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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가운데 “나라를 엉망으로 다스리고 반대파랑 척진 뒤 탈당해 정권을 야당에 넘겨줘야지”라고 마음먹는 이가 있을까. 그럴 리가 없다. 모두 “국리민복을 이루고 정권을 재창출한 뒤 역사의 평가를 받겠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결과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았다. 1987년 개헌으로 5년 단임제가 된 뒤 대통령들은 대부분 궁지에 몰려 탈당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1992년 9월18일 여당 민주자유당에서 전격 탈당했다. 노 대통령은 박철언 의원을 내심 후계자로 점찍고 있었다. 김영삼 대선 후보는 강력 반발했다. 노 대통령은 YS 측과 상의도 하지 않고 탈당을 발표했다. 김영삼 대통령도 이회창 대선 후보와 갈등을 겪다가 1997년 11월7일 일방적으로 신한국당에서 나왔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2년 5월6일 새천년민주당을 떠났다. ‘최규선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 등에다 세 아들 비리 의혹이 고개를 들며 당에 부담이 될 때였다. 노무현 대통령도 열린우리당 요구에 2007년 2월28일 당적을 정리했다.


이명박 대통령만이 탈당하지 않고 임기를 마쳤다. 2011년 말 한나라당 내에서 대통령 탈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졌다. 이를 거부한 이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었다. 그는 2012년 1월19일 “차별화를 위한 차별화를 할 생각은 없다”며 당 안팎의 이 대통령 탈당 요구를 일축했다. 그의 이 말 한마디로 논란이 정리됐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 차례다. 그는 새누리당을 탈당할까. 한다면, 언제 할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7월26일 한국전 정전 60주년 행사 참석 등을 위해 방한한 존 키 뉴질랜드 총리와 정상회담에 앞서 현관에서 존 키 뉴질랜드 총리를 기다리며 시계를 보고 있다. _청와대사진기자단


탈당을 향한 임계점으로 다가가고 있다. 우선 지지층이 약화하고 있다. 박 대통령을 지탱해온 주요 축은 셋이다. 영남, 보수, 중·노년층이다. 최근 셋 모두 붕괴, 적어도 균열상을 보이고 있다. 4·13 총선 결과가 그렇다.


현 상황도 좋지 않다. 영남 지역에선 신공항, 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 민심을 잃고 있다. 보수도 등을 돌리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번주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청와대 우병우 민정수석 의혹과 4·13 총선 당시 친박·청와대의 공천개입 문제를 연일 대서특필하는 언론은 보수신문과 그 계열사인 종합편성채널이다.


국정운영 전반에서도 플러스 요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경제는 쪼그라들고, 양극화는 심화하고 있다. 청년실업, 보육문제 등 공약(公約)은 모두 공약(空約)이 됐다. 이 정부의 장기라던 ‘외교’는 파탄 직전이다. “통일은 대박”이라고 했지만, 이젠 누구도 이 정부의 통일 의지를 믿지 않는 지경이다.


박 대통령의 손발이 돼준 주요 축은 여당 새누리당의 ‘친박’이다. 이들은 4·13 총선에서 실패한 세력으로 낙인찍혔다. 본인들만 이를 부정하면서 고토 회복을 위해 분투 중이다. 하지만 실기했다. 맏형인 서청원 의원의 당권 장악을 마지막 기회라고 여겼던 듯하지만, 물 건너갔다. 박 대통령과 수시로 통화한다던 최경환·윤상현 의원도 총선 공천개입 실상이 드러났다. 구심력이 약화했으니, 앞으로 원심력이 더 커질 것이다.


박 대통령이 이 대통령 탈당을 막아준 것처럼 차기 여권 후보가 박 대통령을 지켜줄까. 박 대통령은 2012년 초 가장 강력한 여권 주자였다. 그런 자신감에다 ‘배신’을 가장 무거운 죄악으로 여기는 특유의 기질이 이 대통령 탈당 반대라는 선택에 이르게 한 것이다. 하지만 비박 후보라면 그럴 일이 없을 것이다. 차별화를 위해서라도 먼저 탈당을 요구할 수 있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처럼 임기 말 인기를 누린다면 모를까, 지지율이 떨어진 대통령을 떠받들 이유가 있을까.


이를 잘 알기 때문에 친박은 자기쪽 사람을 후보로 세우려고 한다. 이를테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영입해 대선 후보로 만들고 실제 권력은 자신들이 휘두른다는 복안일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측근 세력이 ‘노골적으로’ 민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한 적은 없다. 그게 우리 정치의 생리다. 


박 대통령에게는 기회가 있다. 역대 대통령들은 대선이 치러지는 해에 탈당해야 했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에게는 반년~1년 시간이 남아 있다. 그동안 친박을 정리하고, 내각을 정비하며, 국민과 소통하면서 국정에 전념하는 것이다.


초심으로 돌아가면 된다. 자신의 대선 출마 선언문과 후보직 수락 연설문, 대통령 취임사를 곱씹어 보면 길을 찾을 수 있다. “국민 한 분 한 분의 꿈이 이루어지는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각오로 이 자리에 섰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모두가 함께 가는 국민 대통합의 길을 가겠다” “국민 뜻에 부응하여 경제부흥과 국민행복, 문화융성을 이뤄낼 것”이라던 약속을 지키면 된다. 째깍거리는 탈당 시계를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Posted by 최우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