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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꽤나 정치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영화적 가치와 완성도보다는 정치·경제·사회적 상황과 미국적 가치에 더 큰 점수를 준다"는 것입니다. 영화보다 정치에 더 평점을 주겠느냐 싶습니다. 다만 이런 분석, 혹은 비판은 오래 지속되고 있습니다.

 

 아카데미는 국제 영화제가 아닙니다. 소위 '3대 국제영화제'라는 게 있는 데 칸,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입니다. 각각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이 개최지이지요. 이들 영화제는 전 세계의 영화를 대상으로 시상을 합니다. 이 때문에 외국어 영화 부문이 없습니다. 반면 아카데미에는 외국어(영어가 아닌) 부문 상이 있습니다.

 

 또 아카데미는 유럽 영화제보다 상업성에 좀더 무게를 두는 것 같습니다. 수상작들을 보면 상당히 다르지요.

 

 

 

 

 그럼 왜 아카데미 상이 왜 정치적이라는 시선을 받을까요. 알고보면 그럴만도 합니다. 이 아카데미상 탄생 자체가 정치적이었습니다. 1927년 초 MGM의 사장인 루이스 메이어는 보수 논객들과 만나 ‘아카데미 오브 모션 픽처 아츠 앤드 사이언시스’라는 어머어마한 이름의 할리우드 엘리트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이 조직의 목표는 노조의 설립을 저지하고, 그들의 활동을 조정하거나 중재하는 데 있었답니다. 이 아카데미와 시상식은 초반부터 정치적이었고, 정치의 영향을 탔습니다.


 24일(현지시각) 미국 로스 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역대 어느 때보다 정치적이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그간 LA 코닥극장에서 열렸는데, 필름으로 유명한 코닥이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망하면서 극장도 넘어갔습니다. 이름도 코닥에서 돌비로 바뀌었습니다.


 이번 시상식 앞뒤를 잘 살펴보면 그런 해석이 가능합니다. 시사회, 홍보, 후보작 선정부터 시상식에까지 정치적 요소가 많이 끼어들었으며, 미 워싱턴 정가와 밀접하게 행사가 진행됐습니다.

 

 후보작들이 선정되기까지 소개 및 평가 과정도 어느 때보다 정치적이었습니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이날자 기사에서 이를 조목조목 짚었습니다. 1980년 이란 테헤란의 미 대사관 인질 구출 작전을 다룬 <아르고>는 지난해 10월 미 워싱턴 시사회를 극장이 아니라 캐나다 ‘대사관’에서 열었습니다. 몇주 뒤 스티븐 스필버그와 대니얼 데이-루이스는 미국 양당을 대상으로 한 <링컨> 시사회에 얼굴을 비쳤습니다. 존 매케인, 다이앤 페인스타인, 칼 레빈 등 미 상원의원들이 <제로 다크 서티>의 고문 장면을 비판하는 서한을 제작사인 소니픽쳐스에 보낸 직후였습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서 <링컨>을 직접 소개했습니다.


 가족의 해체에 따른 정신분열증, 강박증 등을 다룬 <실버 라이닝스 플레이북> 감독인 데이비드 러셀과 주연배우 브래들리 쿠퍼는 조 바이든 부통령과 만나 정신건강 정책을 논의했다고 합니다. <비스트 오브 더 서던 와일드>로 최연소 여우주연상 후보로 오른 9살짜리 쿠벤자네 왈리스는 백악관에 들러 영부인 미셀 오바마를 만났습니다. 예쁜 소녀와 영부인 만남 자체만으로도 이슈가 됐습니다. 심지어 존 케리 신임 국무장관은 자신의 트위터에 <아르고>의 선전을 빌었습니다.


 이처럼 ‘정·영 유착’은 서로 필요성 때문에 벌어집니다. 감독이나 배우, 제작자 모두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는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으려면 미 정계 거물과 함께 미디어에 등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권 역시 강력한 전파력과 설득력을 가진 영화와 협력할 필요를 느끼고 있습니다. 영화가 ‘대박’ 났을 때 자신의 이름이 함께 거론되는만큼 손해볼 이유가 없죠.


 최고 권위인 ‘작품상’ 선정과 시상도 정치적이기는 마찬가지라고 영국 일간 가디언의 일요판 ‘옵저버’가 짚었습니다. 이번 작품상 후보로는 9작품이 선정됐습니다. 예년의 2배 정도입니다. 그 가운데 <비스트>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등은 예년에도 후보가 됐을법한 작품입니다.

85회 아카데미 시상상에서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 출연해 여우주연상을 받은 제니퍼 로렌스.

