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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3년 그래미 어워드는 말 그대로 마이클 잭슨이 휩쓸었습니다. <스릴러> 음반과 그 수록곡으로 7개 부문을 타냈습니다. 올해의 앨범, 올해의 레코드(노래), 최고 남성 팝 보컬상, 최고 남성 록(ㅠ.ㅠ) 보컬상, 최고 남성 리듬 앤 블루스 보컬 상, 최고 리듬 앤 블루스 곡, 올해의 프로듀서 등 7개 부문입니다. 이런 저런 부가적인 상이 아니라 핵심적 상을 타낸 것입니다. 이것도 모자랐는지 영화 <E.T.>로 ‘최고 어린이 레코딩’ 상까지 탔습니다.

 

 그 때 마이클 잭슨과 함께 제 이목을 끌은 이들은 현재 스팅이 속해 있던 밴드 ‘폴리스’입니다. 당시 <싱크로노시티> 음반를 내 ‘에브리 브레스 유 테이크’로 인기 몰이를 할 때였습니다.

 

 이들 말고 눈에 띈 이가 허비 행콕이었습니다. 당시 재즈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그가 누군지도 몰랐습니다. 다만 키보드 연주를 하는데 그의 위 허공에 허리와 다리만 있는 로봇들이 매달려 그야말로 ‘로보트 춤(브레이크 댄스)’을 추었습니다. 그의 음반 <퓨쳐 쇼크> 수록곡 ‘록 잇’ 연주였습니다. 지금 들어보면 성기지만,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 음악이었죠.

 

 하지만 그는 금세 기억에서 잊혀졌었습니다. 록에 경도돼 있던 제 귀에 그는 좀 ‘특이한’ 음악을 하는 흑인 아티스트였습니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간 재즈에 맛을 들이던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전반 곳곳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허비 행콕은 1960년대 포스트 밥 이후 퓨전 재즈와 리듬 앤 블루스, 전자음악까지 넘나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거장 재즈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이 한국을 찾습니다. 올해 73세인 그는 11월8일 서울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내한공연을 합니다. 이번 공연에는 그의 음악 인생의 동반자들인 제임스 지너스(베이스), 리오넬 로에케(기타), 비니 콜라이유타(드럼)가 함께 옵니다.

 

 허비 행콕은 재즈에서 대체로 마일즈 데이비스와 함께 거론돼 왔습니다. 스스로가 뛰어난 트럼펫 주자이면서 비밥 이후 가장 실험적인 아티스트였던 마일즈 데이비스가 그를 영입했고, 함께 새로운 음악의 길을 개척했기 때문입니다.

 

 1940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허비 행콕은 7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11살 때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 신동이란 찬사를 받았습니다.


   쿨, 모달 재즈 거장 빌 에반스와 오스카 패터슨 등으로부터 주로 영향을 받아 고등학교 때부터 재즈 연주를 시작했죠. 그는 전자공학과 과학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며 그린넬 대학에서 음악과 전자공학을 같이 공부했습니다. 그가 전자 악기와 음악에 관심을 보이게 된 것도 예서 기원했을까요?

 

 그는 대학 졸업 후 고향 시카고에서 연주 활동을 하던 중 트럼페터 도날드 버드의 제의를 받고 뉴욕으로 갔습니다. 1963년 당대 가장 주목받던 재즈 아티스트 마일즈 데이비스가 그를 영입했고, <세븐 스텝스 투 헤븐> 음반이 나왔습니다. 그는 이 밴드에 5년간 머물렀습니다.

 

 그는 유명 재즈 레이블 ‘블루 노트’에서 음반을 계속 내면서 ‘메이든 보이지’, ‘캔탈로프 아일랜드’, ‘굿바이 투 차일드후드’, ‘스피크 라이크 어 차일드’ 등을 냈습니다.

 

 마일즈 데이비스는 그의 멘토이며 고용주였지만, 그를 남달리 칭찬했습니다. 자서전을 통해 “나는 아직도 허비 행콕의 뒤를 이을 아티스트를 본 적이 없다”고 극찬했습니다.

 

 하지만 둘의 궤적은 달랐습니다. 마일즈 데이비스는 혁신, 진보에 매진하는 ‘직진’ 파였습니다. 그는 포스트 밥 시대를 거쳐, 퓨전 재즈, 재즈 록 등 늘 새로운 사조를 이끌었죠.

