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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4.30 1960년대 감성의 한국형 21세기 블루스 록 밴드 '로다운 30'
  2. 2013.04.24 Quinn Sullivan, 블루스 기타 천재의 출현인가. (2)
  3. 2013.04.22 스톰 소거슨을 아시나요? 프리즘과 한줄기 빛 음반은 아시겠죠. (2)
  4. 2013.04.19 아날로그의 매력
  5. 2013.04.16 35년을 거스르는 플리트우드 맥의 인기 비결
  6. 2013.04.14 싸이의 새 싱글 '젠틀맨'의 3가지 코드
  7. 2013.04.11 One Shot, One Kill의 노래들 (2)
  8. 2013.04.10 블로그 방문해주신 6만명의 클리커님들.. (4)
  9. 2013.04.08 곽윤찬, 어렵지 않거나, 대중적이거나, 너무 대중적이거나?
  10. 2013.04.03 영국인들의 독한 '음악 애국'
  11. 2013.03.31 'Guns N' Roses 출신 Slash의 내한 공연 앞두고 한 e메일 인터뷰
  12. 2013.03.27 이런 글은 진짜 베끼지 않고는 못배길 정도
  13. 2013.03.20 데이비드 보위, 카멜레온 같은 영감님
  14. 2013.03.15 ‘병신체’ (1)
  15. 2013.03.13 Yes 기타리스트 Peter Banks 별세
  16. 2013.03.08 지미 헨드릭스의 유효 기간은 언제?
  17. 2013.02.27 라디오헤드 아류? 혹은 톰 요크의 독자노선 (5)
  18. 2013.02.26 전설의 레전드(ㅎㅎ) 록 밴드 '이글스'의 쨍한 화질 블루레이 실황음반 발매 (3)
  19. 2013.02.25 85회 아카데미의 정치학
  20. 2013.02.07 막장
  21. 2012.12.21 18대 대선 그 이후.... 멋대로 써본 앞으로 정치판 넉 달
  22. 2012.12.20 당선자, 당선인
  23. 2012.11.15 정치 유감 - 백원우 전 의원과 유민영 대변인 (1)
  24. 2012.10.25 [마감 후]정치 혐오
  25. 2012.08.27 기타리스트 누가 누구? 알아맞춰 보세요
  26. 2012.08.21 고다이바와 엘리자베스 1세
  27. 2012.07.05 유체이탈
  28. 2012.03.28 ‘의제 전쟁’에 달렸다
  29. 2012.03.01 [기자메모]민주 공천 갈등 해법은 ‘정도’다
  30. 2012.02.16 한 대표, 사과가 필요해요

 이 밴드는 제가 10년만에 대중문화부로 복귀해 꼭 인터뷰해보고 싶었던 팀입니다. 바로 ‘로다운(Lowdown)30’이라는 블루스 록 밴드입니다.

 

 우연히 한 포털 사이트에서 이 밴드의 ‘아이 서 더 데블 라스트 나이트’를 들었습니다. ‘좀 한국식 영어 발음에 묵직한 기타톤, 묵직한 베이스, 묵직한(레드 제플린 존 보냄을 연상케하는) 드럼’ 등 온통 묵직했습니다. 굳이 '한국식' 영어 발음이라고 쓴 이유는, 그만큼 곡 진행은 '한국적'이지 않아서입니다.

 

블루스 록 밴드 ‘로다운 30’의 김락건, 김태현, 윤병주(왼쪽부터)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하지만 당시 이 밴드는 미국에 순회공연을 하고 있던 터였습니다. 미국 순회공연이라….

 한 30년 거슬러 올라가 1980년대 나이트 클럽에서 라이브 연주를 하는 밴드들을 소개할 때 쓰는 진부하지만 꽤 쏠쏠한 어구가 있습니다. “방금 동남아 공연을 성황리에 마치고 돌아온…”이라는 것입니다. 대체로 과장이었습니다. 해외공연은커녕 여권도 없는 팀도 허다했으니까요.

 

 이 3인조 블루스 록 밴드 ‘로다운 30’은 3월5일 출국해 4월9일 돌아왔습니다. 한국음악을 아이튠즈에 수출하는 ‘DFSB 콜렉티브’가 해마다 국내 유망 밴드 3팀씩 선정해 북미 순회공연을 하는 ‘서울소닉 노스아메리칸 투어’에 참여했었습니다.

'로다운 30'의 미국 로스 앤젤레스 딤 막 스튜디오 연주 모습 페이스북 사진

 

 

 로다운은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노브레인’ 등과 미국 샌 프란시스코, 텍사스 오스틴, 보스턴, 뉴욕, 샌디에고, 로스 앤젤레스, 캐나다 토론토를 돌았습니다. 빡빡한 스케줄이었지만, 블루스 록의 본토 미국에 자신들의 음악 맛을 보였다는 점에서 자긍심을 비쳤습니다. 저 희안한 이름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는 옛 남자(舊男)과 여자가 스텔라(옛날 현대가 내놓았던 승용차)를 탄다(riding)이라는 뜻입니다. 참, 로다운은 영어로 ‘비천한, 실상, 정보’라는 뜻도 있고, ‘블루스가 저음으로 느린 템포의, 혼을 흔드는 듯한’이라는 뜻도 있답니다. 참 잘 지은 이름 같습니다.

 

 이들은 100명 규모의 작은 클럽에서부터 미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리는 록 페스티벌·콘퍼런스인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캐나다 페스티벌인 ‘캐나디안 뮤직위크(CMW)’에도 섰습니다.

 

'로다운 30'의 미국 샌프란시스코 브로드웨이 스튜디오 라이브 페이스북

 

 보컬과 기타를 맡은 윤병주는 “미국 공연은 처음인데 한국 홍대 앞 클럽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다만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 야외 공연에서 사운드는 달랐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소리가 좋았다. 그러면서도 “다만 미국 팬들은 우리 노래를 처음듣는데도 낯설어하지 않고, 즐겁게 받아들인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드럼을 맡은 김태현은 “가서 연주해보니, ‘아 여기가 미국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외국인이 많아서가 아니다. 외국인은 홍대 앞 클럽에도 많고 이태원에도 많은데, 거기는 분위기가 좋았다. 소리도 좋고”라고 평가했습니다.

 베이스를 치는 김락건도 “소리는 정말 좋았습니다. 예전에 1990년대 홍대 앞 클럽에서 연주하면 베이스 소리는 묻혀서 들리지도 않았다”며 “요즘 한국도 많이 좋아졌다”고 거들었습니다.

 

 이들이 공통점으로 꼽은 ‘미국이 부러운 점’은 음악적 저변과 문화입니다. 윤병주는 “팬 층이 굉장히 넓고 선입견도 없고, 즐기려는 태도가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 음악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더군요. 윤병주는 “돌아보고 든 생각은 한국에서 잘하는 사람들은 거기서도 잘하는 것 같았다. 여기서 10%안에 드는 밴드는 거기서도 10%안에 드는 것이다. 취향을 떠나서 잘하는 것은 잘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살짝 한국 현실을 우려했습니다. 윤병주는 “사우스바이사우스이스트에 가보니까 한 60대 컨트리 뮤지션이 있었다.이미 전성기를 지나 내리막길이었는데도, 여전히 작은 클럽에 나와서 자기 노래를 하더라”고 말했습니다. “이건 지난해 낸 곡, 이건 몇년 전 곡”하면서. 윤병주는 저와 인터뷰에서 그 컨트리 가수가 누구인지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이후 로다운의 다른 인터뷰를 찾아보니 그는 레이 윌리 허바드였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전성기를 지나 내리막되면 안 나타나거나, 예전 것에 기대고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1970, 80년대 멋진 밴드들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없고, 형님급 연주자들은 전직했거나, 대학, 학원에서 실용음악을 가르치는 점 등 말입니다.

 

블루스 록 밴드 ‘로다운 사진 김문석 기자kmseok@kyunghyang.com

 

 로다운은 서울 홍대 앞에 형성돼 있는 ‘인디’ 무대에서도 눈에 띄는 존재입니다. 2008년 발표했던 정규앨범 1집 <자이라(Jaira)>, 지난해 2집 <1>을 냈습니다. 또 미니 편집 음반 <서울 서울 서울>, <아스팔트> <언아더 사이드 오브 자이라> 등도 냈구요.

로다운 30의 첫 음반  로다운 30의 두번째 음반 <1>

 

 

 

 

 하지만 이들이 경력 6년차의 고만고만한 밴드가 아닙니다. 윤병주는 1990년대 가장 주목받은 밴드 ‘노이즈가든’에서 기타를 치며 주목받았습니다. 그 때 기타 키드 가운데서도 ‘좀 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가 노이즈 가든 탈퇴 이후 2000년 결성한 밴드가 바로 로다운입니다. 베이스를 맡은 김락건은 1990년대 하드록 밴드 ‘존 도우’ 출신이고, 드럼을 맡은 김태현은 세션활동을 하는 등 실력파들입니다.

 

 이들 음악은 한 수식어로 형용이 안됩니다. 강한 블루스인듯하면서도, 기존 문법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하드록, 곡에 맞춰 춤 출 수 있는 일렉트로닉 느낌도 들어있습니다. 록이나 블루스 하면 떠오르는 '정형성', 그 특유의 코드 진행에서 조금씩 이탈해 있습니다. 그래서 더 특이한 느낌을 주는 듯 합니다.

 

 윤병주의 노래는 처음 들었습니다. 인상과 참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는 머리를 박박 밀고, 180cm 키에 덩치도 큽니다. 하드한 소리가 나올 것 같습니다. 하지만 조금은 가늘고 높은 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그리고 'ㅅ' 발음을 할 때 마치 영어 'th'소리 즉, 소위 번데기 발음(θ)을 합니다.

 

 이들 음악의 특이함, 더 좋게 말하면 독창성은 멤버들의 다양한 취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윤병주는 블루스, 리듬앤블루스부터 힙합까지 다양한 음악을 좋아합니다. 그는 PC통신 시절 ‘헤비메틀 동아리’에서 엄청난 음악 지식과 글 솜씨를 자랑한 바 있습니다. ‘지금 음반 얼마나 있느냐’고 물었더니 “3500장 선에서 유지하려고 애쓴다. 좀 듣다가 안드는 것, 별로 인 것은 남 준다”고 말했습니다.

 

 긴 머리를 휘날리는 김락건은 모양처럼 ‘올맨 브라더스 밴드’ 같은 서던 록을 좋아합니다. 김태현은 ‘너바나’ ‘푸 파이터스’ 등 그런지 록과 ‘머틀리 크루’ 같은 깔끔한 메틀 음악도 선호합니다.

 

 블루스 록이지만 이들은 ‘빠르고 강렬함, 변화무쌍’이 아니라 ‘묵직하고 단순함’에 더 다가가 있습니다. 그래서 10년전부터 갖고 있던 우문(愚問)인 “빠르고 강한 연주를 안하는 거냐, 못하는 거냐, 아님 관심없는 것이냐”을 던졌습니다. 윤병주는 “그런 음악은 우리가 하고 싶은, 추구하는 음악이 아니다. 그러니 그런 음악이 우리 것에는 안나온다”고 답했습니다. 멋진 ‘카운터 펀치’입니다. 하지만 그도 연주 때 흥이 나면 빠른 아르페지오나 스트로크를 선보입니다.

 

 당초 3집을 이맘 때쯤 작업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서울소닉프로젝트 때문에 미뤄졌답니다. 이제 슬슬 작업을 시작해서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는 나오지 않을가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색깔이 들어갈 것 같으냐’고 물었습니다. 윤병주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 요소가 많이 들어갈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참 까칠한 ‘인터뷰이’입니다. ㅎㅎ

 

 윤병주는 “우리는 보도자료도 안내고 홍보도 안한다. 근데 요즘 언론을 보니까 홍보 자료를 그대로 베껴 쓰는 이도 있더라. 우리 음악은 블루스 록인데, 헤비메틀이라고 보도자료를 쓴다면 그대로 쓸 것 같았다. 음악 한번 들어보지 않고 그냥 받아서 쓰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제게 한 말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소위 ‘언론 종사자’로서 얼굴이 화끈해졌습니다.

 

 윤병주도 까칠하게 답한 게 면구스러웠던지, 한 마디 보태더군요. “우리가 좋아하는 식인데, 늘 다르다. 레드 제플린은 1집과 9집을 들어보면 음악이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그래도 그들의 음악은 레드제플린 음악이다. 코어가 안 바뀌기 때문이다. 그런 음악이 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5월4일 서울 문래동 문래예술공장에서 열리는 언더그라운드 페스티벌 ‘51+ 페스티벌’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또 격주에 하는 클럽공연, 여름에 록 페스티벌 한 군데는 갈 것 같다고 합니다.

Posted by 최우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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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제프 벡 연주를 보면 대체로 젊은 여성 베이스 주자가 눈에 보입니다. 65세의 제프 벡이 이 20대 여성 베이스 주자 연주를 지긋하게 봅니다. 주착스럽다고 볼 수도 있고, 성장하는 후배를 흡족스럽게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녀는 호주 출신 탈 윌켄펠드라고 합니다.

 

 이처럼 멘토-멘티 관계는 음악계에서도 드문 일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신대철씨가 TV 음악 경쟁 프로그램 <탑 밴드>에 나왔던 ‘갤럭시 익스프레스’를 지원해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멘토와 멘티 이야기좀 해보려고 합니다.
 지난주 미국 뉴욕 매디슨 스퀘어가든에서 열린 ‘에릭 클랩튼의 크로스로즈 기타 페스티벌’에는 블루스 기타의 거장들이 대거 등장했습니다. 비비 킹, 에릭 클랩튼, 제프 벡, 버디 가이, 개리 클락 주니어, 부커 티, 앨버트 리, 지미 본, 타즈 마할, 케브 ‘모’는 물론 인기 가수 겸 연주자 존 메이어도 섰구요. 재즈 기타리스트 존 스코필드, 얼 클루, 퓨전 기타리스트 앨런 홀즈워드, 서던 록 밴드인 올맨 브러더스 밴드 등도 무대에 나섰습니다.

  

2013년 미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에릭 클랩튼의 크로스로즈 기타 페스티벌'                           AP연합뉴스

 

 

 하지만 가장 많은 호응을 얻어 낸 이는 누구였을까요. 퀸 설리번(Quinn Sullivan)이라는 기타리스트입니다. 그는 버디 가이와 함께 ‘댐 라이트’, ‘아 갓 더 블루스’를 연주했고, 마지막 잼 세션(간단한 약속만으로 이어가는 즉흥연주)에서 클랩튼, 지미 본, 로비 로버츠 등과 한 무대에 섰습니다. 특이한 점은 설리번은 이제 14살의 중학생이라는 것이죠.

 

 퀸 설리번                                    페이스북 캡쳐


 설리번은 ‘롤링 스톤’과 인터뷰에서 “진짜 초현실적이었다. 절대 못잊을 것”이라며 “내가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 섰고, 기립 박수를 받았다니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설리번은 2004년 크로스로즈 기타 페스티벌에서 선 바 있습니다. 설리번은 세살 때 연주를 시작했고 여섯살 때 유명 예능프로그램인 <엘렌 쇼>에 출연했습니다. 일곱살이 됐을 때 설리번은 매사추세츠 주의 뉴 베드포드에서 열린 버디 가이 공연장을 찾았습니다. 가족의 친구가 그를 무대 뒤로 가서 기타에 사인을 받도록 해줬죠. 거기서 설리번은 몇 가락을 즉석에서 연주했고, 버디 가이는 “너 이따가 내가 부를테니 준비해라”고 했답니다.

 

 그렇게 설리번은 무대에 섰습니다. 가이는 그 연주가 자신이 하는 게 아니라 설리번 것이라는 것을 관중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신 기타의 연결선을 앰프에서 빼버렸다고 합니다.

 가이는 “세상에 그런 식으로 연주할 수는 없었다. 그는 에릭 클랩튼을 치고, 내 곡을 치고, 스티비(레이본), 지미 헨드릭스 것을 쳐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나는 7, 8살 때 라디오도 못켰다. 저런 연주자는 내 생애 한명이나 나오려나”고 했습니다. 그런 거장의, 그런 칭찬이라니, 부럽습니다.

 

  버디 가이, 퀸 설리번, 에릭클랩튼(왼쪽부터)                                                                                 퀸 설리번 페이스북

 

 

 가이는 설리번에게 “너를 세상에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후 수년 동안 가이는 설리번을 꽤 유명한 무대들에 세웠습니다. 코넥티컷의 ‘게더링 오브 더 바이브스 페스티벌’에 비비 킹과 함께 섰구요. 또 아폴로 극장에서 허버트 섬린 추모 공연에 에릭 클랩튼, 롤링 스톤즈 기타리스트인 키스 리차즈과도 연주를 했다고 합니다. 또 2008년 버디 가이의 음반 <스킨 딥>에 참여시켰습니다.


 물론 버디 가이의 이런 지원에는 역풍도 불었습니다. 가이는 “설리번이 블루스 연주하기에는 너무 어려다는 헛소리가 나오는데, 내가 머디 워터스랑 같이 연주했을 때에도 나온 소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단 설리번 연주를 들어봐라. 그럼 딴 소리 안할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실제 버디 가이는 22살 때 머디 워터스, 존 리 후커스 등의 음반에 참여했고, 그 때 “젊은 놈이 블루스가 뭔지나 알아”라는 뒷 이야기가 많았다고 하네요.

 

 그럼 설리번은 엄청난 연습벌레일까요? 부모가 옆에 꿰고 앉아서 종일 손가락 뜯기 연습을 시킬까요.

 설리번은 기타 연습에 대해 “너무 빡세게(intense) 하지는 않는다”며 “하루에 여섯시간씩 연습하지는 않는다. 하고 싶을 때 하는 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저 보통 10대처럼 친구들과 놀고, <패밀리 가이> 같은 TV 만화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한답니다. 성적도 A나 B를 유지하구요. 공연이 있으면 선생님과 상의해 수업을 메꾸기도 한답니다. 참 근사한 소년입니다.

 “크로스로즈 공연 때문에 이틀을 학교를 빼먹었어요. 하지만 그 정도 가치는 있죠.”

 

 설리번은 멘토인 버디 가이로부터 매우 소중한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버디는 같이 있을 때마다 이야기를 해줘요. 사실 같이만 있어도 많은 걸 배워요. 그의 이야기와 지내온 일 등. ‘레코딩 계약을 잘못하면 안된다.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라’ 같은 말이요.”

 설리번은 데뷔 음반 <게팅 데어> 발매를 준비중입니다. 6월18일 발매 예정이구요. 내쉬빌에서 프로듀서겸 공동 작곡가 톰 햄브리지와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설리번은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 그리고 많은 레코드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또 “나는 계속 음악을 들으려고 하고, 내 귀를 열어 두려고 한다”고 했답니다. 

Posted by 최우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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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총무부 2013.04.29 16: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그 재능을 알아보고, '어린 녀석이 무슨...'이 아닌 '이 재능을 꽃피우는데 내가 도움이 되면 좋겠구나'라고 생각하고 성심을 다해 끌어주는 어른이 있는 저 문화가 내심 부럽네요..

  2. dab 2014.11.29 0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상에 버디 가이가 저런 말을...레이반조차도 저런 말을 못 들었는데...;;
    좋은 기사 잘 봤습니다 한 번 들어봐야겠군요!

 연식이 좀 있으신 분들(네티즌들 용어입니다. ‘나이가 좀 든’ 정도의 뜻)은 예전에 LP를 사서 겉 ‘비니루’(비닐, 즉 vynil의 일본식 발음인 듯합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비닐’이라기 보다는 ‘비니루’해야 그 본 뜻이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근데 웃기게도 한국에서 LP 또는 레코드라고 불리는 저 매체를 놓고 영국, 미국에서는 vynil, 즉 ‘바이널’이라고 부릅니다)를 벗긴 뒤 표지를 보면서 감탄한 추억이 있으시겠지요.

 

 나중에 CD가 대세를 이루면서 이 LP를 대체했죠. 요즘에는 아이튠즈 등 음원 파일로 내려듣거나 스트리밍하니,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 4꼭지점의 각이 날카롭게 살아 있는 음반 커버을 보는 맛은 이제 없어진 것 같습니다. 두 장을 하나로 연결해놓아 접어놓았기에 열어서 속 내용도 볼 수 있는 ‘게이트 폴더’형은 국내 라이선스 반이 아니라, 원반에나 있어서 비쌌습니다. 국내 라이선스 음반이 이런 게이트 폴더 형으로 내주면 정말 고마워했죠. 그걸 펼쳐서 보면서 표지도 감상하고, 설명문(라이너 노트)을 읽으면서 음악이 흘러나오면 흡족했었죠.

 

 바로 그 음반 표지 이야기입니다. 스톰 엘빈 소거슨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검은 배경 위로 한 줄기 빛이 프리즘을 통과해 분산되는 핑크 플로이드의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 음반을 디자인한 분이 소거슨입니다. 이 음반은 빌보드 역사상 가장 오랜 741주(1973~1988년)간 차트에 머물렀죠. 핑크 플로이드 한 멤버는 “그래픽이 들어가고, 멋지고 정교한 것으로 해달라”고 요청했었다고 합니다.

 

핑크 플로이드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

 

 

 레드 제플린, 제네시스, 스틱스, 크랜베리스, 뮤즈, 피시 등도 이 분에게 음반 디자인을 맡겼더랬습니다. 대중 음악계에서 음반 표지를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시킨 이로 첫 손에 꼽힙니다.  그 분이 지난 18일(현지시각) 지병인 암으로 별세하셨습니다. 향년 69세였습니다.

 

 

 

 그의 코믹하면서도 왜곡된 이미지, 초현실주의적 디자인은 40여년간 유명세를 타왔습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단 한 음표도 연주하지 않았지만, 그는 1970년대 음악 역사에 지울 수 없는 표식을 남겼다”고 썼을 정도입니다.

