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칼럼들

‘피에타(Pieta)’는 이탈리아 말로 비탄(悲歎)이란 뜻이다. 또 기독교 예술 주제 중 하나다.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 시신을 안고 비통해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14세기 독일에서 처음 나타나 많은 예술가들을 매료시켰다. 비장미, 성(聖)과 속(俗)의 일치, 극한의 모성 등이 현현하기 때문이다.


가장 유명한 피에타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에 보관돼 있는 조각상일 것이다. 르네상스 거장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을 깎아 만들었다. 성모 마리아의 어찌보면 담담해 보이는 얼굴은 아들 잃은 어미의 참척(慘慽)을 역설(逆說)하고 있다. 그는 자식을 가슴에 묻고 이미 숨진 것이다.



그런 ‘피에타’를 실제 본 적이 있다. 사회부 사건기자 때이던 1995년 6월29일, 출입처인 서울 동부경찰서에서 취재를 마치고 귀사하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긴급 뉴스가 나왔다. 서울 서초동 삼풍백화점에서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처음엔 화재라고 했다가 가스폭발, 테러로 보이는 폭발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차를 돌려 현장으로 향했다. 퇴근시간대여서 구급차, 소방차에 보도차량까지 몰려 길이 막혔다.


먼지 자욱한 길거리에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그 풍경에서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건물 벽면이던 곳이 텅 비어 있고, 보이지 않아야 하는 건너편 아파트가 보였다. 2개 동 건물 중 B동만 남고 A동은 붕괴해 돌무더기가 돼 있었다.


B동 지하로 내려갔다. 식료품 매장이었다. 고개를 들어 천장 쪽을 보니 A동과 붙어 있던 부분은 무너져 있었다. 


콘크리트 벽은 깨졌고 철근만 고생대 물고기 뼈처럼 흉물스럽게 삐져나와 있었다. 철근 사이에서 무언가 눈길을 끌었다. 다가갔다.


유모차였다. 그 위를 한 여인이 몸으로 덮고 있었다. 아이를 콘크리트 더미로부터 보호하려는 노력에서였을 것이다.


유모차는 찌그러져 있었고, 여인은 미동조차 없었다. 숨진 그의 얼굴을 머리카락이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느껴졌다. 내 폐에 남아있던 공기를 ‘끄억끄억’하는 울음으로 몰아내던 비탄이, 악착같은 모성이, 어미의 가슴 같은 따뜻함이.


그날부터 꼬박 3주를 사고 현장에서 먹고 자며 취재했다. 502명이 숨지고, 6명이 실종됐다. 누가 구속되고, 어떤 제도가 만들어지고, 뭐를 점검하고 등등 당국 발표가 이어졌다. 변혁까지는 아니더라도 개선은 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 믿고 싶었는지 모른다.


수년간 그 여인과 유모차는 화인(火印)처럼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피에타’는 현실에서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미켈란젤로 작품만으로 족했다. 세월은 그 아픔의 예각을 갈아 둔각으로 만들었다. 19년이 지나갔고, 아들과 딸을 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이 어떤 표현인지 체감하게 됐다.


그러다 4월16일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하는 걸 TV서 봤다.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 등 470여명이 타고 있었다.


팽목항, 진도의 실내체육관, 단원고와 병원들에 수백의 피에타가 현신했다. 숨진 아이를 보던 아버지는 “우리 애가 추운데 양말까지 젖었다. 양말 벗겨달라”고 부탁했다. 어머니는 “시신을 건질 때마다 게시판에 인상착의를 아디다스, 나이키, 폴로 등 다들 상표로 하더라. 내가 돈이 없어 우리 애는 그런 걸 못 사줬다. 그래서 우리 애를 못 찾을까 걱정돼 나와 있다”고 했다.


뉴스를 보며 가슴 치는 이들 모두 피에타를 보고 있다. 스스로 피에타 인물이 됐다. 옛 화인도 다시 곪았다.

“얘들아, 미안하다”고 통감하는 모든 이들과 나 자신에게 모차르트 <레퀴엠 D단조(K.626)> ‘라크리모사(Lacrimosa·눈물의 날에)’를 바친다.



'칼럼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침을 열며]미생지신(尾生之信)  (2) 2014.10.06
부자  (0) 2014.05.30
피에타  (0) 2014.04.25
좋은 표현 없나요  (0) 2014.03.20
센스 앤드 센서빌리티  (0) 2014.02.13
법과 원칙  (0) 2014.01.03
Posted by 최우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