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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글은 정밀한 관찰과 사색, 논증과 반박 및 재검토를 통해 작성된 게 아니라 백일몽처럼 지어졌다. 따라서 이 글대로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도, 될 가능성도 모두 있다. 어느 쪽에 무게가 더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걸 알면 돗자리 깔겠다"고 하겠다. 대신 최근 박근혜 대통령과 탄핵심판 대리인들의 언행을 보면 이런 일이 절대로 없겠다고 확신은 못하겠다. 뭘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줘 왔기에.


#아들은 이따금 “아빠는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세요”라며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낸다. “아빠가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시각이 요구되는 직업을 가진 지가 20년이 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가족에게는 안 그러려고 하는데 자꾸 그러네”라고 해명 아닌 해명을 내놓았다. 이것도 일종의 직업병이다. 기자들 가운데 늘 즐거운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간혹 있는 그런 종류의 이들은 대체로 기자 생활을 오래하지 않고, 하더라도 마지막 직업을 기자로 마치지 않는 것 같다.


#과거 정치부에 온 지 얼마 안됐을 때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고문을 담당하는 마크맨이 됐다. ‘좌희정 우광재’는 나 같은 막내 기자를 붙들고도 “우리 노짱이 꼭 대통령 된다”고 자신만만해 했다. 그럴 때마다 “웃기고 있네. 허구헌날 어음 발행하지 말고 현찰을 좀 내놓아봐”라고 대꾸했다. 시비걸듯이 그랬다는 것은 아니고, 정치부 정당팀 막내와 당시 지지율 꼴지 그룹에 속한 주자의 스태프가 갖게 되는 일종의 공감 비슷한 것이 있어서, 좀 편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돈을 내놓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음은 ‘잘 될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 현찰은 지지율을 뜻하는 우리들만의 일종의 암호였다. 하지만 이런 대화가 오가고 1년 정도 뒤 노무현 후보는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써놓고 보니, 내가 비관론자이자 회의론자라는 점을 다시 강조하면서도 안희정 현 지사, 이광재 전 지사와 남 못지 않게 친하다는 것을 은연중에 자랑하고 있다. 비관·회의론 못지 않게 기자들에게 따라붙는 특질중 하나는 잘난 체인 것 같다. 이것도 직업병인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 선고일이 다가오고 있다. 이런 저런 분위기를 보면 ‘탄핵신청 인용’ 쪽에 무게가 더 실린 것 같다. 하지만 말 그대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다른 부서보다 정치부에 좀더 오래 몸담고 있었다는 이유로 주위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 같아”라는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난 여전히 회의론자이며 비관론자에 머문다. “글쎄 6대 4 정도(도대체 이 숫자를 내가 왜 생각해냈는지 과학적으로 설명 못하겠다. 다만 최근까지 여러 여론조사 상 수치를 뇌가 어렴풋하게 기억 밑바닥이 저장해놓았다가 이따금 꺼내는 것 같다)로 인용 쪽인 것 같지만, 어떻게 알겠어?” 그러다 오늘 서울대 조국 교수가 소셜 미디어 페이스북에 올린 글(https://www.facebook.com/kukcho?fref=nf&pnref=story)을 보고 비관론에 왕창 기름이 부어지는 듯해 소름이 돋았다.


경향신문 장도리 화백 그림경향신문 장도리 화백 그림


#조국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심판 선고일 직전(뭐 극적 효과를 노린다면 선고 전날이나 당일 오전 일찍이 될 수도) 전격 사퇴를 선언하고 청와대에서 짐을 싸서 서울 삼성동으로 가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그렇게 되면 ‘헌법재판관들의 의견은 (i) 탄핵 인용, (ii) 탄핵 기각, (iii) 사퇴했으므로 각하 등 세 가지 의견으로 갈릴 것이다. 그러면 탄핵 인용으로 결론나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헌법재판소/경향신문 자료사진헌법재판소/경향신문 자료사진