 

 소거슨은 1944년 2월28일 영국 런던 북쪽 포터스 바에서 태어나 주로 캠브리지에서 자랐습니다. 이 캠브리지 지역에는 핑크 플로이드의 세 멤버인 시드 배릿, 로저 워터스, 데이비드 길모어 등 10대 때 알고 자란 곳이기도 합니다. 동향인 셈이죠.

 

 영국 레스터 대학과 영국 최고 예술 학교인 왕립 예술 대학(Royal college of Art)를 나왔습니다. 그의 젊은 시절 초현실주의, 아방 가르드, 사이키델릭이 유행했고, 그는 왕성하게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가 만든 음반 디자인이 벨기에 화가 르네 마그리트, 스페인 화가 살바도르 달리, 미국 사진작가 만 레이 작품의 영향에 닿아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당시 아파트를 함께 쓰던 오드리 파웰이 핑크 플로이드의 두번째 음반 <어 소스풀 오브 시크리츠> 디자인을 거절하자 자원해서 만들었습니다. 멤버들 모습은 작게 박혀있고, 은하계에서 튀어나온 태양계 이미지를 이어붙인 이미지를 탄생시켰죠. 그러면서 핑크 플로이드와 인연을 갖게 됐죠.

 

                                            핑크 플로이드 <어 소스풀 오브 시크리츠>

    

 

 고인과 파웰은 ‘힙노시스’라는 디자인 회사를 만들어 1970년대 유명 음반을 디자인했습니다. 1983년 그는 ‘스톰스튜디오스’를 설립하고 음반 디자인은 물론 뮤직비디오, 콘서트 영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그래픽이나 삽화보다는 “생생하다”는 이유로 사진을 선호했고, 홍보보다는 예술에 천착했습니다. 핑크 플로이드 명반인 1975년 <위시 유 워 히어> 표지에는 두 신사가 악수를 하는데, 한 명 몸에 불이 붙어 있습니다. 인형이나 그림이 아니라 스턴트 맨이 실제 몸에 불을 붙이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레드 제플린 <하우지스 오브 더 홀리> 표지 사진을 찍으려고 나체 어린이들의 북 아일랜드의 유명한 해안 ‘자이언츠 코즈웨이’에서 열흘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 곳은 북 아일랜드의 유일한 세계문화유산으로, 6각형의 현무암 덩어리들이 늘어서 있는 곳입니다. 에릭 클랩튼이 소속된 ‘블라인드 페이스’의 소녀 상반신 누드가 실린 음반이 나와 선정성 논란이 된 지 얼마 안된 때였죠. 하지만 레드 제플린 음반을 놓고 시비가 일지는 않았습니다.

 

                                            레드 제플린 <하우지스 오브 더 홀리>

 

 

 핑크 플로이드의 1977년 음반 <애니멀스> 표지를 찍느라 실제 거대한 애드벌룬 돼지를 발전소 굴뚝 사이에 띄웠습니다. 스케일이 엄청나죠. 그 돼지 풍선은 이 지역을 벗어나 런던 인근 히스로 국제공항의 활주로 쪽으로 흘러갔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1987년 작품 <모멘터리 랩스 오브 리즌> 표지를 만들기 위해 700개의 철제 병원 침대를 해안에 세웠습니다. 그림을 복사해 붙이는 것을 거부하고, 일일이 땀 흘려 만들어낸 것입니다.

 

 

 

 

핑크 플로이드 <애니멀스>                                                             핑크 플로이드 <어 모멘터리 랩스 오브 리즌>                     

 

 

 예술 측면에 있어 타협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에는 덜렁 프리즘과 빛 한줄기만 있습니다. 오죽했으면 음반사가 팬들을 위해 음반 제목과 밴드 이름을 쓴 스티커를 음반에 붙였다고 합니다. 이 밴드의 1970년 음반 <아톰 하트 마더>는 그저 초원 위에서 어깨 너머 카메라를 바라보는 젖소 한마리를 찍어 놓았습니다. 저도 그 음반 처음 사서, '도대체 이 소는 무슨 뜻을 갖고 있을까'하고 한참 생각해보다가, 그만 뒀습니다. ㅠ.ㅠ

<움마굼마> 음반도 멤버들 사진들을 배경으로 또 사진을 찍는 ‘격자식’ 구도를 만들었지 그게 뭔지 표시가 안돼 있습니다.

 

 또다른 프로그레시브 밴드 ‘제네시스’ 리더이자 보컬이던 피터 가브리엘의 솔로 음반 3장을 냈는데, 모두 소거슨 손을 거쳤습니다. 1, 2집에는 아무 설명이 없고, 3집에만 ‘피터 가브리엘’이라고 써 있어 음반들 모두 <피터 가브리엘>로 불렸답니다. 대신 음반 모양으로 별칭이 붙었었는데, 1977년 것은 ‘자동차’로, 1978년은 ‘스크래치’로, 1980년은 ‘멜트’로 돼 있습니다.

 

    

                  피터 가브리엘 음반 속칭 <스크래치>                              피터 가브리엘 음반 속칭 <멜트>

 

 그만큼 그는 함께 일하기 까다로운 사람이었습니다. 핑크 플로이드 드러머 닉 메이스는 그를 추모하면서 “경영, 레코드 회사, 음반 표지 인쇄업체의 재앙 : 밴드, 음악, 위대한 발상, (이따금 화가 날 만큼)고상한 기준의 챔피언”이라고 썼죠. 이어 “끊임없이 지적이면서 늘 질문을 해댔다. 숨이 턱 막힐만큼 약속에 지각을 해댔으나, 일단 오기만 하면 그의 발상, 유머, 우정은 더없이 존귀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그의 성공, 그리고 그가 디자인한 음반의 성공에는 밴드와 음반사의 적극적 지원도 한 몫 했습니다. 밴드는 자신들의 얼굴을 음반에 넣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았고, 음반사는 표지에 제목을 넣지 않아도 되게 너그럽게 허용한 것입니다.

 

 그외 1960년대 후반 밴드 ‘토우 팻’의 유명한 엄지 음반, ELO의 무도회장의 불켜진 전구도 그의 손을 거쳐 나왔습니다. CD 시대로 넘어가서도 뮤즈 <블랙 홀즈 앤드 레벌레이션즈> 등이 스톰스튜디오스로 나온 것입니다.

 

 

뮤즈 <블랙 홀즈 앤 레블레이션즈>                                 피시 <슬립 스티치 앤드 패스>

 

 개인적으로 저는 ‘힙노시스’의 표지도 좋아하지만, ‘예스’ 음반을 디자인한 로저 딘 것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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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백종민 2013.04.23 18: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배 아경 백종민이라고 합니다. 댓글을 안쓸수가 없네요. 오리지날 푸석한 비닐코팅된 다크사이드오버더 문에들은 포스터에 로저 워터스 사인 받겠다고 팀장에게 둘러대고 공항간기억이납니다. 힙노시스 설립자는 이글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칼럼들

학창 시절 도서관 구석에서 먼지 앉은 오디오 잡지를 뒤적이며, 나만의 화려한 오디오 조합을 꿈꿨다. ‘탄노이 웨스터민스터’나 ‘윌슨 와트&퍼피’ 아니면 ‘B&W 매트릭스’ 스피커에 ‘마크 레빈슨’ 또는 ‘오디오 리서치’ 진공관 앰프 그리고 ‘와디아’ 아니면 ‘메리디언’ CD 플레이어라면 얼마나 좋을까.

 

탄노이 웨스트민스터 로열. 한조에 3000만원이 넘는다탄노이 웨스트민스터 로열. 한조에 3000만원이 넘는다

                         

 

 여기에 ‘토렌스 프레스티지’ 레코드 플레이어에다 ‘SME’ 톤암을 장착하고 ‘오르토폰’ 카트리지(레코드 표면을 긁어 소리를 전기신호로 바꿔주는 바늘이 붙은 기기)면 더 좋고. 스피커 케이블은 ‘킴버’로 하고, 차폐트랜스는 ‘파워텍’….

 

 

마크 레빈슨 프리, 파워 앰프. 한 때 오디오 마니아들의 로망이었다.마크 레빈슨 프리, 파워 앰프. 한 때 오디오 마니아들의 로망이었다.

와디아 CD플레이어.와디아 CD플레이어.


 

 

토렌스 턴 테이블토렌스 턴 테이블 킴버 케이블. 이것만 해도 상태에 따라 4500~1만1000달러 정도다.

 

                                          

                                        

어찌보면 터무니없는 조합일지도 모른다. ‘상성(相性·서로 조합이 잘되는 상황)’이 안 맞을 수도 있고. 그래도 직접 들어보기 어려우니 군침만 삼키며 상상으로 조합을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취직만 하면 하나씩 모으는 거야.”

 

하지만 꿈은 꿈으로 끝났다. 입사하고도 내내 집에 있던 ‘롯데 매니아 전축’에 만족해야 했다. 사회생활 초년병, 더욱이 사회부 사건기자에게는 시간도 없고, 결정적으로 ‘총알(자금을 뜻하는 속어)’이 부족했다. 


그러면서 꿈을 ‘다운그레이드(하향조정)’했다. 스피커는 로·하·스(예전 영국 BBC방송의 업무용 스피커로 쓰이던 로저스, 하베스, 스펜더를 묶어서 부르는 것) 중 하나로 하고, 앰프는 ‘쿼드’로, CD 플레이어는 ‘티악’, 레코드 플레이어는 ‘데논’ 정도다. 케이블이나 카트리지는 기기에 끼워주는 걸 그냥 사용하고. “결혼해서 독립하면 사는 거야.”


이것도 꿈으로 끝났다. 결혼 비용을 ‘최소화’하는 데 첫 희생양이 오디오였다. 내자는 파나소닉 뮤직센터(CD 플레이어, 앰프, 라디오 수신부인 튜너가 한몸인 제품)를 혼수로 사왔다.


 

흐리멍텅한 뮤직센터 소리를 듣자니, 특히 손때 묻은 레코드를 한 구석에 쌓아 놓고만 있자니 답답하기만 했다. “레코드는 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항변하며 국산 인켈 앰프와 롯데 레코드 플레이어를 샀다. 그 뒤 탄노이 북쉘브(책장에 들어갈 만한 소형) 스피커를 사고, 인켈의 중가 CD 플레이어를 샀다. 카트리지도 저가인 ‘슈어’를 끼웠다. 반년에 걸쳐 사모은 것들이다.


상상속 오디오 시스템의 수십분의 1에 불과한 가격이지만, 비로소 ‘내 오디오’가 생겨 흡족했다. 더욱이 구시대 유물처럼 여겨져 폐기되던 레코드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10대 때부터 한 장 두 장 모았던 음반을 플레이어 위에 올려놓고 들으면 그때 그 기억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알 쿠퍼와 마이크 블룸필드, 스티븐 스틸스의 <슈퍼 세션>, 에릭 클랩튼의 <타임 피시스>, 핑크 플로이드의 <위시 유어 히어>, 탠저린 드림의 <로고스>, 칙 코레아의 <리턴 투 포에버>, 마일즈 데이비스의 <카인드 오브 블루>, 이 무지치의 <4계> 등은 얼마 주고 샀고, 그날 날씨가 어떻고 처음 커버를 뜯어 처음 들을 때 어땠는지 생생하다. “칙, 칙” 하는 소음에 슬그머니 곰팡이 냄새마저 풍기지만, 추억을 현재로 소환해낼 수 있다는 게 아날로그의 매력 아닐까.

 

최근 삼성전자가 스마트TV 등 첨단 정보기술(IT) 기기와 무선으로 연결해 이용할 수 있는 ‘에어 트랙’이라는 제품을 내놓았다. 길죽한 막대기형 몸체에 스피커가 들어 있고, 진공관 앰프를 넣었다. 최첨단 기술과 아날로그 기술의 합작이라니 이 또한 반갑다. 마침 요즘 앰프 왼쪽 채널이 들렸다 말았다 하니 군침이 흐르지만, 역시 ‘총알’이 문제다.

2011년 9월 MBC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에서 조용필이 출연 가수들 노래를 듣고 있다. MBC

 

 

가왕(歌王) 조용필의 19집 음반 수록곡 ‘바운스’가 선풍을 일으키는 데도 비슷한 이유가 있다. 젊은 세대도 공감할 만한 세련된 모던록에, 빛나는 가왕의 노래가 보태져서일 것이다. 이 노래에는 ‘미디’의 기계음도 섞었지만, 기본적으로 일류급 연주자들이 손과 발로 악기를 연주한 아날로그 음이 하나하나 입혀져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만을 돌려 뚝딱 하나를 짜내는 것과 울림이 다르다. 점점 꿈이 졸아드는 팍팍한 현실에서 만난 신선한 미풍 같아서, 더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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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사년 들어 영국 대중 음악계에 작은 소란이 일었습니다. 바로 밴드 ‘플리트우드 맥’의 1977년 음반 <루머스>가 영국 음악 차트 순위 10위에 오른 것입니다. 현재도 영국 공식 음반 차트를 보면 이 음반이 37위에 올라 있습니다. 그 여세일 듯한데, <더 베스트 오브 플리트우드 맥> 음반이 34위에 올라와 있습니다.

 

 음반이 새로 차트에 오른 계기는 이 밴드가 음반 출시 35주년을 맞아 새로 세 장짜리 세트를 재출시해서입니다. <루머스> 원곡과 1977년 월드투어 당시의 라이브 무대,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새로운 음악도 담았습니다. LP도 끼워넣었구요.

 

 

플리트우드맥 음반 <루머스>

 

 자그마치 35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이 음반이 인기를 끄는 이유가 뭘까요.


 물론 이 음반이 담고 있는 음악 자체가 워낙 뛰어납니다. 1950, 60년대를 연상시키는 달콤한 팝부터 둔중한 블루스 록, 절절하게 가슴을 저미는 발라드까지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스티브 닉스의 아름다운 미드 템포의 팝 ‘드림스’, 린제이 버킹햄의 맹아를 드러내는 ‘고 유어 오은 웨이’, 크리스틴 맥비, 스티브 닉스, 린제이 버킹햄의 화음이 빛나는 ‘더 체인’ 등입니다.


 또 피아노 반주로 짙게 호소하는 크리스틴 맥비의 ‘송버드’, 컨트리·록인 ‘실버 스프링스’, 이들 밴드의 뿌리가 블루스였음을 보여주는 ‘유 메이크 러빙 펀’ 등이 골고루 담겨 있습니다. 이 음반은 지금까지 자그마치 4500만장이 팔렸다고 합니다. 이들 수록곡들은 가족 밴드 ‘더 코어스’나 하드코어 펑크 밴드 ‘NOFX’가 연주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만 설명되지 않는 게 있습니다. 왜 20대와 30대조차 자신들이 태어나기 전에 나온 ‘고리타분할 것 같은’ 이 음반에 열광할까라는 점에서입니다. 이는 2000년대 후반 불어닥친 포크 록 복고주의에서 기인합니다. ‘플리트 폭시스’, ‘본 아이버스’ 같은 이들이 이 추세를 일으켰습니다. ‘베스트 코스트’, ‘새론 본 이튼’ 등도 플리트우드 맥의 1970년대 사운드를 답습하고 있죠.

 

 특히 이번 그래미 어워드에서 음반 <바벨>로 ‘올해의 음반’ 상을 받은 영국 포크록 밴드 ‘멈포드 애드 선스’,  시상식 축하공연을 한 ‘테일러 스위프트’(요즘 이 가수를 놓고 미국의 ‘국민 여동생’이라고 합니다. 키가 180㎝나 됩니다)도 플리트우드 맥의 자장 안에 들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티브 닉스의 영향력은 영국 BBC가 선정한 ‘2013 환영받을 목소리’ 투표에서 우승한 혼성3인조 밴드 ‘하임’에도 닿아있습니다. 이들 음악에 익숙한 20, 30대들이 그 원형질인 플리트우드 맥에 빠질 수 밖에 없다는 게 평론가들의 분석입니다.

 

 플리트우드 맥의 변화는 무쌍했습니다. 어느 시절에 그들 음악을 들었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에 밴드 ‘플리트우드 맥’의 연주를 들었다면 블루스 록 밴드로 알 것입니다. 반면 1975년 이후 이들 음악을 들었다면 소프트 록 밴드로 알 것입니다.

 

 영미권에서 레코드 산업을 꽃피우게 한 아티스트들로 1960년대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틀스, 1970년대 플리트우드 맥을 꼽을 정도로 존재감이 대단합니다. 미국 한 평론가는 “린제이와 스티브는 1970년대 제이지(Jay-Z)와 비욘세”라고 칭했습니다. 그만큼 당시 ‘잘나가던 커플’이라는 것입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존 메이올의 ‘블루스 브레이커’ 출신인 피터 그린과 믹 플리트우드가 존 맥비, 제러미 스펜서, 대니 커완, 크리스틴 퍼펙과 영국 런던에서 플리트우드 맥을 결성했습니다. 당시 기타 실력에서는 에릭 클랩턴에 버금가는 실력이라는 평가를 받은 피터 그린을 포함, 스펜서, 커완 등 세명의 기타를 앞세운 이들 밴드는 끈끈하면서 정교한 블루스 록을 내세웠습니다.

 

 이들의 ‘알바트로스’는 영국 차트 1위에 올랐고 ‘오 웰’은 2위에 오르는 등 히트를 합니다. 하지만 피터 그린이 약물중독으로 팀을 이탈했고, 이후 스펜서와 커완도 팀을 나왔습니다.

 

 남은 이들은 근거지를 미국 캘리포니아로 옮겼습니다. 1975년 스티비 닉스, 린지 버킹엄을 받아들이면서 블루스적 요소를 빼고 팝적인 요소를 강화한 음반 <플리트우드 맥>이 크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루머스> 음반 제작 당시 밴드는 심각한 불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연인인 스티비 닉스와 린지 버킹엄 사이가 삐걱거렸고, 부부인 존과 크리스틴 맥비도 파경 직전이었습니다. 그런 어려움을 겪고 만들어낸 <루머스> 음반은 한 해에 1500만장이 팔리고, 미 빌보드 차트 음반 부문에서 31주나 1위를 차지했죠.


 1991년 스티비 닉스와 크리스틴 맥비가 탈퇴하면서 사실상 해체됐으나, 1997년 재결성해 <더 댄스> 음반을 발매하는 등 꾸준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1998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의 ‘공연자’ 부문에 올랐구요.

 

                    ‘플리트우드 맥’ 존 맥비(왼쪽)과 스티브 닉스가 2009년 미 뉴욕의 매디슨스퀘어 가든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최근 미국 시카고의 유나이티드 센터에서 이들 공연이 열렸습니다. 이날 공연의 주 곡목도 이들 둘이 핵심을 이루는 것들이었습니다. 23곡중 15곡이 <Fleetwood Mac> (1975), <Rumours>(1977) 그리고 <Tusk>(1979)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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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말부터 싸이(박재상·36)의 신곡 발표를 놓고 아마 음악담당 기자들이 고생깨나 했을 겁니다. 노래 '젠틀맨'은 11일 밤 12시, 즉 12일 새벽 0시에 공개됐습니다. 그 한곡을 듣고 부랴부랴 마감시간 내(대체로 30분 이내로) 기사를 쓰느라 다들 낑낑댔습니다.

 

 처음 '젠틀맨'이 공개됐을 때에는 "밍밍하구만"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전작인 '강남 스타일'보다는 느리면서, 좀더 희한한 단어(알랑가몰라) 같은 들을 많이 넣어서인지 귀에 착 감기지는 않더군요. (제가 이쪽 스타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이대로라면 지난번 것 같은 폭발적 히트는 어렵겠네'라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하지만 뮤직 비디오를 보면서 "괜찮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섹시함과 어처구니 없는 B급 상황을 버무린 것입니다. 암튼 확실히 싸이는 '오디오'형이 아니라, ''비디오'형, 특히 '공연장'형이었습니다.

 

 ‘젠틀맨’ 뮤직비디오의 조회수는 죽죽 올라갑니다. 13일 오후 9시 유튜브에 공개되고 16시간 만인 14일 오후 1시 1000만 조회수를 돌파했다. 한국 가수가 뮤직비디오 공개 첫날 유튜브에서 1000만 뷰를 넘긴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잘 나가는 아이돌 스타도 한 사흘은 걸린답니다. 그만큼 국내의 관심도 컸고, 외국인들도 많이 클릭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싸이의 글로벌 후속곡 ‘젠틀맨’의 뮤직비디오는 3개의 코드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놀부·무한도전·섹시’입니다.


 싸이는 이 뮤직 비디오에서 스스로 ‘놀부’ 캐릭터를 소화했합니다. 판소리 ‘흥부가’에서 놀부의 패악질은 정말 골고루입니다. ‘초상난 데 춤추기, 불난 집에 부채질하기, 길 가운데 허방(얉은 함정) 놓고, 잠든 놈에 뜸질하기, 눈두렁에 구멍 뚫기, 만만한 놈 뺨치기, 똥 누는 아이 주저 앉히기’ 등.


 싸이도 뮤직 비디오에서 간단치 않은 심술 실력(?)을 선보입니다. ‘러닝머신 속도 올려 넘어뜨리기, 커피 컵 밑 쳐서 흘리게 하기, 화장실 급한 이가 탄 엘리베이터 전 층 버튼 누르기, 방귀 손에 모아 도서관 공부녀 코에 들이밀기, 아이들 축구공 멀리 차버리기, 선탠녀 브라 끈 풀기, 앉으려는 여성 의자 빼서 넘어 뜨리기’ 등입니다. 참 질펀합니다.


 또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멤버들과 끈끈한 우애를 자랑했던 싸이는 이번에도 그들을 내세웠습니다. 하하는 앞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1980년대 유행한 ‘토끼춤’을 추는 <무한도전> 내 ‘하이브리드샘이솟아리오레이비’ 캐릭터를 그대로 선보입니다.

