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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란하면서도 강렬한 키보드 연주가 도입부를 이끌고, 곧이어 깊고 거친 저음이 이어집니다.


 “You know that it would be untrue
 You know that I would be a liar
 If I was to say to you
 Girl, we couldn‘t get much higher

 Come on baby, light my fire
 Come on baby, light my fire
 Try to set the night on fire…”

 

 1960, 70년대를 풍미한 사이키델릭 록 밴드 ‘도어스’의 히트곡 ‘라이트 마이 파이어’ 도입부입니다.

 

 

the Doors

록 밴드는 대체로 일렉트릭 기타, 베이스 기타, 드럼을 기본으로 하고, 키보드를 두는 밴드와 안두는 밴드로 나뉩니다. 하지만 이 도어스는 독특하게 베이스 기타보다는 키보드를 도입했습니다. 키보디스트 레이 만자렉의 역량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펜더 로즈’ 전자 오르간으로 베이스 부분을 연주했습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는 전자 오르건 ‘복스 콘티넨탈’의 몽롱한 음으로 리드 음을 짚어갑니다.

 

 그 레이 만자렉이 20일(현지시간) 독일 로젠하임의 한 병원에서 지병인 담도암으로 별세했습니다. 향년 74세.

 

 


 도어스 기타리스트 로비 크리거는 이날 성명을 통해 “나의 친구이자 훌륭한 밴드 동료인 만자렉이 세상을 떠나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만자렉은 내 삶의 가장 소중한 부분이었다”며 “지난 시간 만자렉과 함께 도어스 곡을 연주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고 말했답니다.

 

20일 숨진 록밴드 ‘도어스’의 키보디스트 레이 만자렉이 2012년 8월 미국 로스 앤젤레스에서 열린 선셋 스트립 뮤직 페스티벌에서 연주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만자렉은 폴란드 이민자의 아들로 1939년 2월 미 시카고에서 태어났습니다. 10대에는 초기 로큰롤 형식인 ‘부기우기’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1962년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해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법학과를 들어갔다가 자퇴했고, 이 학교 영화과에 들어갔다. 여기서 보컬 짐 모리슨을 만났고 드러머 존 덴즈모어, 기타리스트 크리거를 모아 도어스를 구성했습니다.

 

 1967년 첫 음반 <더 도어스>에서는 ‘라이트 마이 파이어’가 인기를 모았죠. 이들은 블루스, 클래시컬, 컨트리, 팝을 섞은 독특한 음악으로 승부했습니다. ‘라이더스 온 더 스톰’, ‘디 엔드’ ‘로드하우스 블루스’ ‘L.A.워먼’ 등을 히트하며 승승장구합니다.


 이들 멤버의 실력도 빼어납니다. 만자렉은 몽환적이면서도 공격적 리프를 이용합니다. 크리거의 슬라이드 기타도 인정받았습니다. 존 덴스모어의 강렬한 드럼 연주, 그리고 무엇보다 모리슨의 거칠고 자유분방한 목소리, 카리스마는 당대 최고의 케미스트리를 이루죠. 시에 심취했던 모리슨은 가사도 시적으로 지었습니다.

 

 모리슨의 기행도 늘 주목받습니다. 술에 취해 무대에 오르기도 하고, 관중에게 욕설을 합니다. 1969년 3월1일 마이애미의 디너 키 회관 공연에서 모리슨은 공연 도중 바지를 벗었습니다. 이후 ‘공개적으로 자신의 은밀한 부위를 내보이고 음란하고 외설적인 행위’로 고소당했습니다. 실제 유죄를 선고받습니다.

 

짐 모리슨

 

 약물과 알코올에 찌들었던 짐 모리슨은 1971년 7월3일 27세의 나이로 프랑스 파리 자신의 아파트 욕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약물 남용이었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추측입니다. 메이저 신에서 활동한 기간은 불과 5년이었지만 그가 남긴 이미지는 굉장히 강렬합니다. 쫙 달라붙는 가죽 바지, 며칠이나 감지 않은 것 같은 머리, 세상을 조롱하고 반항하는 듯은 눈빛 등.

 

 도어스는 모리슨 사후 음반 2개를 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멤버들은 만자렉을 보컬로 내세워 2개의 음반을 내지만 팬들은 외면했고, 밴드는 점차 와해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만자렉은 1973년 솔로 음반 <더 골든 스캐랩>을 내고 순회공연을 했습니다다. 1974년 <더 훌 팅 스타티드 위드 로큰롤 나우 잇츠 아웃 오브 콘트럴>을 냈구요. 이후 자신의 밴드인 ‘레이 만자렉스 나이트 시티’를 구성해 음반 2장을 냈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후 펑크 물결이 몰려들어왔습니다.  펑크 밴드가 ‘엑스’가 만자렉에게 함께 일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수차례 함께 공연을 했고, 음반 <로스 앤젤레스>를 냈습니다. 만자렉이 프로듀싱한 이 음반은 펑크의 주요 음반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1983년 오페라를 콘텝트로 만든 음반 <카르미나 부라나>는 실패했구요.  그는 비트 세대 시인 마이클 매클루어 시에 자신의 키보드 연주를 얹은 음반 <러브 라이언>을 1993년 내 호평을 받았습니다.  2000년대 들어 그는 영국 가수이며 배우인 대릴 리드와 함께 음반을 냈습니다.

 

 그의 연주는 여전했지만, 음악의 완성도나 인기는 도어스 때만 하지 못했습니다. 말년에 그는 기타리스트 크리거, 그리고 아인 애스트베리 등과 밴들르 구성해 ‘21세기 도어스’ 순회공연을 했습니다. 이에 도어스 드러머 존 덴스모어가 무단으로 밴드이름을 도용했다고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Posted by 최우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