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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들


지난 7일 오후 5시 넘어 청와대 춘추관에서 작은 소동이 일었다.

“김정일이야, 김일성이야.” “아, 죄송합니다. 김일성이 맞습니다.”

기자들과 각자의 회사 사이에 이런 통화가 오갔다. 청와대 김효재 정무수석(59) 편지가 발단이 됐다.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


김 수석은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서신을 돌렸다. 국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빨리 비준해달라고 요청했다. 김 수석은 “FTA가 반미 선동의 도구가 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일성 북한 주석을 거명했다. 내용은 이렇다.

“우리끼리를 외치며 철저하게 문을 걸어 닫은 김일성의 선택과 수출만이 살길이라며 5대양 6대주로 젊은이들을 내보내고 세계의 모든 나라를 향해 문을 활짝 연 박정희 대통령의 선택이 분단 반세기를 갓 넘긴 오늘날 남과 북의 차이를 만들어 낸 결정적인 요인입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기사 마감에 임박해 나온 이 소식을 처리하느라 허둥댔다. 그러면서 실수로 ‘김일성’과 ‘김정일’을 섞어 쓴 것이다. 기사 첫 줄에는 김일성, 두 번째 줄에는 김정일 하는 식이다.

경험칙상 마감에 임박해 정신없이 글을 쓰면, 기억의 가장 앞 선에 서 있는 단어들을 끄집어내게 된다. 자주 쓰던 표현을 우선 빼서 쓰기 마련이다. 기자들의 기억 속에 북한 지도체제 정점에는 1994년 7월8일 사망한 김일성 주석이 아니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있는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을 넘어 김정은의 3세대 세습이 운위되는 판이다. 그만큼 ‘김일성의 선택’은 먼 시절 이야기다.

기실 김 수석의 편지는 한나라당 쇄신파의 7일 편지에 대응한 격이다. 여당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했다. 쇄신파는 편지에서 이명박 대통령 대국민 사과, 성장 중심의 정책기조 수정, 비민주적 통치행위 개혁 등을 요구했다.

이에 김 수석은 “너나 잘하라”고 답한 것이다. 그가 청와대 수석실에 혼자 앉아서 썼을까. 그럴 리가. 정무수석이 대통령 의중도 묻지 않고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낼 리가. 그랬다면 비서로서 월권이다.

김 수석 편지는 색깔론의 고갱이다. 17년 전 사망해서 언뜻 머릿속에 떠오르지도 않는 김일성 주석을 끌어들였다. 그 반대편에는 32년 전 시살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세웠다. ‘김일성을 따르겠느냐, 박정희를 따르겠느냐’고 물었다. 여당의 전통적 지지세력인 영남과 노년층에게 소구했다. 단순하지만 위험한 극단론이다.

3년 전인 2008년 촛불집회 문제도 재론했다. 한 보수신문이 ‘FTA 괴담’이라고 쓴 1, 2면 기사 내용을 그대로 편지에 인용했다. 그러면서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주장을 떠올리게 하는 말들”이라고 했다. “2008년 광우병 사태에서 거짓이 어떻게 진실을 압도하는지 똑똑히 목격했다”고도 썼다.

그는 정무수석이다. 야당과 대통령 사이를 잇는 게 직무다. 그가 야당을 ‘반미 선동, 김일성 추종, 괴담 배포’ 세력으로 치부했다. 대야 업무를 포기한 것이다.

여당으로부터도 환영은커녕 반발만 샀다. 황우여 원내대표는 “언행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입조심하라’는 것이다. 휘발성이 충분한 뉴스임에도 몇몇 보수신문은 안쪽에 자그맣게 다뤘다. 그만큼 편지가 민심에서 떨어졌다고 본 듯하다.

최근 한나라당에서는 쇄신의 방향과 강도를 놓고 다툼이 한창이다. 다만 의견이 합치되는 부분이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타난 민심을 우려하고 있다.

관건은 ‘2040’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절대 다수이자 강자인 이들이 선거에서 보여준 폭발력에 놀라고 있다. 여야의 단단한 지지층을 빼면, 2040에게 내년 총선·대선 향배가 달려 있다.
 
한나라당은 그들을 배우고, 견인하기 위해 부심하던 터다. 하지만 청와대는 3년 전 ‘촛불’과 17년 전 ‘김일성’을 넘어 32년 전 ‘박정희’를 뒤돌아보고 있다. 그 간극은 ‘스마트폰’과 ‘흑백 TV’만큼이나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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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우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