사장 (경향DB)

 

지난달 말 민영화 논란 속에서 철도노조가 파업을 했다. 최연혜 코레일 사장은 시종일관 ‘법과 원칙’을 내세우며 노조를 몰아붙였다. 지난달 5일 호소문에서 “이번 파업은 명백한 불법 파업으로 법과 원칙에 따라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엄정하게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 사장은 15일에는 “법과 원칙에 따라 대처해 조기에 파업이 종료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파업이 끝난 31일에는 “법과 원칙에 따라 파업 참가자 징계 절차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과연 최 사장은 ‘법과 원칙’을 말할 자격이 있나. 4개 정권에 걸쳐 철도 업무에 깊숙이 간여한 데 시비 걸 생각은 없다. 하지만 반년도 안돼 입장을 180도 바꾼 점은 짚어야겠다.

 

그는 2012년 1월31일 조선일보에 ‘국익에 역행하는 고속철도 민간 개방’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수서발 KTX 운영법인에 대해 “복잡한 기계와 설비, 여러 사람의 손발이 완벽하게 맞아야 안전이 담보되는 철도 특성상 운영기관 다원화는 사고 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반대했다. 적자도 “부실경영보다는 부풀려진 수요 예측과 각종 부채를 떠안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 노조 주장 그대로다.



지난해 6월 아르헨티나에서 열차 충돌사고가 발생하자 최 사장은 트위터에 “철도를 포함한 교통부문이 1990년대 민영화된 이후 관리가 소홀해지면서 이 같은 대형사고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고 썼다.

 

최 사장의 진짜 법과 원칙은 6개월 이전 것인가, 아니면 이후 것인가. 하기야 최 사장이 윗선 지시 없이 오롯이 스스로의 소신과 원칙만으로 그랬을까 싶다.


하워드 진은 <오만한 제국>에 또 이렇게 썼다.

 

“법에의 절대적 복종은 일시적으로 질서를 가져올 수는 있으나, 정의를 가져오지는 못한다. 그리고 정의가 없을 때, 부당하게 취급당하는 사람들은 저항하고 반항하며 무질서를 가져오게 마련이다.”

 

최우규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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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우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