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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30일 썼던 칼럼




인문학(人文學), 라틴어로 ‘후마니타스(Humanitas)’, 영어는 ‘휴매니티스(Humanities)’다. 말 그대로 사람, 사람됨을 다룬다. 언어학, 문학, 역사, 철학, 예술 등 교양의 기본 학문을 지칭한다.


후마니타스라는 말은 로마의 정치가, 웅변가, 철학자, 저술가인 키케로가 기원전 55년 쓴 <변론가론(De Oratore)>에 나온다. ‘공익을 위해 일하기 합당한 미덕을 갖도록 교육받는 이상적 웅변가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뜻한다. 고전 문학, 시 같은 ‘좋은 학문(bonae litterae)’을 배우도록 돼 있다.



인문학은 암흑의 중세를 버텨내고 르네상스 때 꽃피웠다. 근현대에서 ‘교양을 위한 학문’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서 내내 뒷전이었다가 이제사 유행을 타는 것 같다. 지난해부터 ‘○○ 인문학’이니 하는 책과 강좌·강연들이 쏟아진다.


산업계까지 그 아취가 퍼지고 있다. 재계 13위 신세계그룹을 이끄는 정용진 부회장이 인문학 전파의 기치를 들었다. 그는 지난 4월8일 서울 신촌 연세대 대강당에서 학생 2000명에게 강연을 했다.


정 부회장은 “상대의 겉만 보는 게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읽으려고 하는 게 인문학의 시작”이라고 했다. 또 “지식만 많이 쌓은 사람이 아니고 인문학적 소양과 철학적 통찰력을 가진 사람을 뽑으려고 한다”고 했다.


정보기술(IT) 업체 중 가장 각광받는 카카오의 이석우 대표는 지난달 11일 한 행사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그는 “화가이면서 의사, 수많은 발명품을 만든 과학자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술가이자 건축가인 미켈란젤로가 전형적 융합형 인재”라며 “르네상스 시대를 이끈 이들 융합형 인재야말로 첨단 기술의 시대에 필요한 인재”라고 했다. 최양희 신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도 지난달 19일 간담회에서 “기술·산업·경제발전에서 패러다임 변화의 원동력은 상상력인데 이는 역사·문화·예술 등에서 도출된다”고 말했다.


기업이나 정부가 ‘돈 되는 학문’만 강조하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변화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다행이다.


그러면 이를 듣는 학생들 입장은 어떨까. 정용진 부회장은 당시 연세대 강연에서 “스펙이 중요하다고 해서 있는 돈 없는 돈 털어 스펙을 쌓아놨는데 어느 날 갑자기 신세계 부회장이 나타나 인문학 얘기를 하니 짜증이 날 것”이라고 했다. 공감한다.


카카오 이석우 대표의 ‘르네상스적 인물론’에는 어떨까. 어떤 교수는 페이스북에 “신입사원을 뽑아 활용하는데, 무슨 다빈치 등을 기준으로 한단 말이냐”며 “그런 인물은 카카오사 신입사원 직을 선택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썼다. 동감이다.


왜 그럴까. 선후가 바뀌어서다. 학생들은 문사철(文史哲)을 공부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할 수가 없다. 시험을 잘 쳐야 소위 명문고,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다. 대학 들어가서는 학점 관리, 자격증 취득에 봉사 기록까지, 참 어렵게 살아내야 기껏 기업 서류전형을 통과한다.




세월호 침몰 때 찍힌 한 동영상이 이를 웅변한다. 배가 기울자 한 학생이 아직은 심각성을 모르는 듯 이렇게 말한다. “배가 기우네, 그런데 기울기는 어떻게 구하지?” 새뮤얼 T 콜리지의 ‘노수부의 노래’나 셰익스피어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라는 문장을 읊조리는 게 아니라 수학 문제 풀이를 떠올릴 뿐이다.


아이들을 서바이벌 정글로 몰아넣고는,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처럼 전장에서 괴테, 도스토예프스키를 읽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들을 인문학으로 끌고 갈 게 아니다. 인문학이 이들에게 흐르도록 해야 한다. 기왕 말을 꺼냈으면 인문학적 교양이 깊은 이들을 사원으로 집중 선발해야 한다. 인문학 ‘특기자’ 몇 명 뽑으며 생색을 내서는 안된다.



괴테를 읽고 있는 체 게바라



그럼, 인문학의 효용은 뭘까. 쓸모가 있기는 한가. 이탈리아 시인 페트라르카는 키케로의 <아르키아 변호문>을 1333년 발견해 필사했다. 그 안에 인문학을 변호하는 구절이 있다.


“젊음을 유지하고 노후를 즐기게 하며 번영을 강화하고 역경의 피난처가 되거나 위안을 제공한다. 시골에 가거나 여행하는 밤에 우리와 함께하거나, 거친 세상의 방해를 받지 않고 집에서와 같이 편안한 즐거움을 준다.”


이런 인문학을 취업 스펙으로 쌓으라고 하는 교언보다는, “젊은 사람들을 위해 일자리를 만들어줄 혁신적 방법을 찾으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일갈이 더 시원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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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우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