 

 반면 허비 행콕은 전통과 혁신을 오가는 ‘횡보’ 파였던 것 같습니다. 전자와 어쿠스틱 재즈, 리듬앤드 블루스를 넘나들며 20세기에서 21세기를 거쳤습니다. 피아노는 ‘전통’ 노선을 따르지만, 블루스, 펑크, 가스펠부터 현대 클래시컬 음악에까지 손을 뻗쳤습니다. 그만큼 대중적이면서도 (골수 재즈 팬에게는)논쟁적 음악을 해왔던 것입니다.

 

 하지마 그는 스타인웨이&선스 피아노에만 매달리지 않았습니다. 일찍감치 로즈 전자 피아노, 신시사이저, 컴퓨터로 전자 음악을 섭렵했답니다. 그만큼 음악도 다양한 변종을 낳았습니다. 팝 성향의 음악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1960년대 포스트 팝 시대의 한 주자로도 자리 매김을 했습니다.

 

 그는 1968년 마일즈 데이비스 밴드를 떠나면서 펑크 음반 <팻 알버트 로턴다>를 내고 69년 6인조 재즈 록 밴드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펑크 밴드를 만들어 <헤드 헌터스>를 내면서 ‘카멜레온’이라는 곡을 히트시켰구요.

 

 1970년대 디스코 물결에서도 그는 재즈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통으로 돌아갔습니다. 1976년 미 뉴욕에서 열린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에서 마일즈 데이비스 퀸텟을 재결성했습니다. 마일즈와 핸콕, 론 카터, 토니 윌리엄스, 웨인 쇼터, 프레디 허바드 등 이름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전설들이 자리를 함께 했죠. 이 밴드로 투어를 했지만, 일과성 모임이었습니다.

 

 1980~90년대 그는 웨인 쇼터 등과 신 전통주의 복고 풍 흐름을 탔습니다. 그러면서 1980년대 그는 다시 한번 변신해 팬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1983년 음반 <퓨처 쇼크>에서는 전자 음악과 레코드 스크래치를 혼합하는 등 인더스트리얼 계열 음악의 원형을 선보였던 것입니다.

 

 그 뒤 아프리칸 리듬을 섞은 음악을 내기도 했고, 각종 페스티벌에서 브랜포드, 윈튼 마살리스 형제, 조지 벤슨, 마이클 브레커 등과 협연했습니다. 실험 정신은 계속돼 2001년 <퓨쳐 투 퓨쳐> 음반을 냈고, 그러면서도 재즈에 천착해 2005년 <파서빌리티스>도 냈죠.

 

 10년 음반 <디 이매진 프로젝트>는 7개 국가에서 녹음됐습니다. 협연자만 해도 제프 벡, 데이브 매튜스, 나오쉬카 샹카, 더 치프테인스, 실, 핑크, 데릭 트럭스, 샤카 칸, 웨인 쇼터, 제임스 모리슨, 존 레전드 등입니다. 여기도 거의 올스타 급이죠.

 

 2008년 제50회 그래미 어워드에서는 ‘올해의 음반상’, 2011년 제53회에서는 최우수 팝 보컬 콜라보레이션 부문 등 트로피를 14개나 거머 쥐었답니다.

 

 이번 한국에 오는 멤버들도 하나 같이 일류 세션맨들입니다. 베이스 주자인 제임스 지너스는 또다른 피아노 거장 칙 코리아의 세션입니다. 기타리스트 리오넬 로오케는 아프리카 베넹 출신입니다. 버클리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찰리 헤이든, 잭 드조네트, 케니 바 등 재즈 명인들과의 활동했습니다.

 

베이스 주자 제임스 지너스기타 주자 리오넬 로오케

 

 

 드럼 주자 비니 콜라이유타는 ‘프랭크 자파 밴드’ 오디션을 통해 데뷔했습니다. 칙 코리아, 퀸시 존스 등 재즈 아티스트는 물론 조니 미첼, 제프 백, 스팅, 바브라 스트라이잰드 등 뮤지션들과도 호흡을 맞췄습니다. 협연 아티스트 보면 그야말로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4월 한국 재즈 피아니스트 곽윤찬이 냈던 퓨전 재즈 <49> 음반에도 참여한 바 있죠.

 

드럼 주자 비니 콜라이유타

 허비 행콕은 2011년 5월 서울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에서 내한 공연을 열기도 했습니다. 이번 공연에는 1년에 100대 수공업으로만 제작된다는 이태리 명가 파치올리 피아노가 공수된다고 합니다.

Posted by 최우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