좀더 비관적으로 보자면 박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사퇴 선언을 하고, 탄핵심판 선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재판관들에게 대통령 사퇴서 정·부본이 전달돼 사퇴한 상황을 인지하게 된다면 탄핵 인용은 물건너 가게 될 것에 500원을 걸 수 있다. 헌재 재판관 8인 중 대체로 2명은 기각에 가깝다는 게 현재까지 추정이다. 그럼 그 2명은 계속 기각 입장을 취하거나, '사퇴했으므로 각하' 쪽에 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탄핵을 받아들이는게 옳다고 봤던 심판관중에서도 ‘이미 물러났으므로 인용해봐야 실익은 없고 혼란을 부추길 뿐’이라면서, 혹은 그것보다 더 이해가 가는 이유를 내세워 각하 쪽 손을 드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단 1명만 각하 쪽에 손을 들어 인용하자는 재판관 수가 5명 이하로 내려가면 탄핵은 인용되지 않는다.


#여기까지 법과 정치의 단계라면 그 다음은 정치의 광풍이 몰아치게 될 것이다. 조국 교수 말대로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이 진행되는 두 달동안 자신의 삼성동 자택에서 농성 정치를 시작할 것이다. 억울함을 호소하며 검찰 수사는 거부하며 버틸 것이다. 2000년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에 대해 언론대책 문건 등을 놓고 검찰이 체포하려고 했을 때에도 집에서 농성해 끝내 체포하지 못했다. 하물며 일국의 대통령을 지냈던 자가 집에서 농성을 하면 어떻게 될까. 봄은 봄이되, 봄이 아닌 1980년 봄이 37년만에 재연될 것이다. 더 혹독하고 심하게.


#자, 이제 박근혜 ‘전직’ 대통령은 “잡아갈테면 잡아가라. (소위)태극기 시민이 촛불시민보다 많다. 이게 민주검찰이냐”고 외칠 것이다. 이에 감읍한 어떤 당의 당원과 국회의원은 물론 친박 단체, 어버이연합, 일베 같은 극우단체, 시청광장을 메운 반탄핵 시위단체들이 모여들어 말 그대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에서 농성 국면에 들어갈 것이다. 이들은 지금처럼 태극기와 성조기를 앞세우고 총궐기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황교안 대통령 권한 대행 겸 총리나 유승민·남경필·홍준표 같은 여권 주자가 대통령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은, 글쎄 이 점에서도 극히 비관적이다. 대선은 야권 주자 누군가가 이길 것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경향신문 자료사진


다만 선거 과정에서 보수(이런 이들을 보수라고 하기도 뭐하다. 그냥 '친박'이라고 하는게 맞겠다) 층은 ‘대통령 불구속기소와 궐석재판, 초스피드 진행에 따른 확정판결 뒤 차기 대통령의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면 야권 내에서 이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을 할 것이고 대선 최대 쟁점으로 떠올라, 정의나 개혁 등 의제를 모조리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누군가 대통령에 선출돼 바로 취임하더라도 박근혜 세력은 여전히 농성을 벌이면서 국정을 발목잡을 것이고, 그 누가 대권을 쥐어도 국회 재적 3분의 1에 불과한 여당은 야당들 눈치보느라 개혁 조치들은 뒤로 줄줄이 밀리고. 


#여기까지가 조국 교수 글에 의해 촉발된 내 비관론과 상상력이 다하는 지점이다. 웹툰 작가 이말년식이라면 ‘그렇게 해서 갈등이 고조되고 지각이 변동하다 우주인 침공을 맞아 지구는 멸망한다’는 식으로 끝나겠지만.


웹툰작가 이말년 작품웹툰작가 이말년 작품


 이런 식으로라도 비관론과 회의론을 털어놓았으니, 오늘 오후부터는 조금 더 낙관적이고 즐거운 상상을 해야겠다. 써놓고 보니 이건 ‘의식의 흐름’도 아니고, ‘무의식과 개꿈의 합주’쯤 되는 듯하다.


Posted by 최우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