 

 유재석은 예전 ‘강남스타일’에서 입고 나온 금색 양복을 그대로 입고 나왔고, 노홍철은 여전히 허리를 흔드는 ‘저질댄스’를 보여줬습니다. 길은 민머리를 빗으로 빗으며 드라이기로 말립니다. 정형돈도 싸이가 의자를 빼 넘어진 여자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키려다 다시 손을 뿌리쳐 넘어트립니다. 박명수와 정준하는 서로 달라붙어 추는 끈끈한 ‘불륜 댄스’를 보여줍니다.

 

 

 가사와 음악 코드에서도 <무한도전>의 자취가 남아 있습니다. 노랫말에 나오는 “웻(wet·젖은) 싸이”는 2011년 <무한도전> ‘서해안고속도로 가요제’ 출연 때를 떠올린 것입니다. 당시 싸이는 입은 옷의 겨드랑이가 땀으로 젖은 게 TV화면에 고스란히 방송되면서, ‘겨땀’이라는 말을 유행시켰다. 이번 뮤직비디오에서도 “웻 싸이”라는 가사와 겨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한도전>에서 나오는 음악 만들기와 가요제 패러디에서 주로 유재석이 불렀던 일렉트로닉 부분이 “마더, 파더, 젠틀맨”이라는 반복 부분에서 고스란히 재연된 것들입니다.


 섹시 코드는 ‘강남스타일’보다 강화됐습니다. 뮤직비디오 초반에 앉아 있는 싸이 뒤에서 짧은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 격렬한 춤을 추는 장면으로 이를 예고합니다. 싸이는 백화점에서 여성 모양 마네킹의 가슴을 더듬거나, 선탠하는 여성 비키니 수영복 상의를 풉니다. 여성 그룹 ‘브라운 아이드 걸스’ 소속 가수 가인은 포장마차에서 입안 가득 어묵을 물고 묘한 눈빛을 보냅니다. 또 '메이킹 필름'에서는 신호등 앞에서 섹시한 ‘봉춤’을 추고 있습니다.

 

 수영장에서 누워있는 남자들 위에서 다리를 벌리고 선 비키니만 입은 여성들이 춤을 추기도 합니다. 섹시코드는 싸이와 가인, 댄스팀이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허리를 흔드는 시건방춤을 추면서 최고조에 오릅니다.


 결국 이 뮤직비디오는 ‘젠틀맨(신사)’이라는 껍데기 속에 숨은 못된 심보와 섹시한 여성을 엿보려는 음험한 시선을 싸구려, B급 문화의 렌즈로 비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싸이는 그런 이들을 한껏 비웃는 ‘위악(僞惡) 떠는 중년 악동’인 셈이죠. "이 싼마이(일본말에서 유래한 비속어 입니다. 싸구려, 하류 등의 뜻인데, 아무래도 싼마이라고 해야 입에 착착 붙는 느낌입니다)들아, 니들이 무슨 신사야"라고 일갈하는 듯합니다. 좀 과도하게 해석한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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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Shot, One Kill". 저격수들의 모토입니다.

 

 근데, 저 모토처럼 한방에 맞고 가슴에 팍 꽂히는 노래들이 있습죠. 마치 백지영의 '총맞은 것처럼' 팍팍 꼽히죠.

 

 10대, 20대에는 노래를 하나 들어도 콱 콱 꽂혀대곤 했습니다.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은 한 곡 'Roundabout' 때문에 Yes의 <90125> 이전 음반을 모두 사고, 'Since I've been Loving You' 한곡으로 Led Zeppelin을 전작하고, 'After Midnight' 한곡을 듣고 Eric Clapton을 지금도 나오는 것들을 사모으고 있고,  'Stargazer' 한 곡을 듣고 Rainbow, Deep Purple, Dio로 이어지는 메틀 밴드의 음반들을 사모으곤 했던...

 

 

 

Led Zepplin

 

 

'What Game Shall We Play today'로 접어든 Chick Corea, 'Round Midnight'로 한방에 훅가게 만든 Miles Davis 등등등등,

 

 

                     Chick Corea

 

 

 

 

 

 하지만 30대, 40대로 넘어가자 꽂히는 속도와 강도가 급격히 묽어지고 얕아지고. 나이를 들어서인지, 아니면 "옛 것이 좋은 것이여" 습성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연주력과 곡 구성에 중점을 두고, 거장들을 우대하는 습벽을 만든 것 같습니다. 그래서 favorite band, 여전히 먼지가 앉지 않는 음반은 Led Zeppelin, Yes, Queen, King Crimson, Chick Corea 등입니다.

 

 그런 30, 40의 얄팍하지만 거칠고 제법 단단한 감성의 벽을 단숨에 꿰뚫는 곡들은 늘 존재했습니다. 그게 바로 Nirvana의 Smells Like Teen Spirit입니다. 머리를 얼마나 안 감았는지 떡이 된 커트 코베인이 악에 악을 써대는 저 노래는, 그야 말로 질풍노도 아니던가요.

 

 

                 열반 ㅠ.ㅠ

 

그리고 Eddie Vedder가 텁텁한 목소리로 부른 Pearl Jam의 'Even Flow'도 있구요.

 

Oasis의 Wonderwall, Keane의 Everybody's Changing, Radiohead의 Creep. 이들 세 곡도 마찬가지. 공교롭게 영국 밴드들이고, 그 노래에는 그들 특유의 자존심이 옅보이죠. 영화 <Once>에 삽입돼 듣는 순간 제 가슴을 후려 쳤던 Glen Hansard과 Marketa Irglova의 ‘Falling Slowly’도 그렇구요.

 

                 영화 <원스> 

 

최근 한국 밴드 '버스커 버스커'의 '여수 밤바다'도 있네요.

 

하지만, 그런데도 과거와 달리 이들 노래가 가슴에 꽂혀도 해당 아티스트 음반 전체를 모두 사모으는 짓(?)을 하지는 않았다는 점. 철 든 것인가, 아님 열정이 식은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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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owhere 2013.04.13 19: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되게 잘 쓰시네요. 이런 정성들인 글에 댓글이 없다니
    one shot, one kill 이라, 적절한 표현입니다 ㅋ
    유명하고 아니고를 떠나 그냥 확 꽂히죠, 이런 음악들엔.

  2. 최우규 2013.04.14 16: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되게 잘 쓴다'고까지 칭찬해주셔서 몸 둘바를....

2011년 9월 (회사 측 재촉에 ㅠ.ㅠ)등 떼밀려 블로그가 개설된 뒤 1년 반 정도 된 것 같습니다. 그 동안 6만여명이 이곳을 찾아주셨습니다. 고개 숙여 인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제 블로그 글은 주로 음악 이야기를 중심으로 합니다. 10대 때부터 이런 저런 음악들을 들었으니, 한 30여년 들었네요"세상에 자기 인생만큼 음악을 듣지 않은 이가 누가 있겠느냐"라고 여쭈시면, 뭐.. 딱히 반론할만할큼 '전문가' 이런 거는 아닙니다. 그저 재즈, 록, 블루스, 팝(이런 구분법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만은) 등등 잡식성으로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술 한잔 하고 이야기할 때 안주거리로는 음악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음악 풍이 있습니다. 1980년대 중후반 풍인데, 해몬드 오르간이 뒤를 꽉 채워주면서 조용하게 시작해 점차 고조되는 방식들이죠. 최근 발견한 그런 노래는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입니다. 록에서는 Jethro Tull의 'Wondering Aloud', Mike Bloomfield and Al Kooper의 ‘The 59th Street Bridge Song (Feelin’ Groovy)’ The Beatles의 'I Want You(She’s So Heavy)'(http://youtu.be/mW6G3nh5S3I), Queen과 David Bowie의 ' Under Pressure', Prince의 'Purple Rain' 같은 곡들입니다.


마이크 블룸필드와 알 쿠퍼


아니면 아예 그 반대 편에 서 있는 곡들로, Pink Floyd의 <Wish You Were Here>나, King Crimson <In the Court of Crimson King>, Yes <Close to the Edge>, Mike Oldfield <Hergest Ridge>(http://youtu.be/3bzLMzQJBSg) 등 프로그레시브 록 계열도 좋아합니다.


                  Pink Floyd의 <Wish You Were Here>


재즈에서는 Pat Metheny(특히 'Are You Going With Me' 정말 좋아합니다), Kieth Jarret, Chick Corea, Miles Davis, Weather Report 등을 좋아합니다. Main Stream 보다는 퓨전에 가까운 Cool 쪽을 좋아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정치 이야기가 많습니다. 정치부 기자를 '자의반 타의반(ㅠ.ㅠ)'으로 한 10여년 했습니다. 주로 현 야당 쪽을 많이 취재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정치권 인사들을 이런 저런 식으로 접촉해봤습니다. 누구랑은 밤새 통음하면서 논전도 벌여보고, 누구랑은 웬수처럼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 나름의 '눈'과 '의견'이 생기더군요. 다만 제 기사나 글을 죽 보시면 혹시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지만, 제일 저어하는 것이 '정치 혐오증'입니다. 정치인을 미워하거나, 정당을 미워할 수는 있지만, 정치권 전체, 국회 전체를 혐오하게 만드는 기사를 저는 '나쁜 기사'로 봅니다.


정치권, 국회 전체를 혐오하게 되면 결국은 일본이나 이탈리아의 길을 가게 됩니다. 국민, 좀더 엄밀하게 따지면 유권자들이 정치를 혐오하면 관심을 끊게되고 투표를 안하게 됩니다. 그럼 그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느냐, 기득권층에 돌아갑니다. 그것도 '나쁜' 기득권자들에게 갑니다.


 착한 기득권자들도 있겠죠. 하지만 나쁜, 못된 기득권자들이 부각되기 마련입니다. 현재 자신들이 갖고 있는 권력과 자본을 놓치지 않으려는 이들, 그리고 자기들까지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정치 엘리트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아무리 잘못해도 징치되지 않기 때문에, 예전에 하던 나쁜 짓을 그대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 대안은 뭐냐'라고 물으시는 분도 있겠지요. 옛 한 개그맨 이야기대로 "어렵지 않아요."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면 됩니다. 좋아하는 정당은 칭찬하고 정치자금(1만원도 좋습니다)을 주고,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정당에는 항의도 하고, 비판도 하고. 무엇보다 투표하시구요. 놀랍게도 정치인들, 정당은 여론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그렇게 되면 정치는 국민, 다시 엄밀하게 따지면 유권자의 것이 되는 겁니다. "그 나라의 정치(의회, 대통령)는 그 국민의 수준"이라는 건 재론이 필요없는 정의지요.


암튼 말머리가 길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Posted by 최우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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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민영 2013.04.10 19: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릴게요. 좋은 음악담당 기자가 회사에 있어서 참 좋아요. ;)

  2. 최우규 2013.04.10 2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라는 거죠? ㅎㅎㅎ

  3. 박효재 2013.04.11 1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아요' 버튼이 없는 게 아쉽네요. 항상 양질의 콘텐츠 제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4. 이인숙 2013.04.11 15: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ㅎㅎ 꾸벅~

 재즈 피아니스트 곽윤찬. 사실 이번에 그의 음반은 처음 들었습니다. 첫 음반 낸 때가 2000년이었고, 이후 2003년, 2005년에 냈습니다. 하지만 그가 음반을 냈을 때 공교롭게 계속 다른 분야를 맡고 있었고,(이를테면 정치부, 사회부 사건기자 등) 그의 음반을 접해보지 못했습니다.

 

재즈 피아니스트 곽윤찬                     소니뮤직 코리아 제공

 


 한 2주전쯤 그가 음반을 낸다는 보도자료가 나왔습니다. 궁금해서 포털을 검색해봤더니, ‘한국 최초의 타이틀을 가진’ 등등으로 표현됐습니다. 블루노트에서 처음 음반을 낸 한국 재즈 뮤지션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블루노트에서 음반을 내는 일은, 재즈의 변방국인 한국에서는 어찌보면 놀라운 일입니다.


 클래식에서 마치 도이치그라모폰이나 데카 같은 명문 레이블에서 처음 음반을 냈다는 것과 비슷합니다. 클래식 분야에서야, 한국인의 우수성은 잘 알려져 있기에 그런 명문 레이블에서 음반이 자주 나옵니다. 하지만 재즈는 다르죠. 매우 척박한 토양에, 국내 시장도 발달해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버브, 임펄스, ECM, 프레스티지 같은 명문 레이블에서 음반을 내는 것은 여전히 기적 같은 일입니다.


 그는 2000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 재즈 레이블 EmArCy로 데뷔했고, 2005년에는 자신의 3집인 ‘누마스’를 블루노트에서 발매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2006년 한국인 최초로 일본 재즈 시장에 진출했다고 돼 있는데, 이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미 강태환이나 김대환 같은 분이 진출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일단 그의 음반 세션맨들 이력을 살펴보면 입이 떡 벌어집니다. 세계적 리듬 앤드 블루스(소몰이 창법으로 우우~거리는 뽕짝씩 알앤비 말고요) 가수인 브라이언 맥나이트가 노래를 불렀습니다. 드럼 주자는  비니 콜라이유타(Vinnie Colaiuta)가 맡았습니다. 칙 코리아, 허비 행콕, 스팅 등과 연주한 사람입니다.

 

 마이클 잭슨의 베이시스트로도 유명한 알렉스 알(Alex Al), 휘트니 휴스턴, 조지 듀크, 마커스 밀러 등과 작업한 기타 주자 폴 잭슨 주니어(Paul Jackson Jr.), 곽윤찬과는 인연이 깊은 래리 쿤스(Larry Koonse)가 참여했습니다. 색소폰도 칙 코리아 일렉트릭 밴드의 에릭 마리엔털(Eric Marienthal)이, 퍼커션은 롤링 스톤즈, 웨인 쇼터, 토토, 존메이어 등과 작업한 레니 카스트로(Lenny Castro)가 맡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호화 멤버를 모았느냐는 질문에 곽윤찬은 “사실 섭외가 불가능한 뮤지션들”이라면서 “데모 앨범을 미디 파일로 만들어 보냈더니 다들 그걸 듣고 흔쾌히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전해 함께하게 됐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는 3, 4년 전 음반 낼 때부터 같이 하고 싶었는데, 당시 미국에 눈이 너무 많이 와서 항공편이 취소되는 바람에 무산됐다는 것입니다. 그는 “데모(시연)음반과 악보를 만들어 컴퓨터 파일로 보냈더니, 그걸 듣고 참여 의사를 결정했다. 맥나이트는 파일을 들은 다음날 바로 함께 하자고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곽윤찬씨는 이들을 ‘인맥’이 아니라 자신의 음악을 걸고 실력으로 댕겨왔다는 점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곽윤찬은 맥나이트에 대해 “재즈적인 음색을 가장 잘 이해하는 가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는 거의 모든 악기를 다 다룰 줄 안다. 진정한 뮤지션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맥나이트 기타 연주력은 재즈 뮤지션들이 인정할만큼 훌륭하다고 합니다.


 참가자 면면을 보시면 알겠지만, 이번 음반은 스탠더드가 아닌 퓨전 재즈입니다. 왜 스타일을 바꿨을까요.
 8일 서울 서초동 소니코리아뮤직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가 열렸습니다. 여기서 그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예전부터  하고 싶었으나, 미뤄왔다. 정통 재즈를 우선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모두들 즐길 수 있는 음악을 해야 겠다고 생각해 퓨전을 하게 됐다. 앞으로도 퓨전을 하게 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곽윤찬이 음반을 만들며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사운드입니다.  “곡이 아무리 좋아도 사운드가 좋지 않으면 음악을 온전히 듣지 못하게 된다. 부분으로만 듣게 된다. 좋은 사운드를 내기 위해 잭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썼다. 믹싱도 처음으로 직접 했다”고 했습니다.


 이번 음반을 내건 투어 여부도 주목받았습니다. 곽윤찬은 “이번 음반을 내고 멤버들이 ‘라이브 음반을 내자’고 하고, 브라이언 맥나이트는 투어를 하자고 하는데 나에게는 결단이 필요한 문제다. 신중하게 결정하겠다. 미국 투어는 준비중인데, 이것도 확정된 뒤 알려드리겠다”고 말했습니다.

 

 

곽윤찬 5집 음반 <49>     소니뮤직 코리아 제공

 

 적녹 색약 검사지를 연상시키는 앨범 재킷은 브라운아이드소울의 나얼이 디자인했습니다.
 곽윤찬은 “남자들 4%가 적녹 색맹이라고 한다. 저도 적록색약이라 이 표지가 잘 안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아마 볼 수 있는 사람에게만 좋은 점이 보인다는 의미로 디자인해준 것 같다"고 웃으며 말한 뒤 "이게 안보이는 분들을 위해 표지를 열어보면 CD 표면에 명확하게 ‘49’라고 써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음반 제목 <49>에 얽힌 사연도 털어놓았다.
 “결혼하고 10년이 지나도록 아이를 갖지 못했어요. 결혼 10주년을 맞아 몰디브로 여행을 갔는데 거기서 아이를 얻었습니다. 그곳에서 열쇠를 하나 사와 집에 걸어놓았다. 아이가 태어난 뒤 한참 뒤 '여기에 49번이라고 써 있어'라고 했습니다. 블루노트에서 음반을 낸 것도 그 때입니다. 아이 초등학교 추첨 때 받은 ‘가번호’도 49였습니다. 음반 발매 예정일도 당초 2월28일이었지만 미국 일정이 밀려서 4월9일이 됐습니다. 49란 숫자는 제게 휴식, 진정한 평안 같은 게 아닐까 합니다.”


 음반을 돌려봤습니다. 첫곡 ‘49’는 피아노가 음악 전체를 리드합니다. 느리고 힘을 확 뺀 곡입니다. 데이비드 그루신을 연상시키는데, 이번 음반 수록곡은 '이렇습니다'라고 소개해주는 곡 같습니다.
 두번째 곡 ‘오프닝 벨’은 일렉트릭 키보드가 귀를 잡습니다. 곽윤찬의 부인이 휴대전화를 바꿨는데 벨 소리가 마음에 안들어 직접 만들어주고, 그 음을  곡으로 만든 게 바로 이 ‘오프닝 벨’이라고 합니다.
 3번째 곡 ‘랩쳐’는  친숙한 멜로디와 ‘달달함’이 특징입니다.  중간 중간에 들어가는 폴 잭슨 주니어의 기타 연주, 에릭 매이엔탈의 색소폰도 모두 달달합니다.
 네번째 곡 ‘디시 이스 마이 파더스 월드’는 영국 민요를 재즈로 편곡한 것입니다. 래리 쿤스의 디스토션을 걸지 않은 기타 소리가 정겹습니다.
 다섯번째  ‘유 아 마이 패밀리 인 헤븐’은 꼭  케니G곡 달콤한 연주곡 같습니다.

  여섯번째 ‘노 타임 투 펑크’는 가장 연주력을 돋보이게 하는 곡입니다. 기타, 베이스 기타 등 모두 전면에 나서 서로 기량 겨룹니다. 베이스 기타의 솔로 연주가 신납니다.
 일곱번째 ‘인크레 더블’은 조용하고 느린 템포에서 점점 고조되는 곡입니다. 키보드의 백업 연주가 매우 뛰어납니다. 여덟번째 ‘누마스’ 가장 스탠더드 재즈에 가까운 발라드입니다. 이 누마스는 아이를 얻은 몰디브 호텔 이름입니다. 꼭 녹턴을 재즈로 만든 것 같고, 아이를 위한 자장가 같은 멜로디도 들어 있습니다.
 아홉번째 곡인 브라이언 맥나이트가 노래한 ‘에버 포에버 웬에버’입니다. 리듬 앤 블루스 곡으로, ‘소몰이 창법’이라는 정체불명의 꺾기를 넣은 한국식 ‘알앤비’와는 좀 다릅니다. 미국 시장을 겨냥한 노래가 아닌가 싶습니다.


 곽윤찬은 빠른 운지나 숨막히는 애들립(즉흥연주)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대신 음을 정박에서 늦추거나 당기는 ‘싱코페이션’으로 작은 순간에도 계속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일렉트릭 키보드가 어색하지 않습니다. 이번 음반은 자신이 밝힌 것 처럼 ‘대중’을 겨냥한 듯 한데, 그러다보니 정통 재즈(특히 비밥처럼 통통 튀는)나, 타이트하게 곡이 전개되는 퓨전 재즈를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밋밋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재즈 피아니스트 곽윤찬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재즈, 사운드에 대한 철학’을 들려달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곽윤찬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철학은 잘 모르겠습니다. 전 아티스트로 불리는 게 부담스럽습니다. 전 그냥 뮤지션입니다. 듣는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죠. 좋은 논문을 발표하는 식으로 (음반을 내놓고)끝나는 게 아니라, 내 음악을 듣고 대중이 좋아하게 만드는 사명이 있습니다. 대중과 함께 하거나, 대중을 이끄는 음악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TRACKLIST
01. Forty Nine   
02. Opening Bell   
03. Rapture   
04. This Is My Father’s World   
05. You Are My Family In Heaven   
06. No Time To Funk   
07. Incre Double   
08. Noomas   
09. Ever Forever Whenever (feat. Brain McKnight)

Posted by 최우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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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국 BBC의 '라디오2'라는 곳에서 청취자를 대상으로 '시대 구분 없이 명반 10선'을 조사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재미난 결과가 나왔습니다. 비틀즈(The Beatles) 아성을 콜드플레이(Coldplay)가 무너뜨린 것입니다..

 

영국 리버풀 출신의 전설적 4인조 밴드 비틀즈의 음반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트 클럽 밴드(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는 웬만한 음반 선정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해왔습니다. 1967년 제작된 뒤 46년간 지위를 굳건히 지킨 것은 음악성과 혁신성, 음질, 예술적 음반 커버 등이 다양하게 작용해서입니다.