 

 

 하지만 나머지 5작품에는 작품성도 있지만, 정치적 요소가 가해졌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아르고> <제로 다크 서티>는 최근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국장 성추문과 무인항공기 민간인 오폭 등 추문에 시달리던 미 중앙정보국(CIA)의 영웅상과 국가적 업적을 자랑했습니다. <아르고>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갑니다. 영화계 인사들은 그간 영화에서도 비열하고 냉험하게 묘사됐습니다. 거장 빌리 와일더의 <선셋 블루바드>, 로버트 알트만의 <더 플레이어> 등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르고>에서 영화인들은 국가를 위해 자신들의 재주를 펼치는 애국적 인물로 그려집니다.

85회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을 받은 <아르고>를 연출한 배우 출신 감독 벤 애플렉(왼쪽)과 제니퍼 가너

 

 

 

 재임에 성공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이번 영화제의 숨겨진 주인공이었습니다.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을 쫓는 <제로 다크 서티>부터 그렇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재임 때 오사마가 미 특수부대인 네이비 실에 의해 사살됐습니다. <링컨>은 흑인 해방, 인종 차별 철폐와 국론 통일을 이룬 미국 대통령을 다루고 있고, <장고 : 분노의 추적자>는 아내를 구하려고 나선 흑인 현상금 사냥꾼이 주인공입니다.


 <레 미제라블>도 정치적 영화입니다. 국내에서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야권 지지자들의 헛헛한 마음을 사로잡은 바 있습니다. 아카데미가 미국 영화제라는 점을 전제로 했을 때, 미국민들은 늘 과거의 ‘혁명’을 존중하고 감탄해왔습니다. 팍팍한 현실에 시달리는 미국민들이, 실패했지만 처절했던 혁명에 기꺼이 박수를 보내는 것입니다.

85회 아카데미상에서 <레미제라블>로 여우 조연상을 탄 앤 해서웨이


 

 정치적 외풍도 타게 됩니다. <제로 다크 서티>는 당초 작품상의 강력한 후보로 점쳐집니다. 평단과 관객 평가 모두 좋았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벽을 만났습니다. 공화당 소속 피터 T. 킹 의원은 이 영화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위한 할리우드의 칭송 일색의 전기가 될 것”이라고 비판하는 등 보수 측의 비판이 속출했습니다.


 영화 시사회가 진행되면서, 그런 정치적 의도는 없다는 점은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시비가 다시 시작됐습니다. 이 영화가 오사마 빈 라덴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고문을 정당화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작품은 작품상 후보의 선두대열에서 점차 멀어져갔습니다.


 이번 영화제 측 정치적 행보는 시상식 말미에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작품상 후보 발표를 앞두고 잭 니컬슨이 혼자 등장했습니다. 위대한 배우여서, 사실상 최고상인 작품상을 홀로 발표하는 영광을 누린다는 해석이 나올법한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화면이 바뀌더니 백악관을 연결해 영부인 미셀 오바마 여사를 등장시켰습니다. 그녀는 영화와 사랑, 용기 등 영부인이 할법한 메시지를 발표했습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 배웁니다. 많은 이들이 영화를 보면서 용기를 갖게 됐습니다. 이는 어디에 살든 누구와 사랑하고 있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됩니다. 특히 예술계에 종사하는 젊은이들은 더욱 그럴 것입니다.”


 그리고 오바마 여사는 “디 오스카 고우스 투(오스카상 수상작은) <아르고>”라고 직접 발표합니다. 영화계와 백악관의 접속이 정점을 이루는 순간입니다.
 

85회 아카데미 작품상 발표자로 나선 미쉘 오바마 미 대통령 영부인

 

 

 세상사를 너무 정치적으로만 바라본 건가요?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영화야말로 정말 정치적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나치 독일을 봐도 그렇고, 군사독재 시절 한국 상황도 그렇고요.

 

 

 다음은 수상자(작)입니다.
 △작품·편집·각색상 <아르고> △감독상 리 안(<라이프 오브 파이>) △남우주연상 다니엘 데이-루이스(<링컨>) △여우주연상 제니퍼 로렌스(<실버라이닝 플레이북>) △각본상 쿠엔틴 타란티노(<장고 : 분노의 추적자>) △여우조연상 앤 해서웨이(<레미제라블>) △남우조연상 크리스토프 왈츠(<장고 : 분노의 추적자>) △외국어영화상 <아무르> △촬영·음악상 <라이프 오브 파이> △미술상 <링컨> △주제가상 아델(<007 스카이폴>) △시각효과상 <라이프 오브 파이> △의상상 <안나 카레니나> △분장·음향상 <레미제라블> △음향편집상 <제로 다크 서티> <007 스카이폴> △장편 다큐멘터리상 <서칭 포 슈가맨> △장편 애니메이션상 <메리다와 마법의 숲> △단편 애니메이션상 <페이퍼맨> △단편 영화작품상 <커퓨> △단편 다큐멘터리상 <이노센테>

Posted by 최우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