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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최고위급 직책에 있던 이가 들려준 이야기다.

“사람도 그렇지만, 국가나 정부도 커패시티(capacity·역량)에는 한도가 있어. 갑자기 커지지 않거든. 모든 문제를 한번에 다 풀 수 없어. 하고 싶은 일을 한꺼번에 벌여 놓았다가는 모두 망칠 수 있어. 그래서 정책 순위를 정하는 게 중요하지.”

김영삼 정부는 군 사조직 하나회 척결부터 금융실명제, 12·12 쿠데타, 광주 학살 단죄 등 역사 바로 세우기까지 한 정권에서 하나 하기도 힘든 일들을 해냈다. ‘첫 문민정부’라는 명분에, 민심의 절대적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정부도 초반부터 많은 일을 벌였다. 외환위기 극복이 최우선 과제였다. 햇볕정책, 의약분업, 교사 정년 단축, 국민건강보험 출범 등도 추진했다. 순탄치 않았다. 의약의 합리화와 약품 남용을 방지한다는 의약 분업 제도에는 양측 모두 반대했다. 시위가 계속됐고, 의원과 약국의 집단폐업으로 이어졌다. 정년을 65세에서 62세로 줄이려 하자 교사들이 반발했다. 그래도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극복을 내세워 정책을 밀어붙였고, 정착시켰다.

노무현 정부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포함해 언론관계법, 사립학교법, 과거사청산법 등 ‘4대 개혁입법’을 과제로 내세웠다. 보수진영은 사생결단의 기세로 달려들었다.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먹고사는 문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입법’을 힘으로 밀어붙여 정치혼란을 부채질하고 정국을 파행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국민과의 공감대, 야당과 합의 없이 밀어붙이겠다는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고 비난했다.

전선이 다변화하다 보니 힘을 집중하지 못했다. 152석 의원들은 제각기 손발을 놀렸다. 양김 정부에 비해 노무현 정부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 약했다.

개혁의 결실은 제대로 여물지 못했다.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냈어야 할’ 국가보안법의 칼날은 여전히 시퍼렇다. 언론관계법은 핵심 내용이 대부분 완화된 가운데 개정됐다. 사립학교법은 한나라당의 57일간 장외 투쟁 끝에 재개정됐다. 과거사 청산이 그나마 성과를 냈다.

방향이 문제가 아니었다. 커패시티를 따지지 않고 의욕만 앞세운 것이다. 머릿수만 믿고 밀어붙이니 허방에 빠지기 일쑤였다.

이명박 정부는 ‘ABR(Anything but Roh·노무현 정부가 한 것만 아니면 돼)’만 내세웠으니 별로 되짚어볼 것도 없다. 그저 ‘한반도 대운하’에만 골몰했다. 하다하다 안되니까 ‘4대강 사업’으로 신장개업해 기어이 땅을 파헤쳐 놓았다. ‘뉴라이트’ 터전을 시나브로 만들어준 게 보수 진영에게는 공이라면 공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손짓을 섞어가며 단호한 표정으로 발언하고 있다._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정부는 어떤가. 임기 1년차에는 인사 난맥으로 호시절을 흘려보냈다. 인턴 성희롱이 밝혀져 전 국민에게 영어 ‘그랩(grab·움켜쥐다)’의 의미를 알려준 당시 청와대 대변인, 아침마다 출근쇼를 하며 박 대통령 수첩에 들어 있는 인사들의 자질을 보여줬던 총리 지명자…. 오죽하면 후보자를 못 내고 이전 정부 각료를 그대로 썼을까.

2년차에는 ‘세월호 참사’ 때 무능과 무심을 한껏 드러내 보였다. ‘그 분의 7시간 미스터리’만 남기고. 3년차에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에 허둥대다 봄·여름을 보내더니, 찬바람 부니까 밀어붙이기 바람몰이를 하고 있다. 노동개혁, 공공부문 개혁, 교육개혁, 금융 시스템 개혁 등 좋은 말 다 갖다붙인 정책을 시행하겠단다. 그게 잘 안되니 야당에만 윽박지르고 있다.

예서 그치지 않고 ‘선친 한풀이’가 목적이라는 의구심을 부를 게 뻔한데도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단다. 시위 때 복면을 못하게 하겠다면서 국민을 ‘IS(이슬람국가)’에 빗댄다. 자신들이 공약했던 복지정책들을 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이 하겠다고 하자 막고 있다.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모두 해치울 태세다. 이쯤 되면 이 정부는 이전 정부에서 배운 게 없다는 게 명확해 보인다. 그 결과도 뻔하다. 그럴듯하지만 맛은 없는 꽃사과일 게. 그런 무능, 무지, 무사고를 고마워해야 하나.

한데 이 정부는 운도 좋다. 카운터파트인 야당 말이다. 강력하고 능력까지 있던 옛 한나라당과 달리, 지금 야당을 보면 제정신이 아닌 듯하다. 함께 손잡고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도 다음 싸움이 어려울 판인데, 도토리 키재기 하느라 여념이 없다. 요즘 일요일마다 ‘7일장 차력 쇼’를 보는 것 같다.

그러니 이 정부의 한심한 커패시티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것을 하나씩 해낼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최우규 산업부장


Posted by 최우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