 

The Beatles

 

<서전트> 음반은 1968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음반’과 ‘올해의 음반 디자인’ 등 두개 부문을 수상했고, 2004년 미 의회 도서관의 ‘내셔널 레코딩 레지스트리’에 영구 등재됐습니다. 음악 전문지 ‘롤링 스톤’의 2009년 ‘역대 최고 음반 500선’에서 <서전트…> 음반이 1위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런던대 출신 4인조 밴드인 콜드플레이의 2002년 음반 <어 러시 오브 블러드 투 더 헤드(Rush Of Blood To The Head)> 음반이 이 <서전트>를 밀어낸 것입니다. 최근 영국 공영방송 BBC의 ‘라디오2’ 청취자들이 뽑은 ‘음반 10선’에서 1위로 꼽았다.

 

 

 Coldplay

 

 

2위는 4인조 모던 록 밴드 키언(Keane)의 <호프스 앤드 피어스(Hopes and Fears)>가 올랐습니다. 피아노가 주도하는 말랑말랑한 곡들이 듣기 좋습니다.


3위에 오른 음반이 매우 뜻밖이었습니다. 바로 1980년대 뉴웨이브 밴드인 듀란 듀란(Duran Duran)의 <리오(Rio)>입니다. 1980년대 여장 남자인 보이 조지가 이끈 컬처클럽(Culture Club)과 함께 소녀 팬을 양분했던 이 잘생긴 남자들이 아직도 이렇게 영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사실 듀란 듀란은 잘 생긴 외모 때문에 음악 역량이 저평가됐다고 생각합니다.

 

        꽃미남 밴드의 원조격인 Duran Duran

 

 4위는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콘셉트 음반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The Dark Side Of The Moon)>이 올랐습니다. 그 많고 많은 프로그레시브 밴드 음악중 딱 한 가지만 오른 것 보면 영국에서도 프로그레시브 록은 쇠퇴하는 것 같습니다. 킹 크림슨(King Crimson)의 <인 더 코트 오브 더 크림슨 킹(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정도는 올라와 있을 줄 알았는데. 암튼 이 <달의 암부> 음반은 워낙 오래 음반 차트에서 올라, 아마도 청취자들 귀에 오래 남은 것 같습니다.


5위에는 솔로로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여성 가수 다이도(Dido)의 <노 앤젤(No Angel)>이, 6위에는 노장 록 밴드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의 <스티키 핑거스(Sticky Fingers)>가 차지했습니다. 이 음반은 재킷 앞 부분에 진짜 지퍼가 달려 있습니다(밑의 재킷 사진 참조). 저도 이 음반을 LP로 갖고 있는데, 이 지퍼가 옆 재킷을 자꾸 긁어서 속상합니다.


7위에는 신스팝, 댄스 록 밴드 펫 숍 보이즈(The Pet Shop Boys)의 <액추얼리(Actually)>가, 8위에 비틀즈 <서전트…>, 9위에는 유투(U2)의 <더 조슈아 트리(The Joshua Tree)>, 10위에는 퀸(Queen)의 <어 나이트 앳 디 오페라(A Night At The Opera)>가 차지했습니다.


눈치 채신 분도 있겠지만, 저 10장의 음반중 영국 출신이 아닌 아티스트의 음반은 유투가 유일합니다. 유투는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결성된 슈퍼 밴드죠.

 

대체로 영미권 아티스트들일 것이라고는 예상했지만, 미국 등 다른 나라 가수들은 철저하게 배제돼 있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활동은 영국에서 주로 했던 지미 헨드릭스나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 팝의 황제인 마이클 잭슨 음반이 하나쯤 있을 법도 한데, 전혀 아닙니다. 재즈 등 다른 장르의 음반도 없습니다.

 

또 다이도를 제외한 전 음반이 모두 밴드, 그것도 남성 보컬을 앞세운 것입니다. 이쯤 되면 편벽하다고 봐야하나요, 아님 애국심이라고 해야 하나요. 기실 오아이스(Oasis)나 라디오헤드(Radiohead) 등 영국 밴드 음악을 들으면 왠지 '지극한 자존심', 그것을 넘어 '오만함'까지 느껴지지요. 연주 태도도 그렇고요. 저만의 '오해'인가요?

 

 

Top 10 albums of all time, voted by BBC Radio 2 listeners
  1. Coldplay - Rush Of Blood To The Head (2002)

   


 

 

 2. Keane - Hopes and Fears (2004)

 


 

 

  3. Duran Duran - Rio (1982)

 


 

 

  4. Pink Floyd - The Dark Side Of The Moon (1973)

 


 

 

 5. Dido - No Angel (1999)

 


 

 

  6. The Rolling Stones - Sticky Fingers (1971)

 


 

 

  7. The Pet Shop Boys - Actually (1987)

 


 

 

 8. The Beatles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1967)

 


  9. U2 - The Joshua Tree (1987)

 


 

 

10. Queen - A Night At The Opera (1975) 

 

 


Posted by 최우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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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 90년대 인기를 끌었던 헤비메틀 밴드 ‘건즈 앤 로지스’를 기억하시나요. LA메틀의 대표급인 이 밴드는 술과 여자, 마약 등 악동 이미지가 덧칠해져 있습니다. ‘공격적이면서도 매우 서정적 멜로디’라는 상반된 특질을 잘 매만진 밴드입니다. 11월이 되면 라디오에 늘 나오는 ‘노벰버 레인’은, 마치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10월31일 종일 흘러나오듯하는 계절 송(季節 song)입니다. 최근 밴드 ‘버스커버스커’의 히트곡 ‘벚꽃 엔딩’이 1년만에 봄이 되니까 다시 인기를 끄는 것과 비슷하죠.

 

 이 건즈 앤 로지스 출신 기타리스트 슬래쉬(48)가 5월 방한합니다. 9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 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리는 한국의 메탈 음악 페스티벌 ‘메탈페스트2013’에 출연하기 위해서죠. 1999년, 2011년에 이어 3번째 방한하는 슬래쉬와 e메일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는 “흥분된다”며 “메탈페스트 공연은 정말 굉장할 것”이라고 썼습니다.

 

''Guns N' Roses 출신 Slash     /사진 액세스ENT

 

 

 그는 2011년 첫 단독 내한 공연을 했습니다. 당시 매진을 기록했죠. 슬래쉬는 당시를 회고해달라는 요구에 “솔직히 저는 한국 관객이 그렇게 에너지가 넘치고 정열적인지 몰랐다. 관객들은 대단했다. 그게 바로 제가 다시 한국에 오게 된 큰 이유”라고 말했습니다.

 

  이게 단순히 입바른 칭찬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실제 딥퍼플이나 드림시어터, 메탈리카 같은 해외 밴드들은 한국에 와서 관객의 열광에 놀라곤 했습니다. 특히 옆 나라 일본 관객들이 매우 얌전하다 못해 ‘의자에 앉아만 있는’ 상황을 겪고 한국에 오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역동적 모습이 더욱 인상 깊은 것 같습니다.

 

 영국의 스토크-온-트렌트 지역 출신인 슬래쉬는 음악 산업을 하는 양친 밑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데이비드 보위의 <더 맨 후 펠 투 어스> 음반 제작 당시 옷 디자이너였습니다. 아버지는 닐 영이나 조니 미첼 같은 이의 음반 디자이너였습니다. 일찌감치 뮤직 비즈니스에 접촉한 셈이죠.

 

 슬래쉬는 어릴 적 부모를 따라 미국 할리우드에 정착했습니다. 중학교 때 처음 기타를 잡은 그는 스티븐 애들러라는 드러머를 만나 '로드 크루'라는 밴드를 구성했습니다. 이 팀을 하면서 훗날 건즈 앤 로지스 팀원들을 만나게 됩니다.

  1985년 ‘건즈 앤 로지스’는 <애피타이트 포 디스트럭션>으로 데뷔했습니다. 이후 1991년 <유즈 유어 일루션> 1, 2집 등으로 정점에 달합니다.

 

 슬래쉬는 원통형 머릿부분을 가진 모자 ‘탑 햇’, 덥수룩하게 얼굴을 덮는 머리, 연주 중에도 꼬나문 담배 등으로 건즈 앤 로지스의 주요한 이미지를 구성했습니다.

 

 ‘왜 늘 탑 햇’을 쓰느냐’는 질문에 그는 “내성적이기 때문이다. 공연 때나 많은 군중 앞에 있을 때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거나 선 글라스를 쓰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늘 새로운 모자를 찾곤 했는데 어느날 탑 햇을 쓰자 덜컥하고 들어맞았다. 그 뒤론 주욱 쓰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건즈 앤 로지스는 지난해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죠. 슬래쉬는 이를 반기면서도 “ '오리지널' 건즈 앤 로지스가 그런 업적을 인정받은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빠진 이후의 건즈 앤 로지스는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입니다. 그는 ‘건즈 앤 로지스’가 재결합할 가능성이 있으냐는 질문에는 아예 반응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1990년대 팀내에서 보컬리스트 액슬 로즈와 음악 주도권을 놓고 불화를 겪었습니다. 로즈와는 늘 불화였죠. 로즈는 1990년 롤링스톤즈 공연의 오프닝 무대에서 서서는 “어떤 멤버가 브라운스톤씨(헤로인)와 춤추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 밴드를 떠나겠다”고 선언했답니다. 이는 슬래쉬와 드러머 스티븐 애들러를 겨냥한 것이죠.

 

 음악적으로 그는 블루스를 기반으로 하는 하드록에, 액슬 로즈는 기계음을 더 내세우는 인더스트리얼과 일렉트로닉 계열에 좀더 경도돼 있습니다. 슬래쉬는 1996년 탈퇴해 자신의 밴드를 만들거나 솔로로 활동하며 음반 2장을 내놓았습니다.

 

 사실 ‘잘 나가는’ 밴드로부터 불화로, 혹은 자청해서 떠난 멤버들은 대체로 이전만큼 잘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에릭 클랩턴이나 스팅, 저스틴 팀버레이크처럼 계속 성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핑크 플로이드’를 떠난 로저 워터스, ‘저니’를 떠난 스티브 페리 같이 되는 게 대부분입니다.

 

 슬래쉬도 탈퇴 직후에는 잠깐 방황합니다. 마이클 잭슨 무대에서 연주를 해주는 등 ‘광대 노릇’을 했다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그의 첫 한국 방문은 1999년 마이클 잭슨 내한공연 때입니다.

 

  이후 블루스와 솔 풍미가 있는 묵직한 음악으로 다시 인정을 받게 됩니다. 한참 지난 뒤이지만 2010년 첫 솔로 음반 ‘슬래쉬’에는 모토 헤드의 레미, 이기 팝, 오지 오스본 등 쟁쟁한 록 보컬리스트를 동원해 성공을 거뒀습니다. 2011년에는 영국 고향에서 펼쳤던 실황을 <메이드 인 스토크>라는 라이브 음반으로 냈고, 지난해에는 <아포칼립틱 러브> 음반을 냈죠.

 

 이번 내한 공연에는 이 <아포칼립틱 러브>에서 노래한 마일스 케네디와 함께 합니다. 슬래쉬는 “마일스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그의 독특한 음성으로 인해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며 “그는 남자 가수들에게 흔하지 않은 감성적인 면도 있고 뛰어난 음역을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마 그것 말고도 케네디를 좋아할 이유가 더 있을 겁니다. 액슬 로즈 같지 않고 자신과 잘 지낸다는 것도 중요한 요인일 것 같습니다.

 

 슬래쉬는 좋아하는 블루스 기타 연주자로 “비비킹과 알버트 킹”을 꼽았습니다. 그리고 협연했던 기타리스트중 기억나는 이로 비비킹과 함께 밴드 ‘퀸’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를 우선 언급했습니다. 슬래쉬는 “브라이언 메이는 제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록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며 “ ‘롤링스톤스’의 론 우드, ‘토토’의 스티브 루카더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다”고 소개했습니다.


 슬래쉬는 “기타는 나에게 엄청난 의미를 갖고 있다”며 “기타가 없었으면 나도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음악과 기타는 나의 85% 정도를 구성하고, 나머지는 그를 위한 필터”라고 했죠.

 

 ‘연주할 때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는 질문에 슬래쉬는 “쇼 전체를 본다”면서 “연주의 절반은 (곡에 대한)‘집중’이고, 나머지는 즉흥적 에너지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자신의 연주에 ‘남성성’이 강하다는 지적에 “그렇게 생각한 적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는 “강하고 공격적으로 연주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남성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섬세하고 우아하게 연주하려고도 한다”고 밝혔죠.

 

 그는 ‘제2의 슬래쉬’를 꿈꾸는 ‘기타 키즈’들에게 “헌신, 전념, 연습하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는 “기타 연습은 매우 힘들고, 화려한 것이 아니다”라며 “직업으로 기타를 선택하려고 하는 사람은 정확히 어떤 분야에 자신이 들어갈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슬래쉬는 또 “훌륭한 기타리스트가 되어도 생활이 어려울 수 있고, 실력이 뛰어나지 못한 기타리스트들이 큰 성공을 거둔 경우도 있다”며 “이 세계는 성공 아니면 실패가 항상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에 항상 즐기면서 기타를 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가 출연할 메탈페스트는 2001년 8월 23일 서울 동대문 운동장에서 처음 열렸습니다. 슬레이어, 머신헤드, 아크에너미, 세풀투라 등 1급 밴드가 무대에 섰었죠. 지금 봐도 굉장한 멤버들입니다. 무려 12년 만에 열리는 이번 무대에는 슬래쉬와 세계적인 메탈 밴드 ‘데프톤즈’ 국내 밴드 ‘옐로우 몬스터즈’ 등 3팀이 서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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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네티즌이 쓴 조선시대 당쟁 관련 글입니다. 정말 기가 막히게 잘 정리해놓았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순두부'라는 네티즌이고, 원본은 바로 밑의 인터넷 주소입니다. 이 글은 퍼온 글입니다.

 

자유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토론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Name   순두부
Subject   탕수육으로 본 조선시대 붕당의 이해






조선시대 탕수육이라는 중국의 새로운 메뉴가 들어오자 많은 신하들은 이걸 어떻게 먹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면서 많은 신하들이 이 탕수육을 어떻게 먹을것인가 논쟁을 벌였고
그와중에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먹어야 한다는 동인과 탕수육을 소스에 찍어먹어야 한다는 서인으로 나뉘게된다.

동인은 평소에 거침없이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먹던 이황과 조식의 학풍을 따랐으며
서인은 이황과는 다르게 소심하게 탕수육을 찍어먹던 이이를 당의 종주로 삼았다.





부먹파의 거두 이황.



찍먹파의 거두 이이.



처음에는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먹던 동인이 대다수였고 서인의 세력은 작았다.
따라서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먹는게 정답인양 굳어졌는데 이 방법을 주장하던 동인도 둘로 나뉘어졌으니
온건파로서 소스를 붓기전에 상대에게 붓는다고 동의를 구하는 남인과
과격파로서 그냥 포장지를 뜯자마자 바로 소스를 붓는 북인이다.

광해군 시기 북인은 남인과 서인을 몰아내고 탕수육을 상대의 동의없이 막 소스를 부어 먹었으며 이는 서인들로 하여금 크나큰 분노를 가지게 만든다.





동의없이 소스를 붓는 북인에 분노하는 서인




그러던 중 식사때 북인은 동의도 없이 소스를 붓다가 탕수육소스가 아닌 짬뽕국물을 부어버리는 대사건을 일으켰으며 이에 극도로 분노한 서인은 반정을 일으켰고 북인은 축출되며 그 이후부터 탕수육에 소스를 동의없이 붓는 행위는 패륜적인 행위로 간주되었다.





서인반정을 불러일으킨 대참사. 이에 분노한 서인은 북인을 몰아내고 인조반정을 일으키게 된다.





서인이 집권하며 탕수육을 소스에 찍어먹는 게 정석이 된다. 하지만 여전히 탕수육은 소스를 부어먹어야 제맛이라는 남인들이 있어 두 당은 열심히 싸웠고 이는 탕수육을 어떻게 먹는것이 옳은가라는 예송논쟁으로 더욱더 격화된다.





예송논쟁. 탕수육을 한번만 찍어먹는게 예법에 맞는가 소스에 푹담궈 세번은 담궈먹어야 예법에 맞는가를 두고 서로 격하게 입배틀을 벌였다.





현종이후 집권군주였던 숙종은 탕수육을 소스에 찍어먹는걸 좋아하는 인현황후와 그냥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버리고 먹는걸 좋아하는 장희빈의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며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먹는걸 공인했다가 다시 소스에 찍어먹는걸 공인하는등 갈팡질팡한다. 그러한 와중에 서인과 남인의 갈등은 점점 극으로 치닫게 된다.

그와중에 정권을 잡은 서인은 조금만 담그고 먹는 노론과 오랫동안 푹담그고 먹는 소론으로 나뉘게 된다. 
노론은 탕수육을 그렇게 푹 담궈서 찍어먹으면 애시당초 소스를 부어먹는것과 뭐가 다른가라며 소론을 공격했고 소론은 소스를 부어먹는것도 그렇게 나쁘지않다면서 남인에게 우호적이었다.





노론의 거두 송시열. 그는 탕수육을 소스에 오랫동안 담그는 행위 자체를 사문난적으로 보았다.




노론,소론,남인이 서로 치열하게 다투자 집권한 영조는 탕평책을 제시하여 절반은 소스를 붓고 절반은 찍어먹는 안을 제시한다. 
하지만 영조 자신도 노론쪽으로 기울어진 왕이었고 점점 탕평책은 그 힘을 잃은채 빛이 바래지게 된다.

그러던중 사도세자는 소스를 찍은 탕수육을 간장에 찍어먹다가 영조에게 분노를 사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게되고
이런 사도세자에게 동정적인 세력이 시파가 되고 사도사제에게 부정적인 세력이 벽파가 된다.
시파는 간장좀 찍어먹을 수 있지 벽파가 사도세자를 미친놈으로 모함하고 음해했다면서 사도세자를 감쌌고 벽파는 소스를 찍었는데 무슨 간장을 또 찍어먹느냐 그건 미친놈이나 할짓이다 라며 사도세자에 비판적이었다.





사도세자는 소스를 찍은 탕수육을 간장에 찍어먹다 영조의 분노를 사 이 뒤주에 갇히게 된다.





그와중에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왕위에 올랐고 정조역시 탕평책을 주장하며 노론 소론 남인등 각 세력들을 화합하려고 애쓴다.
정조재위기간 탕수육을 소스도 없이 생으로 먹는 서학이 전파되었는데 당시 사대부들은 탕수육을 생으로 먹는것을 야만적인 행위라고 비난하며 강력한 처벌을 요구한다. 하지만 정조는 소스를 맛있게 하면 백성들은 알아서 찍어 먹을것이니 자연스레 서학은 사라질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조가 죽은뒤 순조때 서학은 금수의 학문으로 규정되어 탕수육을 생으로 먹는 사람들은 대대적인 탄압을 받게된다.

정조시기 배달시키지 않고 직접 탕수육을 해먹는 실학이 발달되었는데 박제가, 박지원, 정약용등이 대표적인 실학자이다.




정약용은 18년동안 귀양을 가며 귀양지에서 직접 탕수육을 조리해먹고 수많은 요리책을 남겼다.





탕평책을 주장했던 정조가 죽고 순조가 어린나이에 재위하며 노론 시파였던 김조순이 집권하면서 완전히 시파가 득세하게 된다. 당시 김조순이 가장 좋아한 중국집이 안동에 있던 중국집이었고 이후 탕수육은 무조건 안동 자장면집에서만 시켜야 하게끔 되면서 많은 폐단이 생겼는데 이게 바로 세도정치다. 





안동에서 태어나고 자라 안동 중국집에서만 탕수육을 시켜먹었던 김조순.



이 세도정치로 많은 중국집이 경영난에 허덕이다가 망해버렸고 이때를 노린 일제는 나가사끼 짬뽕을 들고 조선을 침략하게 되는데....







p.s. 퍼가시는건 그냥 마음대로 퍼가시면 되고 퍼가실때 저에게 어디로 퍼가셨는지 쪽지나 댓글 보내주시면 감사드려요 ^^
      

Posted by 최우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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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가수 데이비드 보위를 처음 만난 건 고등학생 때 ‘let’s dance’라는 댄스 곡을 통해서입니다.

 

 1983년 나온 음악입니만, 제가 들은 것은 1984년이었습니다. 아마 ‘황인용의 영팝스’ 같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듣지 않았나 싶습니다. 당시 유행이던 뉴웨이브의 통통 튀는 사운드와 늘쩍지근한 중성적 목소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시 ‘하드록과 헤비메탈’만이 들을만한 것들이고, 나머지 것들은 그저 ‘상업주의’에 매몰된 한심한 음악이라는, 딱 ‘고삐리’ 다운 생각을 갖고 있었죠. 그러니 그의 노래가 ‘멋지게’ 들릴 리가 없었습니다. 그냥 그렇고 그런, 댄스곡에 불과했죠.(댄스곡 좋아하시는 분들 오해는 마시길 바랍니다. 지금은 카라의 ‘루팡’ 같은 훌륭한 댄스곡은 유튜브 같은 데서 틈틈히 검색해 듣습니다.)

 

 

 이후 사이키델릭과 블루스 록, 특히 프로그레시브 록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1970년대 초반 다른 음악에도 관심이 갔습니다. 그러다 백판(해적판)으로 만난게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였습니다. 처음 듣고는 ‘록시 뮤직이 이런 음반을 냈었나’고 했는데 전혀 다른, 바로 그 예전의 기생 오래비더군요.

 

 지기 스타더스트는 데이비드 보위 자신이 만들어낸 가상의 록 스타입니다. 그를 통해 화려하면서도 퇴폐적인 음악과 분장, 무대 디자인 등 글램 혹은 글리터 록을 선보입니다. 모두 번쩍거린다는 뜻이지요. 당시 록시 뮤직을 한창 좋아하고 있을 때여서 매우 비슷한 음색을 내는 데이비드 보위에도 관심이 갔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록시뮤직 출신으로, 앰비언트라는 일렉트로닉 장르를 개척한 브라이언 이노와 그는 소위 베를린 트릴로지(3부작) <Low>(1977)’, <Heroes>(1977), <Lodger>(1979)를 냈습니다. 목소리도 록시뮤직의 브라리언 페리와 흡사합니다. 중성적이고, 어설프게 들리는 바이브레이션, 그리고 록 뮤지션으로는 드물게 색소폰을 도입하는 것 등이 그렇습니다.

