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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렬하고 부박한 주장을 펴느니, 한 줄 보태거나 덜 것 없는 옥고(玉稿)를 옮겨 적는 게 낫겠다. 최근 접한 연설문이 꼭 그렇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9월24일 미국 의회에서 상·하원을 상대로 연설을 했다. 당시에는 난민, 전쟁 반대, 지구온난화 대책 등 현안과 관련된 언급이 주목받았다. 하지만 말씀의 고갱이는 ‘일반론’에 스며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극단’을 우려했다.

“우리는 모든 근본주의를 유념해야 합니다. 종교, 이데올로기, 혹은 경제체제 등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폭력과 싸우기 위해서는 정교한 균형이 필요합니다. 종교적 자유, 지적 자유, 개인적 자유를 보호하면서 말입니다. 특히 주의해야 할 유혹이 있습니다. 바로 모든 것을 선과 악, 말하자면 의인과 죄인으로 나누는 단순한 환원주의입니다. 아물지 않은 상처로 고통받는 수많은 형제, 자매들이 세상을 두 진영으로 나누는 모든 형태의 극단주의에 맞서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독재자와 살인자 자리를 차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의 증오와 폭력을 흉내내는 것입니다.”


 개탄은 바로 앞에 있는 의원들을 향했다.

“정치가 진정 인간을 위한다면, 경제와 화폐의 노예가 돼서는 안됩니다. 위대한 공동선을 성취하기 위해 모두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지엄한 요청의 표현이 바로 정치입니다. 재화, 이익, 사회적 삶을 정의롭고 평화롭게 함께 누리기 위해 사적인 이익을 희생하는 그런 공동체 말입니다.”


교황이 생각하는 경영은 무엇일까.

“천연자원의 정당한 사용, 기술의 합당한 적용, 기업 정신의 활용은 경제를 현대화하고 포용적이고 지속가능케 하는 핵심 요소들입니다. 부를 창출하고 세상을 발전시키는 경제활동은 고귀한 천직입니다. 특히 일자리 창출을 공동선에 기여하는 주요한 요소로 볼 때 경제활동은 해당 지역에서 가치있는 번영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미래도 걱정했다. ‘삼포·오포세대’라 칭해지는 한국 젊은이를 측은히 여기는 양.

“젊은이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요청합니다. 어떤 젊은이들은 길을 잃고, 목표도 없으며, 폭력, 약물남용 그리고 절망의 미로에 빠져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가정을 꾸리지 못하게 압박하는 문화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미래의 가능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인 4명을 내세워 이상을 설파했다.


“에이브러햄 링컨처럼 자유를 수호하고, 마틴 루터 킹이 하고자 했던 것처럼 모든 이들이 완전한 권리를 꿈꿀 수 있도록 하는 문화를 길러내는 국가는 위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로시 데이가 부단히 일했듯 억압받는 이들의 정의와 대의를 위해 분투할 때, 토머스 머튼이 묵상적 방법으로 실현했던 것처럼 대화와 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믿음의 과실을 내기 위해 노력하는 국가 또한 위대합니다.”


도로시 데이는 미국 사회당에 입당했고 사회주의 신문 기자로 일했다. 트로츠키를 만나 인터뷰하고 아동노동과 가난한 자들의 현실을 보도했다. ‘가톨릭 노동자운동’을 이끄는 등 평생 좌파사상과 반전활동으로 연방수사국(FBI)의 집중 감시를 받았다.


토머스 머튼은 컬럼비아 대학 시절 젊은 공산주의자들의 모임에 참여하고, 불교 승려와 교분을 맺었다. 26살 때 뉴욕 빈민가 할렘 흑인들에게 자신의 물건을 모두 나눠주고 가톨릭 수도사가 됐다. 평생 빈자들에 대한 헌신, 청빈, 종교 간의 대화를 추구해왔다.


데이와 머튼이란 이름을 들으니, 세속적이고 얄궂은 궁금증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전직 대통령을 “변형된 공산주의자”라고 하고, 제1야당 대표에게는 “공산주의자로 확신한다”고 하고, 5·16쿠데타를 “정신적으로 혁명”이라고 하는 이가 국내에 있다. 공안적 신념을 자랑스러워하는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다. 



그의 눈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떻게 비칠까. ‘급진’ 좌파 데이와 머튼을 칭송하고, 재화, 이익과 사회적 삶을 정의롭고 평화롭게 함께 누려야 한다고 주창했으니 말이다.


마침 교황이 답한 바 있다. 9월22일 한 기자가 “미국 보수 논평가들 중에는 교황을 공산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나는 교회의 사회적 교리를 넘어서는 어떤 말도 한 적이 없다고 확신한다”며 “나는 (가톨릭)교회를 따르고 그런 점에서 내가 틀렸다고 보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어 “아마도 내가 약간 왼쪽으로 치우쳤다는 인상을 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이 내게 사도신경을 외워보기를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우문현답이다.


Posted by 최우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