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학창 시절 도서관 구석에서 먼지 앉은 오디오 잡지를 뒤적이며, 나만의 화려한 오디오 조합을 꿈꿨다. ‘탄노이 웨스터민스터’나 ‘윌슨 와트&퍼피’ 아니면 ‘B&W 매트릭스’ 스피커에 ‘마크 레빈슨’ 또는 ‘오디오 리서치’ 진공관 앰프 그리고 ‘와디아’ 아니면 ‘메리디언’ CD 플레이어라면 얼마나 좋을까.

 

탄노이 웨스트민스터 로열. 한조에 3000만원이 넘는다탄노이 웨스트민스터 로열. 한조에 3000만원이 넘는다

                         

 

 여기에 ‘토렌스 프레스티지’ 레코드 플레이어에다 ‘SME’ 톤암을 장착하고 ‘오르토폰’ 카트리지(레코드 표면을 긁어 소리를 전기신호로 바꿔주는 바늘이 붙은 기기)면 더 좋고. 스피커 케이블은 ‘킴버’로 하고, 차폐트랜스는 ‘파워텍’….

 

 

마크 레빈슨 프리, 파워 앰프. 한 때 오디오 마니아들의 로망이었다.마크 레빈슨 프리, 파워 앰프. 한 때 오디오 마니아들의 로망이었다.

와디아 CD플레이어.와디아 CD플레이어.


 

 

토렌스 턴 테이블토렌스 턴 테이블 킴버 케이블. 이것만 해도 상태에 따라 4500~1만1000달러 정도다.

 

                                          

                                        

어찌보면 터무니없는 조합일지도 모른다. ‘상성(相性·서로 조합이 잘되는 상황)’이 안 맞을 수도 있고. 그래도 직접 들어보기 어려우니 군침만 삼키며 상상으로 조합을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취직만 하면 하나씩 모으는 거야.”

 

하지만 꿈은 꿈으로 끝났다. 입사하고도 내내 집에 있던 ‘롯데 매니아 전축’에 만족해야 했다. 사회생활 초년병, 더욱이 사회부 사건기자에게는 시간도 없고, 결정적으로 ‘총알(자금을 뜻하는 속어)’이 부족했다. 


그러면서 꿈을 ‘다운그레이드(하향조정)’했다. 스피커는 로·하·스(예전 영국 BBC방송의 업무용 스피커로 쓰이던 로저스, 하베스, 스펜더를 묶어서 부르는 것) 중 하나로 하고, 앰프는 ‘쿼드’로, CD 플레이어는 ‘티악’, 레코드 플레이어는 ‘데논’ 정도다. 케이블이나 카트리지는 기기에 끼워주는 걸 그냥 사용하고. “결혼해서 독립하면 사는 거야.”


이것도 꿈으로 끝났다. 결혼 비용을 ‘최소화’하는 데 첫 희생양이 오디오였다. 내자는 파나소닉 뮤직센터(CD 플레이어, 앰프, 라디오 수신부인 튜너가 한몸인 제품)를 혼수로 사왔다.


 

흐리멍텅한 뮤직센터 소리를 듣자니, 특히 손때 묻은 레코드를 한 구석에 쌓아 놓고만 있자니 답답하기만 했다. “레코드는 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항변하며 국산 인켈 앰프와 롯데 레코드 플레이어를 샀다. 그 뒤 탄노이 북쉘브(책장에 들어갈 만한 소형) 스피커를 사고, 인켈의 중가 CD 플레이어를 샀다. 카트리지도 저가인 ‘슈어’를 끼웠다. 반년에 걸쳐 사모은 것들이다.


상상속 오디오 시스템의 수십분의 1에 불과한 가격이지만, 비로소 ‘내 오디오’가 생겨 흡족했다. 더욱이 구시대 유물처럼 여겨져 폐기되던 레코드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10대 때부터 한 장 두 장 모았던 음반을 플레이어 위에 올려놓고 들으면 그때 그 기억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알 쿠퍼와 마이크 블룸필드, 스티븐 스틸스의 <슈퍼 세션>, 에릭 클랩튼의 <타임 피시스>, 핑크 플로이드의 <위시 유어 히어>, 탠저린 드림의 <로고스>, 칙 코레아의 <리턴 투 포에버>, 마일즈 데이비스의 <카인드 오브 블루>, 이 무지치의 <4계> 등은 얼마 주고 샀고, 그날 날씨가 어떻고 처음 커버를 뜯어 처음 들을 때 어땠는지 생생하다. “칙, 칙” 하는 소음에 슬그머니 곰팡이 냄새마저 풍기지만, 추억을 현재로 소환해낼 수 있다는 게 아날로그의 매력 아닐까.

 

최근 삼성전자가 스마트TV 등 첨단 정보기술(IT) 기기와 무선으로 연결해 이용할 수 있는 ‘에어 트랙’이라는 제품을 내놓았다. 길죽한 막대기형 몸체에 스피커가 들어 있고, 진공관 앰프를 넣었다. 최첨단 기술과 아날로그 기술의 합작이라니 이 또한 반갑다. 마침 요즘 앰프 왼쪽 채널이 들렸다 말았다 하니 군침이 흐르지만, 역시 ‘총알’이 문제다.

2011년 9월 MBC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에서 조용필이 출연 가수들 노래를 듣고 있다. MBC

 

 

가왕(歌王) 조용필의 19집 음반 수록곡 ‘바운스’가 선풍을 일으키는 데도 비슷한 이유가 있다. 젊은 세대도 공감할 만한 세련된 모던록에, 빛나는 가왕의 노래가 보태져서일 것이다. 이 노래에는 ‘미디’의 기계음도 섞었지만, 기본적으로 일류급 연주자들이 손과 발로 악기를 연주한 아날로그 음이 하나하나 입혀져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만을 돌려 뚝딱 하나를 짜내는 것과 울림이 다르다. 점점 꿈이 졸아드는 팍팍한 현실에서 만난 신선한 미풍 같아서, 더 반갑다.


'칼럼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머  (0) 2013.07.05
재벌과 막장 드라마  (0) 2013.05.31
아날로그의 매력  (0) 2013.04.19
‘병신체’  (1) 2013.03.15
막장  (0) 2013.02.07
당선자, 당선인  (0) 2012.12.20
Posted by 최우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