 

 그 데이비드 보위가 올해에는 66세가 됐습니다. 한국 가수라면 KBS ‘가요무대’에 나올 연배이지만, 그는 최근 30번째 정규 음반 <더 넥스트 데이>를 냈습니다. 2003년 <리얼리티> 발매 이후 10년만입니다. 그간 음반이 3개 나왔지만, 모두 라이브를 편집한 음반들이었습니다.

 

 이 정도라면 한물간 가수의 ‘추억 강매’로 오해받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더 넥스트 데이>는 영국 음반 차트 1위에 올랐습니다. 영국 출신이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영국에서 환호는 대단합니다. 미국 평단도 호평하고 있습니다.
 영국 텔레그라프는 “대담하고 아름답다”고 했고, 뉴욕타임스는 “지구로 떨어진 가수(보위)…수십년내 가장 강력한 칭송을 받고 있다”고 썼습니다.

 

 음반 홍보 자료에 들어 있는 평가를 적어보겠습니다.
 “★★★★★ 가장 위대한 컴백 앨범 - The Independent
 ★★★★★ Low 나 Heroes 앨범만큼이나 진가를 발휘하는 앨범 - Q magazine
 데이빗 보위 황혼의 마스터피스!  New York Times
 ★★★★ 비밀이라는 것이 없는 이 시대에 그는 ‘미스터리’라는 감각을 선사한다 - The Times
 숨이 멎을 듯 하다.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인 컴백이다. LA Times
 금의환향 USA Today /  최고의 앨범 New York Post
 승리 People / 끊임없이 즐겁게 들을 수 있다 - NPR Morning Edition
 잘 만들어진 록 레코드 New Yorker
 The Next Day는 훌륭하다..! Time Magazine
 그의 음악 역사상 가장 훌륭한 앨범 중 하나! - LA Daily News
 장인의 솜씨이다 Newsday  / 기다린 보람이 충분히 있다 Esquire
 보위의 가장 강력한 앨범 CBSNEWS.com
 아티스트로서의 또 한 걸음 진보 - Philadelphia Inquirer”

 

 칭송이 어마어마합니다.

 

 데이비드 보위는 1969년 아폴로 11호 달 착륙에 맞춰 만든 ‘스페이스 오디티’로 주목받았습니다. 그를 세계적 스타로 만든 음반은 1972년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입니다. 상업주의를 오히려 내세워 주류 록 음악을 한껏 비웃는 위악을 떨었습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후 록과 포크, 블루스, 소울, 일렉트로닉 등 다방면의 장르를 차용·도입해 40년 동안 ‘거장 아이돌’ 같은 가수로 군림했습니다.

 

 그가 마약 중독 등 난잡한 생활에서 도피한 서베를린 시절 3부작은 독일 크라우트 록과 프로그레시브 록 지향입니다. 프로그레시브 록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좋아하실 겁니다.

 

 저는 데이비드 보위 노래 중 특별히 좋아하는 한 곡이 있는데 바로 영국 밴드 Queen과 함께 부른 'Under Pressure'입니다. 프레드 머큐리의 고음과 데이비드 보위 중음이 매력적으로 혼합돼 있습니다.

 

 이번 음반 <The Next Day> 코드는 크게 3가지입니다. 1960년대 후반 글램 록, 1977년의 걸작 음반 <히어로스>의 일렉트로닉 등이 근간을 이룹니다다. 이번 음반 겉장도 <히어로스>를 재가공한 것입니다. 데이비드 보위 얼굴에 흰 사각형을 넣고 음반 제목을 적었습니다. 자세히 보면 “HEROES”라는 제목에 줄을 죽 그어놓은 것도 보입니다. 이 둘의 골조 위에 그가 1980년대부터 30년간 넘나들었던 다양한 음악적 양념을 더했습니다.

 

 첫 곡 ‘더 넥스트 데이’에서 보위 특유의 목소리가 나온다. 록시 뮤직 음악과 매우 흡사하죠.‘아이드 래더 비 하이’ ‘하우 더스 더 그래스 그로우’에서는 강한 느낌의 록을, ‘히트’에서는 휘황한 일렉트로닉 음악을 선보입니다다. 뭐 이렇다 저렇다 쓴 것을 텍스트로 읽기보다는 일단 한번 들어보세요. 풍성한 밥상을 받은 듯합니다.

Posted by 최우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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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들

요즘 인터넷에서 회자되는 문체들이 있다. ‘보그 병신체’와 ‘인문 병신체’다. 보그(Vogue)는 유명한 패션 잡지다. 그 한국어판에 나오는 기사 문체가 ‘병신’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 바로 보그 병신체다. 영어나 불어 단어를 소리나는 대로 적고 토씨만 한글로 적어놓는 문장을 가리킨다.


대표적인 게 이런 것이다. ‘뉴 이어 스프링, 엣지 있는 당신의 머스트해브 아이템은 실크화이트 톤의 오뜨 꾸뛰르 빵딸롱’. 한글로 표현해보면 ‘날카로운 감수성을 가진 당신의 새 봄 필수품목은 흰 비단결 같은 고급 양장 바지’ 정도가 아닐까. 전문가 눈에는 이 또한 제대로 된 번역은 아닐 것이다.


(경향신문DB)



인터넷에는 이런 병신체를 꼬집는 게시물이 많다. 이런 표현도 있다. ‘아티스틱한 감성을 바탕으로 뀌틔르적인 디테일을 넣어 페미닌함을 세련되고 아트적인 느낌으로 표현합니다.’ 이는 ‘예술적 감성을 바탕으로 고급 의상의 섬세함을 넣어 여성적 느낌을 세련되고 예술적 느낌으로 표현합니다’일 것이다. 국내 한 백화점이 입점한 옷 상표를 소개하는 입간판이다. 이 입간판을 찍은 사진을 올린 한 누리꾼은 게시물의 제목으로 “이게 말이야, 방귀야”라고 비웃었다.


인문 병신체는 뭘까. 3년 전쯤 한 포털에 블로그를 운영하는 프랑스 철학 전공자 글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그 철학자는 당시 다른 학자의 ‘병신체’ 글을 힐난했다. 그러면서 ‘나의 텔로스는 리좀처럼 뻗어나가는 나의 시니피앙이 그 시니피에와 디페랑스되지 않게 하므로써 그것을 주이상스의 대상이 되지 않게 콘트롤하는 것이다’라는 표현도 가능하다고 비꼬았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솔직히 모르겠다. 다만 포털에서 그 용어들을 검색해보면 대충 이렇게 풀어놓을 수는 있겠다. ‘나의 본질(끝)은 땅속 줄기처럼 뻗어나가는 나의 기호가 그 의미와 차연되지 않게 함으로써 그것을 즐김의 대상이 되지 않게 조정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터무니없는 번역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라캉, 들뢰즈, 가타리, 데리다 등 철학자들이 고안·규정한 개념을 설명없이 아무렇게나 나열했기 때문이다.


이 글을 놓고 당시 학자들과 전공자, 그 블로그 구경꾼 사이에서 논란이 일었다. ‘몰라서 저렇게 쓴 것인가, 아니면 알고도 잘난 체하려고 쓴 것인가’가 비판의 중심이었다. 옹호하는 쪽은 ‘블로그 글은 대중을 겨냥해 쓴 게 아니어서 시비 대상이 될 수 없다, 쉬운 글만 읽으면 공부가 되겠느냐, 한글로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워 결국 그 개념대로 써줘야 한다’고 했다.


어느 쪽이 전적으로 옳다고 볼 수 없다. 다만 불온한 태도를 지적할 수는 있겠다. 혹시 ‘난 이런 어려운 것도 알고 있다고 잘난 체하려고’, 아니면 ‘모르면서 아는 체하려고 저렇게 쓴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게 패션과 인문학만의 문제뿐일까. 법률 용어도 외계어와 다를 것 없다. ‘사위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기망하고 기왕증을 누락해’는 ‘거짓 등 옳지 않은 방법으로 속이고 과거 병력을 빼’ 정도로 해석이 될까. 또 의학·건축 등 소위 ‘전문가’들이 있다는 부문에서 이런 ‘병신체’들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영화나 음악 분야는 어떨까. 한 누리꾼이 올린 인용문이 딱 그렇다. ‘영화란 미적으로 분절화된 텍스트를 감독 특유의 미장센의 정치적 렌즈를 통해 풀어내는…’이란다. 클래시컬, 재즈 음반 해설지에도 ‘병신체’와 번역체 문장이 가득하다.


‘병신’이라는 단어는 ‘불구, 무능, 부족, 불편, 편향’ 등의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 장애인을 비하하는 단어다. 이런 올바르지 않은 태도 때문에, 병신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는 게 맞다. 하지만 이 단어가 선택돼 ‘병신체’라는 말이 만들어진 것은, 그만큼 그 문체가 ‘불구, 무능, 부족, 불편, 편향’과 상대 비하의 특질을 갖고 있어서가 아닐까.


그간 썼던 기사들을 다시 열어보며 곳곳에서 나의 병신체와 마주치고 있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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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우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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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음... 2013.03.18 12: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보니 참.. 일자무식에 가까운 저조차도 최근들어 저러한 표현(?)을 시나브로 쓰고 있는 거 같던데... @,.@
    저도 '그 분들'과 같은 "과"에 들어가고 싶어했던게 아닌가~ 싶은...

    다행히 저는.. 이미 [정신병]과에 들어있기에 걍.. 미친 척~하면 되는 데... ㅎㅎㅎ
    그러니, 변명거리는 충분히 마련해놨고~. @,.@
    (이모티콘을 남발하는 것또한... 음~...)

    암튼, 정신병신체를 쓰는 부류엔 별로 들어가고 싶진 않군요.
    쩝...

   영국 출신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예스’의 첫 기타리스트였던 피터 뱅크스가 영국 런던 자택에서 심근 경색으로 숨졌다. 향년 65세.
 뱅크스는 당초 예정됐던 레코딩 작업에 나타나지 않은 뒤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뱅크스는 예스의 베이스 주자인 크리스 스콰이어와 함께 ‘사인’이라는 밴드로 활동을 했다. 그리고 1968년 뱅크스와 스콰이어는 예스를 구성했다. 키보드 주자로는 토니 케이를, 드럼 주자로는 ‘킹 크림슨’에서 이적한 빌 브루포드를 내세웠고, 존 앤더슨이 보컬을 맡았다.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예스’ 초창기 멤버들. 왼쪽부터 피터 뱅크스(기타), 토니 케이(키보드), 크리스

                   스콰이어(베이스), 빌 브루포드(드럼), 존 앤더슨(보컬)


 뱅크스는 예스의 1969년 음반 <예스>와 1970년 음반 <타임 앤드 어 워드>에서 기타를 연주했다.

 그러나 <타임 앤드 어 워드>를 만들면서 다른 멤버들과 음악적 지향점을 놓고 갈등을 겪었다. 결국 뱅크스는 <타임 앤드 어 워드> 음반이 출시되기 전에 예스를 떠났다. 예스는 다방면의 기타 연주에 능한 스티브 하우를 받아들여 오히려, 승승장구했다.
 반면 피터 뱅크스는 이후 ‘플래시’ ‘엠파이어’ 등 밴드를 구성해 음반을 냈으나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1973년 낸 <투 사이즈 오브 피터 뱅크스> 같은 솔로 음반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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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전 미국에서 연수할 때 일입니다. 하루는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접속해 이런 저런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러다 지미 헨드릭스의 '레드 하우스'를 맞닿았습니다. 한 곡을 다 듣고 나니 다른 연주자들의 해석도 궁금해졌습니다. 우선은 조 새트리아니, 에릭 존슨, 스티브 바이 등 소위 'G3'가 연주한 '레드 하우스'가 생각났습니다. 뭐 요즘 기타로는 선수들중 선수인지라, 역시 신났습니다. 그리고 이 곡을 연주한 이들이 줄줄이 뜨더군요. 게리 무어를 시작으로, 슬래시, 알버트 킹 등등 순례가 시작됐습니다.

 

 다른 곡들도 듣고 싶어졌습니다. 헨드릭스의 또다른 곡 ‘리틀 윙스’를 검색했습니다. 제프 벡, 에릭 클랩튼, 스티비 레이 본, 스키드 로, 펄잼, 스팅을 들었고,  클래식 바이올린 주자 나이젤 케네디의 연주 영상에까지 닿았습니다.

 

 헨드릭스의 또다른 명곡 ‘퍼플 헤이즈’도 마커스 밀러와 데이비드 샌본의 재즈 버전, 미국 현대음악을 이끌어가는 크로노스 쿼텟의 현악 4중주(가장 기괴한 형태로 연주됐죠)도 듣게 됐습니다.

 

 저녁 9시30분에 시작한 지미 헨드릭스 곡 순례는 밤 12시30분 집사람의 "이제 그만 주무시죠"라는 지청구로 끝났습니다. 그의 최대 명곡 '부두 차일' 듣기는 다음날 밤으로 미뤘던 것입니다.

 

 1942년 미국 시애틀에서 태어나 1970년 영국 런던에서 만 27세로 요절, 메이저 신 무대 활동 4년, 생전에 스튜디오 음반 3장 발매.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하등 문제가 될 것이 없는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의 약력입니다.

 

 

 

 지미 헨드릭스는 동시대는 물론 후대 대중음악가(특히 전자 기타리스트), 재즈와 클래식 연주자들에게까지 많은 영감을 줬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의 사후에도 끊임없이 새 음반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2010년에는 헨드릭스의 미공개 음원을 담은 앨범 <밸리스 오브 넵튠>이 나왔습니다. 올해에도 그의 새 음반이 나왔습니다. 소니뮤직코리아는 “그간 공개되지 않던 음원 12곡으로 구성된 새 음반 <피플, 헬 앤드 앤젤스>가 전세계 동시 발매됐다”고 밝혔습니다.


 수록곡들은 1968~69년 지미 헨드릭스가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것입니다. 당시 헨드릭스는 자신의 밴드인 ‘더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와 결별 단계였다. 그래서 이 노래들을 빌리 콕스(베이스), 버디 마일스(드럼), 미치 미첼(드럼) 등과 함께 만들었다. 헨드릭스는 이들중 콕스, 마일스와는 '밴드 오브 집시스'를 구성해 짧고 굵은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문제는 헨드릭스가 갑작스레 약물 중독으로 숨지면서 이 곡들은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먼지만 쌓여가고 있었죠. 그러다 헨드릭스의 음악적 동지인 프로듀서이자 엔지니어 에디 크레머가 40년만에 살려낸 것입니다.

 


 첫 곡 ‘어스 블루스’는 이전에 녹음돼 발표된 곡보다 타격감이 강하고, 가사도 좀 다릅니다. 하지만 첫 2소절만 들어보면 "아, 딱 지미 헨드릭스구나"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곡 ‘섬웨어’도 <크래쉬엔딩>(1975) 음반 수록곡이 오버 더빙(소리를 덧입힘)한 것과 달리, 원곡 리듬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싱글로 먼저 선보인 ‘섬웨어’는 1968년 마일스가 드럼을 치고, 독특하게 스티븐 스틸스가 베이스를 연주해줍니다. 저는 이 스티븐 스틸스의 기타 연주를 아주 좋아합니다. 그와 마이크 블룸필드가 함께 만든 '수퍼 세션'이라는 프로젝트 밴드의 첫번째 라이브 음반을 중고 LP로 거금 5만원을 주고 구입해 들으면서 감격했더랬습니다.(참고로 어머니는 이 낡은 LP가격을 5000원으로 알고 계십니다.)

 

 헨드릭스가 콕스, 마일스와 함께 만든 밴드 ‘밴드 오브 집시스’의 더욱 펑키하고 화려한 리듬감을 들려주는 ‘히어 마이 트레인 아 커민’은 헨드릭스 팬이라면 들어볼 곡입니다. 그를 다룬 다큐멘터리 ‘지미 헨드릭스’에서는 ‘히어 마이 트레인’을 12줄 통기타로 느리게 부르며, 심지어 눈물을 비쳤다고 합니다. 이번 수록곡은 좀더 빠르고 강렬합니다. 그의 노래와 기타 연주가 같은 호흡으로 진행해, 꼭 듀오의 노래 같습니다.

 

 엘모어 제임스의 블루스 곡을 색다르게 해석한 ‘블리딩 하트’도 리듬감이 충만합니다. ‘렛 미 무브 유’라는 곡이 이 전체 음반에서 가장 이질적입니다. 색소폰 주자 로니 영블러드와 함께 연주했습니다. 잼 형식으로 연주됐고, 재즈 느낌이 매우 강합니다.

 

 ‘이자벨라’, ‘이지 블루스’는 그가 우드스탁 페스티벌 무대에 함께 섰던 빌리 콕스, 미치 미첼, 래리 리(세컨드 기타), 제리 벨레즈와 후마 술탄(퍼커션)과 연주했죠. ‘이지 블루스’는 이름은 블루스이지만, 재즈적 어프로치를 하고 있어 독특합니다.  ‘헤이 집시 보이’에서는 헨드릭스가 베이스 기타도 연주하고 있습니다.

 

 ‘블리딩 하트’를 비롯해 ‘헤이 집시 보이(Hey Gypsy Boy)’ 등 이 앨범에 수록된 몇몇 곡은 최근 미국 CBS 드라마 ‘하와이 파이브 O’를 통해 공개되기도 했죠.

 

 이 음반에는 사진 자료들과 설명지 등 24쪽짜리 책자도 들어있습니다. LP로 소장해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습니다.

 

 왜 여전히 지미 헨드릭스일까요. 대중 음악계에서 ‘록 음악은, 혹은 전자 기타 연주는 헨드릭스 이전과 헨드릭스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습니다. 심지어 속주 기타로 각광 받은 잉베이 맘스틴은 "내가 기타를 빨리 치는(데 주력하는) 것은 헨드릭스만큼 잘 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또 비틀스 기타 주자 조지 해리슨은 헨드릭스의 라이브 공연을 보면서 "(비틀스 음반의) 기타 파트를 다시 녹음해야 겠네"라고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헨드릭스의 돌연한 죽음에 에릭 클랩튼은 스승을 잃은 듯 한동안 방황했다고도 합니다.

 

 그만큼 그의 음악과 연주는 당시엔 혁신이었고, 이후엔 교본이 된 것입니다. 그는 전자 기타의 특징과 와우 페달 같은 액세서리, 레코딩 기술 등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었고, 그를 통해 새로운 소리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의 곡 쓰기 또한 남다른 칭송을 받습니다. 블루스와 로큰롤, 재즈 등 모든 요소를 유기적으로 엮고, 기존에는 도저히 엄두를 내지 못하던 곡 전개를 했습니다. 물론 훌륭하게요. 이 때문에 지미 헨드릭스가 숨지기 직전 분석가들은 "헨드릭스는 이제 재즈를 할 것이다" "무슨 소리, 헨드릭스는 더욱 블루스에 천착할 것이다" 등 백가쟁명했다고 합니다. 재즈 혁신가인 마일스 데이비스는 그의 연주를 듣고 자신의 음악에 새 길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그 음악은 끊임없이 연주·변주되고 있는 이유가 여기 있겠죠.

 단, 이 음반은 지미 헨드릭스의 입문자를 위한 것은 아닙니다. 그의 팬들, 그리고 전자 기타를 많이 접해보신 분들에게는 필청 음반이겠습니다. 하지만 처음 접하는 분들이라면 그의 살아 생전 레코딩된 정규 음반들 <Are You Experienced?>, <Axis: Bold as Love>, <Electric Ladyland>를 우선 듣을 것을 권합니다.

 

 

 

 

TRACKLIST

01. Earth Blues

02. Somewhere

03. Hear My Train A Comin‘

04. Bleeding Heart

05. Let Me Move You

06. Izabella

07. Easy Blues

08. Crash Landing

09. Inside Out

10. Hey Gypsy Boy

11. Mojo Man

12. Villanova Junction Blues

Posted by 최우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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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유명해져서 본인들도 부르거나 연주하기 지겨워하는 노래들이 있답니다. 에릭 클랩튼은 한 인터뷰에서 " '원더플 투나잇'은 이따금 부르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에릭 클랩튼 = 원더플 투나잇' 식으로 각인돼서겠죠. 오아시스 하면 '원더월', 키언 하면 '에브리바디스 체인징' 처럼요.

 

 그럼 이건 어떤가요. '라디오헤드'하면 무슨 곡이 떠오르십니까. 라디오헤드의 음반을 사서 전체 듣기를 하는 팬들이 아니라면 대부분 '크립'을 꼽을 겁니다.

 

 보컬인 톰 요크도 다른 아티스트들과 비슷한 이유로 '크립' 부르는 것을 그리 즐기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그 자존심 강한 톰 요크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라디오헤드가 훌륭한 저녁식사였다면, 아톰스 포 피스는 달콤한 아이스크림이다.”
 영국 밴드 ‘라디오헤드’의 리드 보컬 톰 요크가 최근 한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입니다. ‘아톰스 포 피스’는 그의 프로젝트 밴드입니다. 요크는 2006년 솔로 음반 <디 이레이저>를 냈고, 2009년 이 음반 곡으로 공연을 하면서 밴드를 구성했습니다.

  멤버가 쟁쟁합니다. 라디오 헤드의 프로듀서인 나이젤 고드리치가 키보드를 맡았고,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베이스 주자 플리, ‘벡’ ‘R.E.M.’의 세션 드럼 주자 조이 와론커가 드럼을, 브라질 출신 퍼커션 주자 마우로 헤포스쿠가 타악을 연주했습니다. 이 밴드가 만들어졌을 때 ‘포스트 록’ 슈퍼 밴드가 구성됐다는 찬사를 받았구요. 곧 음반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지만, 실제 나오기까지는 3년이나 걸린 셈입니다.


