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1998년 국제부에서 막내 기자로 있을 때였습니다.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 인턴직원 모니카 르윈스키의 섹스 스캔들이 화제가 됐습니다. 케네스 스타라는 특별검사가 이들을 상대로 수사했고, 약 1만여페이지 분량의 수사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그걸 읽고 기사를 쓰라는 특명이 내려와, 몹시 허덕였던 기억이 납니다.(물론 저 혼자 다 쓰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불과 2000페이지만 보면 되는 거였죠. ㅠ.ㅠ)

 

 클린턴은 어려서 양부 밑에서 자라며 고생을 했습니다. 맞기도 했답니다. 회사 들어오기 수년전에 타임에서 읽은 기사가 기억납니다. "클린턴 가정 형편이 어려워 집 인근에 있던 도축장에서 소 갈비를 얻어다 먹어야 했다"는 기사였습니다. '우와, 없이 살아서 갈비를 먹는데'라는 턱없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1960년대에는 소를 도축하면 고기 이외에는 버린 점을 생각하면 클린턴이 어렵게 자란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는 고교 시절에는 아칸소 주(클린턴이 대통령 되기 전에 미국에 이런 주가 있는지도 몰랐죠) 학생 대표로 뽑혀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만났답니다. 워싱턴에 있는 조지타운 대학교를 나오고, 영국 최고 명문인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로즈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미국으로 돌아와 예일 대학교 법학대학원을 졸업하고 1973년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죠. 이 때 힐러리 로댐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클린턴은 아칸소 주 법무장관, 최연소 주지사(32세)를 했고, 1992년 선거에서 현직 공화당 출신 대통령인 조지 부시와 무소속 후보인 로스 페로를 꺾었습니다. 이 때 그가 내세웠던 캠페인 문구 “문제는 경제야, 이 멍청아!(It‘s the economy, stupid!)”는 그 뒤에도 두고두고 패러디돼서 쓰였습니다.


 변호사 출신 답게 말도 잘하고 위기상황에서 잘 빠져나갑니다. 르윈스키와 성관계 여부를 묻자 클린턴 당시 대통령은 ‘부적절한(inappropriate) 관계’라는 교묘한 말로 빠져나갑니다. 별명이 ‘뺀질이 윌리(Sleek Willie)’인 그 다운 답변이었습니다.

 

 그는 평화 교섭자로서 업적을 남겼습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북 아일랜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평화 교섭에서 주요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2009년 8월 4일 직접 북한 평양으로 날아가 억류됐던 미국 여기자 2명을 풀어냈죠.


 하지만 그도 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섭에는 실패했습니다. 바로 전설적 하드록 밴드 '레드 제플린'입니다. 미 CBS 방송국은 6일(현지시각) 클린턴 전 대통령이 레드 제플린 재결합 공연을 추진했으나, 성사시키지 못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지난해 ‘허리케인 샌디’ 피해 복구를 위한 뉴욕에서 자선 콘서트에 레드 제플린을 재결합시켜 무대에 세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샌디는 2012년 10월 말 쿠바, 미국 동부 해안에 상륙해 600억 달러 이상의 피해를 입혔답니다.


 당시 콘서트를 관장하던 ‘로빈 후드 재단’의 데이비드 솔츠맨은 “나와 영화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이 워싱턴 D.C.로 날아가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클린턴 전 대통령은 굉장했다”며 “그는 ‘정말 이 일을 하고 싶다. 환상적인 일이다. 난 레드 제플린을 사랑한다’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레드 제플린 생존 멤버인 로버트 플랜트, 지미 페이지, 존 폴 존스를 직접 만나 공연 참여를 요청했습니다. 마침 그 세명의 멤버는 자선 콘서트 전날 케네디 센터에서 열리는 ‘케네디 센터상’ 수상을 위해 뉴욕에 체류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노(No)”라고 거부했습니다.


 콘서트는 2012년 12월12일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려 수익금으로 5000만 달러(560억원)를 벌어 들였습니다. 6개 대륙에 중계된 이 콘서트에는 레드 제플린의 동년배인 ‘더 후’, 에릭 클랩턴, ‘핑크 플로이드’의 로저 워터스 등이 참여했구요. 1994년 커트 코베인이 숨진 뒤 해체된 ‘너바나’ 생존 멤버 크리스 노보셀릭, 데이브 그롤, 팻 스미어가 처음으로 모여 공연했다. 대미는 폴 매카트니가 장식했답니다.

 

the WhoPink Floyd 출신 로저 워터스

 

 

 ‘롤링 스톤즈’ 보컬인 믹 재거는 당시 “지금까지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공연중 가장 큰 규모의 늙은 영국 가수들 모임인 듯하다”며 “런던에 비가 많이 오면 당신(미국인)들도 와서 도와야 한다”고 농담했습니다.

 롤링 스톤스폴 매카트니(왼쪽)와 데이브 그롤(오른쪽)

 


 레드 제플린은 1980년 드러머 존 보냄이 숨진 뒤 해체됐습니다. 1985년 아프리카 난민을 돕자는 취지의 미국판 ‘라이브 에이드’ 때 한 무대에 섰습니다.

 

 2007년 12월 10일 런던의 O2아레나에서 애틀랜틱 레코드 창시자 아흐멧 어테건 추모공연 때 재결합해 공연했죠. 숨진 존 보냄 아들 제이슨 보냄이 드럼을 쳤습니다. 지미 페이지와 존 폴 존스는 투어를 계속하려고 했지만, 로버트 플랜트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합니다. 페이지에 따르면 플랜트는 “바쁘다”고 했다고 밝혔답니다.

 

 다만 플랜트는 지난 2월 음악 전문지 ‘롤링 스톤’에 내년(2014년) 재결성 공연을 할 지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내년 재결합을 다시 기대해볼만 하죠?


Posted by 최우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