 이 밴드의 첫 음반이 나왔습니다. 워너뮤직 코리아는 27일 “톰 요크 사이드 프로젝트 밴드 ‘아톰스 포 피스’ 데뷔 음반 <어모크(AMOK)>를 발매한다”고 밝혔습니다. <어모크>는 디지털 음원, CD, LP로 발매됩니다. 아쉽게도 이중 CD와 LP는 수입반입니다. 국내에서 찍는 게 아니라 해외에서 사오는 것입니다. 가격이 비싸겠지요. LP는 6만원대가 될 수도 있다는 말도 나옵니다. 물론 인터넷에서 카드 할인받고 하면 아마 3만원대로 떨어지기는 하겠죠.

 

 이 음반은 스튜디오에서 3일간 녹음됐다고 합니다. 짧은 기간에 완성된 이유는, 잼 세션(기본 가락과 화음만 약속한 뒤 펼치는 즉흥연주) 형식으로 녹음이 진행돼서랍니다.

 톰 요크의 몽환적인 고음, 진성과 가성을 오가는 ‘팔세토 창법’이 전면에 나섭니다. 라디오헤드 골수팬이라면 그의 목소리만으라도 충분히 보상이 될 것 같습니다. 반면 곡들은 전체적으로 라디오헤드 노선에서 벗어나 있는듯합니다. 복잡한 아프리칸 리듬과 계속되는 변박이 음을 주도합니다.


 음반 전체는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1970, 80년대 크라우트 록과 영미권의 앰비언트를 합한 듯합니다. 하지만 그들과 구분되는 요소가 바로 리듬입니다. 베이스 주자인 플리의 자유분방함에 힘입은 것입니다. 클럽에서 틀 수 있는 ‘댄서블’한 측면은 디제잉하는 듯한 음원들 때문입니다.


 9곡중 첫곡 ‘비포 유어 베리 아이스’부터 펑키한 느낌이 다가옵니다. 지난해 9월 첫 싱글로 공개된 ‘디폴트’에서는 톰 요크의 무심한 목소리와 그루브한 리드감이 두드러집니다. 일렉트로 리듬 앤드 블루스로 분류될 ‘인제뉴’, 요크가 전형적 보컬을 선보이는 ‘저지 주어리 앤드 익스큐셔너’ 등이 들어있습니다.

 

http://youtu.be/yxWBd840E9g


 평단 반응도 좋습니다. 미 음악 전문지 ‘롤링스톤’은 별 다섯에 네개를 줬고, 영국 ‘더 텔레그래프’도 별 다섯중 세개를 줬습니다. '겨우 세개냐'는 반문도 있겠지만, 일단 리뷰됐다는 것 자체로 인정을 받은 것이고, 게다 별의 과반을 획득한 것이니, 상당히 높게 쳐주는 거죠.

 

 단 라디오헤드의 직선적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너무 많은 음식을 한 그릇에 담은’ 부담감이 갈 수는 있겠습니다. 또 톰 요크의 지향점이 뭔지도 아직은 불분명한 듯합니다. 물론 톰 요크 팬들에게는 ‘종합선물세트’여서 오히려 좋아할 수 있구요.


 

TRACKLIST
1. Before Your Very Eyes
2. Default
3. Ingenue
4. Dropped
5. Unless
6. Stuck Together Pieces
7. Judge Jury and Executioner
8. Reverse Running
9. Amok

Posted by 최우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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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wpu.kr 최진영 2013.02.28 2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레디오헤드 소식을 정말 오랜만에 링크타고 와서 보게됩니다. 90년대에는 미치도록, 지금은 아주 가끔 찾아보는데, 새로운 소식 잘봤습니다.

  2. 최우규 2013.03.01 13: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3. 톰욬 2013.05.03 2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쎄요..
    톰욬이 크립을 싫어한다는건 모사꾼들이 지어낸 해프닝인걸로 끝난줄 아는데여..
    어떤 공연인지는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크립을 부르기전 자기가무척사랑하는곡이라고 곡소갤하고 크립을 불렀었드랬죠..
    그거말구는 굉장히 좋은글인거같네여
    잘보고갑니다

    • Favicon of https://choiwookyu.khan.kr 최우규 2013.05.04 00: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요크가 "크립 별로"라는 이야기를 수차례 '읽어서'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혹 어떤 공연에서 요크가 그렇게 "좋아하는 곡"이라고 말했다고 알려주시면 내용을 고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4. Favicon of http://dkdkdo.com 조니그린우드 2015.04.18 0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크립으로만 기억되는밴드가 되기싫어서 아예 안부르다가 몇년전 일본 락페에서 그렇게 말하고 한번 불렀었죠 거의 안불러요 라이브에서

 '이글스'하면 무엇이 생각나시나요. 1970, 80년대 팝 음악 많이 들으신 분들은 <호텔 캘리포니아>를 많이 떠올리실 겁니다. 그만큼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 음반이 전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해서일 겁니다.

 

결성한 지 42년된 노땅 밴드이지만, 영미권은 물론 한국에서도 이글스 인기는 식을 줄 모릅니다. 팬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있습니다. 미국 록 밴드 ‘이글스’의 호주 공연 실황이 블루레이 디스크로 발매됩니다.


워너뮤직 코리아는 26일 “2004년 이글스 공연 실황 <페어웰 원 투어 : 라이브 프롬 멜버른>이 2005년 DVD로 발매된 데 이어 이번에 블루레이로 발매된다”고 밝혔습니다.

 

 멜버른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펼친 공연은 재결합 10년 만을 기념해 벌인 세계 투어 공연중 하나였습니다. 대표곡인 ‘호텔 캘리포니아’, ‘데스페라도’ ‘아이 캔트 텔 유 와이’, ‘하트에이크 투니잇’ 등 대표곡 30곡이 꼭 들어차 있습니다. 2시간 40분의 황홀한 향연입니다. 보너스 트랙으로 11분 간의 멤버 인터뷰 영상도 실려있습니다.


 포크와 컨트리에 기반한 록 음악으로 가장 미국적 밴드로 꼽히는 이글스는 미 여가수 린다 론스태드의 백 밴드였습니다. 글렌 플라이, 돈 헨리, 버니 리든, 랜디 마이즈너 등 당대 난다긴다하는 뮤지션들이 모였고 1971년 8월 밴드를 만들어 <이글스>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당초 컨트리 색이 짙었으나 기타리스트 돈 펠더, 조 월시 등 영입으로 점차 하드록 사운드 색채가 강해졌습니다. 조 월시는 토미 볼린이 몸 담았던 '제임스 갱'에서도 기타를 쳤죠. 멋진 사나이입니다. 이들의 1976년 음반 <호텔 캘리포니아>로 정점을 찍었습니다.


 이들은 7장의 정규 음반을 냈고, 세계적으로 1억2000만장을 판매했습니다. 1998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구요.

 1979년 <더 롱 런>을 발표하고는 멤버간에 음악적 견해 차이가 커져 1982년 공식 해산했습니다. 성공을 맛본 뒤 돈이든, 음악적 방향이든 그렇게 싸우게 되나 봅니다. 워낙 천재들이 많이 있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50년 장수하는 롤링 스톤즈 같은 밴드는 놀랍기만 합니다.

 

 암튼 이글스는 1994년 재결합해 2007년 7집 <롱 로드 아웃 오브 에덴>을 발매, 빌보드 음반 차트 1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꾸준히 월드 투어를 벌이고 있습니다.

 

 2011년 3월 내한했을 때 티켓 값이 33만원이나 했지만 매진을 기록했습니다. 한국에서도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증거죠. 이들 노래 ‘데스페라도’는 최근 MBC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 3>에서 한동근이 불러 다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글스 드러머 단 헨리의 애잔한 목소리와 달리, 한동근은 굵직한 소울풍으로 불렀습니다.


 블루레이는 광저장 매체 방식으로 저장용량이 커 CD, DVD보다 고화질, 고음질을 즐길 수 있게 해줍니다. 적색 레이저를 사용하는 현재의 DVD나 CD플레이어와 달리 청색 레이저를 사용한다. DVD보다 선명한 고화질(HD) 급의 2배 선명도를 갖고 있습니다. 이에 통상 ‘Full HD’이라 불립니다. 블루레이 디스크를 돌릴 수 있는 플레이어를 갖추고 있어야 즐길 수 있습니다. 좀 거친 예를 들면, 표준 화질(SD급)인 DVD가 먼지낀 창문 너머로 바라본 풍경이라면, 고화질(HD급)는 깨끗한 창문을 통해 본 느낌이고, 초고화질(Full HD급)은 화창한 날 창문을 활짝 열고 보는 봄 풍경이라고 해야 하나요.

 

수록곡
1. The Long Run
2. New Kid In Town
3. Wasted Time
4. Peaceful Easy Feeling
5. I Can’t Tell You Why
6. One Of These Nights
7. One Day At A Time
8. Lyin’ Eyes
9. The Boys Of Summer
10. In The City
11. Already Gone
12. Silent Spring (intro)
13. Tequila Sunrise
14. Love Will Keep Us Alive
15. No More Cloudy Days
16. Hole In The World
17. Take It To The Limit
18. You Belong To The City
19. Walk Away
20. Sunset Grill
21. Life’s Been Good
22. Dirty Laundry
23. Funk #49
24. Heartache Tonight
25. Life In The Fast Lane
26. Hotel California
27. Rocky Mountain Way
28. All She Wants To Do Is Dance
29. Take It Easy
30. Desperado

11 minutes of bonus interview footage with the band

Posted by 최우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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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ttalgi21.khan.kr 딸기 2013.04.17 22: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이글스 노래 중에 호텔 캘리포니아하고 새드 카페, 라스트 리조트 좋아요!

  2. 몽몽사자 2017.04.10 0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내에도 이글스 레이 라는 보컬 이 있는데
    최 승민 씨 가 리더 인걸로 아는데 혹시 인척이
    아니신지 ~ ~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꽤나 정치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영화적 가치와 완성도보다는 정치·경제·사회적 상황과 미국적 가치에 더 큰 점수를 준다"는 것입니다. 영화보다 정치에 더 평점을 주겠느냐 싶습니다. 다만 이런 분석, 혹은 비판은 오래 지속되고 있습니다.

 

 아카데미는 국제 영화제가 아닙니다. 소위 '3대 국제영화제'라는 게 있는 데 칸,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입니다. 각각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이 개최지이지요. 이들 영화제는 전 세계의 영화를 대상으로 시상을 합니다. 이 때문에 외국어 영화 부문이 없습니다. 반면 아카데미에는 외국어(영어가 아닌) 부문 상이 있습니다.

 

 또 아카데미는 유럽 영화제보다 상업성에 좀더 무게를 두는 것 같습니다. 수상작들을 보면 상당히 다르지요.

 

 

 

 

 그럼 왜 아카데미 상이 왜 정치적이라는 시선을 받을까요. 알고보면 그럴만도 합니다. 이 아카데미상 탄생 자체가 정치적이었습니다. 1927년 초 MGM의 사장인 루이스 메이어는 보수 논객들과 만나 ‘아카데미 오브 모션 픽처 아츠 앤드 사이언시스’라는 어머어마한 이름의 할리우드 엘리트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이 조직의 목표는 노조의 설립을 저지하고, 그들의 활동을 조정하거나 중재하는 데 있었답니다. 이 아카데미와 시상식은 초반부터 정치적이었고, 정치의 영향을 탔습니다.


 24일(현지시각) 미국 로스 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역대 어느 때보다 정치적이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그간 LA 코닥극장에서 열렸는데, 필름으로 유명한 코닥이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망하면서 극장도 넘어갔습니다. 이름도 코닥에서 돌비로 바뀌었습니다.


 이번 시상식 앞뒤를 잘 살펴보면 그런 해석이 가능합니다. 시사회, 홍보, 후보작 선정부터 시상식에까지 정치적 요소가 많이 끼어들었으며, 미 워싱턴 정가와 밀접하게 행사가 진행됐습니다.

 

 후보작들이 선정되기까지 소개 및 평가 과정도 어느 때보다 정치적이었습니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이날자 기사에서 이를 조목조목 짚었습니다. 1980년 이란 테헤란의 미 대사관 인질 구출 작전을 다룬 <아르고>는 지난해 10월 미 워싱턴 시사회를 극장이 아니라 캐나다 ‘대사관’에서 열었습니다. 몇주 뒤 스티븐 스필버그와 대니얼 데이-루이스는 미국 양당을 대상으로 한 <링컨> 시사회에 얼굴을 비쳤습니다. 존 매케인, 다이앤 페인스타인, 칼 레빈 등 미 상원의원들이 <제로 다크 서티>의 고문 장면을 비판하는 서한을 제작사인 소니픽쳐스에 보낸 직후였습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서 <링컨>을 직접 소개했습니다.


 가족의 해체에 따른 정신분열증, 강박증 등을 다룬 <실버 라이닝스 플레이북> 감독인 데이비드 러셀과 주연배우 브래들리 쿠퍼는 조 바이든 부통령과 만나 정신건강 정책을 논의했다고 합니다. <비스트 오브 더 서던 와일드>로 최연소 여우주연상 후보로 오른 9살짜리 쿠벤자네 왈리스는 백악관에 들러 영부인 미셀 오바마를 만났습니다. 예쁜 소녀와 영부인 만남 자체만으로도 이슈가 됐습니다. 심지어 존 케리 신임 국무장관은 자신의 트위터에 <아르고>의 선전을 빌었습니다.


 이처럼 ‘정·영 유착’은 서로 필요성 때문에 벌어집니다. 감독이나 배우, 제작자 모두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는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으려면 미 정계 거물과 함께 미디어에 등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권 역시 강력한 전파력과 설득력을 가진 영화와 협력할 필요를 느끼고 있습니다. 영화가 ‘대박’ 났을 때 자신의 이름이 함께 거론되는만큼 손해볼 이유가 없죠.


 최고 권위인 ‘작품상’ 선정과 시상도 정치적이기는 마찬가지라고 영국 일간 가디언의 일요판 ‘옵저버’가 짚었습니다. 이번 작품상 후보로는 9작품이 선정됐습니다. 예년의 2배 정도입니다. 그 가운데 <비스트>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등은 예년에도 후보가 됐을법한 작품입니다.

85회 아카데미 시상상에서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 출연해 여우주연상을 받은 제니퍼 로렌스.

 

 

 하지만 나머지 5작품에는 작품성도 있지만, 정치적 요소가 가해졌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아르고> <제로 다크 서티>는 최근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국장 성추문과 무인항공기 민간인 오폭 등 추문에 시달리던 미 중앙정보국(CIA)의 영웅상과 국가적 업적을 자랑했습니다. <아르고>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갑니다. 영화계 인사들은 그간 영화에서도 비열하고 냉험하게 묘사됐습니다. 거장 빌리 와일더의 <선셋 블루바드>, 로버트 알트만의 <더 플레이어> 등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르고>에서 영화인들은 국가를 위해 자신들의 재주를 펼치는 애국적 인물로 그려집니다.

85회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을 받은 <아르고>를 연출한 배우 출신 감독 벤 애플렉(왼쪽)과 제니퍼 가너

 

 

 

 재임에 성공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이번 영화제의 숨겨진 주인공이었습니다.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을 쫓는 <제로 다크 서티>부터 그렇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재임 때 오사마가 미 특수부대인 네이비 실에 의해 사살됐습니다. <링컨>은 흑인 해방, 인종 차별 철폐와 국론 통일을 이룬 미국 대통령을 다루고 있고, <장고 : 분노의 추적자>는 아내를 구하려고 나선 흑인 현상금 사냥꾼이 주인공입니다.


 <레 미제라블>도 정치적 영화입니다. 국내에서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야권 지지자들의 헛헛한 마음을 사로잡은 바 있습니다. 아카데미가 미국 영화제라는 점을 전제로 했을 때, 미국민들은 늘 과거의 ‘혁명’을 존중하고 감탄해왔습니다. 팍팍한 현실에 시달리는 미국민들이, 실패했지만 처절했던 혁명에 기꺼이 박수를 보내는 것입니다.

85회 아카데미상에서 <레미제라블>로 여우 조연상을 탄 앤 해서웨이


 

 정치적 외풍도 타게 됩니다. <제로 다크 서티>는 당초 작품상의 강력한 후보로 점쳐집니다. 평단과 관객 평가 모두 좋았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벽을 만났습니다. 공화당 소속 피터 T. 킹 의원은 이 영화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위한 할리우드의 칭송 일색의 전기가 될 것”이라고 비판하는 등 보수 측의 비판이 속출했습니다.


 영화 시사회가 진행되면서, 그런 정치적 의도는 없다는 점은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시비가 다시 시작됐습니다. 이 영화가 오사마 빈 라덴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고문을 정당화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작품은 작품상 후보의 선두대열에서 점차 멀어져갔습니다.


 이번 영화제 측 정치적 행보는 시상식 말미에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작품상 후보 발표를 앞두고 잭 니컬슨이 혼자 등장했습니다. 위대한 배우여서, 사실상 최고상인 작품상을 홀로 발표하는 영광을 누린다는 해석이 나올법한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화면이 바뀌더니 백악관을 연결해 영부인 미셀 오바마 여사를 등장시켰습니다. 그녀는 영화와 사랑, 용기 등 영부인이 할법한 메시지를 발표했습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 배웁니다. 많은 이들이 영화를 보면서 용기를 갖게 됐습니다. 이는 어디에 살든 누구와 사랑하고 있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됩니다. 특히 예술계에 종사하는 젊은이들은 더욱 그럴 것입니다.”


 그리고 오바마 여사는 “디 오스카 고우스 투(오스카상 수상작은) <아르고>”라고 직접 발표합니다. 영화계와 백악관의 접속이 정점을 이루는 순간입니다.
 

85회 아카데미 작품상 발표자로 나선 미쉘 오바마 미 대통령 영부인

 

 

 세상사를 너무 정치적으로만 바라본 건가요?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영화야말로 정말 정치적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나치 독일을 봐도 그렇고, 군사독재 시절 한국 상황도 그렇고요.

 

 

 다음은 수상자(작)입니다.
 △작품·편집·각색상 <아르고> △감독상 리 안(<라이프 오브 파이>) △남우주연상 다니엘 데이-루이스(<링컨>) △여우주연상 제니퍼 로렌스(<실버라이닝 플레이북>) △각본상 쿠엔틴 타란티노(<장고 : 분노의 추적자>) △여우조연상 앤 해서웨이(<레미제라블>) △남우조연상 크리스토프 왈츠(<장고 : 분노의 추적자>) △외국어영화상 <아무르> △촬영·음악상 <라이프 오브 파이> △미술상 <링컨> △주제가상 아델(<007 스카이폴>) △시각효과상 <라이프 오브 파이> △의상상 <안나 카레니나> △분장·음향상 <레미제라블> △음향편집상 <제로 다크 서티> <007 스카이폴> △장편 다큐멘터리상 <서칭 포 슈가맨> △장편 애니메이션상 <메리다와 마법의 숲> △단편 애니메이션상 <페이퍼맨> △단편 영화작품상 <커퓨> △단편 다큐멘터리상 <이노센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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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들

대중문화부에서 공연을 담당했던 게 2003년이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 록 밴드 ‘뜨거운 감자’ 리드 보컬 김C, 재즈 가수 나윤선, 래퍼 스컬을 그때 만났다.


2004년 떠났다가 9년 만에 이 부서로 다시 돌아왔다. 10년 가까운 간극이다. 달라진 것도 있고, 그대로인 것도 있다.


 

가장 달라진 것은 매체 환경이다. 그때만 해도 방송·신문·잡지 등 전통 매체들이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온라인 매체들은 한창 생기던 중이었다.


이젠 어떨까. 전통 매체보다 온라인 매체가 빠르게, 그리고 속속들이 기사를 생산해낸다. 취재현장에서도 온라인 매체들의 고화질 카메라가 앞에 서고 전통 매체의 ‘(글을 쓰는) 볼펜 기자’는 뒷전이다. 온라인 매체 기자들은 현장에서 손가락이 보이지 않도록 자판을 두들겨 생중계하다시피한다. 물론 지나친 이런 경쟁은 선정성, 낚시기사, 사생활 침해, 베끼기 등 폐해도 불러왔다.


취재원들 태도도 달라졌다. 전통 매체보다 온라인 매체를 중시하는 듯하다. 파급력과 전파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네이버나 다음 같은 큰 포털 업체는 갑(甲·계약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이) 중의 갑, ‘슈퍼 갑’이 됐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한 취재원 말이 “대형 포털에 부정적 내용이 잘못 노출되면 사업 접어야 할 지경”이란다.


대중음악계 판도도 지각 변동이 돼 있었다. 연예기획사는 2004년 SM과 대성기획(DSP미디어)의 양강 구도였다. H.O.T나 신화가 활동할 때였고, 동방신기가 처음 나왔다. DSP에서는 젝스키스와 핑클 이후를 대비하던 때였다. YG나 JYP는 몇몇 가수들을 내세웠으나 SM과 DSP에는 뒤떨어졌다.


지금 이들은 견실한 중견기업이 돼 있다. 한류 스타들을 줄줄이 배출해 삼성이나 LG처럼 해외에 이름을 알리고 있다. 그러다보니 문화권력이 돼 있다. TV 프로그램 출연 시기와 매체, 명단을 업체가 주도적으로 선정한다고 한다. 더 나아가 못마땅한 이들은 아예 TV에 못 나가게 할 정도란다.


음반시장은 몰락을 거듭하고 있다. 10년 전에도 위기였다. 1990년대에 골든(50만장 이상)과 플래티넘(100만장 이상) 디스크가 해마다 몇 장은 됐다. 하지만 10년 전에는 히트를 해도 10만장대가 팔리는 정도였다. 인기 팝 음반은 그래도 1만여장이 나갔지만, 재즈나 블루스 음반은 1000장대로 줄었다. 클래식도 많이 나가야 1만장대였다.


지금은 어떤가. 한국음반산업협회가 제공하는 ‘가온차트’를 보면 2012년 음반 판매량 종합 1위는 슈퍼주니어의 6집으로 35만여장이다. 2위는 빅뱅의 ‘얼라이브’ 26만여장, 3위는 동방신기의 ‘캐치 미’ 25만여장이다. 골든디스크에 못 미친다.


주도권도 온라인으로 넘어갔다. 온라인 스트리밍(내려받는 게 아니라 사이트에서 틀어주는 것을 듣는 방식) 순위를 보면 2012년 1위는 싸이의 ‘강남 스타일’ 4303만건, 2위는 씨스타의 ‘나혼자’ 3609만건, 3위는 씨스타의 ‘러빙 유’ 3589만건, 4위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 3513만건, 5위는 2NE1(노파심에서 적는데, 이 그룹의 발음은 ‘투애니원’이다)의 ‘아이 러브 유’ 3052만건이다.


참, 여전한 게 하나 있다. TV ‘막장’ 드라마다. 막장은 갱도의 막다른 부분을 뜻하지만, 터무니없는 설정으로 갈 데까지 간 드라마를 지칭할 때도 쓰인다. 며느리를 쫓아내려고 정신병원에 가두는 시어머니, 성공을 위해 자식 버리고 자신의 죄를 남편에게 씌우려는 여자, 자신의 정부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부하에게 권총을 들이대는 재벌 회장…. 지상파에서 버젓이 방송되는 내용이다.


2003, 2004년 <왕꽃선녀> <인어아가씨> <불새> 등은 당시 막장 드라마로 불렸다. 하지만 최근 드라마에 견주면 얌전한 측에 속한다. 그럼 ‘막장 드라마’는 그간 진화한 것으로 봐야 하나, 퇴보한 것으로 봐야 하나.



MBC 드라마 '왕꽃선녀님'의 윤초원 역을 맡은 이다해가 신내림 굿을 받는 장면. (경향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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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우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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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끝나, 앞으로 정치권에 무슨 일이 전개될 지 저도 궁금합니다. 고명하신 평론가, 분석가들이 멋들어진 내용들을 많이 내놓고 있습니다. 에 미치지야 못하겠지만, 저도 한번 짚어보겠습니다. 이게 맞을 지, 궁금하시다면..... "500원!"



 


대선 이후 야권에서 많은 '멘붕' 고백이 텍사스 물소 때 오듯 쏟아지네요. 해법도 내놓고, 주장과 푸념, 힐난 등 다양합니다.

 여권이야 넘치는 기쁨을 '국민 100%와 함께 하고 싶은' 듯합니다.


 그 중에 정치평론가들중 "그것 봐라, 내 그러지 않았느냐"는 분들..이 분들 보니까, 학창시절 배웠던 작품 분석론이 떠오릅니다. 누군가의 작품은 그의 과거에, 그의 삶 속에서 나온 것이다. 그의 생애를 살펴보면 작품의 숨은 의미가 드러난다, 뭐 이런 내용입니다.


 '중립과 객관'을 내세우는 많은 분들, 조금만 검색해보면 불과 한달전, 아니 사나흘 전에 누구 편에 섰었는지 다 나옵니다.(ㅠ.ㅠ) 그냥 '나는 누구 편이었고, 앞으로 그 사람 중심으로 해야 된다'라고 고백하는 게 맞을 거 같습니다. 이는 여당 편이든, 야당 편이든, 공히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평론 계속하실 거면. (좀 고까워서 긁어봤습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어찌 갈꼬. 예년의 경우를 짚어보면 대충 항로는 나올 거 같습니다.


미소 짓는 새누리 지도부 (출처 :경향DB)


 새누리당에서는 대통령직 인수위 입성을 놓고 피튀기는 혈전이 벌어질 겁니다. 아, 이미 시작됐죠. 위원장과 부위원장, 위원 등 25개 자리를 놓고 OK목장 결투가 곳곳에서 벌어질 겁니다. 사실 이보다 실무진 자리를 놓고 암투가 더 심할 겁니다. 그들이 향후 청와대와 내각, 당에서 허리 역할을 하며 당청을 이끌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잘하면 더 요직에 가고, 배지를 달고 그럴 겁니다.


 5년전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정두언 의원파와 이상득 의원파가 인사를 놓고 쟁투를 벌여, 이 의원이 완승을 했죠. 그 결과 청와대와 내각은 이 의원 쪽 사람들이 장악했죠.


 그리고 마침내 인수위가 뜰 겁니다. 여기서는 총칼만 안들었지 정보전과 심리전, 게릴라전 등 전투와, 세력 싸움이 두 달간 계속될 겁니다. 그래서 청와대 갈 사람, 당 주요직 갈 사람들이 정해지겠지요.


 물론, 이 과정에서 '박 당선인에게 부담주지 않겠다'는 이들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벌써 짐싸서 당사에서 철수한 안대희 위원장, 오늘 전격 사퇴한 이학재 비서실장 등이 그들입니다.



 지금 여권 상황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 국회의장은 친박 7인회인 강창희 의장, 당 친박계 등 '친박' 세상입니다. 친이를 어찌할 지 아마 논의가 살짝 진행될 것이고, 친이 쪽에서 친박 쪽에게 퇴임 후 어떻게 대해줄 거냐고 타진을 하려고 할 겁니다. 이건 다음달쯤에나 있을라나요.



 



그럼, 민주당은 어찌될까. 참 답이 안나옵니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 시절, 새정치국민회의는 외환위기 극복이라는 중차대한 목표가 있었고 승리했기 때문에 조용했죠. 취임 1년 뒤에 당을 새천년민주당으로 확대개편하는 정도 조용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정신 없었죠. 이미 새천년민주당내에서는 친노와 옛 민주당계가 완전 대립하고 있을 때였죠. 한화갑 대표 시절인데, 노무현 후보 선대위에 당 자금조차 내주지 않는 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선됐으니 서로 좋을 리가 없죠.


 그리고 이듬 해 쇄신 문제를 놓고 싸우다, 난닝구만 입은 당원이 회의에 난입하고, 노 당원이 이미경 의원 머리채를 잡고. 결국 열린우리당이 분당했습니다. 아마 정당 분열의 결정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5년 전 정동영 후보 패배 때인 대통합민주신당, 그 때도 한바탕 돌풍이 불었죠. '새로 해야 한다, 한다'면서 결국 열린우리당 때 합류 안했던 민주당 등을 모아 통합민주당으로 만들었죠. 시민사회 수혈도 좀 하구요.


 그 때도 패배 책임론이 불듯했지만, 워낙 대패여서 누가 누구를 비난하지 못하는 정도였습니다. 총선도 코 앞이었구요. 그래서 남은 세력을 탈탈 털어 만든 게 통합민주당었죠. 당시 손학규 대표가 '교황 선출식'(사실상 추대)으로 뽑혀 17대 총선을 지휘했지만, 81석 얻는 것으로 끝났죠.


 이번에는 어떨까요. 당내에서 7, 8년 '비주류'를 해왔던 분들이 있습니다. 또 19대 총선 때 배지를 단 뒤 이쪽으로 가신 분들도 있습니다. ㅇ모, 또다른 ㅇ모, ㅈ모, ㅎ모, ㄱ모 등 의원들입니다. 뭐 아실 분들은 아실 겁니다. 이 분들, 움직이기 시작했죠. 일단 이번주에는 조용조용하실 겁니다. '패배하자마자 계파 싸움한다'는 비판을 피하려는 거죠. 다음주 중부터 본격화할 겁니다.


 대체로 "친노 몽땅 물러가라" "새당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일 것입니다. 그리고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를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뒤에 달 겁니다. '안철수 중심론'이 실제 내세우고 싶은 거겠지만, 아직은 그것을 앞세우기는 면구스럽겠죠.


 이들 말고 중립적인 이들도 있습니다. 목소리가 작고 잘 뭉치지 못해서, 당 입장을 정할 때 잘 반영이 안 돼 왔습니다. 의원 40~50여명 쯤 됩니다. 이들이 대선 패배를 계기로 쇄신 운동에 동참한다면 힘이 확 쏠릴 것입니다.


 친노 쪽은 갈릴 거 같습니다. 쏟아지는 뭇매 속에서 "죄송합니다"고 털고 일어나 '일단' 표표히 사리지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미안하기는 한데, 우리만 잘못한 거냐, 왜 맨날 우리만 때려"라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이럴 때에는 반발하는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립니다. '민주당 내홍, 격돌, 또 108번뇌' 이런 기사가 쏟아질 겁니다.


 친노 입장은 친노 지도부(사실상 현재 당 지도부)에서 정리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당내 비주류 측과 충돌은 어느 정도 불가피할 겁니다.


 결국 민주당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백가쟁명을 하다가 내년 봄쯤 전당대회를 열텐데, 그게 혁신 전대일지, 당명 개정 전대 일지, 당 해체 전대일지...아직 모르겠습니다. 아마 새로운 정당으로 흡수 또는 통합되는 전대가 될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그럼 야권 개편의 핵심이 될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는 어떨까요. 이 분, 바둑 두려고 할 때 괜찮은 책들을 독파해 기본기를 탄탄히 한 뒤 실제 배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잘 움직이지 안돼, 한번 움직이면 그대로 간다고 합니다.(풍림화산?) 그러니 바로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귀국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 관측입니다.


 안 전 교수가 미국으로 떠날 때 대선 상황을 많이 개탄했다고 합니다. 민주당에 대해서도 크게 실망해 있답니다. 그 실망이 민주당의 문재인 전 후보와 친노를 주로 향한 것이냐, 아니면 '민주당'이라는 기존 체제식 정당인지는 명확치 않습니다. 이게 왜 중요하느냐, 그에 따라 안 전 교수 발걸음 방향이 다를 수 있어서입니다.


 지금으로서는 전자에게 더 실망해 있는 듯합니다. 다만 그의 짧은 정치 행보를 반추해보면 민주당 전체에 대한 실망도 없지 않은 듯합니다. 그래서 민주당 비주류들이 '들어만 오시면 잘 해드릴게요'라고 카펫을 앞에 깔아도, 그 위에 선뜻 서지 않을 거 같습니다.


 안 전 교수도 정치를 하려면 세력이 필요할텐데, 그 중심은 '새정치'를 대변하는 이들일 거라는 겁니다. 그게 누구일지는, 안 전 교수님 마음 속에 있겠죠.

Posted by 최우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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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들

최우규 정치부 차장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국민을 통합해달라, 탕평인사를 해야 한다, 서민 삶을 보듬어 달라, 남북 문제를 잘 풀라” 등 좋은 이야기가 쏟아진다. 그런 고담준론이야 고매하고 지식이 깊은 분들이 많이 하실 것이다. 그저 5년 전 에피소드 몇 개를 소개하고 싶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2008년 1월11일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이동관 대통령직인수위 대변인이 서울 종로구 한국금융연수원 브리핑 룸에 섰다. 그는 “헌법을 제외한 대부분 법률은 당선인이란 용어를 쓰고 있고 중앙선관위가 수여하는 증명서도 당선인증이라고 불린다”며 “앞으로 당선인으로 써달라”고 기자들에게 주문했다.



 당선자 호칭을 놓고 “당선인으로 써야 한다”는 논란이 일던 터다. 헌법재판소는 1월10일 “헌법을 기준으로 하면 ‘당선자’로 쓰는 것이 맞다”고 했다. 헌법 67조 2항에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있어서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에는 국회의 재적의원 과반수가 출석한 공개회의에서 다수표를 얻은 자를 ‘당선자’로 한다”고 했다. 68조 2항에도 “대통령이 궐위된 때 또는 대통령 ‘당선자‘가 사망하거나”라고 써놓았다. 1987년 노태우, 1992년 김영삼, 1997년 김대중, 2002년 노무현 모두 당선자였다.



당선자와 당선인의 뜻이 무에 그리 다르겠나. 차이라면 ‘놈’이라는 뜻의 자(者)와 ‘사람’이라는 뜻의 인(人) 자다. 인수위는 ‘감히 대통령 되실 분에게 놈이라는 글자를 써서야 되겠느냐’는 인식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이 대변인의 ‘주문’에 따라 ‘이명박 당선자’는 ‘이명박 당선인’이 됐다. 이는 이후 ‘이명박 정권’의 권위주의와 일방주의를 예고하기에 충분했다.



당선증 받는 박근혜당선인 (경향신문DB)


5년이 흘러 이제 대부분 ‘당선인’으로 호칭한다. 박근혜 전 후보도 20일 서울 국립현충원 방명록에 ‘대통령 당선인 박근혜’라고 썼다. 


이를 다시 ‘당선자’라고 쓰자는 게 아니다. 다만 “감히 대통령 되실 분을 놈으로 불러서야” 하던 당시 인식과 행태를 저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헌법에 그렇게 돼 있어도 다른 법률에는 안 그렇다”고 갖다붙이는 편의주의도 문제다.



이명박 대통령직인수위를 통해 가장 유명해진 단어가 ‘아륀지’일 것이다. 인수위원장이던 이경숙 당시 숙명여대 총장은 영어몰입교육을 강조했다. 자신의 미국 유학에서 영어가 제대로 안될 때 안타까움에다, ‘기러기 아빠’(배우자와 자녀를 미국 유학 보내고 1년에 한 번 가서 보는 아빠)가 돼야 했던 동료 교수들을 불쌍히 여겨서 나온 것이란다.



이 위원장은 1월30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영어 공교육 완성 프로젝트 실천방안 공청회’에서 “영어 표기법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원어민처럼 발음하기 어렵다”며 “내가 미국에서 ‘오렌지(orange)’라고 했더니 아무도 못 알아듣다가 ‘아륀지’라고 하니 알아듣더라”고 했다.



‘아륀지’ 발언은 서민은 물론 식자층으로부터도 적잖은 비판을 받았다. 없는 사람들은 “미국 물을 못 먹어봐서 그게 뭔지 모르겠다. 오렌지인지 아륀지인지가 그렇게 중요한 거냐”고 했다. 배운 사람들은 “영국에서는 오렌지라고 한다. 그럼 토마토는 토메이로, 바나나는 버내너라고 해야 하느냐” “영어를 못하면 버텨낼 수 없는 우리 교육·사회 체계가 문제”라고 했다. 또 “언행이 청담동 헤어숍에 앉은, 있는 집의 부인들 담소 수준”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사고와 시야의 편협함을 지적한 것이다.



당시 인수위에서 “점수를 왕창 깎아먹었다”는 자조가 나왔다. 이 위원장은 총리 물망에도 올랐으나, 한승수 전 경제부총리가 총리직을 차지했다. 이 위원장은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공천장을 받지 못했다.


탕평인사가 만사가 아니라, 국민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국민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보듬는 사람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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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우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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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라는 게 참 요상하다. 볼수록, 들을수록.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게 2009년이니 3년 전이다. 그 때 장례식장에서 통합민주당 당시 백원우 의원은 "이 살인자"라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항의하다 경호원에게 끌려 갔었다. 그리고 그는 장례방해죄로 약식기소됐다. 1심에서 벌금, 2심에서 무죄였는데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났는지는 모르겠다.


법적 판단을 따지자는 건 아니고, 백원우 의원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보스이고 둘째 형 같은 존재였다.(첫째 형은 고 제정구 의원) 자신의 보스가 검찰 수사의 모멸감과 압박감을 견디지 못해 숨지자, 그 총 책임자(청와대는 모르는 일이라면서 부인했지만)인 이명박 대통령에게 '살인자'라고 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 이명박 대통령을 청와대로 보낸 사람들은 그 살인자의 협조자, 적어도 방조자 같은 존재일 것이다.

 

 


그런 정서적 충격이 3년 뒤 일을 만든다. 2012년 11월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간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안 후보측의 잠정 중단 선언의 한 빌미가 된 것이다.


직접 보지 못했고 삭제했으니 확인할 길 없지만, 민주통합당 백원우 전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안 후보 측 협상 실무팀원인 이태규 미래기획실장 전력을 문제삼았다고 한다. 


이태규 실장은 올 4·11 총선 당시 자신을 소개하는 포스터에 '한나라당 정권을 만들었던 사람. 개혁적 실용정권을 꿈꾸었던 사람'이라는 글과 함께 '2007년 12월 한나라당 정권 창출의 중심에 선 이태규'라고 썼다.

이 실장은 이명박 후보 당 선대위에서 전략기획팀장을 지낸 핵심 인물이다. 한나라당 윤여준 의원 보좌관 출신이었고 경선 과정에서 합류했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 입성 때 함께 들어갔다가 핵심인사들과 마찰을 빚다가 나왔다. 19대 총선 때에는 당내 예선에서 떨어져,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이 실장의 포스터가 트위터에서 계속 리트윗됐고, 문재인 캠프 정무2특보인 백원우 전 의원도 포스터를 리트윗하며 “모욕감을 느낀다”는 의견을 달았다.

 

 


안철수 후보 측은 이를 문제삼았다. 협상 대상자를 인신공격했다는 것이다. 논란이 일자 백 전 의원은 즉각 페이스북에서 해당 글을 삭제했고, 문 후보 정무특보 직에서도 물러났다. 


여기서 또 정치의 묘한 면모가 드러난다. 안 후보측에서 이 같은 유감 표명을 하면서 협상 중단을 발표한 이가 바로 유민영 대변인이다.

고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계로 분류돼던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청와대에 백원우 전 의원과 함께 들어갔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한 것은 아니지만, 386에 학생운동을 한 젊은 멤버들이어서 같은 자장권 안에 있었다고 봐야 한다.


백 전 의원은 비서관을 지내다 17대 총선에 나와 배지를 달았다. 반면 유민영 대변인은 청와대에 남아, 참여정부 마지막 청와대 춘추관장(기자 등 대언론 담당으로 각 부처 1급 상당)까지 한다.


유 대변인은 노 전 대통령 퇴임 때 청와대를 나와 컨설팅 및 홍보 회사를 꾸려 일을 하다가 안철수 캠프에 합류했다. 그러니 유 대변인이 이태규 실장에 대한 백원우 전 의원의 심경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유 대변인은 '유감 표명'을 전하게 된다.


유 대변인이 의리를 저버렸다는 비난을 하는 건 아니다. 유 대변인은 현재 자신의 직분에 맞춰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은, 그리고 앞으로 서로 마주쳤을 때 매우 어색할 수 밖에 없게 만든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정치'라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라는 게 참 '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P.S.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분이 이 글을 보고 쪽지를 보내왔습니다. ‘춘추관장은 비서관급으로, 차관급인 수석과 다릅니다. 홍보수석 산하에 춘추관장이 있고, 비서관은 정무직 공무원 가급으로 각 부처 1급과 같습니다'고 합니다. 글을 그냥 고치기보다는 그렇게 알려온 사실도 여기 함께 적어, 제 스스로 경계 대상으로 삼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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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행정관 2012.11.19 1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홍보수석실에서 일했던 행정관입니다. 포스팅 잘 읽었습니다. 저와 생각이 많이 비슷하시네요. 저 그런데 춘추관장은 비서관급으로 차관급인 수석과는 다릅니다. 홍보수석 산하에 춘추관장에 있는 것이죠. 비서관은 정무직 공무원 가급으로 각 부처의 1급과 같습니다. 다른 분들이 오해하실 것 같아 댓글 남기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칼럼들

‘정치’. 우리나라에서 이 단어만큼이나 부정적 요소를 내포한 게 있을까. 싸움·부정·부패·범죄·붕당·왜곡·담합·철새·편가르기·지역주의…. 웬만한 나쁜 단어를 갖다 대도 정치가 풍기는 인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정치권을 향해 늘 두 가지 요구가 나온다. “제발 싸움 좀 그만하라.” “여야가 힘을 합하라.” 맞는 말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틀리다. 거칠게 정의하면 ‘정치의 본질은 싸움’이다.


 미국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은 “정치란 한정된 자원과 가치를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마 가장 잘 알려진 정치의 정의 중 하나일 것이다. 한정된 자원과 가치를 그대로 놔뒀다가는 누구나 달려드는 정글의 쟁투가 벌어질 것이다.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상태가 되기 전에, 대신해 싸우는 게 정치다. 그 싸움의 결과로 한정된 자원과 가치를 나누게 된다.


문제는 무엇을 위해 싸우느냐다. 잘 배분하기 위해 싸우느냐, 독식하려고 싸우느냐. 어떻게 싸우느냐도 중요하다. 룰을 지키느냐, 힘 세다고 룰도 맘대로 고치고 아예 어기느냐.


독식과 힘을 내세운 싸움이 판을 칠 때 그건 짐승의 싸움과 다르지 않다. 이때 정치 혐오감이 고개를 든다. 정치 혐오는 무관심을 불러온다. 그럼 그 이득은 자원과 가치를 이미 가진 이들이 가져간다. 정치 혐오는 기득권층만을 이롭게 할 뿐이다.


국회의원 체포동의안 처리하는 의원들 (출처: 경향DB)


정치 혐오로 득을 본 이중 한 명이 이명박 대통령 아닐까 싶다. 이 대통령은 소위 ‘여의도 정치’를 싫어했단다. 대선 캠프도 여의도를 벗어나 종로구 견지동에 마련했다. ‘탈 여의도, 실용주의적 리더십’을 내세웠다. 


대통령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2008년 12월29일 김형오 당시 국회의장이 쟁점 법안 연내 직권 상정에 거부 입장을 밝히자,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이 “경제살리기 위한 속도전에 나서기로 했는데 그 속도전에 걸림돌이 되어선 안되겠다”고 했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정치관을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여의도 정치’를 싫어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정치 자체를 비능률적인, 걸림돌로나 본 것이다.


‘안철수 현상’을 불러온 것도 기존 정치권에 대한 혐오다. 새 정치를 하라는 요구였다. 최근 안 후보는 한 발 더 나아간 듯하다. 지난 23일 “국민은 서로 싸우고 나눠먹고 부패한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꾸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의원 수는 줄여야 한다”고 했다. 이어 “국회가 민생 법률을 못 만든 게 숫자가 적어서 그런 거냐. 의원 수를 줄인 만큼 예산이 절약된다”고 했다.


그러자 그에게 호의를 보였던 진보진영과 시민단체에서 연이어 비판이 터져나왔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안 후보가 제시한 안에 따질 게 있다. 정치 개혁은 정치 삭제 또는 축소가 아니라 정치 활성화다”라고 말했다. 참여연대도 “국회가 견제와 감시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해결책이 의회를 약화시키는 방향이어서는 곤란하다”고 했다. “역시 착한 MB였다”는 힐난까지 나왔다.


오히려 보수당인 새누리당은 “아마추어적”이라고 논평하는 정도에 그쳤다. 보수 언론들도 그다지 크게 다루지 않았다.


다시 정치의 본질 문제로 돌아가보자. 중요한 것은 제대로 싸우게 하는 것이다. 나쁜 것을 욕할 게 아니라 좋은 것을 북돋아야 한다. 그게 혁신이다.


안철수 후보가 존경을 표시했던 고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 같은 이가 정치의 중심에 서서 1%만을 위하는 기득권에 맞서 싸우도록 해야 한다. 고 김대중 의원, 김영삼 전 의원 같은 이가 의회에서, 가택연금 상태에서도 독재와 싸우고 “민주주의”를 포효하도록 해줘야 한다. 고 제정구 의원처럼 빈민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게 해야 한다. 박선숙 전 의원처럼 재벌의 잘못된 관행과, 그 뒤를 봐주는 듯한 정부 부처와 싸우도록 해야 한다. 그런 의원들이 많아지는 게 정치 혁신의 핵심이다.


단연코 말할 수 있는 건 이런 정치인들이 수십 년간 안온함과 이득을 버려가며 싸우지 않았으면 안철수 현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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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상에 나온 재미있는 그래픽입니다. 유명 기타리스트들을 자그마하게 그래픽화했는데 몇몇은 척 보면 누군지 알 수 있고, 몇몇은 자세히 봐야 겨우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모르겠는 이도 물론 꽤 있구요.. 잘 보시고 많이 알아맞춰 보세요. 

정답은 한 참 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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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더 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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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다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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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힘을 내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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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정답은


1.Frank Zappa  2.George Harrison  3.Slash  4.Jimi Hendrix  5.Keith Richards  6.Jimmy Page  7.Stevie Ray Vaughan

8.Eric Clapton  9.Mark Knopfler  10.Brian May  11.Johnny Ramone  12.Jack White  13.The Edge  14.Chuck Berry

15.Angus Young  16.Pete Townshend  17.Tony Iommi  18.Eddie Van Halen  19.David Gilmour   20.Ace Frehley  21.Ritchie Blackmore

22.Duane Allman  23.Kirk Hammett  24.Carlos Santana  25.John Frusciante  26.Yngwie Malmsteen  27.Kurt Cobain  28.Mike Bloomfield

29.Jerry Garcia  30.Ry Cooder  31.Bo Diddley  32.Jeff Beck  33.Tom Morello  34.Brian Setzer 35.Peter G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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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기 영국은 북유럽 바이킹 데인족 출신 왕 ‘크누트 1세’의 폭정에 시달렸다고 한다. 런던에서 가까운 코번트리 영주 리어프릭(Leofric)도 데인족이었다. 그의 부인 고다이바(Godiva)는 토착민인 앵글로색슨족으로, 농민들의 고달픔에 가슴 아파하며 남편에게 세금을 깎아달라고 요청했다. 리어프릭은 “알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라. 그러면 세금 감면을 고려해보겠다”고 대답했다. 


고다이바는 번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농민들은 영주 부인의 헌신에 감동받았다. 그녀가 마을을 도는 순간 그 누구도 바깥을 내다보지 않기로 했다.


고다이바는 벌거벗고 말을 탄 채 마을을 돌았다. 코번트리는 쥐죽은 듯한 적막과 의도적 무관심에 휩싸였다. 이 모습은 존 콜리어라는 19세기 신고전주의 화가가 그린 작품 ‘고다이바 부인’에 잘 묘사돼 있다. 고개를 푹 숙인 고다이바는 흰 알몸으로 붉은 마구를 씌운 말을 타고 간다. 문과 창문은 모두 굳게 닫혀 있다.





모든 일에는 곡절이 있는 법. 양복 재단사 톰은 성적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커튼을 들췄다. 알몸을 보려는 순간 그는 눈이 먼다. 신의 징벌이다. ‘관음증 환자’를 뜻하는 ‘Peeping Tom(엿보는 톰)’이 예서 유래했다. 이는 역으로 고다이바 헌신의 숭고함과 치열함을 보여준다.


이 일화의 건너편에 한국 유력 정치인이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경선 후보다. 박 후보는 14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 롤모델로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을 꼽았다. “파산 직전에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들었다. 불행을 겪었기 때문에 남을 배려할 줄 알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국정을 이끌었다”는 이유에서다.


그럴 법도 하다. 어머니 앤 불린의 참수형, 언니 메리 1세 사후 25세에 즉위한 엘리자베스 1세는 유럽 최강국인 에스파냐 왕 펠리프의 구혼을 거절했다. “나는 국가와 결혼했다”고 선언하고 45년간 영국을 통치했다.


업적은 눈부시다. 화폐제도를 통일하고, 물가를 잡았다. 빈민구제법을 실시하고 중상주의를 채용했다. 해상왕국 기초도 이때 이뤄졌다. 위대한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 철학가이자 사상가인 프랜시스 베이컨, 시인 에드먼드 스펜서의 활약 등 가히 르네상스를 꽃피웠다. 요정 여왕(Faerie Queene)으로 불리던 그녀는, 처녀 여왕으로 생을 마감했다.


마르쿠스 헤라르츠가 그린 초상화는 절대군주의 위엄을 잘 나타낸다. 근엄한 흰색 궁정복을 목까지 채워 입고 있다. ‘그녀는 주지만 바라지 않는다’ ‘그녀는 보복할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다’ ‘되갚아줄 경우에 그녀는 권력을 증가시킨다’는 라틴어 명문이 초상화에 적혀 있다.





박근혜 후보도 20대 초반에 퍼스트 레이디를 경험하고, 결혼하지 않았다.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와 생애맞춤형 복지 등은 엘리자베스 1세의 빈민구제법 등 국민 사랑에 닿아 있다. 그러면서 여왕의 해상무역 확대, 중상주의는 새누리당의 주요 기조인 성장정책과 맞물린다.


엘리자베스 1세는 임종 전 마지막 의회 연설에서 “나보다 강하고 현명한 군주는 과거에 있었고 앞으로 있을지 모르지만 나만큼 백성을 사랑하는 군주는 이제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아무리 백성을 사랑했어도, 결국 군림하고 절대권력을 휘두른 것이다. 실제 엘리자베스 1세는 국왕을 종교상의 최고권위로 인정받도록 하고, 전 국민에게 국교회 의식과 기도서 독경을 강제했다. 의회에는 당근과 채찍을 함께 사용하며, 강력한 사법·행정기능을 가진 추밀원 중심의 정치를 했다.


그렇잖아도 ‘공주’로 불리던 박근혜 후보는, 온몸을 호화로운 관복으로 꽁꽁 싸매고 추밀원 등 소수 의견을 수렴하며 절대권력을 누리는 여왕을 꿈꾸는 듯하다. 





하지만 21세기 시민이 원하는 리더십은 내리사랑하는 절대군주보다는, ‘음험한 엿봄’조차 저어하지 않고 모든 것을 벗어던진 채 물심으로 헌신하는 고다이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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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들

최우규 정치부 차장


 

이 분이 그런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실 줄 일찌감치 알아봤다. 자신이 설립했다는 회사를 직접 선전하는 동영상이 나돌았는데도, 대변(?)하는 사람을 시켜 “(내가 설립했다는) 주어가 없다”고 부인했을 때부터였다. 그럼 동영상에 출연한 그 분은 누구인고.


그 뒤로 이 분은 멘붕(멘털 붕괴), 즉 제정신이 아닌 상태를 맛본 뒤에는 꼭 ‘유체이탈’(영혼이 육체로부터 벗어남)의 능력을 선보이고 있다.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광화문에서 청와대로 행진하려다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경향신문DB)



 이 분이 최고 ‘국민 머슴’ 자리에 오른 지 3개월 만에 푸른기와집 앞 광화문 일대가 촛불로 밝혀지던 2008년 6월10일. 그는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았다. 시위대의 함성과 함께, 제가 오래전부터 즐겨 부르던 ‘아침이슬’ 노랫소리도 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식탁 안전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꼼꼼히 헤아리지 못했다.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문제를 놓고 한 이야기다.


2년 뒤인 2010년 5월11일 이 분은 자기 ‘졸개’(어느 국회의원의 표현이다!)들과 회의하면서 “촛불시위 2년이 지났다. 많은 억측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음에도 당시 참여했던 지식인과 의학계 인사 어느 누구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 이같이 큰 파동은 우리 역사에 기록으로 남겨져야 한다는 점에서 총리실과 농림수산식품부, 그리고 관련부처가 (공식) 보고서를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년 전 “뼈저린 반성”을 한 분은 누구였을까. 이건 뭐, 딱 유체이탈이다.


푸른기와집에서 나올 날이 가까워 오면서 유체이탈이 부쩍 잦아지고 있다. 2011년 9월30일 이 분은 비서들과 회의를 하면서 “이 정부가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인 만큼 조그마한 허점도 남기면 안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발언을 해서일까. 그 뒤로 측근들인 김두우 전 홍보수석,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멘토’라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줄줄이 사법처리됐다. 최근에는 이 분 형님까지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를 들락거리고 있다.


내곡동 사저 의혹, BBK,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등을 놓고 국회에서 청문회, 국정조사, 특검 등이 거론되고 있다. 결국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 운운은 그야말로 완벽한 ‘유체이탈 화법’인 셈이다.



(경향신문DB)



그토록 하고 싶어 하던 4대강 대운하 공사의 축소판인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마쳤다. 지난달 20일 브라질에서 열린 ‘유엔지속가능개발 정상회의’에 참석해 “수자원 인프라 개선사업(4대강 사업)으로 홍수와 가뭄 모두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100년 만의 가뭄으로 농심이 타들어가던 때였다.


그런데 이탈했던 유체가 돌아왔는지 이틀 뒤인 23일 “가뭄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국무총리실이 중심이 돼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 했다.


얼마 전에는 결정판이 나왔다. 지난달 26일 한·일 군사정보협정이 ‘졸개’들 회의에서 비공개로 통과됐다. 이 사실이 한 신문에 의해 폭로돼 문제가 됐다. 당시 이 분은 중남미 순방 중이었다.


이 사건으로 민심이 들끓자, 또 특유의 화법이 나왔다. 협정 처리 과정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국회와 국민에게 협정 내용을 소상히 공개하고 설명해서 오해가 없도록 조치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왜 그런가 했더니 “(협정의) 큰 틀에 대해서는 보고를 받았는데 그 진행 과정, 이런저런 과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보고를 못 받았다”고 한다. ‘독도’를 놓고 사실상 영토분쟁 중인 나라와 군사 정보를 주고받고 보호해준다는 협정을 체결하는데, 그걸 최고위 인사가 모르도록 졸개들이 모여 처리했다는 게 푸른기와집 사람들의 설명이다. 이러니 또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다만 유체이탈을 자주 펼치시는 이 분이 누군지는 여기서 밝히지 않겠다. 이 분 능력을 모아놓고 보니 굉장하기도 하고, 무섭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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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우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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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은 전면전이다. 계급·계층 간 다툼, 이념과 정책의 쟁투가 이뤄진다. 이때 의제를 살펴보면, 당대 갈등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밑바닥에 흐르던 갈등과 불만이 총선이라는 공간에서 총체적으로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의제는 여당의 ‘안정론’과 야당의 ‘심판론’, 두 축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1950년대 “못 살겠다, 갈아보자”(야당), “구관이 명관이다”(여당)가 그런 극명한 구호이다.



1970~80년대를 꿰뚫는 의제는 ‘민주’ 대 ‘반민주’였다. 군사정권은 “잘살아보세”라는 ‘안정론’을 내세웠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독재 타도, 민주정부 수립”의 기치 아래 결집했다.

총선 의제는 김영삼 대통령 당선으로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부터 다양화했다. 1996년 15대 총선은 김영삼 대통령,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김종필 자민련 총재의 마지막 결전장이었다. 이들 3김의 ‘미래’가 어떨지가 최대 관심사였다.

2000년에는 선거 사흘 전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발표됐다.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은 김대중 대통령 업적으로 내세웠고, 야당인 한나라당은 ‘반통일 세력’으로 찍힐까봐 반대는 못하고,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호소하는 정도였다.

2004년에는 선거 한 달여 전에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역풍은 엄청났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인기는 치솟았다. 이 때 뜻밖의 이슈가 터졌다. 정동영 당 의장이 인터뷰에서 “이제는 20∼30대의 무대다. 한 걸음만 더 나아가 생각해 보면 60대 이상 70대 이상은 투표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





탄핵 역풍에 숨죽이던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은 “노인 폄훼 발언”이라고 대대적으로 공격했다. 정 의장은 보름을 버티다 선대위원장직 사퇴 및 비례대표 불출마를 선언해야 했다.

2008년 18대 총선은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지 5개월 뒤 치러졌다. 한나라당 승리는 예견됐다. 유권자의 이목은 여권 내부다툼에 쏠렸다. ‘친박 공천 학살’에 반발한 이들이 ‘친박연대’ ‘친박 무소속’을 내세워 20명 넘게 당선됐다.

다시 4년이 지났고, 19번째 총선이 목전에 다가왔다. 이번 이슈는 무엇인가.

두 달 전으로 시간을 돌려보자. 한나라당은 참패의 공포에 떨고 있었다.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의 후유증이 여전했다. 금품을 받은 청와대 고위 인사들의 잇딴 구속,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 비서들의 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 박희태 국회의장의 2008년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등 하루가 멀다하고 악재가 터졌다. 역대에 이 정도로 심판론이 우세한 경우가 없었다.



지금은 어떤가. 심판론은 오간 데 없다. 한나라당의 새누리당으로 변신과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역할론이 부각돼 있다. 야권에서는 민주통합당의 ‘엉망진창 공천‘이 문제다. 서울 관악을 지역구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여론조사 조작 파문이 터지면서 야권연대도 삐걱이고 있다.

그 최일선에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가 서 있다. 박 위원장은 이번에도 2004년처럼 시나브로 당을 회생시키고 있다. 당무를 꿰차고 직접 챙겼다. 쇼든, 진심이든 “잘못했다. 바꾸겠다. 살려달라”고 호소해 먹힌 것이다. “수도권 다 죽는다”던 비명은 사라졌고, 다시 제1당을 꿈꾸고 있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어떤가. 1월15일 대표가 됐을 때만 해도 180석에 달하는 제1당 대표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70일도 안된 지금은 “대표가 된 뒤 매주 4석씩 까먹었다”는 힐난이 나온다.




측근인사 파문, 부적절 공천, 심판론 의제화 실패 등 비판이 쏟아졌다. “노력만 갖고 되는 게 아니다”라는 ‘자질론’마저 제기되고 있다.

이제 여야는 다시 같은 선상에 섰다. 앞으로 20일간 의제 전쟁이 19대 국회 지형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12월 18대 대선, 2013년 체제의 씨앗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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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우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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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에 쏟아지는 비난 중에 특히 거센 것은 두 가지다. ‘현역 의원 탈락률이 낮다, 옛 민주당계를 배제한다’는 것이다.

우선 현역 의원 배제 문제다. 그간 민주당은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과 영남 위주로 후보를 발표했다. 현역은 단수·경선 후보로 선정됐다. 해서 “쇄신과 개혁 의지가 부진하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문제는 옥석이다.

한 민주당 공심위원은 “수도권 의원들은 지난번에 140여석에서 81석으로 줄어들 때 살아남은 경쟁력 있는 이들”이라고 말했다. 서울 48개 지역구 중 7곳 등 수도권 111곳 가운데 민주당 현역은 29곳이다. 다른 당처럼 인위적으로 30%를 떨어뜨리려면 9~10곳을 갈아야 한다. 이런 물갈이 요구는 ‘현역 교체=공천 개혁’이라는 등식으로만 문제를 좁히는 것이다.

 물갈이 잣대인 초선 비율은 1996년 15대 45.8%였고 16대 40.6%, 17대에 62.5%, 18대 44.8%다. 물갈이가 혁신이면 17대가 가장 혁신적이었어야 한다. 아니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입성한 당시 여당 초선들은 개혁을 내세웠지만, 안하무인으로 제 주장만 내세우다 무능한 ‘탄돌이’로 찍혀 낙선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의 뒷심을 받고 ‘뉴타운’ 공약으로 당선된 18대 ‘뉴탄돌이’들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닥치고 바꿔’가 아니라 문제 인물을 솎아내는 것이다. 이는 특정 정당에가 아니라 모든 당에 통하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들이 면접심사를 하고 있다. l 출처: 경향DB


민주당 수도권 후보로 나섰다가 배제된 이들 중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이 당을 만든 게 누군데”라고 반발하는 이들이 있다. ‘옛 민주당계 배제론자’들이다. 모임을 만들어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겠단다. 

주위 사람 이야기만 듣고 스스로를 호남이 배출한 ‘박근혜’ ‘안철수’ ‘문재인’급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감언하는 이들 말고, 유권자들에게 물어보면 된다. 무소속으로라도 나오기를 목말라 하는지.

김 전 대통령은 2009년 서거 2주일 전 “내가 70%를 갖고 있지만, 70%를 내주고 30%만 갖고도 통합을 하겠다는 자세로 해야 한다”고 했다. ‘야권 연대, 총선 승리, 정권 교체’를 하라는 정치적 유지였다. 

‘김대중의 사람’을 자처하려면 이 기본은 품고 있어야 하지 않는가.

Posted by 최우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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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 쿨파, 메아 쿨파, 메아 막시마 쿨파(Mea culpa, mea culpa. mea maxima culpa).” 가톨릭에서 사죄의 기도를 드릴 때 하는 말이다. 라틴어인 이 말은 “내 탓(잘못)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다”라는 기도문이다.

절대자 앞에서야 고백, 사죄하는 게 어렵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게 사람 앞이라면, 더욱이 적대적인 사람들에게라면 하기 어려운 게 사죄, 사과리라. 장삼이사가 아니라 한 나라의 지도급 위치라면 더욱 그렇다. 창피해서, 뭘 잘못했는지 몰라서, 아니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럴 것이다.

한미FTA 발효 중단 서한을 전달하려는 야당지도부를 경찰이 막고 있다. l 출처: 경향DB


 
보수 쪽에서 국부(國父)로 떠받드는 초대 대통령 우남(雩南) 이승만이 딱 그렇다. 우남이 사과할 일은 산더미다. 이 전 대통령은 ‘제주도민들을 강력히 처벌하라’고 지시해 4·3 학살 상황을 만들었다. 6·25 때 한강철교를 폭파해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켰다. 3·15 부정선거에다, 4·19 때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민과 학생들에게 발포해 사망한 이만 186명이다. 우남이 공식 사과했다는 이야기는 과문해서인지 들은 바 없다.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하고 시민을 학살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2008년 4월 18대 총선 때 투표 장면을 취재하던 기자들에게 “카메라 기자들이 내 사진은 꼭 비뚤어지게, 인상 나쁘게 (찍는다). 젊은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감정이 안 좋은가봐.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고”라고 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회고록에서 5·18과 관련, “유언비어가 진범이다. ‘경상도 군인들이 광주 시민들 씨를 말리러 왔다’는 등 유언비어를 들은 시민들이 무기고를 습격하게 된 것”이라고 썼다. 5·17 계엄 확대는 “서울의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치안 유지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믿고 있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크게 사과한 적이 있다. 촛불집회가 절정이던 2008년 6월 “캄캄한 산중턱에 홀로 앉아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의 행렬을 보면서,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다”고 했다. 그러나 2010년 5월 국무회의에서는 “많은 억측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음에도 당시 참여했던 지식인과 의학계 인사 어느 누구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결국 2년 전 사죄는 빈말이었다.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의 최근 행보는 문득 이들과 겹쳐 보인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때문이다. 그는 한·미 FTA가 잘못된 협상이니만큼 독소조항 재협상을 추진하고, 안되면 협정을 폐기하겠다는 것이다.
 

한명숙 국무총리가 한미FTA(자유무역협정) 특위 여당의원들과 가진 간담회 ㅣ 출처: 경향DB


하지만 한 대표 자신이 보수진영의 공격 빌미가 되고 있다. 총리 시절 했던 발언 때문이다. 2007년 1월30일 “한·미 FTA는 반드시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라고 말하는 적극적 찬성 입장 발언을 많이 했다.

이제는 한·미 FTA가 잘못됐다고 한다. 국제금융질서가 바뀌었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이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미 FTA 추진 초기부터 국제금융질서 문란과 신자유주의적 질서 공고화가 비판의 주된 주제였다.

잘못을 알았으면 깨끗하게 반성하고 사과해야 할 일이다. 뭘 잘못했는지 모르거나,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이 문제는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마침 당시 통일부 장관과 여당 당의장을 했던 민주당 정동영 의원은 지난해 10월 “미래를 꿰뚫어보지 못한 저의 안목의 부족함을 고백하며 반성한다”고 말했다. 복지부 장관을 지낸 통합진보당 유시민 공동대표도 지난해 7월 “정책의 오류를 말하기 전에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려야겠다”고 했다.

정치인으로서 시민, 유권자에게 사죄·사과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하지 않나. 지지자들은 한 대표가 스스로 나서, 아니면 당을 대표해 “메아 쿨파”를 되뇌이며 한·미 FTA 추진을 반성하고 사과하기 바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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